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미완성 오페라

소로친치 큰 장(The Fair at Sorochintsi)

정준극 2012. 3. 25. 21:47

소로친치 큰 장(The Fair at Sorochintsi) - 소로친스카야 야르마르카(Sorochinskaya yarmarka)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Modest Moussorgsky)의 미완성 3막 코믹 오페라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는 1868/69년에 '보리스 고두노프'를 작곡했다. 그러나 마리인스키 극장은 '보리스 고두노프'의 공연을 거절했다. 무슨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겉으로는 내용이 산만하다는 등의 이유였다. 무소르그스키는 '보리스 고두노프'를 수정했다. 여러번 수정하였으며 마지막 버전은 처음 작곡에 착수한 때로부터 6년 후인 1874년에 완성했다. 처음 작곡한 것이 어둡고 조잡하다고 생각하여 수정을 하였다. 그러나 오케스트라 파트에는 아직도 미진한 부분이 많았다.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1896년에 오케스트라 파트를 수정하였다. 그리고 한참 후인 1908년에는 기왕에 내용도 상당히 수정하였다. 다른 작곡가들도 무소르그스키가 처음에 만들어 놓은 '보리스 고두노프'가 아무래도 미흡하다고 생각하여 수정하였다. 예를 들면 쇼스타코비치이다. 그는 두개의 그럴듯한 수정본을 만들었다. 하나는 영화용이고 다른 하나는 무대용이었다. 무소르그스키의 다른 오페라인 '코반슈키나'(Khovanshchina)도 역시 미완성이었다. '코반슈키나'는 1886년, 우리나라에서 배재학당이 문을 열던 해에 생페터스부르크에서 초연되었다. 하지만 무소르그스키가 완성을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완성했다. 또 다른 오페라인 '소로친치 큰장'도 무소르그스키가 향년 42세라는 젊은 나이로 1881년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 '소로친치 시장'에 나오는 고팍(Gopac), 즉 우크라이나 민속 무곡은 별도의 레퍼토리로서 자주 공연되고 있다. 아무튼 무소르그스키는 '미완성'만 남겨 놓은채 한많은 세상을 하직했다. 자기의 오페라가 공연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실로 불행한 인물이었다.

 

문제는 엔진 때가 아니라 무소르그스키가 대단한 알콜 중독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작당하여 거의 매일 술에 취해 있었다. 이들은 알콜주의를 심미적인 것으로 미화하기까지 했다. 무소르그스키는 너무나 매일을 술에 절어 있어서 1880년, 즉 그가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에는 공무원 신분에서 해직되기까지 했다. 그때 쯤해서 무소르그스키는 무일푼이어서 거리에 나가 구걸을 해야할 정도였다. 그를 아끼는 친구들이 무소르그스키를 어떤 아늑한 병원에 입원토록 주선했다. 그리고 돈을 모아서 '코반슈키나'를 완성할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또 다른 친구들은 '소로친치 시장'의 완성을 위해 모금했다. 친구들은 무소르그스키에게 모은 돈을 전달하고 제발 술 좀 그만 마시고 정신차려서 아직 완성하지 못한 오페라의 작곡에 전념해 달라고 간절히 당부했다. 무소르그스키는 감격하여 그러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미 건강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무소르그스키는 병원에 있으면서 네번이나 발작을 일으켜 위험한 상태까지 갔었다. 그러다가 결국 1881년 3월 28일 생페터스부르크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보리스 고두노프' '코반슈키나' '소로친치 큰장'은 모두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호파크가 없으면 파티라고 할수 없다.

                                

'소로친치 큰장'은 러시아의 문호 니콜라이 고골의 단편이다. 고골은 우크라이나 민화를 수집하여 '디칸카 인근에 있는 농장의 저녁'(Evenings on a Farm near Dikanka)라는 단편집을 발간했다. '소로친치 시장'은 그 단편집에 들어 있는 단편소설이다. 무소르그스키는 고골의 단편을 바탕으로 직접 대본을 썼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설명한 대로 1881년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무소르그스키는 '소로친치 큰장'을 작곡함에 있어서 이미 다른 작품에서 사용하였던 음악을 재사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예를 들면 1872년에 작곡한 오페라-발레인 믈라다(Mlada)의 제2막 오프닝에 나오는 시장 장면을 재사용하였으며 주인공이 꿈을 꾸는 장면의 음악은 '벌거숭이 산의 하루밤'에 사용했던 음악을 재사용하였다. 그런데 주인공이 꿈을 꾸는 장면은 사실 원작에는 없는 내용이다. 무소르그스키가 추가한 것이다. 하지만 무소르그스키는 시나리오의 상당 부분에 음악을 입히지 못했다. 물론 그는 상당부분을 완성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그렇지 못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겨우 음악 스케치만 해 놓았을 뿐이었다.

 

그리츠코

                      

여러 작곡가들이 무소르그스키의 '소로친치 큰장'을 수정보완하여 무대에 올렸다. 어떤 공연은 일부 파트에만 국한되기도 했다. '소로친치 큰장'이 처음 무대에 올려진 것은 1913년 10월 8일 모스크바에서였다. 1917년부터는 다음과 같이 완성된 버전을 무대에 올렸다. '소로친치 큰장'은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는 스탠다드 레퍼토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오케스트라 파트의 도입부와 피날레의 고파크(Gopak)는 잘 알려져 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고마크를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편곡했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버전인 '벌거숭이 산의 하루밤'은 대체로 이 오페라에 나오는 음악을 상당부분 사용한 것이다. 무소르그스키가 사용한 우크라이나의 민속 멜로디는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단편 오페라인 '크리스마스이브'에 가져다가 사용했다. '크리스마스이브'도 고골의 작품이다.

 

- 세자루 쿠이(Cesar Cui) 버전: 1917년 10월 13일 페르로그라드의 음악연극극장에서 공연

- 니콜라이 체레프닌(Nikolai Tcherepnin) 버전: 1923년 3월 17일 몬테 칼로에서 공연

- 니콜리아 골로바노프(Nikolai Golovanov) 버전: 1925년 1월 19일 모스크바의 볼쇼이극장에서 공연

- 비싸리온 셰발린(Vissarion Shebalin) 버전: 1931년 12월 12일 레린그라드의 말리오페라극장에서 공연

- 에밀 쿠퍼(Emil Cooper) 버전: 1942년 11월 3일 뉴욕에서 공연

 

'소로친치 큰장'의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체레비크(Cherevik: B), 체레비크의 부인인 키브랴(Khivrya: MS), 체레비크의 딸이며 키브랴의 양녀인 파라샤(Parasya: S), 체레비크의 친구인 쿰(Kum: B-Bar), 시골 청년으로 농부인 리츠코(Gritsko: T), 신부의 아들인 아파나시 이바노비치(Afanasiy Ivanovich: T), 집시(B), 이밖에도 악마 카슈체이(Kashchei), 벌레, 죽음 등이 나타나며 무성 역할로는 시장여인들, 상인, 집시, 유태인, 처녀총각들, 코사크, 손님들, 마녀들, 난장이들, 마귀들이 등장한다. 이들중 어떤 역할은 비싸리온 셰발린의 버전에만 나온다.

 

제1막. 때는 19세기 초반, 장소는 폴타바(Poltava) 인근의 벨리키예 소로친치(Velikiye Sorochyntsi) 마을이다. 도입부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작은 러시아의 어떤 더운 날'이라는 타이틀의 음악을 연주한다. 소로친치는 중부 우크라이나 보르스클라(Vorskla) 강을 끼고 자리 잡은 마을이다. 큰장이 열리는 날이다. 장사꾼들이 물건을 팔려고 소리친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큰장을 보러 온다. 집시가 사람들에게 빨간 자켓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악마가 찾아 다니는 자켓이라는 것이다. 그리츠코는 파라샤에게 사랑을 호소하며 결혼해 달라고 말한다. 파라샤의 아버지인 체레비크는 처음에는 그리츠코에게 관심도 보이지 않다가 그리츠코가 막역한 친구의 아들인 것을 알고는 그리츠코와 파라샤의 결혼을 허락한다. 체레비크와 그리츠코는 기분이 좋아서 주점으로 향한다. 저녁이 되자 큰장이 파하고 사람들이 흩어진다. 1막과 2막 사이에 막간(인터메쪼)가 있다. 그리츠코가 꿈을 꾸는 장면이다. 그리츠코는 악마와 마녀가 나타나서 못살게 구는 꿈을 꾼다. 하지만 교회 종이 울리자 악마와 마녀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Image Detail

우크라이나 폴타바 지방의 민속춤

                          

제2막. 쿰의 집이다. 이 집에서 체레비크와 부인인 키브랴가 다투고 있다. 키브랴가 남편 체레비크를 억지로 내쫓는다. 신부의 아들인 아파나시 이바노비치와 밀회를 하기 위해서이다. 체레비크가 나가고 잠시후 아파나시가 나타난다. 키브랴는 아파나시에게 맛있는 요리를 먹으라고 준다. 아파나시가 허겁지겁 먹는다. 이렇듯 두 사람이 밀회를 즐기고 있을 때 갑자기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린다. 아파나시는 얼른 선반 뒤로 숨는다. 쿰과 체브리크가 친구들과 함께 들어온다. 이들은 악마가 빨간 자켓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쫓아온 것이다. 쿰이 사람들에게 빨간 자켓과 악마에 대한 전설을 얘기해 준다. 해마다 큰장이 열리면 악마가 빨간 자켓을 찾으러 돼지얼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갑자기 창문 밖에 돼지코가 보인다. 사람들은 악마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하여 혼비백산으로 도망간다.

 

제3막. 집시와 젊은이 몇명이 체레비크와 쿰을 잡으려고 쫓아 간다. 젊은이들은 체레비크와 쿰이 말 한마리를 훔쳤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두 노인네를 잡아서 밧줄로 묶는다. 그리츠코가 들어온다. 그리츠코는 체레비크에게 만일 내일 당장 파라샤와 결혼식을 올리게 해주면 풀어주겠다고 제안한다. 체레비크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두 노인네는 석방된다. 다시 쿰의 집 앞이다. 파라샤는 그리츠코 때문에 기분이 언짢아 있다. 그리츠코가 자기에게 그다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이다. 파라샤는 마을 아가씨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민속춤인 호바크를 한바탕 추고나서는 기분이 나아진다. 쿰과 그의 아들인 그리츠코가 나타난다. 체레비크는 그리츠코와 파라샤에게 축복을 내린다. 하지만 키브랴는 단단히 화가나서 있다. 자기와 협의도 없이 딸의 결혼을 결정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의 결혼을 고팍 춤과 노래로 축하한다.

 

오늘날의 소로친치 시장. 없는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