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솔리바의 '청동 머리' - 12

정준극 2012. 12. 12. 21:32

'청동 머리'(La testa di bronzo)

카를로 에바시오 솔리바의 '구원 오페라'

사베리오 메르카단테도 같은 제목의 오페라 작곡

 

 

또 하나의 '구원 오페라'로서 19세기 이탈리아의 카를로 에바시오 솔리바(Carlo Evasia Soliva: 1791-1853)라는 작곡가 겸 지휘자가 작곡한 '청동 머리'(La testa di bronzo)라는 것이 있다. 어찌보면 허무맹랑한 것 같은, 그러면서도 판에 박은 듯한 해피엔딩의 스토리이지만 그래도 한때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오페라이다. '청동 머리'라는 제목이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은 아래 사진에서 볼수 있듯이 브론즈(청동)로 만든 갑옷의 머리 부분을 말한다. 별 오페라 제목도 다 있다. 대본은 펠리체 로마니가 썼다. 펠리체 로마니는 나중에 벨리니를 위해 '노르마', '몽유병자' 등의 대본을, 도니체티를 위해 '안나 볼레나', '사랑의 묘약' 등의 대본을 쓴 대단한 인물이다. 아무튼 펠리체 로마니의 '청동머리' 대본이 무엇이 그리 재미있고 훌륭한지 솔리바 이외에도 여러 작곡가들이 오페라로 만들었으니 그중에는 사베리오 메르카단테(Saverio Mercadante)의 '청동머리'도 있다.

 

솔리바의 '청동머리' 음반 커버

 

오페라 '청동머리'는 1816년 3월 3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당시 솔리바는 25세의 청년으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서 일약 라 스칼라의 지휘자로 있었다. 사실상 솔리바는 밀라노음악원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였으므로(작곡 및 피아노) 젊은 나이에 라 스칼라의 지휘자가 되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었다. 1815년에 라 스칼라 극장은 신예 오페라대본가를 발굴하기 위해 말하자면 신춘문예 스타일의 대본공모를 시행하였다. 여러 편의 오페라 대본들이 접수 되었다. 심사위원회는 최우수작으로 그때까지만 해도 무명인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 1788-1865)의 '청동머리'라는 대본을 선정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가만히 있던 솔리바에게 그 대본으로 오페라를 작곡하라고 요청했다. 25세의 젊은 지휘자인 솔리바는 작곡에도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즉시 작곡에 들어가 얼마 후에 '청동머리' 또는 '외딴 오두막집'(La capanna solitaria)를 완성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청동머리'는 마치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 듯한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대본을 쓴 펠리체 로마니

 

솔리바는 모차르트를 대단히 존경했다. 물론 평소에 만난 일도 없고 편지를 주고 받은 일도 없다. 다만, 솔리바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인 1791년에 태어났다는 인연이 있을 뿐이다. 솔리바는 라 스칼라의 지휘자로서 모차르트의 음악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당시 모차르트의 음악은 밀라노에서 상당한 유행이었다. 돌이켜보면 모차르트는 젊은 시절에 밀라노를 위해 몇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으나 어쩐 일인지 밀라노 사람들은 모차르트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따라서 모차르트의 오페라도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지 15년 쯤 지난 후에 밀라노 사람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너무 했다'는 자각심이 생겨 모차르트의 오페라에 대한 르네상스가 일어났다. 1807년에 공연된 '여자는 다 그래'는 밀라노에서의 모차르트 르네상스의 시작이었다. 이후 라 스칼라를 비롯한 밀라노의 극장들은 모차르트의 주요 오페라들을 계속 공연하였다. 1815년에는 '돈 조반니'와 '피가로의 결혼', 1816년에는 '마술피리'는 열광적인 환영을 받은 공연이었다. 1816년에 초연된 솔리바의 '청동머리'는 음악이 모차르트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모차르트 패션에 곁들여서 대환영을 받았다. 1816-17 시즌에 무려 47회의 공연을 기록했다. 소설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로 유명한 프랑스의 스탕달(Stendhal: Marie-Henri Beyle: 1783-1842)은 밀라노에서 솔리바의 '청동머리'를 보고 크게 감동하여 '저 젊은 솔리바는 비록 체구는 작지만 천재의 재능을 타고 났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에 힘입은 솔리바는 1817년에 그의 두번째 오페라인 '아르메니아의 베레니체'(Berenice d'Armenia)를 토리노에서 발표했고 이어 그의 세번째 오페라인 '아스투리아의 집시여인'(La zingara delle Asturie)를 라 스칼라의 무대에 올렸다. 두 작품 모두 별다른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1818년에 라 스칼라에서 인기만회를 위해 공연한 '줄리아와 세스토 폼페오'(Giulia e Sesto Pompeo)는 그런 실패도 찾아보기 힘들만큼 대실패였다. 아무튼 솔리바는 처음에 자기의 '청동머리'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끌자 이 참에 지휘는 그만 두고 작곡으로 방향을 돌려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밀라노에서 모차르트 르네상스가 갑자기 시들해졌기 때문에 모차르트 풍의 솔리바의 '청동머리'도 어느덧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던 것이다. 어찌하여 모차르트 르네상스가 날개를 접어야 했느냐 하면 그때 느닷없이 로시니 열풍이 몰려 왔기 때문이다. 로시니의 인기는 실로 대단하여서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전 유럽으로 번져나갔다. 그리하여 1819년 라 스칼라가 모차르트의 '티토의 자비'를 공연한 이래 모차르트라는 이름은 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 라 스칼라의 프로그램에서 찾아 볼수 없게 되었다. 솔리바는 작곡가로서 앞날이 보이지 않자 마음을 고쳐잡고 지휘와 제자교육에 열심을 다 하였다. 물론 종교음악, 관현악곡, 실내악곡, 피아노곡들을 간헐적으로 작곡하기는 했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솔리바에 대한 얘기르 좀 더 연장해 보면, 솔리바는 라 스칼라에서 5년 동안 지휘를 하다가 뜻한바 있어서 1821년 폴란드로 가서 바르샤바음악원의 성악과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리아 크랄레브스카라는 여학생과 결혼하였다.

 

솔리바는 바르샤바에서 프레데릭 쇼팽과 친하게 지냈다. 솔리바는 1830년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E 단조의 초연을 지휘하기도 했다. 그해에 바르샤바에서는 유명한 '11월 봉기'가 일어났다. 제정러시아의 압정에 항거하는 폴란드인들의 항거였다. 봉기는 이듬해인 1831년 제정러시아군의 무력개입으로 막을 내렸다. 솔리바는 그러한 와중에서 지내기가 어려워서 상트 페터스부르크로 가서 왕실성당의 지휘자 겸 제국성악학교장을 맡았다. 솔리바는 그렇게 약 10년을 제정러시아에서 지내다가 그의 아버지의 고향인 발 디 블레니오 지방의 티치네세 마을로 돌아와 지냈다. 그후 잠시동안 파리에 가서 살기도 했다. 그때 바르샤바에서 친하게 지내던 쇼팽을 다시 만날수 있었다. 조르즈 상드도 그 때에 만났다. 또한 이탈리아의 여류 독립운동가인 크리스티나 트리불치오 벨지오조소(Cristina Trivulzio Belgiojoso: 1808-1871)도 만나 친분을 다졌다. 솔리바는 그의 '여왕 만세'(Salve Regina)라는 곡을 크리스티나의 부군에게 헌정하였다. 솔리바는 1853년 향년 62세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 솔리바가 태어난 피에드몽트의 카스텔 몬페라토에서는 '솔리바음악연구소'(Istituto Musicale Soliva)가 주관하는 '카를로 에바시오 솔리바 피아노-실내악 경연대회'(Carlo Evasio Soliva Competition for Piano and Chamber Music)이 매년 열리고 있다.

 

솔리바가 펠리체 로마니의 대본으로 '청동머리'를 작곡한 때로부터 11년이 지난 1827년, 리스본에서 '청동머리'가 공연되었다. 다만, 이번에는 사베리오 메르카단테(Saverio Mercadante)가 작곡한 것이었다. 그후에 두 편의 '청동머리'가 각각 발표되었다. 하나는 1835년 로마에서 자코모 폰테마지(Giacomo Fontemaggi)에 의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1855년 베로나에서 빈센초 멜라(Vincenzo Mela)라는 사람이 작곡한 것이었다. 메르카단테의 '청동머리'는 그가 포르투갈에 가서 첫번째로 만든 오페라이다. 메르카단테의 '청동머리'는 리스본의 아마추어 성악가인 퀸텔라남작(Barone di Quintella)이 요청해서 작곡된 것이다. 남작은 그 자신이 메르카단테의 '청동머리'에서 바리톤 부포인 톨로의 역할을 맡았다.

 

솔리바에 대한 이야기가 공연히 길어졌음을 송구하게 생각하며 이에 '청동머리'의 스토리를 소개함으로서 송구한 감을 대신코자 한다. '청동머리'는 2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등장인물들을 소개한다. 이돌포(Adolfo: Bar)는 프레스부르크(현재의 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의 군주(대공)이다. 오래전에 엘리자라는 여인을 사랑하였으나 엘리사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괴로움 중에 있었으나 군주로서 부인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폴란드의 플로레스카(Floresca: S) 백작부인과 결혼키로 한 사람이다. 그런데 플로레스카는 왕궁의 근위대 장교인 프란체스코(Francesco: T)와 사랑하는 사이여서 얼마전에 비밀결혼을 올린바 있다. 에르마노(Ermanno: Bar)는 아돌포 대공의 충실한 비서로서 플로레스카가 프란체스코와 비밀결혼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주군인 아돌포에게 플로레스카와 결혼하지 말라고 권고하였지만 아돌포는 플로레스카를 사랑하여서 결혼을 굽히지 않는다. 리카르도(Riccardo: T)는 아돌포 궁전의 경비대장이며 톨로(Tollo: B)는 궁전의 시종이다. 안나(Anna: S)는 하일스브룬 숲속마을에 사는 여인으로 톨로의 숙모가 된다. 안나는 사실상 프란체스코를 숲속의 오두막집에서 어릴 때부터 길러준 사람이다. 그래서 이 오페라의 또 다른 타이틀은 '숲속의 오두막집'이다.

 

1막. 아돌포 대공의 궁전이다. 시종인 톨로가 다른 시종들을 재촉하여서 아돌포 대공과 플로레스카 백작부인의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다. 잠시후 아돌포 대공이 비서인 에르마노와 함께 등장한다. 에르마노는 플로레스카가 이미 젊은 장교인 프란체스코(다른 버전에는 페데리코라고 되어 있음)와 비밀결혼한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아돌포에게 세상을 떠난 엘리자를 생각해서라도 결혼은 하지 말라고 얘기하였지만 아돌포는 더 이상 아픈 과거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플로레스카와의 결혼을 예정대로 치룰 것임을 선포한다. 아돌포가 나가자 에르마노는 경비대장인 리카르도에게 어떻게 하면 이번 결혼을 막을수 있는지에 대하여 의논하지만 별다른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플로레스카가 등장하여 자기의 불안한 심정을 표현하는 아리아를 부른다. 에르마노가 플로레스카에게 무슨 방법을 강구할 때까지 결혼했다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으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결혼식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신부를 환영하는 합창을 부른다. 잠시후 아르마노는 플로레스카에게 프란체스코가 플로레스카의 결혼소식을 듣고 심한 충격을 받아 경비대를 무단이탈하여 어디론가 사라졌으며 왕궁의 경비대가 그를 탈영병으로 간주하여 추적하고 있다는 소식을 은밀히 전한다. 플로레스카의 심정은 찢어질 듯 아프다. 한편, 프란체스코는 플로레스카를 만나기 위해 왕궁에 숨어 들어서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방에 숨어 있다. 이 방을 열려면 문 밖에 세워둔 갑옷의 머리 속에 숨겨둔 열쇠로 열어야 한다. 에르마노가 청동머리에 숨겨둔 열쇠를 꺼내 비밀방을 연다. 프란체스코가 나타난다.

 

프란체스코는 플로레스카와 함께 멀리 도망갈 생각이다. 우선은 자기가 어릴 때 자란 숲속의 오두막집으로 갔다가 나중에 다른 나라로 떠날 생각이다. 프란체스코는 에르마노와 잠시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얘기를 나눈후 다시 비밀의 방으로 들어간다. 잠시후 시종인 톨로가 나타나서 에르마노에게 아돌포 대공이 급히 찾는다고 전한다. 에르마노는 비밀의 방의 열쇠를 청동머리에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문에 걸어둔채 자리를 뜬다. 톨로가 무심코 문에 걸려 있는 열쇠를 돌려본다. 문이 열리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프란체스코가 나타난다. 톨로는 갑옷을 입은 동상이 살아서 나온 줄로 알고 놀란다. 톨로는 동상처럼 보이는 프란체스코에게 복종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입고 있던 시종의 코트를 그에게 입혀준다. 아돌포와 플로레스카의 결혼식이 진행된다. 모두들 두 사람의 행복을 기원하는 아름다운 합창을 부른다. 그때 경비대의 장교인 리카르도가 뛰어 들어와서 프란체스코가 탈영했다는 보고를 한다. 아돌포가 몹시 분노한다. 에르마노가 그 런 아돌포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때 한쪽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비밀의 방에서 들리는 소리이다. 비밀의 방에 대하여 알고 있는 아돌포는 에르마노에게 어서 저 방을 열어 보라고 명령한다. 에르마노는 복종할수 밖에 없다. 뜻밖에도 톨로가 나타난다. 톨로는 어떤 갑옷을 입은 동상이 자기를 이 방에 가두어 놓았다고 설명한다. 아돌포는 그 동상이라는 것이 탈영한 프란체스코인줄을 알고 그를 도운 에르마노를 심하게 나무란다. 플로레스카가 프란체스코를 위해 변명을 하고 두둔하자 아돌포는 플로레스카와 프란체스코가 아무래도 이상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아돌포는 프란체스코를 반역자로 낙인을 찍어 체포하는 즉시 처형할 것임을 선언한다.

 

2막. 무대는 다뉴브 인근의 시골마을이다. 프란체스코에 대한 현상금 포스터가 붙어 있다. 톨로와 다른 시종들이 무기를 들고 프란체스코를 찾아 다니다가 안나가 살고 있는 숲 속의 오두막집에 도착한다. 안나는 톨로의 숙모이다. 톨로는 안나에게 자기가 경험했던 갑옷 동상에 대하여 코믹하게 얘기해 준다. 폭풍이 불어온다. 톨로와 안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오두막집 안으로 피신한다. 잠시후 프란체스코가 나타난다. 그는 숲 속의 이 오두막집이 자기가 어릴 때 살았던 집이라는 것을 알아본다. 프란체스코는 오두막집 안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자 들어가지 못하고 몸을 숨긴다. 안나는 톨로에게 도망자가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니 오히려 도망자를 도와주라고 설득한다. 프란체스코가 그런 얘기를 듣자 안심하고 나타난다. 하지만 당황한 톨로는 오히려 사람들을 불러 도움을 청한다. 프란체스코가 잡힌다.

 

플로레스카와 그의 시녀들도 프란체스코를 찾아 나선다. 남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모두 남자 병사들로 변장을 했다. 남자로 변장한 플로레스카가 톨로에게 잡혀 있는 프란체스코를 발견한다. 플로레스카는 톨로에게 보상금을 약속하고 도망자를 자기에게 인계하라고 말한다. 그때 에르마노가 경비대의 리카르도와 함께 나타난다. 플로레스카가 프란체스코를 인계받아 구출하려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경비대의 리카르도는 수상한 플로레스카를 체포한다. 플로레스카는 병사로 변장을 했기 때문에 아직 아무도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아돌포 대공은 수색작전을 총괄 지휘하여 이 마을까지 왔다. 톨로가 아돌포 대공에게 프란체스코를 체포했다고 보고한다. 아돌포 대공은 당장 프란체스코를 데려오라고 명령한다. 아돌포 대공은 함께 체포되어 온 병사가 플로레스카인 것을 알고 놀란다. 이제 플로레스카는 아무것도 숨길 것이 없다. 플로레스카는 아돌포 대공에게 실은 프란체스코가 자기와 비밀 결혼한 남편이라고 밝힌다. 아돌포 대공은 자기의 부하인 프란체스코가 플로레스코와 비밀 결혼을 했다는 얘기를 듣자 배신감에 충격을 받아 프란체스코를 당장 사형에 처하겠다고 선언한다.

 

리카르도가 프란체스코를 데려온다. 프란체스코는 한쪽에 있는 플로레스카를 보자 반가움에 달려가서 포옹을 한다. 그런 모습을 본 아돌포 대공은 경비대에게 반역자인 프란체스코를 즉시 총살할 것을 명령한다. 톨로에게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얘기를 들은 안나는 당장 아돌포 대공을 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안나는 고아인 프란체스코를 어릴 때부터 데려다 길렀기 때문이다. 안나의 집에서 아돌포 대공이 참석한 가운데 군법재판이 열린다. 리카르도는 모든 내막을 알고 있는 에르마노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데 대하여 걱정을 한다. 군법재판은 최종적으로 프란체스코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플로레스카와 안나, 톨로까지 아돌포에게 선처를 바라지만 아돌포는 요지부동이다. 이때 에르마노가 나타나서 아돌포에게 프란체스코가 어릴 때 잃어버린 아돌포의 아들이라고 밝힌다. 아돌포의 첫 연인인 엘리자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때 밖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아돌포는 프란체스코에 대한 총살형이 이미 집행된 것으로 알고 크게 낙심한다. 모두 절망 중에 있다. 플로레스카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안나와 톨로가 쓰러진 플로레스카를 간호한다. 잠시후 깨어난 플로레스카는 프란체스코를 잃은 슬픔으로 탄식한다. 그때 마을 사람들과 병사들이 프란체스코가 아직 살아 있다고 소리치며 기쁨의 합창을 부른다. 리카르도는 에르마노가 나타나지 않자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여 총살형을 집행하는 병사들에게 총알을 장전하지 말고 공포를 쏘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아돌포 공자는 너무나 기뻐서 모두에게 큰 잔치를 베풀라고 지시한다. 모두들 기뻐하는 가운데 잔치가 성대하게 열린다. 아돌포는 잃어버린 아들을 찾게 되어 나무 기쁘다. 아돌포는 플로레스카와 프란체스코의 정식결혼을 승낙한다. 해피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