오페라 이야기/어린이 오페라

폴리치노(Pollicino)

정준극 2012. 2. 11. 10:11

폴리치노(Pollicino)

한스 베르너 헨체의 동화오페라(Musical fairy tale opera)

 

한스 베르너 헨체

 

한스 베르너 헨체는 2012년으로 86세가 된다. 1826년에 독일 베스트팔리아에서 태어났다. 나치와 뜻이 맞지 않아 1953년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한스 베르너 헨체는 좌익사상을 가지고 있을뿐만 아니라 동성연애자였다. 그후 지금까지 중부 이탈리아의 마리노에 살면서 작곡을 계속하고 있고 여행도 다니고 있다. 대단히 활동적인 작곡가이다. 그는 지금까지 30편이 훨씬 넘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젊은 공자'(Der junge Lord), 고독대로(Boulevard Solitude), '젊은 연인을 위한 엘레지'(Elegey for Young Lovers) 등 제목만 말해도 친근한 오페라들을 만들어 냈다. '폴리치노'는 프랑스의 샤를르 페로에 이어 독일의 그림 형제가 정리한 유럽의 전래동화를 이탈리아의 카를로 콜로디(Carlo Collodi)가 다시 쓴것을 독일의 루드비히 베흐슈타인(Ludwig Bechstein)이라는 사람이 독일어 동화로 쓴 것을 참고로 하여 한스 베르너 헨체 자신이 대본을 쓴 동화오페라이다. 그러므로 대본은 독일어로 되어 있다. '폴리치노'는 오페라의 장르로 보면 favola per musica 에 속한다고 할수 있다. 독일어로는 매르헨오퍼(Märchenoper)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Musical Fairy Tale Opera라고 부른다.

 

일곱명의 남자아이들과 일곱명의 여자아이들이 숲에서 만난다.

 

헨체의 오페라라고 하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작곡자인 헨체가 사회에 대하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케 하는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은 풍자적이며 신중하고 반항적이다. 하지만 황홀한 매력이 있음을 간과할수는 없다. 오페라 폴리치노는 헨체의 바로 그러한 스타일을 모두 담고 있는 작품이다. '엄지 톰'(Tom Thumb: Der kleine Däumling)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폴리치노'는 '엄지 톰'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다. '폴리치노'에는 폴리치노의 어머니와 아버지, 거인과 그의 부인 등 어른들도 등장하지만 어린이들이 주로 등장한다. 그래서 음악도 어린이들을 고려하여 작곡되었다. 음악이 조금 어렵다고 하더래도 고등학교 학생 수준이면 충분히 감당할수 있다. 타이틀 롤인 폴리치노는 트레블(보이 소프라노)가 맡도록 되어 있다. 폴리치노의 여섯 명 형들도 트레블이 맡는다. 올빼미와 클로틸데는 여학생이 맡는다. 숲속의 동물들과 클로틸데의 여섯 명 언니들도 여학생들이 맡는다.

 

폴리치노가 숲 속의 동물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등장인물은 폴리치노(S), 벌목꾼인 폴리치노의 아버지(B), 폴리치노의 어머니(MS), 사람 잡아 먹는 괴물(Bar), 괴물의 아내(MS), 이들의 막내 딸인 클로틸데(Clotilde: S) 등이다. 여기에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폴리치노의 형 6명, 클로틸데의 언니 6명, 마을 사람들이 등장한다. 스토리는 '헨젤과 그레텔'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폴리치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자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어야 하나?'(Was govt's zu essen heute Nacht?)라면서 걱정을 한다. 폴리치노의 아버지는 열심히 일했지만 부자인 돈을 주어야 할 사람이 부자인데도 돈을 주지 않아서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헨체의 사회비판성이 표현되어 있는 부분이다. 아버지는 일곱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숲 속 깊은 곳에 갖다버림으로서 문제를 해결코자 한다. 어머니는 울면서 굶어 죽더라도 함께 굶어 죽자고 애원하지만 아버지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는다(Ach, meine Buben). 막내 아들인 폴리치노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얘기를 우연히 엿듣는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숲 속으로 놀러가자고 말한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수프를 만들어 준다. 아이들은 순무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수프를 먹으면서 맛이 이상하다고 한다(Diese Ruebe schmeckt abscheulich). 어머니는 그제서야 순무가 아니라 신발 바닥으로 만들었다고 밝힌다(Ja ich kochte diese Sohle).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즐겁다. 아이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아버지를 따라 나선다. 폴리치노는 조그만 조약돌들을 주워서 주머니에 넣고 가면서 숲속으로 갈 때에 몰래 하나씩 떨어트린다. 나중에 형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알아 두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저녁이 되어서 집에 무사히 돌아올수 있었다. 어머니는 기뻐하면서 눈물을 흘리지만 아버지는 다음날 아이들을 다시 숲 속에 갖다버리기로 한다.

 

'폴리치노' 음반 커버

 

다음날, 폴리치노는 어머니가 점심으로 만들어 준 빵을 가지고 가면서 길에다가 빵 조각을 하나씩 떨어트린다. 그러나 아풀싸! 새들이 빵 조각을 모두 주어먹는다. 폴리치노는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한다(Die Eltern haben uns hier im Stich gelassen). 숲에 사는 동물들이 일곱 형제들의 친구가 된다. 동물들은 밤이 되어 일곱 형제들이 쉴 곳을 찾아 준다. 숲 속에 있는 오두막집이다. 일곱 형제들은 동물들이게 고맙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집에는 사람을 잡아 먹는 괴물(Der Menschenfresser: Herr Ogre)이 그의 부인과 일곱 딸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일곱명의 남자 아이들이 집으로 들어오자 괴물의 부인은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며 친절하게 대한다. 그러다가 괴물이 들어오는 기척이 있자 아이들을 숨긴다. 헨체의 사회비평적은 견해는 괴물의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괴물은 괴물노동조합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는다. 괴물은 한참동안 상대방의 얘기를 듣더니 '정부 사람들에게 전하시오. 만일 18시간 안에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아무 어린아이들이나 보이는대로 잡아 먹겠다고 말하시오'라며 전화를 끊는다. 이 얘기를 들은 폴리치오와 괴물의 막내 딸인 클로틸데는 모두를 데리고 그 집으로부터 도망가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아이들은 괴물에게 들키고 만다(Steht nur, die armen kleinen Menschen). 그러나 아이들은 폴리치노와 클로틸데의 기지로 괴물의 오두막집을 빠져 나와 강건너 어른 괴물들이 없는 곳, 오페라에 나오는 어른들도 하나도 없는 자유스런 곳에 무사히 도착한다. (어른이 없는 곳에서 살게 되었지만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어린이들을 잡아 먹는 괴물의 집에 들어간 일곱명의 남자 아이들

 

헨체의 '폴리치노'는 1980년에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몬테풀치아노(Montepulciano)라는 작은 마을에서 초연되었다. 오래전부터 토스카나 지방에 와서 정착하여 살고 있는 헨체의 55회 생일을 기념한 공연이었다. 독일의 바덴오페라단이 특별히 와서 '폴리치노'를 공연하였다. 바덴오페라단은 2011년에 헨체의 85회 생일을 기념하여 '폴리치노'를 리바이벌하였다. 헨체의 음악은 병렬주의(Serialsim), 무조성(Atonality), 스트라빈스키, 이탈리아 음악, 아라비아 음악, 심지어는 재즈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고 헨체의 음악이 무조 일변도라는 것은 전혀 아니다. '폴리치노'만 해도 정상적인 음조로 되어 있다. 하지만 간혹 나오는 반음계의 구성과 불협화음을 고려하면 현대적인 작품이다. 조금 지루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음악이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오히려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폴리치노와 클로틸데가 괴물의 집에서 도망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