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320. 게타노 도니체티의 '리타'

정준극 2012. 4. 17. 07:07

리타(Rita)

게타노 도니체티의 단막 오페라 코믹

 

게타노 도니체티

 

요즘에는 사람들이 단막의 코믹한 오페라를 좋아하는 경향이다. 아무래도 무겁고 오래 걸리는 오페라는 바쁜 세상에서 인기가 없는것 같다. 비싼 돈을 주고 어렵게 표를 구해서 옷을 차려입고 오페라극장에 가서 서너시간을 소비할 바에야 집에서 DVD로 오페라를 감상하는 것이 더 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도니체티의 '리타'라는 오페라는 오페라극장에 가기는 가야 겠는데 간단한 공연을 가볍게 보았으며 좋겠다는 사람들에게 적당하다.

 

                             

'리타'라는 오페라는 또 다른 제목으로 '매맞는 남편'(Le mari battu: The Beaten Husband)이라고 한다. 게타노 도니체티(1797-1848)가 1841년에 작곡하였으나 약 20년 후인 1860년 5월 7일에 파리의 오페라 코믹 극장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그러므로 도니체티는 생전에 이 오페라의 공연을 보지 못하였다. 처음에 도니체티가 완성하였을 때에는 타이틀을 '두 남자와 한 여자'(Deux hommes et une femme: Two Men and a Woman)라고 했다가 1860년 초연할 때에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리타'라고 고쳤다. '두 남자와 한 여자'라는 것은 물론 두 명의 남편과 한 명의 부인을 말한다. '리타'는 파리의 팬들을 위해 작곡한 것이기 때문에 대본도 프랑스어로 되어 있다. 귀스타브 바에즈(Gustave Vaez)라는 사람이 대본을 썼다.

 

                                                          

도니체티는 한동안 파리에서 작곡활동을 하며 지낸 일이 있다. 그러면서도 밀라노의 라 스칼라 등 이탈리아에 있는 오페라극장들을 위해서도 작곡을 했다. 1841년에 도니체티는 라 스칼라로부터 오페라 작곡을 요청받고 대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대본가인 귀스타브 바에즈를 만났다. 귀스타브 바에즈는 과거에 도니체티를 위해 두 편의 대본을 쓴 일이 있다. 하나는 '람메무어의 루치아'의 프랑스어 대본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라 화보리타'였다. 그런 인연이 있기 때문에 도니체티는 바에즈를 만나자 심심한데 간단히 한편의 오페라를 만들 대본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라 스칼라로부터 대본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에 한가하게 있고 싶지 않으니 일꺼리가 없겠느냐는 얘기였다. 그렇게 하여 바에즈는 집에 가서 즉시 작업에 착수하여 Deux hommes et une femme 을 완성했다. 도니체티는 이를 바탕으로 하여 노래는 8개가 나오며 나머지는 대사로 처리한 단막의 코믹 오페라를 만들었다.

 

                        

도니체티는 바에즈로부터 대본을 받자마자 작곡에 착수하여 불과 8일만에 '리타'를 완성했다. 그러나 파리의 오페라 코믹 극장은 도니체티로부터 '리타'의 스코어를 받아 보고는 너무 짧다고 하면서 공연을 거절했다. 도니체티는 마침 나폴리의 폰도극장(Teatro del Fondo)의 임프레사리오(흥행가)인 도메니코 바르바자(Domenico Barbaja)와 연락하여 공연하는 것으로 약속했다. 도니체티는 아는 사람에게 프랑스어 대본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토록 했다. 그러는 중에 나폴리의 임프레사리오인 도메니코 바르바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나폴리 공연은 무산되었다. 사람들은 Deux hommes et une femme 라는 작품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다가 도니체티가 1848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유품들을 정리하는 중에 이 오페라의 악보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2년 후인 1890년 5월 7일, Deux hommes et une femme 은 파리의 오페라 코믹 극장에서 '리타'라는 타이틀로 초연되었다.

 

                                                        

오페라 코믹 극장에서의 초연은 대성공이라고까지는 말할수 없는 그저 그런 공연이었다. 그후 '리타'는 잊어버릴만 하면 공연되는 그런 오페라가 되었다. 거의 1백년을 그렇게 지냈다. 그러다가 1955년 로마에서 새로운 연출로 공연되고 같은 해에 밀라노의 피콜라 스칼라에서 공연되자 반응이 무척 좋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원래 웃기도 잘 웃지만 '리타'를 보고 재미있어서 죽겠다며 웃었다. 그후 '리타'는 오늘날까지 도니체티를 대표하는 오페라 중의 하나로서 각광을 받으며 자주 공연되었다. 2009년에 로마의 카사 리코르디라는 악보출판사는 도니체티의 사후, 사람들이 손을 보았던 스코어를 새로 정리하여 출판했다. 1841년에 도니체티가 최초로 완성한 스코어를 상당히 존중하는 출판이었다. 음악학자인 파올로 로시니라는 사람과 프란체스코 벨로토라는 사람은 최근에 도니체티의 친필 서명이 들어 있는 오리지널 스코어를 발견했다. 카사 리코르디는 오리지널 스코어를 충분히 참고하여서 '리타'를 출판했다. 그것이 스탠다드 버전이다.

 

                                 

등장인물은 간단하다. 네명이면 된다. 리타(Sop)는 여관집 주인이다. 제노아에서 토리노로 가는 도중에 있는 어떤 마을에 있는 여관이다. 가스파르(Gaspar: Gasparo: Bar)는 리타의 전 남편이다. 베페(Beppe 또는 Peppe: T)는 리타가 새로 결혼한 남편이다. 보르톨로(Bortolo: 대화)는 여관의 하인이다. 때는 18세기이다. 리타는 마치 폭군과 같아서 남편인 베페를 압도하며 할수 있는대로 부려 먹는다. 베페는 겁이 많고 소심하여서 리타가 한번 소리치면 의자 밑에라도 숨는 사람이다. 실은 리타의 성격이 과해서 간혹 베페를 때리기도 한다. 하지만 리타와 베페 부부는 여관을 그럭저럭 운영하며 지낸다. 좀 모자라는 듯한 하인 보르톨로가 간혹 엉뚱한 일을 저질러서 골치가 아프지만 그만한 하인도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참고 지낸다. 리타와 베페의 생활은 가스파르가 나타나는 바람에 대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가스파르는 리타의 첫 남편이다. 가스파르는 리타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배를 타고 캐나다로 떠났던 사람이다. 몇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사람들은 모두 가스파르가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믿는다. 리타도 기다리다가 지쳐서 어쩔수 없이 베페와 결혼하였다. 가스파르는 리타의 여관에 불이 나서 리타도 죽은 것으로 믿고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가스파르가 고향을 찾아온 것은 캐나다에서 재혼하려니까 리타의 사망증명서가 필요해서였다.

 

                            

드디어 리타와 가스파르가 마주친다. 서로 놀래서 정신을 잃을 정도이다. 실은 가스파르가 더 놀랬다. 가스파르는 자기도 모르게 도망간다. 가스파르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베페는 이야말로 리타의 구박에서 해방할수 있는 하늘이 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가스파르야 말로 법적으로 리타의 남편이기 때문이다. 가스파르와 베페는 게임을 해서 이기는 사람이 리타와 사는 것으로 합의한다. 두 사람은 서로 지려고 무던히도 노력한다. 그러나 종국에는 가스파르가 이긴다. 그런데 문제는 리타가 가스파르를 받아 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리타는 예전에 가스파르와 함께 살 때에 그가 어찌나 술이나 퍼마시고 때리는 등 못되게 굴었는지 잊을수가 없으므로 절대로 합치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다. 가스파르가 할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베페를 설득하여서 베페로 하여금 리타의 충실한 남편으로서 충성을 다하겠다고 서약토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리타에게는 아직도 손찌검을 하는 등 못된 버릇이 남아 있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한다. 결국 리타는 베페와 사는 것이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여 베페를 선택한다. 베페는 아이구 죽었구나 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실은 리타만한 예쁘고 명랑한 여자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 가스파르는 두 사람에게 행복하게 살라고 하면서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떠난다.

 

201년 시카고 오페라극장 공연. '리타와 네 남자. 리타'는 대체로 도니체티의 또 다른 단막 오페라인 '일 피그말리오네'와 더블 빌로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