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이해하기

오페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가?

정준극 2013. 9. 11. 03:48

오페라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인가?


오페라는 어려워서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페라 보러 가자!'고 말하면 은근히 귀찮아 하는 사람도 있다. 돈내면서 시간 뺏기고 고상한척 하며 고생하러 간다는 선입감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5페라 좋아하시네! 난 4페라도 가기 싫소? 혼자 가서 많이 많이 보고 오시오!'라고 말하기가 십상이다. 오페라는 현실적이 아니라는 말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부터 현실주의자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가고 싶지 않다는 구실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물론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현실과 거리가 있는 문화생활은 약간의 기피대상일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오페라라는 예술 형태는 현실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선 오페라의 무대를 보자. 거의 모두 고대 아니면 중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먼 나라의 풍물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한때 유럽에서는 동양적인, 즉 이국적인 스토리와 무대가 인기를 차지한 일이 있다. 하지만 요즘같이 비행기가 발달한 세상에서는 이국적이라든지 또는 먼나라의 얘기라는 것은 크게 흥미를 끌 일이 아니다. TV 채널만 돌리면 생전에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지역의 이국적인 장면이 얼마든지 나온다. 사실상 이국적인 얘기는 TV 또는 영화에서 얼마든지 볼수 있다. 출연자들은 어떠한가? 모두들 분장을 하고 나온다. 누가 누구인지 알수 없을 정도이다. 아는 사람이 오페라에 출연한다고 해서 모처럼 갔었는데 하도 훌륭하게 분장을 해서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왔다는 사람도 더러 있다. 독창회, 합창 발표회, 실내악 연주회, 협주곡 연주회, 교향곡 연주회에서는 자기와는 다른 사람으로 완전히 분장하는 일이 없다. 결론: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는 것이고 현재가 있기에 미래가 있는 것이 올시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베로나에서의 현대적 연출

 

오페라 아티스트들의 의상은 연주복이 아니다. 누더기를 걸치고 노래 부를 경우가 있고 화려한 여왕의 복장으로 무대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집트 공주의 의상을 걸치고 나오는가 하면 중국 왕의 복장을 입고 나올 때도 있다. 오페라의 주인공들은 오랜 시간 힘들게 노래해야한다. 연기를 겸해야 하기 때문에 노래 부르기가 더욱 힘들다. 휴식할 여유가 없다. 독창회의 경우처럼 두 세 곡을 부른 후에 잠시 들어가 쉬고 다시 나와서 노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막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 바그너의 ‘링 싸이클’ 에서는 무려 8-10시간 정도를 무대와 함께 해야한다. 대체로 오페라의 공연 시간은 일반 연주회보다 길다. 그래서 지루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반 콘서트나 리사이틀은 출연자를 생각하여 1시간 남짓이 고작이다. 길어야 2시간이다. 우리는 오페라 주인공들에 대하여 존경과 갈채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 긴 멜로디와 가사를 어떻게 전부 암기해서 노래를 부르는지 놀라울 정도가 아닌가? 여기에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를 해야 하고 춤이면 춤, 칼싸움이면 칼싸움을 능숙하게 해야 한다. 어찌했던지 출연자들은 그 긴 대사와 음표를 전부 암기해야하고 여기에 연기를 충실히 해야만 한다.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의 '투란도트' 공연

 

오페라의 가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 오페라의 대사가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되어 있는 대사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부르면 언어의 뉘앙스에 따른 음악적 표현과 감정 표현을 정확하게 하기 어렵다. 더구나 어떤 표현은 정말 우리말로 번역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청중들로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오리지널 언어로 들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성악가 자신들도 가사가 무슨 의미인지 확실히 모르면서 출연할 경우가 많다. 우선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문제라고 한다. P와 F, B와 V를 구별하지 못하는 성악가가 있다면 정말 곤란하다.


오페라에서는 여자가 남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남자가 여자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40대 중반의 여자가 10대의 소녀 역할을 맡아서 노래 부르는가 하면 20대의 젊은 여자가 노파의 역할을 맡아 하는 경우도 있다. 오페라의 또 다른 특징은 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주인공이 나중에 죽는다는 것이다. 칼에 찔려 죽을 경우도 있고(카르멘) 총살당할 경우도 있으며(토스카의 카바라도시) 자살 할수도 있고(나비부인) 약을 먹고 죽는 경우도 있다(일 트로바토레의 레오노라). 또 불치의 병에 걸려 허약해질 대로 허약한 몸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끝내는 경우도 있다(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라 보엠의 미미). 그러면서도 참으로 현실적이지 못한 것은 기운이 하나도 없이 죽어야 하는 때에도 힘든 아리아를 오래 동안 격정적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쓰러져서 당장 목숨이 끊어지는 입장인데도 소프라노와 테너는 마치 그 어느 때보다도 최상의 콘디션에 있는 듯 가장 높은 음을 내며 아리아를 부른다. 이것이 오페라이다.

 

푸치니의 '라 보엠'.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 호수극장의 무대

 

오페라가 현실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못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감상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페라는 현실적으로 가장 훌륭한 예술분야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을 가장 즐겁게 해주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아무리 첨단 기술을 이용해서 제작되었다고 해도 평면 스크린에 펼쳐질 뿐이다. 발레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대사가 없으니 무언극을 보는 것과 다름이 없다. 독창이나 합창이 아무리 훌륭하고 그 나름대로 예술적 향기가 있다고 해도 오페라의 종합적 예술 세계는 따라 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