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미완성 오페라

종탑의 악마(Le diable dans le beffroi)

정준극 2012. 3. 25. 06:11

종탑의 악마(Le diable dans le beffroi) - The Devil in the Belfry

클로드 드비시의 미완성 오페라

 

클로드 드비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감독은 드비시의 '플레아와 멜리상드'(Pelléas et Mélisande)가 1908년 4월 메트로폴리탄에서 대성황리에 공연을 마치자 드비시에게 직접 새로운 오페라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미국에서 초자연 문학으로 이름을 날린 에드가 알란 포의 소설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오페라로 만들어 줄것을 요청했다. 실은 드비시도 에드가 알란 포의 팬이었다. 더구나 당시에는 샤를르 보드레어가 포의 소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내놓았기 때문에 프랑스 전체에서 포의 소설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메트로폴리탄의 의뢰를 받은 드비시는 포의 소설 중에서 하나가 아니라 두개를 선정하여 오페라로 만들기로 했다. '어셔가의 몰락'과 '종탑의 악마'이다. 드비시는 의욕을 가지고 두 편의 오페라를 만들고자 했으나 생각이 많아서인지 제대로 진척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드비시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두 오페라는 시작은 되었지만 미완성이었다. 그것도 대부분이 스케치이며 반주 파트는 오케스트라가 아닌 피아노 반주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드비시는 역시 드비시였다. 비록 미완성이지만 두 작품에는 드비시의 천재성이 담겨 있다. 드비시는 1912년에 이르기까지 메트로폴리탄으로부터 부탁받은 오페라를 완성하지 못했다. 드비시는 계획상으로는 별도의 성악가들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노래 파트를 합창으로만 하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인공인 악마는 노래 대신에 휘피람을 불도록 할 생각이었다.

 

악마는 냉소적이로 잔인한 인물로 표현코자했다. 공산주의자보다 더 악독한 존재로 표현코자했다. 지옥의 유황불 냄새가 나는 광대로 표현코자 했다. 드비시는 친구인 앙드레 메사저에게 '악마는 이율배반적인 존재이다. 보통 사람들과는 생각이 다른 비논리적인 사람이 바로 악마이다.'라고 설명한바 있다. 그러던 중에 1908년 맨하튼 오페라 하우스는 '플레아와 멜리상드'를 공연하여 몇 달전의 메트로폴리탄 보다 더 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힘입은 맨하튼 오페라 하우스는 드비시가 작곡하고 있는 세 편의 오페라를 정식으로 계약하고 싶어했다. '종탑의 악마'를 비롯하여 '어셔가의 몰락'과 '트리스탄의 전설'(La legende de Tristan)이다. 하지만 잘 아는대로 드비시의 건강이 악화되고 마침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맨하튼 프로젝트는 무산되었다. 드비시의 '종탑의 악마'가 그나마 사람들에게 소개된 것은 1912년 3월, 드비시 자신이 그때까지 작곡한 파트를 동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피아노로 연주한 것이다. '종탑의 악마'는 2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장의 무대는 홀란드의 어떤 마을이다. 소설에스는 본더보테이미티스라는 마을이라고 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이 몰려 있다. 종치기도 있고 그의 아들 장(Jean)도 있다. 시장과 그의 예쁜 딸도 있다. 정오가 가까워 오자 종치기가 종탑으로 올라가서 시계를 점검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어디서부터인지 악마가 나타나서 시계가 열두번이 아니라 열세번을 치도록 만든다.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어리둥절해 하자 악마는 그 모습을 보고 우스워서 죽겠다고 하며 마을 사람들을 조롱한다. 시장은 종치기의 아들에게 어서 성스러운 음악을 연주해서 악마를 쫓아 내자고 말한다. 그러자 악마가 커다란 바이올린을 꺼내어 성스러운 음악을 경쾌한 춤곡으로 바꾸어 연주한다. 마을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춤곡에 맞추어 춤을 춘다. 악마는 마을 사람들을 운하가 있는 곳으로 끌고 간다. 마을 사람들이 물에 빠지게 될 순간에 악마가 바이올린 연주를 중지한다. 사람들은 하나도 물에 빠져 죽지 않는다.

 

두번째 장의 무대는 이탈리아의 어떤 마을이다. 제 1장에서의 마을 사람들과 똑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다만, 사람들의 성질이 좀 더 거칠 뿐이다. 사람들만 보고서도 이곳이 홀란드가 아니라 이탈리아라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런중에도 종치기의 아들인 장(Jean)만이 다르다. 장은 시장의 딸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으로 악마의 계교에 면역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의 딸은 장이 우습게 여기고 조롱한다. 장이 종탑에 올라가 하나님께 자기와 시장의 딸과의 사랑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 기도 때문에 악마의 마력은 무너진다. 악마는 붉은 불길이 치솟는 곳으로 사라진다. 마을 사람들은 평상대로 돌아온다. 그리고 종탑의 시계는 열두번을 친다.

 

악마는 질서가 잡혀 있는 시스템에 혼란을 가져오는 존재라고 볼수 있다. 소설에서 악마는 전통이라는 조용함을 파괴하는 말성꾸러기라고 볼수 있다. 그런데 포는 오히려 마을의 말도 안되는 전통을 조롱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악마는 변화를 요구하는 급격한 세력이라고 볼수 있다. 변화라는 것은 정체된 환경에서 창의성과 독창성을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포의 '종탑의 악마'가 미국 제8대 대통령인 마틴 반 부렌(Martin Van Buren: 1782-1862)을 풍자한 것이라고 말한다. 반 부렌 대통령은 화란 이민자이다. 말하자면 소설에 나오는 마을인 본더보테이미티스(Vondervotterimittis) 주민이나 다를바가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포는 어느 특정 주민들을 조롱하고자 하는 의사가 없었다고 한다. 포의 '종탑의 악마'는 뉴욕을 풍자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디트리히 니커보커라는 별명의 워싱턴 어빙이 쓴 A History of New-York과 내용상에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