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의 장르

베리스모(Verismo) 오페라

정준극 2012. 12. 7. 18:57

베리스모(Verismo) 오페라 더 알기

 

대표적인 베리스모 오페라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한 무대

 

오페라 애호가로서 베리스모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면 곤란하다. 베리스모는 오페라의 연혁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장르인 사실주의(리얼리즘) 스타일을 말한다. 과거의 오페라들은 신화나 영웅 또는 왕이나 귀족들에 대한 내용의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에게 있어서 신화나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는 먼 거리에 있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었다. 베리스모는 오늘을 사는 일반 서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실주의 사조를 말한다. 물론 베리스모라는 용어는 오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의 새로운 문학사조에 대한 용어였다. 그러다가 오페라에서 사실주의가 두드리지게 되자 마치 오페라만의 용어로 인식되었다. 베리스모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사족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발음을 잘 못해서 베르시모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그건 잘못된 것이다. 발음이 좀 어렵더라도 베리스모라고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베리스모는 이탈리아어의 베로(Vero), 즉 '진실'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실주의'(리얼리즘)를 말한다. 처음에는 대략 1875년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솟아난 이탈리아의 문학운동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탈리아의 사실주의 작가인 조반니 베르가(Giovanni Verga: 1840-1922)와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인 루이지 카푸아나(Luigi Capuana: 1839-1915)가 주도한 새로운 사조의 운동이었다. 거의 동년배인 두 사람이 모두 시실리의 카타니아 출신인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카푸아나가 발표한 '지아친타'(Giacinta)라는 소설은 마치 이탈리아 베리스모의 선언문처럼 간주되고 있다. 긍정적인 이상에 기본을 둔 프랑스 자연주의(Naturalism)와는 달리 베르가와 카푸아나는 베리스모의 과학적인 성격과 사회적인 유용성에 대한 주장을 거부했다. 이 어려운 표현이 무슨 뜻인가 하니 고상한 이상주의가 밥 먹여주는 것은 아니며 힘든 생활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한 조각의 빵이라는 것이다. 음악학자들은 문학에서의 베리스모 운동을 후기 낭만주의 오페라에도 적용하여 피에트로 마스카니, 루제로 레온카발로, 움베르토 조르다노,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들을 베리스모의 장르에 포함하였다. 이들 작곡가들은 19세기말 에밀 졸라 또는 헨리크 입센과 같은 자연주의의 영향을 오페라에 도입코자 노력하였다.

 

'팔리아치'의 무대. 오페라 중에 연극이 공연된다.

 

음악에 있어서 베리스모라는 용어는 구체적으로 1890년에 공연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로부터 시작하여 1900년대 초에 피크를 이루었고 이어 1920년대까지 걸친 이탈리아의 오페라들을 폭넓게 일컫는 말이 되었다. 이 기간의 오페라들은 사실주의적이며 심지어는 그때까지의 고상한 스타일에 반하여 저속하거나 폭력적인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다른 전통적인 오페라들과 구분이 되었다. 이 시기의 오페라들은 대체적으로 역사물이나 신화를 주제로 한 내용을 배격하였다. 베리스모 오페라는 일상생활에서 테마를 가져 왔으며 특히 그 시대를 사는 서민층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다. 베리스모 오페라의 또 하나 특징은 거의 모두 음악이 넘버링에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의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연속되어 있다. 물론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팔리아치, 토스카 등의 아리아나 듀엣, 앙상블은 콘서트 연주곡목으로서 자주 등장할 만큼 독립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투란도트는 아예 넘버링으로 되어 있다. 베리스모 오페라의 시작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라고 했지만 실은 비제의 '카르멘'도 당연히 베리스모 성격의 작품이다. '카르멘'에는 왕이나 백작부인보다는 투우사, 군인들, 공장 여공들, 창녀, 짚시 밀수꾼 등이 등장하며 폭력과 열정이 펼쳐있다. 흥미로운 것은 '카르멘'이 '카발...'보다 5년이나 먼저 선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카르멘'은 베리스모 작품이라고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카르멘에서의 카르멘(아그네스 발차)과 돈 호세(호세 카레라스). 어찌보면 카르멘은 베리스모 오페라의 선구자이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등장하며 폭력과 열정이 펼쳐 있는 작품이다.

 

20세기 초반 오스트리아-독일의 오페라 중에서는 이탈리아의 베리스모와 유사한 성격의 작품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Der Rosenkavalier: 1911)이다. 사회고발적인 성격이 내포되어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장미의 기사'를 베리스모의 우산 아래에 두지는 않는다. 세팅이 현대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며 엘리트적이고 지적(知的)으로 세련된 분위기가 지배하는 오페라이기 때문이다. '장미의 기사'는 멜로드라마에 속한다. 베리스모 스코어에 표시되어 있는 각각의 음표는 배경, 행동, 또는 주인공의 감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베리스모 작곡가들은 아마도 바그너의 방식을 참고로 했는지 모른다. 실제로 베리스모에 대한 바그너의 영향은 분명하다. 바그너의 '발퀴레' 1막과 '지그프리트' 3막의 음악은 훗날 나타나는 베리스모의 여러 음악에 바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의 사용은 바그너와 베리스모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이다. 바그너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반드시 성악가의 노래와 감정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지그프리트' 2막에서 지그프리트가 자기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에는 과거에 나왔던 라이트모티프가 연주되어서 이미 만난 일이 있는 부모에 대한 이미지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베리스모에서는 오케스크라가 다만 노래를 마치 메아리처럼 뒷받침해주고 멜로디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역할을 한다. 베리스모에서는 노래와 연기, 분위기가 중요한 것이며 오케스트라가 드라마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별로 없다.

 

바그너의 '지그프리트'의 한 장면. 지그프리트의 음악은 베리스모 오페라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베리스모의 대표적인 작곡가로서 푸치니를 내세우지만 이탈리아의 일부 음악학자들은 푸치니를 베리스모 작곡가로서 간주하지 않고 있음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가하면 어떤 평론가들은 푸치니가 베리스모 운동에 부분적으로 참여했다고 보고 있다. 오늘날에는 푸치니의 일부 작품이 분명히 베리스모에 속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토스카'이다. 그리고 베리스모라고 해서 반드시 피를 흘리는 폭력적인 요소가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 푸치니의 '라 보엠'도 베리스모에 속할수 있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비제의 '카르멘'을 베리스모의 전초라고 말할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베리스모가 정식으로 나온 것은 '카르멘'으로부터 10여년이 지나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나온 때부터이다. 베리스모의 유명 작곡가들로서는 푸치니를 열외로 본다고 해도 피에트로 마스카니, 루제로 레온카발로, 움베르토 조르다노, 프란체스코 첼리아 등이 있다. 이밖에도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완성한 프랑코 알파노, 알프레도 카탈라니(라 왈리), 귀스타브 샤펜티어(루이스), 외진 달베르(티프란트), 이그나츠 바그할터(악막의 길, 청년), 알베르토 프란케티, 프랑코 레오니, 쥘르 마스네(라 나바레), 리치니오 레피체, 에르마노 볼프-페라리(성모의 보석), 리카르도 찬도나이 등이 있다. 오늘날 음악학자들은 이들을 Giovane scuola(조바네 스쿠올라), 즉 '젊은 학파'(Young School)라고 부른다.

 

마스카니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이외에도 여러 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전원풍의 코미디이 '친구 프리츠'(L'amico Fritz), 일본을 배경으로 한 상징주의 작품인 '이리스'(Iris), 중세의 로맨스를 그린 '이사보'(Isabeau)와 '파리시나'(Parisina) 등이 있다. 이런 작품들은 베리스모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현대를 사는 서민들의 애환과 사랑과 간혹은 폭력을 다룬 내용들이 아니다. 하지만 베리스모의 시대에 나온 오페라들로서 음악적인 스타일이 베리스모풍이므로 비록 스토리는 거리가 있지만 베리스모 오페라로 간주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이탈리아에서 베리스모가 유행하자 오페라 성악가들도 베리스모 토 스타일로 노래부르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과거에는 그저 아름답게 소리를 내며 테크닉을 위주로 한 벨 칸창법이 무대를 점령하였으나 베리스모로부터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말하자면 서로 다툴 때에는 큰 소리로 외치며 감정이 격할 때에는 그대로 격한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감정을 강조하기 위해 비브라토가 일반적이기도 했다. 다만, 그런 창법은 극장에서는 박수를 받을지 모르지만 대체적으로 성악가들의 수명을 단축시키는데 일조를 하였다. 아무튼

 

마스카니의 '친구 프리츠'의 한 장면. 이 오페라는 전원풍의 코미디로서 베리스모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베리스모 시기에 작곡된 것으로 베리스모 스타일의 음악이므로 베리스모 작품으로 간주하고 있다.

 

대체로 1890년부터 1930년까지의 베리스모 오페라 성악가들은 무대에서 열정을 다하여 노래를 불렀다. 대표적인 인물들로서는 소프라노 유제니아 퍼타일(Eugenia Pertile), 로지나 스토르키오(Rosina Storchio), 아델라이데 사라체니(Adelaide Saraceni) 등이 있고 테너로는 아우렐리아노 퍼타일(Aureliano Pertile), 세바르 베짜니(Cesar Vezzani), 아마데오 바씨(Amadeo Bassi) 등이 있으며 바리톤으로서는 마리오 사마르코(Mario Sammarco), 유제니오 지랄도니(Eugenio Giraldoni) 등이 있다. 20세기 초의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엔리코 카루스, 로사 폰셀레, 티타 루포 등은 베리스모 노래를 부를 때에 종전의 벨칸토 창법과 현대적인 직설적이며 성숙한 창법을 기술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하여 불렀다. 베리스모라는 용어는 문학작품에서 시작하여 오페라에 정착했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베리스모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미술분야이다. 이탈리아에서 사실주의적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젊은 화가들은 마키아이올리(I Macchiaioli)라고 불렀다. 이들은 훗날 프랑스 인상주의를 발전시킨 선구자들이다.  

 

테너 엔리코 카루스. 그는 베리스모 노래를 부를 때에 종전의 벨칸토와 베리스모의 감성적인 스타일을 융합한 스타일로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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