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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날(Muttertag)

정준극 2012. 5. 30. 19:18

어머니날(Muttertag) - Mother's Day

이탈리아: Festa della Mamma, 프랑스: Fête des Mères, 스페인: Dia de la Madre, 스웨덴: Mors Dag

 

오스트리아에서는 어머니날에 이와 같은 화이트 크리스탈로 만든 악세사리를 선물로 드리는 것이 보통이다. 어머니날이 가까워오면 여러가지 선물들이 등장한다.

                                               

오스트리아에서의 2012년도 어머니날은 5월 13일 주일이었다. 다른 나라들도 거의 모두 5월 13일을 어머니날로 지켰다. 5월의 첫주일인 6일에 지키는 나라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포르투갈, 리투아니아, 스페인, 헝가리 등이다. 폴란드는 5월의 넷째 토요일인 26일에 지켰고 스웨덴은 5월의 넷째 주일인 27일에 지켰다. 그런가하면 프랑스는 6월의 첫주일인 3일에 지켰고 룩셈부르크는 둘째 주일인 10일에 지켰다. 태국은 8월 12일고 아르헨티나는 10월 21일이다. 태국의 어머니날은 현 왕비의 생일과 맞물려 있다. 우리나라는 어머니날이란 것이 없고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지킨다. 교회에서는 5월 둘째 주일, 즉 2012년에는 5월13일을 어버이주일로 지킨다. 어머니날은 모든 나라에서 국경일은 아니지만 기념일로서 지키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주일을 법정 국경일로 정해서 지키고 있다. 어머니날이 미국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인것 같다. 오늘날 어머니날은 세계 50개 이상의 국가에서 기념일로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어버이날이 있는 나라는 어머니날이 없다. 일본도 어머니날, 아버지날, 어버이날은 없고 대신 '경노일'(게이로노히)가 있다. 중남미의 대부분 국가들은 5월 10일에 어머니날을 지킨다.

 

어머니날에는 카네이션이 아니라 카멜리아스를 사용한다. 카멜리아스는 오스트리아의 카밀이라는 식물학자가 처음 발견한 꽃이다.

                   

어머니날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가? 고대 그리스로부터라는 것이다. 제신의 어머니인 레아(Rhea)를 숭배하는 축제를 가진 것이 어머니날의 효시라고 할수 있다. 초기의 기독교인들은 사순절의 네번째 주일을 어머니 축제로 지켰다. 성모를 존경하는 축제였다. 영국에서의 어머니날에 대한 전통은 미국의 경우와 흡사하지만 오리진은 다르다. 영국에서는 원래 사순절 넷째 주일에 자기의 출생신고가 되어 있고 세례를 받았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모교회를 방문하는 것을 어머니날로 지켰다. 말하자면 우리네가 추석에 고향을 방문하는 것과 같다. 미국에 정착하기 시작한 영국 사람들은 어머니날을 지킬수가 없자 자연히 영국식의 어머니날은 사라졌다. 미국에 살면서 영국에 있는 모교회를 방문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발행한 어머니날 기념우표

 

어머니날이 미국에서 비롯하였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어머니날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하여는 세가지 주장이 있다. 미국에서 어머니날을 지키자고 처음으로 제안된 것은 1877년 5월 11일 미세스 줄리엣 캘훈 블레이클리(Mrs Juliet Calhoun Blakeley)에 의해서였다. 블레이클리는 이날을 평화를 기원하는 날로 삼자는 주장도 했다. 실제로 블레이클리는 1872년부터 보스턴에서 어머니날 회의를 조직하였다. 그러므로 블레이클리야 말로 미국에서 처음으로 어머니날을 주창한 인물이라고 볼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블레이클리가 어머니날을 제정한 것은 순전히 우연에 의해서라는 주장이었다. 1877년 5월 11일은 주일로서 블레이클리의 생일이었다. 교회 목사님이었던 블레이클리의 아들이 강대상에 올라가 예배를 인도하는 중에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는지 강대상(강단)을 떠났다. 교인들은 예배인도자가 없게 되자 적잖이 당황하였다. 그때 회중석에 앉아 있던 블레이클리가 얼른 강대상으로 올라가서 예배의 나머지 순서들을 무사히 진행하였다. 회중석의 다른 어머니들도 동요하지 않고 블레이클리의 인도에 따라 예배를 마치었다. 나중에 주일날의 얘기를 들은 블레이클리의 두 아들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행동에 깊이 감동하여 비록 엄머니와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매년 한번 어머니의 생일에만은 만사를 제쳐놓고 고향인 미시간주의 알비온으로 돌아와 어머니을 위해 생일파티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이와 함께 두 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하도록 하고 5월 둘째 주일을 정하여 그날만은 어머니를 생각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날로 삼도록 주장했다.

 

Image Detail

미국에서 어머니날 운동을 처음 시작한 미세스 줄리엣 캘훈 블레이클리

 

미국에서 어머니날이 국경일로 결정되도록 한데에는 말할 나위도 없이 미스 안나 자비스(Miss Anna Jarvis)의 공로가 컸다고 할수 있다. 미스 안나는 1907년에 자기 어머니를 추모하여 국가적인 어머니날을 만드는 운동을 펼쳤다. 미스 안나의 어머니인 미세스 안나 자비스는 '어머니 우정의 날'(Mothers Friendship Day)을 만들어 남북전쟁에서 부상을 당한 병사들의 후유증을 고치는 활동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사자에 대하여는 그 가족들을 돌보는 활동을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미스 안나는 모든 어머니들을 기념하고 존경하는 날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미스 자비스와 그를 후원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장관들과 종교계의 지도자들과 기업인들과 정치가들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어 국가차원에서의 어머니날의 제정을 촉구하였다. 미스 안나와 후원자들은 우선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정하고 그 첫번째 행사를 돌아가신 어머니인 미세스 안나 자비스의 2주기가 되는 주일에 교회에서 거행하였다. 그때 미스 안나는 고인이 된 그의 어머니의 영정 앞에 평소에 어머니가 좋아하던 카네이션 꽃을 놓았다. 그로부터 만일 부모님이 생존하여 계시면 빨간 카네이션을, 돌아가셨으면 하얀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는 풍습이 시작되었다. 이듬해에는 미스 안나의 고향인 필라델피아에서 어머니날이 정식으로 지켜졌다. 그리하여 1911년에 가서는 미국의 거의 모든 주에서 어머니날을 지키는 일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1914년, 세계 1차대전이 일어나던 해에는 당시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이 마침내 5월 둘째 주일을 미국내 모든 어머니들을 존경하는 국가적인 어머니날로 제정한다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에서 어머니날을 국경일로 제장하는데 큰 기여를 한 미스 안나 자비스

                          

어머니날은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전국적으로 카드와 선물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났다. 미스 안나는 어머니날이 상업적으로 변하는데 대하여 깊은 우려를 나타내 보였지만 어차피 현대사회에서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도 중요하다는 것이 여론이었다. 오늘날 어머니날은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에 이어 가장 비즈니스가 잘 되는 경축일이 되었다. 2011년만 해도 미국에서는 어머니날을 위해 1백80억6천만불이 지출되었다. 전국소비자연맹에 의하면 이는 전년 대비 8%의 증가라는 것이다. 어머니날 카드는 한해 동안에 무려 1억5천만장이나 팔렸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와 발렌타인 데이에 이어 미국에서 세번째로 카드를 많이 소비한 기념일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어머니날에 카드 대신에 이런 장식품을 사용한다. Mama ist die Best(엄마가 최고), Zum Muttertag alles Liebe(어머니날에 모든 사랑을), Fur die liebster Mama(사랑하는 엄마에게) 등이라고 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