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면서....
오페라라고 하면 우선 '두통'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재미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노래라는 것도 듣기가 싫어서 골치아프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오페라를 보러 간다는 것은 '공연히 시간과 돈을 빼앗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오페라를 모르면 문화인의 반열에서 뒤쳐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은연중에 그 어렵다는 오페라와 많은 관련을 맺으며 지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서 오페라라는 것은 도대체 어려운 것이라면서 기피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유명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를 들으며 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페라의 아리아들은 광고음악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든지 '리골레토'에서 '여자의 마음'과 같은 아리아는 광고음악에 자주 등장하는 곡들이다. 유럽에 가면 오페라의 제목이나 주인공의 이름을 사용한 식당, 카페, 호텔 등이 많이 있다. '베르디 호텔'이 있고 '아이다'카페가 있다. 유럽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오페라 이야기가 은연중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자면 아는체를 좀 해야 체면이 선다. 그러므로 비록 극장에 가서 오페라는 관람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오페라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든지 다 아는 내용이지만 '오페라'라는 말은 이탈리아어로 '작품들'을 말한다. 라틴어로 Opus라는 단어의 복수형이 Opera 이다. Opus는 작품, 일, 노동 이라는 뜻이다. 소설도 힘들여서 쓰는 것이므로 노동의 산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이건 시건 모든 예술작업은 오푸스이다. 음악에 있어서 오페라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탈리아에서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플로렌스에서였다. 당시 플로렌스에서는 르네상스 운동을 함께 하자는 예술가들이 모여서 서로 의견을 나누며 지냈다. 이를 '플로렌스 카메라타'라고 불렀다. 카메라타는 '(작은) 방'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어떤 귀족집의 작은 방에 모여 오페라의 르네상스를 논의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이들이 르네상스에 편승한 음악연극에 오페라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 페리와 몬테베르디
오페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오페라의 역사를 얘기함에 있어서 자코포 페리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두 사람은 누가 최초의 오페라를 작곡했느냐는 것을 두고 항상 논란이 있다. 연배로 보면 자코포 페리(Jacopo Peri: 1561-1633)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보다 몇 살 위이다. 하지만 같은 시대에 활동했다. 그리고 물론 두 사람 모두 이탈리아의 플로렌스를 본거지로 하여 활동했다. 페리가 오페라의 선구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페리의 '다프네'(Dafne)가 1597년에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내세우고 있다. 페리가 플로렌스 카메라타(Camerata)라고 하는 일종의 엘리트 그룹의 지지를 받아서 완성한 오페라이다. '다프네'는 고대 그리스의 연극을 리바이벌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나온 작품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라고 하여 고대 그리스의 문화예술을 재발견하자는 운동이 일고 있었다. 카메라타의 멤버들은 그리스 연극에서의 코러스 파트가 노래로 불렀던 것이며 주요 등장인물들도 기회있을 때마다 노래를 불렀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플로렌스 카메라타에서 비롯한 '오페라'는 이같은 상황을 회복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페리의 '다프네'는 그런 작품이 있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며 불행하게도 스코어가 남아 있지 않다. 때문에 시기적으로 보면 제일 처음 나온 오페라라고 하겠지만 어떤 내용인지 알수가 없어서 랭킹에서 제외되고 있다. 1600년에 나온 것으로 생각되는 페리의 또 다른 작품인 '에우리디체'(Euridice)는 그나마 스코어는 남아 있다. 그리하여 '에우리디체'는 오페라의 역사에 있어서 악보가 남아 있는 가장 최초의 오페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논란은 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오페라다운 작품이 아니고 그저 연극에 음악을 잠시 가미한 원초적인 작품이기 때문에 오페라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는 1607년에 '오르페오'(L'Orfeo)를 작곡하여 2월에 만투아공작궁에서 초연을 가졌다. 이 작품이 최초로 오페라다운 오페라라는 것이다.
몬테베드리의 '오르페오'의 한 장면
페리의 작품들은 미안하지만 '음악 드라마'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함에 있어서 창조성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었다는 평이다. 역시 모노디(Monody)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모노디는 연극의 대사를 노래로서 대신한 것이다. 드라마틱한 내용을 멜로디에 담아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대본에 감정을 가미하여 노래로서 표현코자 한 것은 새로운 시도였다. 그렇다고 복잡한 다성부의 반주로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코드만으로서 노래를 불렀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작품들이 16세기 말까지 주류를 이루었다. 그같은 성향은 듣기에 좋은 다성부의 마드리갈로서 발전하였고 이어 프로톨라(Frottola)와 빌라넬라(Villanella)로 발전하였다. 프로톨라라는 말은 재미있으라고 지어낸 작은 이야기라는 뜻이지만 음악에 있어서는 소절로 나뉘어진 노래를 말한다. 빌라넬라는 원래 시골에 사는 소녀라는 뜻이지만 음악에 있어서는 목가적인 내용의 합창곡을 말한다. 실제로 다성부의 노래라고 해도 그것은 단성부의 노래가 전체를 주도하고 다른 파트는 지원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가 처음으로 공연된 만투아 공작궁. 만투아 카니발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
솔로 마드리갈이거나 프로톨라이거나 또는 빌라넬라이거나 이런 형태의 음악은 16세기에 거의 70년이나 계속되면서 오페라의 초석을 놓았다. 이러한 형태의 공연은 대개 스펙타클하여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마다 있는 궁전에서 오락으로서 공연되었다. 이를 인터메디(intermedi)라고 불렀다. 대체로 연극의 막간에 공연하기 때문에 인터메디라고 불렀다. 연극과 인터메디는 왕가 또는 유력한 귀족가문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결혼식을 거행할 때에,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 왔을 때와 같은 경우에 공연했다. 인터메디는 솔로의 노래뿐만 아니라 다성화음에 의한 마드리갈 형태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춤도 곁들였다.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는 경우도 있었다. 오페라의 전신이라고 할수 있는 인터메디는 어떤 스토리를 전달하려는 목적은 별로 없었다. 인간의 감정의 어떤 특별한 요소에 초점을 두거나 또는 신화에 비유하여서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의 궁전에서는 또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서 '마드리갈 드라마'라는 것이 있었다. 내용은 대부분 종교적인 것이었다. 그러면서 스토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음악학자들은 나중에 이를 '마드리갈 오페라'라고 불렀다. 어찌보면 오늘날의 오라토리오의 전신이라고 할수 있는 장르였다.
플로렌스에서의 인터메디. 그림
이탈리아에서는 오페라가 형태를 갖추면서 발전하고 있던 시기에 영국에서는 '마스크'(masque)라는 것이, 프랑스에서는 '발레 오 쿠르'(ballet au court)라는 것이 발전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탈리아의 인터메디와 흡사한 형태의 공연이었다. 마스크는 가장무도회의 성격이 짙으며 발레 오 쿠르는 일반 무도회의 성격이 짙었다. 다만, 마스크나 발레 오 쿠르가 인터메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관객들이 무대에 올라와서 춤을 함께 추거나 행렬을 지어 움직이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그런 공연에 초대된 사람들은 거의 모두 귀족이나 궁정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무대에서 우아한 춤을 춘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 영국의 마스크는 출연자들이 관객들과 어울려 신나게 뛰어노는 것으로 절정을 이루었다고 하니 마스크가 어떤 것인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다. 그러한 때에 이탈리아의 오페라가 이들 나라에 전파되었다. 결국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마스크 또는 발레 오 쿠르와 혼합되어 나라별로 독특한 분야로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프랑스에서는 오페라에 발레가 필수적으로 포함하는 형태로 발전하였고 영국에서는 막간음악(incidental music)이 등장하는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영국의 오페라 발전에 있어서 한마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17세기 중반에 크롬웰이 정권을 잡았을 때 이탈리아 스타일의 오페라는 사회정서에 어긋난다고 하여 배척을 받은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국의 오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조금 더디었다.
발레 오 쿠르의 한 장면. 무대의 양 옆에서 관객들이 무대로 나와 춤을 추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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