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310. 니콜로 좀멜리의 '데모폰테'

정준극 2012. 2. 22. 06:06

데모폰테(Il Demofonte)

Demofonte - Demofoonte - Demofont

니콜로 좀멜리(Niccolò Jommelli)의 드라마 페르 무지카(dramma per musica) 

 

니콜로 좀멜리(1714-1774)

 

데모폰테(Il Domofonte)는 18세기 이탈리아의 유명 작곡가인 니콜로 좀멜리(Niccolò Jommelli: 1714-1774)의 오페라 세리아로서 위대한 대본가인 메타스타시오(Metastasio)의 대본에 의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라시아(Thracia)의 왕 데모폰테를 주제로 한 오페라는 최소한 73편이나 된다. 그중에서 좀멜리에 의한 것이 최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연되는 등 관심을 끌고 있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소개코자한다. 70여편에 이르는 데모폰테 오페라는 모두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을 사용한 것이다. 메타스타시오는 그리스와 로마 신화를 주제로 하여 수많은 대본을 썼다. 모차르트의 '티토의 자비' 또는 '베툴리아 해방'은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에 의한 오페라들이다. 잘 아는대로 오페라 역사의 초기에는 신화의 주인공이나 왕족 또는 귀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오르페오, 외디푸스, 오딧세이(율리시스), 메데아 등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데모폰테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메타스타시오가 1733년에 데모폰테에 대한 대본을 만들자 수많은 작곡가들이 그의 대본을 사용하여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니콜로 좀멜리의 '데모폰테'도 그 중의 하나이다. 좀멜리의 '데모폰테'는 1743년 파두아에서 초연되었다.

 

마투시오가 디르체아를 아폴로 신에 대한 제물로 드리려고 하지만 도저히 그럴수 없다고 하는 장면

                      

수많은 작곡가들의 '데모폰테' 오페라 중에서 가장 최초의 것은 안토니오 칼다라(Antonio Caldara)가 작곡한 것이다. 1733년 11월 4일 비엔나의 호브테아터(Hoftheater: 궁정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샤를르 6세(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의 명명일을 기념하여서 공연되었다. 이후 우리의 귀에 익은 작곡가들로서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에 의한 오페라를 만든 사람을 짚어보면, 비발디, 글룩, 파이시엘로, 피치니, 트라에타, 요한 아돌프 하쎄, 루이지 케루비니 등이다. 니콜로 좀멜리는 18세기에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의 작품들이 자주 연주되지 않는 바람에 그의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평론가들에 의하면 좀멜리의 작품 중에서 '데모폰테'가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다.

 

케린토 왕자가 크레우사의 짐에 웨딩드레스가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일단 스토리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트라시아의 왕 데모폰테는 아폴로 신에게 언제까지 처녀를 희생물로 하는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 문의한다. 트라시아에서는 매년 한명의 처녀를 아폴로 신에게 바치는 제사를 드린다. 트라시아는 지금의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일대에 있던 고대왕국으로서 인도-유럽의 혼합 부족으로 이루어진 나라를 말한다. 데모폰테 왕의 문의에 대하여 신탁에 의한 대답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아무리 죄없는 순진한 자라고 해도 왕위를 찬탈하여 왕좌에 앉으려고 하면 계속된다'는 것이다. 왕은 어쩔수 없이 올해의 제사를 준비하라고 지시한다. 처녀를 한명 선택하여 죽이는 제사이다. 귀족인 마투시오(Matusio)는 자기의 사랑하는 딸인 디르체아(Dircea)가 제물로 선택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 그런데 마투시오는 물론이고 데모폰테도 디르체아가 데모폰테의 아들이며 왕위 계승자인 티만테(Timante)와 비밀리에 결혼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데모폰테는 아들 티만테가 프리지아(Phrygia)의 공주인 크레우사(Creusa)와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다. 프리지아는 오늘날 터키 아나톨라 지방 일대에 있었던 왕국이다. 티만테 왕자와 크레우사 공주의 결혼은 이미 기정사실로 알려져 있는 터였다. 그래서 티만테의 동생인 케린토(Cherinto)가 프리지아로 가서 크레우사 공주를 모시고 트라시아로 돌아오는 길이다. 그런데 케린토는 크레우사 공주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그만 공주와 사랑에 빠진다. 드디어 크레우사 공주가 트라시아에 도착한다. 크레우사 공주를 만난 티만테는 크레우사와 도저히 결혼할수 없다고 고백한다. 다만, 그 이유는 묻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

 

마투시오와 디르체아. 원래 데모폰테 왕의 딸인 디르체아는 우연한 기회에 마투시오의 집에서 자란다. 디르체아는 마투시오가 아버지인줄 알고 있지만 마투시오는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

 

아폴로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선택된 디르체아는 너무나 참담한 심정이어서 트라시아를 떠너 멀리 도망가려고 하지만 도중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 데모폰테 왕은 제사장들과 신하들에게 당장 디르체아를 제물로 하여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한다. 디르체아와 결혼한 티만테 왕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디르체아를 석방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헛수고만 한다. 오히려 티만테 왕자도 제사를 방해하고 제물을 탈출시키려 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힌다. 티만테 왕자와 결혼하기 위해 트라시아에 온 크레우사 공주는 티만테 왕자가 감옥에 갇히자 데모폰테 왕에게 나아가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한다. 이에 데모폰테 왕은 티만테 왕자와 디르체아를 석방한다. 티만테 왕자는 트라시아의 왕관을 동생인 케린토에게 양보키로 결심한다.

 

감옥에 갇힌 디르체아와 티만테

                        

그런데 뜻밖에도 티만테 왕자는 디르체아가 데모폰테 왕의 딸이라고 밝힌 오레된 편지 한통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티만테와 디르체아는 남매였던 것이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남매가 비빌리에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절망에 빠진 티만테는 아무에게도 그런 얘기를 하지 못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지낸다. 디르체아가 무슨 일이냐고 묻지만 도저히 대답해 주지 못한다. 그런에 티만테는 얼마후에 또 한장의 편지를 발견한다. 티만테가 데모폰테의 아들이 아니라 마투시오의 아들이라는 내용이다. 이에 모두가 마음을 놓고 기쁜 심정이다. 티만테와 디르체아의 결혼은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을 받는다. 케린토가 진정한 왕자이므로 크레우사 공주와 결혼한다. 이제 더 이상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일은 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티만테는 더 이상 왕위 계승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데모폰테 왕이 케린토 왕자에게 왕관을 씌어주고 있다. 오른쪽에는 크레우사, 왼쪽에는 티만테와 디르체아, 왼쪽 끝에는 마투시오. 200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을 사용하여 '데모폰테' 오페라를 작곡한 작곡가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 안토니오 비발디(초연 연도 불명) ○ 펠리체 알레싼드리(Felice Alessandri: 1783년 파두아) ○ 파스쿠알레 안포씨(Pasquale Anfossi: 1773년 로마 카니발) ○ 막심 베레초브스키(Maksym Berezovsky: 1773년 리보르노 카니발) ○ 안드레아 베르나스코니(Andrea Bernasconi: 1741년 로마 카니발) ○ 안토니오 보로니(Antonio Boroni: 1762년 토리노 카니발) ○ 주세페 브리비오(Giuseppe Brivio: 1738년 토리노 카니발) ○ 프란체스코 치암피(Francesco Ciampi: 1735년 로마) ○ 조아키노 코치(Gioacchino Cocchi: 1754년 베니스) ○ 에지디오 두니(Egidio Duni: 1737년 런던) ○ 발다싸레 갈루피(Baldassare Galuppi: 1749년 마드리드) ○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1743년 밀라노) ○ 프란체스코 만치니(Francesco Mancini: 1735년 나폴리) ○ 요세프 미슬리베체크(Josef Myslivecek: 1769년 베니스, 1775년 나폴리) ○ 조반니 파이시엘로(Giovanni Paisiello: 1775년 베니스) ○ 안토니오 팜파니(Antonio Pampani: 1757년 로마) ○ 다비데 페레즈(Davide Perez: 1752년 리스본) ○ 브리치오 페트루치(Brizio Petrucci: 1765년 페레라) ○ 니콜로 피치니(Niccolò Piccini: 1761년 레지오 에밀리아) ○ 주세페 사르티(Giuseppe Sarti: 1771년 코펜하겐, 1782년 로마 카니발) ○ 게타노 마리아 쉬아씨(Gaetano Maria Sciassi: 1735년 베니스 카니발) ○ 요제프 슈스터(Joseph Schuster: 1776년 포를리) ○ 안젤로 타르키(Angelo Tarchi: 1786년 크레마, 1786년 밀라노) ○ 토마소 트라에타(Tommaso Traetta: 1758년 베로나) ○ 프란체스코 우티니(Francesco Uttini: 1750년 페레라) ○ 프란체스코 벤토(Francesco Vento: 1765년 런던) ○ 요셉 미슬리베체크(두번째 버전. 1775년 나폴리, 스페인왕 카를로스 3세 생일 기념) ○ 마르코스 포르투갈(Marcos Portugal: Marco Portugallo: 1794년 밀라노 라 스칼라: 수정본은 1808년 리스본의 산카를로스) ○ 레오나드로 레오(Leonardo Leo: 1741) ○ 칼 하인리히 그라운(Carl Heinrich Graun: 1746) ○ 요한 아돌프 하쎄(Johann Adolph Hasse: 1748 드레스덴, 수정본 1749 베니스) ○ 니콜로 좀멜리(1743 파두아) ○ 루이지 케루비니(Luigi Cherubini 1788 파리- 제목은 Démophon)

 

케린토 왕자와 크레우사 공주가 서로 사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