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이해하기

미스터리 플레이: 오페라의 원조

정준극 2012. 9. 15. 15:13

미스터리 플레이: 오페라의 원조

Mystery plays - Miracle plays

 

중세 영국 체스터에서의 미스터리 플레이 장면. 간혹 노래가 등장하기도 한다.

                               

오페라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중세의 미스터리 플레이(Mystery play)를 간과할수 없다. 미스터리 플레이는 미라클 플레이(Miracle play)라고도 부르는 일종의 연극공연이다. 글자 그대로 본다면 '신비한 연극' 또는 '기적 연극'이라고 볼수 있다. 미스터리 플레이와 미라클 플레이는 뜻이 다르게 사용될 수도 있지만 언제부터인지 대체로 같은 뜻으로 겸용되고 있다. 미스터리(신비)플레이 또는  미라클(기적) 플레이라고 하니까 혹시 정말로 무슨 신비하고도 기적이 일어나는 마법적인 내용의 연극이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실은 종교적인, 특히 기독교적인 사건을 내용으로 하는 연극이라고 보면 된다. 하기야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보면 하나같이 신비하고 기적적이지 아니한 것이 없을 지경이니 그 내용들을 연극의 주제로 삼은 것을 미스테리 플레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야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 애급 총리가 된 요셉의 이야기, 모세와 바로의 이야기, 홍해가 갈라진 이야기,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 예수 그리스도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고 오병이어로서 수많은 백성들을 먹이신 일,  물위를 걸어 다니신 일, 죽은자를 살리신 일, 그리고 특히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관한 내용은 미스터리 및 미라클 그 자체가 아닐수 없다. 아무튼 미스터리 플레이가 되었든 미라클 플레이가 되었든 이것은 중세에 유행했던 공연형태로서 성경말씀을 내용으로 한 일종의 연극이며 여기에 음악이 가미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고보면 연극과 음악을 혼합했다는 데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오페라와 연관이 있다고 볼수 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오페라라는 말은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서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며 그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음악을 곁들인 연극을 한 단계 완성시킨 작품이라고 말할수 있다. 이렇듯 정식 오페라가 나오기 전에 교회에서 음악과 연극을 혼합한 형태의 공연을 하여 장차 나타날 오페라에 대비한 것이 미스터리 플레이 또는 미라클 플레이므로 용어야 어찌되었든 이들이야 말로 오페라의 원조라고 볼수 있다. 중세에 교회에서 그런 형태의 발표를 타블로(Tableaux)라고 불렀는데 일종의 연극이라는 의미이다. 타블로를 발표할 때에는 대체로 교창(交唱) 스타일의 성가를 불렀다. 이를 앤티포날 송(Antiphonal song)이라고 한다. 번갈아 노래하는 형태를 말한다.

 

미스터리 플레이 준비중

 

미스터리 플레이는 10세기부터 16세기까지 발전되어 왔다. 미스터리 플레이는 16세기에 전문적인 극장공연이 나타나기 전까지 거리나 마을의 광장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며 공연되었다. 처음에는 교회에서만 공연되다가 나중에는 교회가 아닌 장소에서도 공연되었다. 퀨 퀘리티스(Quem Quaeritis?)라는 드라마가 있다. 중세 초기의 미스터리 연극으로서는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라틴어의 퀨 퀘리티스는 '누구를 찾고 있느냐?'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아침에 그리스도의 시체를 찾아 왔던 여인들과 천사 사이에 있었던 대화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대화체의 공연이었으나 나중에는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내용의 연극은 처음에는 부활절에 교회에서만 공연되었다. 사람들은 별로 할 일도 없던 차에 교회에서 예수부활에 대한 연극을 한다니까 구경하기 위해 교회로 몰려왔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기 때문에 더 이상 교회 안에서만 공연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교회 앞 마당에서 공연되었고 더욱 확대되어 시장에서 공연하기 시작했다. 다만, 라틴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어 공연되었고 그 후에는 각 지방의 방언이나 각나라의 언어로도 번역되어 공연되었다. 그러다가 1210년에 교황 인노센트 3세는 교회의 미스터리 연극이 너무나 세속화되고 있다고 생각하여서 대중무대에서 교회의 사제들이 직접 출연하는 것을 금지하는 칙령을 내렸다. 그러자 이 연극을 장인(匠人) 조합들이 공연하기 시작했다. 아울러서 대사도 쉬운 말로 고쳐지는 일이 생겼다. 또한 기왕 공연하는데 반드시 성경적인 내용만 다룰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내용도 다루기 시작했고 나아가서 코믹한 내용도 가미되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한층 본격화 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천사가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누구를 찾고 있느냐?'고 묻고 있는 장면

 

라틴어로 된 미스터리 플레이가 각국어로 번역되어 공연되기 시작하자 특히 영국에서 대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중세의 영국에서 요크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도시에서 일반대중을 위한 미스테리 플레이가 공연되었다는 기록만 보아도 알수 있는 일이다. 영국에서는 장인 조합(길드)들이 공연을 맡아했다. 얼마후에는 각 조합이 서로 연극의 내용을 분담하여서 나름대로 별도의 내용으로 공연을 하였다. 이렇듯 조합들이 공연을 하였기에 미스터리 플레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라틴어의 미스테리움(Misterium)이라는 단어는 '직업'(Occupation)이라는 뜻이며 이는 곧 길드를 의미했다. 영국에서의 미스터리 플레이는 종교개혁의 여파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1534년 영국교회(Church of England)가 설립되자 로마 가톨릭의 관례에 따른 미스터리 플레이는 아예 금지조치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각 지역에서 꾸준히 공연되었다. 길드들이 소재로 삼은 연극은 기독교 칼렌다에 의한 이벤트를 모두 대상으로 삼았다. 즉, 천지창조로부터 최후의 심판까지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미스터리 플레이를 공연하였다. 이에 따라 15세기 말에는 유럽의 상당수 나라들에서 축일에 따라 사이클로서 미스터리 연극을 공연하는 관례가 생겼다. 부활절에는 부활에 대한 연극을, 성탄절에는 성탄에 대한 연극을 공연하는 것이었다.

 

영국 학교에서의 미스터리 플레이. 모세와 바로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은 연극이다.

                           

어떤 경우에는 여러 대의 마차를 무대로 만들고 마차 위에서 미스터리 연극을 공연하였다. 이 마차들이 열을 지어서 차례로 거리를 다니며 공연하였기 때문에 잘만 하면 성경의 전체 내용을 한 자리에서 사이클로 관람할수 있었다. 그런 마차들을 패전트(Pagent)라고 불렀다. 오늘날 퍼레이드 형식의 축제를 패전트라고 부르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전체 사이클의 연극을 코르푸스 크리스티(Corpus Christi)라고 불렀다. 원래 의미는 성체축일(聖體祝日)이지만 미스터리 플레이의 전체를 그렇게 불렀다. 코르푸스 크리스티를 공연하는데에는 대체로 24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며칠이나 걸리기도 했다. 직업 배우들이 공연을 했고 길드에 속한 아마추어들도 참가하였다. 미스터리 플레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대사가 일정한 형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마치 시를 읊는 것과 같은 형태로 되어 예술성이 높아졌다. 순회공연의 무대는 비록 한정된 규모이지만 무대장치를 만들어 효과를 주기도 했다. 아무튼 비록 사이클이지만 각 연극이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 아무튼 이러한 미스터리 플레이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본격적인 종교 드라마로 발전하였고 이어 오라토리오가 탄생하게된 계기를 마련해 준것이었다. 오라토리오의 한 형태로서 오페라가 탄생한 것도 묵과할수 없는 일이다.

 

고난의 길 미스터리 플레이. 길에서도 공연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