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오페라역사 속성정복

4. 프랑스 오페라

정준극 2012. 5. 10. 22:03

4. 프랑스 오페라

 

프랑스에도 이탈리아 오페라가 수입되었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프랑스어로 된 전통적인 오페라가 발전하였다. 그 주역은 이탈리아 출신의 장 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였다.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륄리는 무슨 연줄이 있었는지 젊은 루이 14세의 무용교사 겸 라틴어 교사로서 파리의 궁전에 입성하였다. 루이 14세는 원어민을 통해 라틴어 회화를 익히려고 이탈리아의 륄리를 초청하였다. 륄리는 비록 외국인이었지만 프랑스에서 음악원을 처음으로 설립하고 1672년부터는 프랑스 오페라를 독점하였다. 결국 프랑스 오페라도 이탈리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볼수 있다. 륄리의 서곡과 화려하고 세련된 레시타티브, 무용이 등장하는 인터루드, 각 장의 사이에 등장하는 오케스트라 간주곡(Entr'actes) 등은 거의 1세기 동안 글룩이 개혁을 주장하기 이전까지 프랑스 오페라의 전형이 되었다. 프랑스 오페라에서 대본은 음악만큼 중요했다. 왕권을 찬양하는 내용은 거의 의무적이었으며 국왕의 위대함을 비유로서 노래함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엔딩은 언제나 긍정적이며 성공적인 것이어야 했다. 말하자면 해피엔딩이어야 했다. 프랑스의 오페라에는 막간에 발레가 등장해야 하며 무대배경은 복잡한 기계장치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장 바티스트 륄리의 '아티스' 무대

 

프랑스에서 바로크 오페라는 라모(Rameau)에 의해 크게 진작되었다. 그러나 1760년대에 글룩이 주창한 개혁에 의해 어느정도 숨을 죽이기는 하였다. 당시에는 노래보다도 스토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글룩은 오페라라면 음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아리아와 중창과 합창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글룩의 오페라는 스토리보다는 음악을 중시한 것이었다. 사실 이탈리아에서도 글룩의 생각보다 앞서서 보다 진보적인 작품들이 나왔다. 예를 들면 페르골레시의 '하녀 마님'(La Serva Padrona)이었다. 코믹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실은 노래에 더 큰 비중을 둔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코믹 오페라는 점차 지나치게 노래를 과장하는 습성으로 변하였다. 글룩은 이탈리아 스타일의 지나치게 현란하고 복잡한 스타일을 지양하였다며 핀잔을 주었다. 그래서 글룩은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볼수 있는 다 카포(Da capo) 아리아에 집착하지는 않았다. 다 카포는 처음부터 반복하여 부르는 것을 말한다. 아무튼 글룩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타일을 융합하여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그러한 글룩의 스타일을 메울, 케루비니, 스폰티니 등이 이어 받았다. 19세기 초반의 프랑스 오페라는 로시니 등의 벨 칸토 스타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로부터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그랜드 오페라'가 발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랜드 오페라는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양상이었다.

 

페르골레시의 '하녀 마님'의 한 장면

 

프랑스 오페라에서 대화체의 대사가 있는 작품들은 오페라 코믹이라고 불렀다. 비록 주제가 코믹하지 않고 비극적이라고 해도 대화체가 들어 있으면 오페라 코믹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예를 들면 비제의 '카르멘'이나 마스네의 '마농'도 오페라 코믹이라고 분류했던 것이다. 독일에서는 그러한 스타일을 징슈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오페라 코믹은 내용의 경중을 따져서 보다 가벼운 내용이면 오페레타라고 불렀다. 오페레타는 19세기 후반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장르였다. 보데빌이라는 것도 실은 오페레타의 변형이라고 할수 있으며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양대 전쟁 중에 뉴욕이나 런던에서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 코미디도 오페레타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비제의 '카르멘'도 오페라 코믹으로 분류되었다.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가 처음 등장한 것은 아마 다니엘 에스프리 오버의 '포르티치의 벙어리'(La muette de Portici: 1828)일 것이다. 이어 로시니의 '귀욤 텔'(Guillaume Tell: 1829), 마이에르베르의 '악마 로베르'(Robert le diable: 1831)등이 등장하였다. 그랜드 오페라는 보통 4내지 5막으로 구성되었으며 중간에 발레가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베르디의 '돈 카를로스'도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의 장르에 속한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의 전통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한 작품은 구노의 '파우스트'일 것이다. '파우스트'와 같은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는 20세기 중반부터 미국, 특히 메트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며 공연되었다. 그러나 한가지 생각할 것은 '파우스트'도 실은 처음에 오페라 코믹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파우스트'가 그랜드 오페라의 성격을 띠게 된 것은 나중의 문제였다. 아무튼 20세기 중반부터 일반적인 오페라라고 하면 그랜드 오페라를 의미할 정도로 스펙터클한 무대가 인기를 끌었다. 베르디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나부코'도 그렇고 '일 트로바토레'도 그러했다. 이와 함께 바그너도 그랜드 오페라의 범주에서 얘기되었다. 바그너도 분명히 프랑스의 그랜드 오페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밖에도 러시아의 차이코브스키도 그랜드 오페라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의 '유진 오네긴'에 나오는 발레 장면은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의 전통을 그대로 살린듯한 것이다.

 

차이코브스키의 '유진 오네긴'의 무도회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