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오페라역사 속성정복

5. 독일어 오페라

정준극 2012. 5. 11. 14:56

5. 독일어 오페라

 

18세기가 끝나기 전까지 독일어 오페라는 대체로 이탈리아 오페라의 복사판이었다. 물론 18세기 초반에 독일에서는 라인하르트 카이저(Reinhard Keiser)와 같은 작곡가가 이탈리아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웅장하고도 심각한 분위기의 오페라를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이탈리아의 영향권에서 멀리 떠나지 못했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독일어 판이 간단히 말해서 징슈필이다. 원래 징슈필은 루터교 학교에서 학생들이 학교 연극을 하면서 노래를 붙여서 부른 것이 시초이다. 그것이 좋은 반응을 얻자 독일어를 사용하는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완성한 '마술피리'야말로 독일어 징슈필의 정상에 올라가 있는 작품이다. 모차르트의 징슈필을 그후의 작곡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인 경우는 베토벤이다. 그런데 베토벤의 '휘델리오'는 독일어 징슈필이지만 어찌보면 프랑스 혁명과 연결된 구원오페라의 장르에 속한다고 볼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발프(Balfe)와 그레트리(Gretry)가 구원오페라의 전통을 이어갔다. 독일에서는 하인리히 마르슈터와 베버가 징슈필의 전통을 발전시켰다. 베버의 '마탄의 사수'는 징슈필과 멜로드라마의 요소들을 혼합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당시 이러한 추세는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이었다. 독일어 징슈필과 멜로드라마를 혼합한 스타일은 나중에 바그너에 이르러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휘델리오'의 한 장면. 플로레스탄(로버트 딘 스미스)과 레오노레(휘델리오: 발트라우트 마이어).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인 '휘델리오'는 징슈필에 속한다.

                

바그너 이전에는 독일에서는 오페라의 전체를 음악으로 포장한 작품이 거의 없었다. 징슈필에서도 볼수 있듯이 음악을 동반하지 않는 대사가 일정 부분을 차지하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다가 바그너가 등장했다. 그는 아리아와 레시타티브에 구별을 두지 않았다. 모두 일관되게 오케스트라 반주로 연결되도록 했다. 결과, 바그너의 오페라는 일종의 끝이 없는 멜로디의 연속이나 마찬가지였다. 카덴스라는 것은 거의 찾아 볼수 없었다. 그러나 바그너는 라이트모티프라는 것을 사용하여 음악을 복사하는 듯한 표현을 보여주옸다. 라이트모티프는 어떤 주인공 또는 스토리가 반복되어 등장할 때마다 그 주인공이나 스토리를 특색있는 음악으로 표현토록 하여 분간할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베버도 그같은 방식을 초기에 사용했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바그너의 경우에는 라이트모티프가 그의 음악의 중심되는 기둥이었다.

 

바그너의 '발퀴레'의 한 장면. 각 주인공을 표현하는 라이트모티프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