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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축하일

정준극 2012. 5. 30. 07:00

Neujahrstag(노이야르스타그)


정월 초하루, 설날(New Year's Day: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종종 Day를 생략하고 New Year's 라고 함)

프랑스: Jour de l'An  스페인: Año Nuevo, 스웨덴: Nyårsdagen, 이탈리아: Capodanno

섣달 그믐날(12월 31일)을 질베스터아벤트라고 부르는 것은 교황 질베스터를 기념하기 위함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서 축하하는 것은 세계공통이다. 이스라엘만 예외이다. 이스라엘의 새해첫날은 Rosh Hashanah라고 하여 9월 말이나 10월 초가 된다. 중국, 한국, 베트남, 싱가폴, 홍콩 등지에서는 아직도 신정은 신정대로 쉬고 구정을 구정대로 여러날 쉰다. 에티오피아의 신정은 추수시기에 맞추어 정한다. 이슬람과 스리랑카의 타밀과 싱할리 등도 별도의 새해첫날을 기념하지만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그레고리안력을 사용하는 모든 국가에서는 1월 1일을 설날로서 공휴일로 삼고 있다. 이스라엘만이 예외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1월 1일 하루만 놀면 부족하므로 1월 2일, 또는 1월 3일까지도 추가로 공휴일로 삼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1월 2일까지가 공휴일이다. 스페인은 Año Nuevo 라고 하여 1월 3일까지 공휴일로 삼았었으나 지금은 1월 1일만을 공휴일고 삼고 있다. 영국에서는 웨일스만이 1월 3일까지를 공휴일로 삼고 있다. 율리안력을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1월 14일을 설날로서 축하한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3월 15일(Ides of March)을 신년초일로 삼았었다. Ides 라는 말은 한 달의 중간일이라는 의미이다. 1월 1일을 신년초일로 삼은 것은 153 BC 부터였다. 로마의 장군 두명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새해 첫날을 January 달의 첫날로 정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중세에는 종교적으로 중요한 날들을 새해 첫날로 정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칼렌다는 January, February....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보다는 로마 숫자대로 I, II, III,,,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그레고리안력을 공식적으로 채택하기 이전부터 January 1일을 새해 첫날로 삼아 경축했다. 이를 Circumcision Style 이라고 한다. 기독교에서 'Circumcision 축일'은 정확히 크리스마스로부터 8일 후를 말한다. 이날 예수께서 할례를 받으신 날을 신년 첫날로 간주한 것이다. 지금은 새해 첫날이 크리스마스로부터 1주일 후가 되지만 7일 후이건, 8일 후이건 중요한 의미는 없다. 12월 31일은 실베스터 데이라고 부른다. 교황 실베스터의 서거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런 명칭을 붙였다. 실베스터 교황은 314-335년간 교황으로 있었다. 로마에서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던 기간이었다.

 

새해를 축하하기 위한 비엔나 필하모니커의 신년음악회. 비엔나악우회 황금홀에서 1월 1일 오전 11시에 열린다.

 

믿거나 말거나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여늬 나라와 마찬가지로 17세기 초까지도 어느 날을 새해 첫날로 정해야 할지 분명치 않았다. 물론 추세에 따라 야누아르(Januar: January) 첫날을 새해 첫날로 지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교회가 공식적으로 정한 날은 아니었다. 교회가 공휴일을 정하는데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중세에는 교회에서 정한 공휴일 또는 축일이 그 나라의 공휴일이고 축일이었고 정부가 별도로 공휴일이나 축일을 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부활절, 성령강림절, 예수 승천일, 크리스마스 등등...아무튼 오스트리아에서 야누아르 1일을 새해 첫날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1691년부터였다. 당시 로마 가톨릭의 교황인 인노센트 12세(Innocent XII)가 그렇게 선포했다. 12월 31일, 즉 섣달 그믐날은 질베스터타그(Sylvestertag) 또는 질베스터아벤트(Sylvesterabend)라고 부른다. 이는 4세기에 교황을 지낸 성자 실베스터(Saint Sylvester)의 소천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성자 실베스터는 314년 1월 31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어 335년 12월 31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실은 12월 31일은 성자 실베스터를 로마의 프리스킬라 카타콤에 안장한 날이므로 실제로 그가 며칠날 세상을 떠났는지는 확실치 않다. 교회에서 교황 실베스터의 소천기념 미사를 12월 31일에 드리다보니 그날이 섣달 그믐날이므로 그날을 실베스터데이(또는 실베스터 이브)라고 부르게 되었다. 실베스터데이 또는 실베스터 이브를 독일어로 말하면 질베스터타그 또는 질베스터아벤트이다.

 

교황 질베스터(실베스터) 1세

 

실베스터라는 이름에는 '숲'이라는 뜻이 있다. 실비아, 실레스터는 모두 실베스터의 변형이다. 어째서 실베스터라는 이름에 숲이라는 뜻이 담겨 있게 되었느냐는 것은 역시 교황 실베스터에 대한 에피소드 때문이다. 어느때에 콘스탄틴 왕이 교황 실베스터에게 두번째 부인을 얻고 싶으니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실베스터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면서 거절했다. 화가난 콘스탄틴은 실베스터를 은밀히 죽이고자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실베스터는 멀리 숲으로 피신을 했다. 실베스터는 숲의 동굴에 숨어 지내며 콘스탄틴의 마음이 변화되기를 기다렸다. 얼마후 콘스탄틴은 원인을 알수 없는 병에 걸려 언제 세상을 떠나게 될지 모르는 형편이 되었다. 콘스탄틴은 자기가 교황 실베스터를 미워하고 해치고자 했기 때문에 중병에 걸렸다고 생각해서 숲속의 동굴로 실베스터를 찾아갔다. 콘스탄틴은 실베스터에게 자기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용서를 바랐다. 실베스터가 콘스타틴을 용서하였더니 콘스탄틴의 병이 그 자리에서 나았다. 콘스탄틴 왕은 유태인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실베스터라는 이름이 숲과 연관이 되게 되었다. 라틴어의 실바(Silva)는 숲이라는 뜻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질베스터아벤트에 시나몬, 설탕, 붉은 포도주로 펀치를 만들어 마신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그런 펀치를 만들었는데 요즘은 연말에 즈음해서 수퍼에 가면 공장에서 만든 것들을 판다. 그런 펀치를 마시는 것은 성자 질베스터를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질베스터아벤트에는 콘페티(Confetti: 색색갈의 사탕)를 먹거나 색테이프인 스트리머를 장식하고 샴페인 따위를 마시기도 한다.

 

해마다 비엔나의 섣달 그믐날에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가 공연된다.

                         

연말이 가까워오면 여관집이나 술집에서는 문 앞에 상록수 가지로 만든 화환같은 것을 걸어 놓는다. 어떤 마을에서는 섣달 그믐날에 악귀를 쫓아낸다고 하여 요즘으로 치면 박격포같은 것을 하늘을 향해 쏜다. 이것을 뵐러(Böller)라고 부른다. 교회마다 자정미사가 거행된다. 어떤 교회에서는 자정에 종탑에 사람이 올라가서 트럼펫을 분다. 자정이 선포되면 사람들은 옆에 있는 사람들과 키스를 한다. 옛날에는 상당히 진하게 키스를 했는데 요즘에는 그저 형식적으로 키스를 한다. 대도시에서는 자정에 불꽃 놀이가 펼쳐진다. 비엔나에서는 시청앞 광장에서 연례적으로 불꽃놀이가 거행된다. 그리고 슈타츠오퍼와 폭스오퍼에서는 관례적으로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Die Fledermaus)가 공연된다. '박쥐'는 대체로 12월 31일 밤에만 아니라 1월 1일 저녁에도 공연된다. 오페레타 '박쥐'의 스토리가 질베스터아벤트에 시작하여 다음날인 1월 1일 아침에 막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극장에서는 사정에 따라 '박쥐'를 갈라 콘서트로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오페레타 '박쥐'를 공연하지 않는 다른 연주회장에서는 슈트라우스 콘서트가 열린다. 질베스터아벤트 또는 노이야르타그의 '박쥐' 티켓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런 공연에 꼭 가보고 싶지만 티켓을 구하지 못해서(너무 비싸기도 해서)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약식 콘서트가 여기저기에서 마련된다. 예를 들면 콘체르트하우스, 팔레 팔라비치니, 쿠어 살롱 등에서이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월츠와 폴카, 모차르트 오페라의 아리아 들이 프로그램을 장식한다. 새해 첫날의 미사가 끝나면 성당 아이들이 성가대를 조직해서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캐롤을 불렀다. 그러면 수고했다고 캔디나 쿠키를 주었다. 요즘에는 아마 아이들에게 '새벽 미사가 끝나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캐롤을 부르자'라고 말하면 '왜 불러요?'라면서 안 할 것이다.

 

시청앞에서의 섣달 그믐날(질베스터아벤트) 불꽃 놀이

 

오스트리아에서 새해 첫날의 만찬은 특별하다. 어린 돼지를 요리해서(주로 로스트해서) 먹는 만찬이다. 오스트리아에서 돼지는 행운을 상징한다. 새해 첫날 만찬의 식탁을 보면 마르치판(Marzipan)으로 새끼 돼지의 모양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볼수 있다. 마르치판은 설탕, 달걀, 밀가루, 호두와 아몬드를 으깨어 만든 과자이다. 펏지(Fudge)라는 캔디도 등장한다. 초콜릿, 버터, 밀크, 설탕 등으로 만든 연한 캔디이다. 물론 초콜릿으로 만든 과자도 있다. 행운을 상징하는 과자나 캔디로서는 네잎 클로버 모양의 것들도 인기이다. 그래서인지 로스트 돼지고기를 먹고 난 후에 입가심으로 그린 페퍼민트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네잎 클로버 형태로 만들어서 준비한다. 질베스터아벤트와 새해 첫날 만찬이 지나면 곧이어 화싱(Fasching)에 들어가서 렌트(수난절)를 마지할 때까지 계속된다. 이 기간에는 주로 무도회가 열리거나 파티가 열린다. 가장 유명한 무도회는 물론 슈타츠오퍼의 오페라무도회(오페른발)이지만 호프부르크의 페스트잘(대연회장)에서 열리는 르 그랑 발(Le Grand Ball)은 유명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화를 다시 보듯 참가자들은 화려한 드레스에 각종 보석으로 치장하고 등장하여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마치 합스부르크 황실이 연례 신년축하 무도회를 개최하는 듯한 느낌이다. 화싱은 다른 나라의 카니발과 같은 성격이다. 화싱 기간에 돼지 요리와 잉어 요리를 먹으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다. 그리고 화싱 기간에는 화싱크라펜(Faschingkrapfen)이라는 빵과자를 먹어야 재수가 좋다고 생각한다. 시나몬 가루를 뿌린 젤리 도나츠이다.

 

화싱크라펜. 화싱 기간 중에는 이걸 먹어야 재수가 좋다고 생각한다.

 

새해 첫날의 놀이로서 블라이기쎈(Bleigiessen)이란 것을 빼놓을 수 없다. 요즘엔 아이들이 블라이기쎈을 거의 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블라이기쎈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로 인기였다. 블라이기쎈이란 조그만 납덩어리를 불에 녹여서 대접의 물에 떨어 트리면 녹은 납이 이리저리 별별 형상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녹은 납 모양을 보고 운수를 점친다는 것이다. 블라이(Blei)는 납이라는 단어이고 기쎈(Giessen)은 붓는다는 뜻이다.

블라이기쎈으로 만들어진 납모양으로 재미삼아 그 해의 운수를 점친다. 예를 들어 뜨거운 납물을 차가운 물에 부어서 만들어진 모양이 닻처럼 생겼으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운수라는 것이다. 납물은 별별 모양으로 다 만들어질수 있으므로 이들 각 모양에 대한 풀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 공처럼 둥근 모양 - 1년 내내 행운이 굴러 온다는 상징 ○ 도끼 모양 - 실연 ○ 꽃 모양 - 새로 친구를 사귐 ○ 염소 모양 - 재산을 상속받게 됨 ○ 안경 모양 - 지혜로워 짐 ○ 삼각형 모양 - 재정이 좋아짐 ○ 생선 모양 - 행운 ○ 병(Flasch) 모양 - 기쁜 소식 ○ 종 모양 또는 계란 모양 - 기쁜 소식, 특히 아기의 출생 ○ 하트 모양 - 사랑하게 됨 ○ 모자 모양 - 좋은 소식 ○ 십자가 모양 - 죽음 ○ 과자 모양 - 축제 준비 ○ 소(Kuh) 모양 - 병고침 ○ 사다리(Leiter) 모양 - 승진 ○ 쥐 모양 - 비밀스런 연애 또는 절약하는 생활 ○ 반지 또는 화환 모양 - 결혼 ○ 가위 모양 -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함 ○ 배, 비행기, 로케트 모양 - 휴가, 모르는 곳으로의 여행 ○ 뱀 모양 - 다른 사람이 자기를 질투함 ○ 물레 모양 - 행운이 비단실에 매어 있듯 조심해야 함 ○ 별 모양 - 행운 ○ 끊어진 원 모양 - 눈물을 흘리게 됨 ○ 블라이기쎈에서 가장 좋은 행운의 상징은 돼지 모양, 네잎 클로버 모양, 말굽 편자 모양, 무당벌레(레이디버드) 모양이다.

 

블라이기센 작업

블라이기쎈으로 만든 각가지 형상의 납

 

비엔나 거리에서의 질베스터아벤트 풍경도 빼놓을수 없다. 12월 31일 오후 2시경부터 다음날인 1월 1일 새벽 2시경까지 비엔나 중심가의 거리에서는 각종 거리 음악회가 열린다. 음악회라고 하지만 혼자서 연주하는 경우도 있고 몇 명이서 앙상블로 연주하는 경우도 있다. 하여간 12월 31일이면 비엔나의 구시가지는 하나의 커다란 파티 장소로 변하는 것 같다. 곳곳에서 월츠 소리가 들리고 샴펜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린다. 특히 그라벤 거리에서는 길거리 댄스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게 한다. 그리고 헤렌가쎄 등에 있는 무도학교(탄츠슐레)는 문밖의 거리에서 즉석 무도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질베스터아벤트에는 비엔나의 캐른트너슈트라쎄와 그라벤 일대, 그리고 라트하우스(시청) 앞 광장은 거대한 인파의 홍수로 발길을 떼어 놓기가 어려울 정도가 된다. 그것도 또 하나의 비엔나 풍경이다.

 

질베스터아벤트(섣달 그믐날)의 거리 무도회. 부르크테아터(궁정극장) 앞으로부터 라트하우스 광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왈츠를 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