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힌데미트의 오페라 3부작(Triptych: Trilogy)
● 살인, 여자들의 희망(Mörder, Hoffnung der Frauen)
● 누슈-니쉬(Das Nusch-Nischi)
● 성녀 수잔나(Sancta Susanna)
'누슈 누쉬'의 한 장면
보마르셰의 3부작 소설인 '세빌리아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 '죄많은 어머니'는 스토리가 차례대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오페라에서는 3부작이라고 해도 각 작품의 스토리가 연결된 경우는 거의 없다. 푸치니의 3부작인 '외투'(Il Tabarro), '수녀 안젤리카'(Sour Angelica), '자니 스키키'(Gianni Schicchi)의 스토리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에른스트 크레네크의 3부작인 '독재자'(Der Diktator), '헤비웨이트'(Schwergewicht), '비밀왕국'(Das Geheime Königreich)의 스토리도 각각 다르다. 또 하나의 3부작을 만든 작곡가가 있다. 파울 힌데미트이다. '살인, 여자들의 희망'(Mörder, Hoffnung der Frauen: 1919), '누슈-니쉬'(Das Nusch-Nischi: 1920), '성녀 수잔나'(Sancta Susanna: 1921)이다. 비록 3부작이라는 타이틀로 만들었지만 서로의 스토리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면서도 3부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마도 생각난듯이 한 해에 한 편씩 작곡했으며 모두 단막으로 구성된 오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힌데미트의 3부작은 사회적인 변화가 급격하던 시절에 작곡된 것이다. 힌데미트 자신이 경험힌 변화였다. 그는 이 시기를 '낡은 세계가 폭발한' 시대라고 규정하였으며 이 시기에 남아 있는 유일한 변화는 혼란이라고 말했다.
카이저가 통치하던 독일국가는 세계대전에서 패전함으로서 와해되었다. 병사로서 전쟁에 참여했던 힌데미트는 기적처럼 생존하였다. 정부를 전복하려는 시도들은 새로 출범한 공화국에 타격을 주었다. 물가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였다. 사회학자인 칼 만하임은 이 시대의 생활을 '모든 아이디어가 비난을 받았고 모든 유토피아가 붕괴된 시대'라고 단정했다. 이를 독일어로는 베부쓰츠아인샬퉁(Bewusstseinschaltung)이라고 불렀다. 스스로의 의식에 다른 이질적인 것들이 끼어들어서 제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예술분야에서는 후기 낭만주의가 표현주의로, 인상주의가 초현실주의로 극명하게 움직인 시대였다. 훗날 이 시대를 경험했던 힌데미트는 '보수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서 새로운 자유를 그 어느때 보다도 폭넓게 누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모두들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탐구하였다. 누구나 참여할수 있는 탐구였다. 힌데미트에 있어서 새로운 탐구는 '표현주의'였다. 당시 그는 아방 갸르드 신문인 Das Kunstblatt(예술회보)의 논조에 깊이 심취하고 있었다. '예술회보'는 '새로운 날'(Der Jünste Tag)이라는 타이틀 아래에 표현주의 작품들을 게재하였다. 그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 당대의 평론가인 베른하르트 디볼트(Bernhard Diebold)였다.
디볼트는 힌데미트와 각별한 교분을 가지며 표현주의에 대한 견해를 함께 했다. 디볼트는 이미 1920년대에 '드라마의 무질서 상태'(Anarchy in Drama)라는 제목의 표현주의 드라마를 처음으로 발표하여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표현주의에 대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 사람이 오스카르 코코슈카(Oskar Kokoschka)였다. 화가인 코코슈카는 문학에도 재능이 있어서 1909년에 '살인, 여자들의 희망'(Mörder, Hoffnung der Frauen)이라는 희곡을 썼다. 이 작품은 어찌보면 통상적이고 전형적인 스토리라고 할수 있지만 색스에 대한 투쟁이 모험적이면서도 난해한 이론으로 그려져 있어서 관심을 끌었다. 힌데미트는 코코슈카의 '살인, 여자들의 희망'이라는 희곡을 '새로운 날'의 시리즈에서 발견하고 이 작품에 나타난 코코슈카의 대화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음악성을 찾고자 했다. 그리하여 1919년 여름에 코코슈카의 희곡에 음악을 붙이는 작업을 했다. 그때 힌데미트는 겨우 23세의 청년이었다. 힌데미트는 코코슈카의 희곡을 오페라로 만들면서 코코슈카가 사용한 언어의 오묘한 의미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알아 들을수 있게 설명해 줄수 있는 대안을 찾아보았지만 그것도 어려워서 결국 악기의 음향으로서 그 의미를 표현키로 했다. 하지만 힌데미트의 첫 오페라에서의 음악은 후기 낭만주의 음조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바그너를 표방코자 하는 노력도 버리지 못하였다.
역시 단막의 '성녀 수잔나'(Sancta Susanna)는 힌데미트가 1921년 초에 2주 동안에 완성한 것이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나온 다른 어떤 작품에 비하여 대단히 암시적인 요소가 많으며 그러면서도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힌데미트의 3부작도 스토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했지만 세 작품을 통하여 공통적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섹스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이를 억제하려는 생각, 그리고 용인될수 없는 섹스에 대한 처벌이다. '살인...'은 먼 옛날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용납되지 않는 성적 행위에 대한 처벌은 불로 낙인을 찍는 것이었다. '누슈-누쉬'는 먼 극동에서 일어난 일이다. 관능적인 섹스가 일반화되어 있으며 비정상적인 성적 행위에 대한 처벌은 거세라는 방법으로 처리되지만 결국은 별것도 아닌 것으로 결말지어진다. '성녀 수잔나'는 서구 기독교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다. 섹스는 인간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욕망으로서 경험되며 처벌은 제도적인 억압과 제약으로 표현되었다.
'살인...'과 '누슈-누쉬'는 1921년 6월 4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초연되었다. 프릿츠 부슈(Fritz Busch)가 지휘하였다. 그러나 프릿츠 부슈는 '성녀 수잔나'의 지휘는 거절하였다. 도덕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성녀 수잔나'의 내용은 신성모독이라는 받아들일수 없는 사항을 건드리고 있으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저속함이 있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더구나 독일인이라면 그러한 저속하고 비도덕적인 스토리를 입에 담지도 않겠지만 이 작품은 독일인이 아닌 진흙과 같은 사람들의 생각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3부작이 모두 공연된 것은 1922년 3월 26일이었다. 대중들의 반대와 항의가 뒤따랐다. 프랑크푸르트의 가톨릭여신도연맹은 속죄기도회를 가지기도 했다. 함부르크 공연에서는 관중들에게 3부작을 관람하면서 소란을 피우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미리 받았다. 최근인 1977년 로마에서의 공연은 오페라극장장이 파면되기까지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누슈-누쉬'는 바그너 음악에 대한 공공연한 풍자적 모방이라고 할수 있다. 특히 '누슈-니쉬'의 3막에 나오는 거세 장면에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중요한 파트들을 모방한 음악이 나온다. 어찌 생각하면 힌데미트는 세기 말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작품을 상당히 풍자적으로 모방하였다. 예를 들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Till Eulenspiegel(틸 오일렌슈피겔: 어릿광대의 이름)과 말러의 Das Lied von der Erde(대지의 노래)의 음악을 풍자적으로 모방한 것이다. 힌데미트는 특히 말러의 '대지의 노래'가 보여준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겨 인용하였다. 이를 위해 힌데미트는 첼레스타, 만돌린, 하프, 잉글리쉬 혼 등을 사용하였다. 막스 레거(Max Reger: 1873-1916)의 네오 바로크 음악도 풍자적으로 모방하였다. 힌데미트는 레거의 음악을 대담할 정도의 형태인 합창 푸가로서 인용하였다. 즉, '누슈 누쉬'에서 두 명의 환관이 엄청나게 뚱뚱한 배를 내놓고 춤을 추는 장면에 나오는 음악이다. 힌데미트의 3부작은 1834년부터 나치의 핍박을 받기 시작했다. 퇴폐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힌데미트는 출판사에게 3부작의 어떤 스코어도 일반의 손에 절대로 들어가지 않도록 출판하지 말것을 당부했다. 힌데미트는 전쟁이 끝난지 한참 후인 1958년에 가서야 3부작의 스코어가 출판되어도 좋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당장 출판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3부작이 완판으로 출판된 것은 힌데미트 사후 12년이 지난 1975년이었다. 오늘날 힌데미트의 3부작은 거의 공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생각난듯 도전하는 경우도 있다. 2012년 보스턴에서 스위스 출신의 지휘자인 레온 보트슈타인(Leon Botstein: 1946-)의 지휘로 미국 초연이 이루어진 것은 기록에 남을 만한 일이다. 힌데미트가 세상을 떠난지 80년만에 이루어지는 공연이기 때문이다. 이제 3부작의 하나하나를 살펴보자.
3부작의 첫번째인 '살인, 여자들의 희망'은 앞에서 소개한 대로 오스카르 코코슈카(1886-1980)의 극본을 바탕으로 한 단막의 오페라이다. 코코슈카는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아방 갸르드 화가로서 구스타브 말러의 부인이었던 안나 말러와 뜨거운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 '바람의 신부'(Windbraut)는 안나 말러와의 밀회장면을 그린 것이다. 코코슈카의 '살인, 여자들의 희망'은 힌데미트가 오페라로 만들기 11년전인 1909년에 비엔나의 쿤스트샤우 극장(Kunstschau Theater)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이 극장의 옆에는 군부대가 있었다. 군부대의 병사들이 쿤스트샤우 극장에서 코코슈카의 이상한 연극을 공연한다니까 정원의 한쪽에서 극장 안을 들여다 보며 구경하였다. 그러다가 '남자'가 '여자'에게 불로 낙인을 찍는 장면이 나오자 저럴수 없다면서 분개하여서 극장 안으로 뛰쳐 들어가 소동을 벌였다. 경찰이 파견되어 가까스로 진정되었다. 코코슈카는 친구 중의 한 사람이 경찰서장과 친한 사이였고 또한 동료작가들인 아돌프 로스와 칼 크라우스의 도움을 받아 극장에서 겨우 도피할수 있었다. 나중에 코코슈카는 소란을 유발한 죄로 체포되지는 않고 간단한 경고만을 받았다. 그만큼 사단이 많았던 작품이었다.
'살인, 여자들의 희망'의 한 장면.
'살인, 여자들의 희망'은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밤중에 커다란 탑이 있는 무대이다. '남자'(The Man)가 여러 전사들을 데리고 말을 타고 탑쪽으로 오고 있다. 탑에는 '여자'(Die Frau)가 여러 처녀들과 함께 있다. '여자'와 처녀들이 '남자'가 말을 타고 오는 것을 바라본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려고 살펴본다. 처녀들과 전사들은 '남자'를 정복자와, '여자'를 위험한 야수와 비교하여 생각한다. '여자'는 '남자'의 강렬한 눈빛에 빨려 들어간듯하다. '여자'는 '남자'에게 그의 빛이 그를 잡아 끌었다고 말한다. '남자'와 '여자'는 고도로 상징적인 자세로 공포와 매력에 대한 본능을 교환한다. '남자'는 자기의 마크로 '여자'를 낙인찍으라고 명령한다. 그에 응답이라도 하듯 '여자'가 '남자'를 칼로 찌른다. 전사들은 '남자'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남자'를 탑에 가두어 둔 후 처녀들과 함께 도망치듯 멀리 사라진다. '남자'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여자'는 다시한번 '남자'를 보고 싶어한다. '여자'는 감옥의 문을 통하여 '남자'가 점차 기운을 차리는 모습을 보자 마치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기운을 잃는다. '여자'는 절망에 빠져 '남자'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달라고 말한다. '남자'가 일어나서 감옥의 문을 뜯어내고 '여자'를 주먹으로 단번에 때려 죽인다. '남자'는 같은 방법으로 전사들과 처녀들도 죽인다. 그리고 불의 통로를 통해 밖으로 빠져 나간다. '살인...'은 귀를 찢는 듯한 금관악기의 불협화음으로 시작하여 힌데미트 특유의 무거움과 색채로 이어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가 처녀들과 전사들을 마치 파리를 죽이는 것처럼 죽일때에는 세 마리의 까마귀가 울어대는 소리로 장식된다.
'살인, 여자들의 희망'의 한 장면
'살인...'은 당시의 평론가들로부터 '정말로 골치아프고 소란하며 비효과적인 작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프랑크푸르트의 유력지들은 '비명소리만 기억나는' 드라마라고 전했다. 주인공의 역할이 어떻게 발전되어 가느냐에 대한 것은 없다. 사용되고 있는 언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며 더구나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발터 조켈(Walter Sokel)과 같은 드라마 평론가는 이 작품이 현실주의에서 초현실주의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는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성서적이면서도 신화적인 암시가 초현실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부연했다. 예를 들어 '여자'와 처녀들이 모여 있는 탑은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다른 평론가들은 오토 봐이닝거(Otto Weininger)의 아이디어인 남자와 여자간의 분쟁은 성에 관련된 것이라는 것에 의견을 같이 했다. 섹스라는 것은 남성의 우수한 정신성과 여성의 타락한 동물적인 본성간의 투쟁이라는 것이다.
'누슈-니쉬'는 버마의 인형극에서 가져온 스토리이다. '누슈-니쉬'는 무섭게 생기기도 하지만 우스꽝스럽게 생긴 괴물의 이름이다. '누슈-니쉬'는 외모와는 달리 별로 힘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술취한 장군인 카이스 와잉이 실수로 깔고 앉자 그만 부서져버린다. '누슈-니쉬'의 실제 주인공은 괴물이 아니라 차트와이(Zatwai)라고 부르는 영주이다. 섹스에 대하여 만족을 모르는 인물이다. 그가 너무나 섹스에 탐익하기 때문에 결국 그의 하인인 툼 툼(Tum-Tum)이 그를 떠나가는데 새로 찾은 주인은 장군이 와잉이다. 그러나 새로운 주인인 와잉의 운이 다하자 툼 툼은 거세를 당할 운명에 처한다. 도대체 무슨 스토리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누슈-니쉬'의 대본은 독일의 프란츠 블라이(Franz Blei)가 썼다. 부제목은 '버마 인형극'(A Play for Burmese Marionettes)이다. 성악가들이 노래도 하고 무용도 하며 만드는 무대이다. '누슈-니쉬'는 1921년 6월 4일 슈투트가르트의 란데스테아터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프릿츠 부슈가 지휘를 맡았다. 단막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이 많다. 대충 소개해본다.
'누슈 누쉬'의 한 장면
뭉 타 비야(Mung Tha Bya: B)는 버마의 황제이다. 라그웽(Ragweng)은 황태자로서 대사만 말하는 역할이다. 카이스 와잉(Kyce Waing: B)은 장군이다. 잘생긴 멋쟁이 영주인 차트와이(Zatwai:) 역시 대사만 말하는 역할이다. 툼툼(T)는 그의 하인이다. 황제의 네 부인의 이름은 방사(Bangsa: S), 오사사(Osasa: S), 트와이세(Twaise: S), 라타사타(Ratasata: A)이다. 사형집행인(B), 거지(B), 시인(T, B), 처녀들(2 S, 1 A), 옷을 입은 원숭이(T)도 나온다. 수술루(Susulu: T)는 황제를 모시는 환관이다. 이밖에 전령들, 왕궁의 의식을 담당하는 관리도 나온다.
'누슈 누쉬'의 한 장면
잘생기고 돈많은 차트와이는 하인 툼툼에게 황제의 네 부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자기 집으로 데려오라고 명령한다. 툼툼은 자기 주인인 차트와이가 네 부인 중에서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를 몰라서 네 부인을 모두 데려온다. 이 사실이 황제에게 발각되면 큰 일이다. 툼툼은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주인인 차크와이를 떠나 새로운 주인을 찾아 나선다. 툼툼은 우연하게도 무서운 괴물인 누슈 누쉬에게 잡히기 직전인 카이스 와잉 장군을 구해준다. 장군은 자기를 구해준 툼툼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그를 시종장으로 임명한다. 한편, 잘생긴 차트와이는 자기의 하렘에서 황제의 네 부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다음날, 황궁에서는 난리가 났다. 황제의 네 부인들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차트와이가 의심을 받는다. 하집만 증거가 없다. 황궁의 관리들이 툼툼을 찾아내어 누가 그런 지시를 했는지 밝혀내려고 한다. 툼툼은 하렘에 있는 차트와이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고 자기의 새로운 주인인 장군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하여 차트와이와 툼툼의 변명은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누군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 장군은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누구를 사형에 처해야 할 것인가? 사형집행인은 자기의 명예가 손상되었다고 하여 불만이다. 모두들 한바탕 웃어 넘긴다.
'누슈 누쉬'의 한 장면
3부작의 마지막인 '성녀 수잔나'(Sancta Susanna)는 독일어 대본을 표현주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아우구스트 슈트람(August Stramm: 1874-1915)이 썼다. 힌데미트는 '성녀 수잔나'를 1921년 1월과 2월의 두 주간에 걸쳐 완성했다. 초연은 1922년 3월 26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하우스에서였다. '성녀 수잔나'는 그 전에 발표한 '살인, 여자들의 희망'과 '누슈 누쉬'에 이어 새로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젊은 작곡가인 힌데미트는 비판을 받았다. '성녀 수잔나'는 기독교 생활에서 독신의 금욕주의와 욕망의 관계를 테스트하는 내용이다. 수녀가 섹스에 열광한나머지 타락하는 내용을 그린 것이다. 힌데미트가 3부작을 만들 즈음에는 겨우 20대의 청년이었다. 그러므로 표현주의에 완전히 몰입했다고 볼수 없다. 다만, 당시 예술적 추세의 한 부분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고 본다. 힌데미트가 당시에 활동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20세기 초반을 '낡은 세계가 폭발한 시대'로 보았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성녀 수잔나'의 한 장면
'성녀 수잔나'에는 수잔나(S), 클레멘티아 수녀(Cont), 늙은 수녀(Cont)가 주역으로 등장한다. 이 오페라는 한 밤중의 수녀원으로부터 시작한다. 수잔나가 제단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있다. 그러한 수잔나에게 여러 형상들이 접근한다. 가장 뚜렷한 형상은 클레멘티아 수녀이다. 클레멘티아 수녀는 수잔나가 병에 걸렸으며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머물것 같지 않다고 선언한다. 클레멘티아 수녀의 대사는 오르간의 페달음으로서 강조되며 여기에 종탑의 종소리까지 울려 더욱 무거운 분위기가 조성된다. 기도하고 있던 수잔나는 자기가 무언지 모르는 힘에 의해 유혹을 당하고 있고 그 힘에 압도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예배당의 창문을 통해 스며 들어오는 달콤한 향기와 멀리서 들려오는 부드러운 소리 때문에 유혹을 당하고 압도 당하였으나 나중에는 옛날 자기의 여종이었던 사람, 연인이었던 사람과의 섹스가 생각나서 참기 어려울 정도가 된다. 마침내 수잔나는 라틴어로 된 사탄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클레멘티아 수녀가 수잔나에게 베아타 수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베아타 수녀는 에로틱한 환상에 몰입하여 자기를 억제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수녀들이 그를 제단 뒷편에 벽돌로 방을 만들고 그 안에 가두어 두었었다는 이야기이다. 수잔나는 더 이상 유혹에 견디기가 어려워서 베일을 벗어버리고 자기 앞에 있는 십자가상의 예수가 허리에 두른 천을 찢어버린다. 그러면서 이제 주변에 몰려 있는 다른 수녀들에게 자기에게도 베아타 수녀와 같은 처벌을 내려 달라고 요구한다.
십자가 앞의 수잔나
음악적으로 피날레 장면은 목관악기와 현악기의 연주로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귀를 찢는 듯한 불협화음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현악기의 고음으로 구성된 화음이 드라마틱한 절제를 이끌어준다. 그후에 수녀들이 찬송가처럼 깊은 화음의 'Satana'를 부른다. '성녀 수잔나'는 처음 공연되었을 당시 여러 논란에 휩싸였었다. 내용이 지나치게 외설적이며 심지어 신성모독적이라는 것이 쟁점이었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은 내용이야 어떻든 음악적으로는 대단히 우수한 테크닉을 사용한 것이라고 하며 찬사를 보냈다. 음악협회잡지는 힌데미트를 말할 나위도 없이 새로운 음악의 리더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아마도 힌데미트의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초기 작품들이 그런 인상을 주었다고 본다. 하지만 힌데미트도 낭만주의 스타일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지휘하는 파울 힌데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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