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미완성 오페라

어셔가의 몰락(La chute de la maison Usher)

정준극 2012. 3. 23. 21:57

어셔가의 몰락(La chute de la maison Usher) -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클로드 드비시의 미완성 오페라

 

클로드 드비시

 

클로드 드비시(Claude Debussy: 1862-1918)는 에드가 알란 포 원작의 '어셔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을 1908년부터 오페라로 작곡하기 시작하였으나 그가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까지도 완성하지 못했다. 드비시는 오페라 '어셔가의 몰락'을 단막이지만 2장으로 나누는 것으로 구상하였다. 프랑스어 대본은 드비시 자신이 썼다. 에드가 알란 포의 공포괴기 소설은 프랑스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샤를르 보들레어(Charles Baudelaire)가 프랑스어로 번역했기 때문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 드비시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 일찍부터 에드가 알란 포의 공포소설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다. 1890년대 초반에 시인이며 평론가인 앙드레 수아레(André Suarès)는 로망 롤랑(Roman Rolland)에게 보낸 편지에서 '드비시가 에드가 알란 포의 '어셔가의 몰락'의 심리학적 아이디어를 나타내 보이는 교향곡을 작곡하고 있다'고 말한바 있다. 그런데 사실 드비시는 교향곡을 작곡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페라를 생각하고 있었다. 드비시는 1902년에 오페라 '플레아와 멜리상드'(Pelléas et Mélisande)를 완성하여 대단한 관심을 끈 일이 있다. 드비시는 이에 힘 입어서 또 하나의 심리학적 오페라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며 이번에는 그가 평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에드가 알란 포의 작품 중에서 소재를 택하려고 했다. 드비시는 처음에 에드가 알란 포의 코미디인 Le diable dans le beffroi(종탑의 악마)를 오페라로 만들고자 하여 착수했다가 1911년인지1912년인지 포기했다.

 

로데릭, 마들랭, 친구. 클리블랜드 오페라 공연

 

그러다가 1908년에 이번에는 '어셔가의 몰락'을 기본으로 하여 오페라를 만들기로 했다. 이를 위해 드비시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계약을 맺고 '어셔가의 몰락'이 완성되면 반드시 공연토록 하되 다른 오페라와 더블 빌이 되도록 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다른 오페라는 '트리스탄의 전설'(La légende de Tristan)로서 이것은 제목만 생각해 두었을 뿐, 아무것도 착수한 것은 없었다. 그해 여름 드비시는 두문불출하며 '어셔가의 몰락'의 작곡에 전념하였다. 그는 친구인 자크 뒤랑(Jacques Durand)에게 보낸 편지에서 '필링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로데릭 어셔의 여동생이 지금 우리 집에 온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진전이 별로 없었다. 1909년에 들어서서 완성한 것은 겨우 로데릭 어셔의 독백일 뿐이었다. 드비시는 신경쇠약에 걸려 고통을 받았다.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의외로 직장암로 진단을 받았다. 드비시는 결국 직장암으로 1918년에 세상을 떠났다. 드비시는 이 오페라를 위해 무려 세 가지의 대본을 직접 썼다. 결국 세번째로 쓴 대본에 겨우 만족하였으나 이번에는 음악에 진전이 없었다. 드비시는 첫번째 장의 음악은 완성하였으나 두번째 장은 1917년에 이르도록 일부만 초안을 잡았을 뿐이었다.

 

로데릭과 마들랭. 클리블랜드 오페라 공연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인 필립 글라스도 에드가 알란 포의 '어셔가의 몰락'을 바탕으로 하여 오페라를 작곡했다. 1988년에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서 초연되었다. 등장인물은 네명이다. 로데릭 어셔(Roderick Usher), 그의 친구(ami), 의사(le medicin), 로데릭 어셔의 쌍둥이 여동생인 레이디 마들랭(Lady Madeline)이다. 드비시는 남성 3명을 모두 바리톤이 맡도록 했다. 드비시가 말하는 바리톤이라는 것이 어떤 음역의 바리톤인지는 정확치 않다. 다만, 짐작컨대 '플레아와 멜리상드'에서처럼 저음베이스(Deep Base), 베이스-바리톤(Bass-Baritone), 바리톤 마르탱(Baritone-Martin)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각각 다른 세 사람의 음역을 바리톤으로 정한 것은 아마도 하나의 의식이 세명으로 화신(化身)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짐작된다.

 

로데릭과 마들랭. 뉴욕공연

                

로데릭 어셔는 어셔가의 마지막 남자 후손이다. 그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음산한 저택에서 쌍둥이 여동생 레이디 마들랭과 함께 살고 있다. 대대로 물려 받은 집이다. 마들랭은 폐병에 걸려서 점점 쇠약해 지고 있다. 그래서 이 집에서는 의사도 함께 지내고 있다. 로데릭은 사는 것이 너무 적막하고 힘들어서 친구를 불러 온다. [에드가 알란 포의 소설에서는 친구가 해설자이다.] 친구는 로데릭의 집에 머물고 있는 중에 마들랭이 죽은 것을 발견한다. 로데릭과 친구는 마들랭은 유리 관에 넣어 지하실에 매장한다. 친구는 로데릭을 위해 중세의 어떤 로맨스 이야기를 읽어 준다. 밖에서는 폭풍이 치고 있다. 친구가 소설의 클라이막스를 읽고 있는 중에 마들랭이 피에 범벅이 된채 나타난다. 로데릭이 마들랭은 산채로 매장했던 것이며 이제 오빠 로데릭을 죽음으로 끌고 가려고 나타난 것이다. 폭풍을 견뎌내지 못해서인지 저택이 무너진다. 친구는 무너져 가는 집에서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다. 어느덧 밖에는 피빛 달이 휘영청 떠 있다. 드비시는 에드가 알란 포의 원작에 충실하였지만 어느 면에 있어서는 로데릭이 쌍둥이 여동생인 마들랭에 대하여 근친으로서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그리고 의사를 좀 더 불길한 존재로 부각시켰다. 오페라에서는 의사도 로데릭의 라이벌로 설정되었다.

 

레이디 마들랭. 달라스오페라

                

1970년대에 들어와서 두 명의 음악가들이 드비시의 미완성 오페라인 '어셔가의 몰락'을 보완하여 공연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라버트 키르(Robert Kyr)라는 사람이 오케스트레이션을 맡고 캐롤린 어베이트(Carolyn Abbate)라는 사람이 연출을 맡은 버전은 1977년 2월 25일 예일대학교에서 공연되었다. 같은 해에 칠리의 작곡가인 후안 앙렌데 블린(Juan Allende-Blin)이라는 사람이 '어셔가의 몰락'을 재구성하여 독일에서 라디오 방송용으로 제작했다. 블린의 버전은 1979년 10월 5일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공연되었다. 바리톤 장 필립 라퐁(Jean-Philippe Lafont)이 로데릭을 맡았으며 소프라노 콜레트 로랑(Colette Lorand)이 마들랭을 맡았다. 드비시가 작곡해 놓은 파트의 총 공연 시간은 대략 30분이었다.

 

영화 '어셔가의 몰락'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