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10. 주세페 베르디의 '나부코'(Nabucco)

정준극 2012. 12. 19. 08:31

나부코(Nabucco) - Nabucodonosor - Nebuchadnezzar(느브갓네살)

베르디의 첫 성공작

이탈리아 제2의 국가가 된 Va, pensiero(날아라, 상념이여)

 

스가랴와 페네나

 

1900년 7월 29일 이탈리아의 움베르트 왕이 저격을 당하여 숨을 거두었다. 이 사건은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적극적이었던 베르디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는 것이었다. 이후로 베르디의 건강은 점점 쇠약해졌다. 베르디는 밀라노의 그랜드 호텔에 머무는 중인 1901년 1월 21일 심장마비의 증세를 보였다. 이제 베르디는 너무 쇠약해져서 거동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로부터 엿새 후인 1월 27일 오페라의 황제는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 엿새 동안 밀라노의 전시민은 물론, 세계가 베르디의 병세에 대하여 걱정을 아끼지 않았다. 인류의 역사에서 한 사람의 병세를 전세계가 1주일 동안이나 걱정을 아끼지 않았던 일도 아마 베르디의 경우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장례식에서는 토스카니니가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오케스트라는 사실상 이탈리아의 전역에서 스스로 올라온 연주자들로 구성되었다. 주로 라 스칼라 합창단원으로 구성된 820여명의 합창단은 베르디의 시신이 그랜드 호텔에서 카사 디 리포사(Casa Di Riposa) 묘지로 떠날  때 나부코에서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인 Va, pensiero를 불렀다. '날아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모두들 목이 메어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연도에 운집한 시민들도 Va, pensiero를 불렀다. 그 노래는 베르디의 시신이 묘지에 도달할 때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들의 노래는 멀리 베르디가 어린 시절을 보낸 르 론꼴레까지 울려 퍼졌을 것이다.

 

절망에 빠진 히브리 포로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는 스가랴

 

오페라 '나부코'는 여러 면에서 베르디에게 의미있는 작품이다. 우선 '나부코'는 베르디의 첫 성공작이다. 당시에 베르디의 삶은 절망과 불행으로 점철 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두 자녀가 어릴 때에 모두 세상을 떠났고 이어 아내도 세상을 떠났다.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작곡가로서도 실패였다. 베르디가 26세 때에 발표한 첫 오페라인 Oberto(오베르토)는 관심조차 끌지 못했다. 이어 그 다음해에 발표한 Un giorno di regno(왕궁의 하루)도 실패였다. 실망한 베르디는 아예 작곡가로서의 길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때 라 스칼라의 매니저이며 대본가인 바르톨로메오 메렐리(Bartolomeo Merelli: 1794-1879)가 젊은 베르디를 격려하며 테미스토클레 솔레라가 쓴 '나부코'의 대본을 주고 '제발 작곡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면서 오페라로 만들 것을 당부하였다. 메렐리는 처음에 '나부코'의 대본을 독일의 작곡가로서 이탈리아에 와서 지내고 있던 오토 니콜라이(Otto Nicolai)에 주어서 오페라로 만들어 보라고 당부했었다. 오토 니콜라이는 나중에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Le allegre comari di Windsor)를 작곡한 사람이다. 니콜라이는 메렐리의 제안을 거절했다.

 

메릴리로부터 솔레라의 대본을 받은 베르디는 우선 읽어보고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작곡하기가 싫다고 하면서 극장을 찾아가 메렐리에게 대본을 돌려주었다. 대본을 돌려 받은 메렐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대본을 베르디의 주머니에 쑤셔 넣어주며 베르디를 문밖으로 내보냈다. 베르디는 어쩔수 없이 대본을 다시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1841년 3월이었다. 그로부터 다섯 달이 지났다. 베르디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나부코'의 피날레 부분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아비가일이 죽는 마지막 장면의 음악이었다. 그리하여 1841년 8월에 '나부코'는 완성되었다. 초연은 이듬해인 1842년 3월 9일 라 스칼라에서였다. 아비가일 역은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였고 타이틀 롤인 나부코는 바리톤 조르지오 론코니(Giorgio Ronconi)였으며 베이스 프로스퍼 데르비스(Prosper Derivis)였다. '나부코'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나부코'는 라 스칼라에서 8회의 공연을 가졌다. 1841/42년도 시즌이 끝나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공연을 할수 없었다. 그러나 그해 여름에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자 그해 말까지 무려 57회의 연속 공연을 가지는 놀랄만한 인기를 끌었다. 그후 이탈리아의 다른 극장들과 유럽의 여러 극장들은 앞장서서 '나부코'를 무대에 올렸다. 베르디는 '나부코'의 성공으로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얻었고 그로부터 '오페라의 황제'라는 칭호를 들을만큼 위대한 작곡가가 되었다.

 

나부코의 무대. 바벨론의 왕이 된 아비가일이 부왕인 나부코를 멸시하고 있다.

 

베르디는 '나부코'에 대하여 "이 오페라로부터 나의 예술적 경력이 실제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 나는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여러 난관에 부딪쳐 있었지만 그런 중에 '나부코'가 태어나고 성공을 거둔 것은 행운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도니체티와 조반니 파치니(Giovanni Pacini)의 오페라가 이탈리아의 오페라 극장들을 누비고 있었다. 더구나 '나부코'가 공연될 때에는 밀라노의 다른 극장에서 파치니의 오페라가 인기를 끌며 공연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일반대중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부코'에 대하여 열광하자 평론가들도 결국 로시니나 파치니보다는 '나부코'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나부코'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오토 니콜라이의 비판이었다. 잘 아는대로 니콜라이는 라 스칼라의 메렐리가 처음에 '나부코'의 대본을 주고 오페라로 만들어 줄것을 간청 받았지만 거절했던 사람이었다. 프러시아 출신의 니콜라이는 당시에 밀라노 인근에 살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나부코'의 작곡을 거절하고 나서 얼마후에 라 스칼라와의 계약에 따라 '추방자'(Il Proscritto)라는 오페라를 만들어서 1841년 3월에 라 스칼라에서 초연을 가졌다. 초연은 대재앙이었다. 그로 인하여 니콜라이는 라 스칼라와의 계약을 취소하고 밀라노를 떠날수 밖에 없었다. 니콜라이는 비엔나로 갔다. 니콜라이는 이듬해에(1842) 비엔나에서 베르디가 작곡한 '나부코'의 대성공 소식을 들었다.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데, 니콜라이는 자기가 거절했던 나부코'를 베르디라는 청년이 작곡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는데 대하여 무조건 화를 내며 '베르디라는 사람의 오페라는 보나마나 바보스러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그는 베르디의 '나부코'를 잠시 들어본 후에 '베르디의 음악은 음악도 아닌 형편 없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그는 아직 전문가도 아니다. 그는 분명히 어리석은 당나귀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불쌍하다. 그리고 비열하다.'고 덧붙였다. 니콜라이는 '나부코'가 '폭력과 저주와 유혈이 낭자한 살인으로 얼룩진 작품'이라고 비난했다. 니콜라이의 주장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일 뿐이다. 아무튼 오늘날 오토 니콜라이라는 이름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베르디는 '오페라의 황제'로서 만인의 존경을 받고 있으니 그런 그가 베르디의 '나부코'에 대하여 이러니 저러니 얘기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베르디를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로 이끌어준 라 스칼라의 매니저인 바르톨로메오 메렐리. 그가 아니었다면 베르디의 나부코는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메렐리는 작곡가이며 대본가였다.

 

'나부코'는 베르디의 다른 오페라들, 예컨대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등에 비하여 자주 공연되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1960/61년 시즌에 처음 무대에 올린 이래 오늘날까지 거의 연례행사로서 '나부코'를 공연하고 있다. 그리고 근년에 메트로폴리탄에서 단골로 공연되는 베르디의 오페라로서는 '에르나이'와 '루이자 밀러', 그리고 '나부코'가 있을 뿐이다. '나부코'는 또한 베로디야외극장(Arena di Verona)에서 정규적으로 공연되는 작품이다. 2002, 2003, 2005, 2007, 2008, 2011년에 공연되었다. 볼쇼이 극장은 2006년 이래 매년 '나부코'를 고정 프로그램으로서 공연하고 있다. 베로나야외극장에서 1981년과 2001년에 공연된 '나부코'는 DVD로 나와 있어서 그 웅장한 규모를 재생하여 볼수 있다. 다른 극장에서 공연된 '나부코'로서 DVD로 나온 것으로는 라 스칼라(1987), 오페라 오스트레일리아(1996), 비엔나 슈타츠오퍼(2001), 메트로폴리탄 오페라(2002), 제노아의 테아트로 카를로 펠리체(2004), 피아첸차시립극장(Teatro Municipale di Piacenza: 2004), 오스트리아의 장크트 마르가레텐 오페라 페스티발(2007)이 있다. 세계의 여러 극장에서 공연된 '나부코' 중에서 특히 기억되는 것은 2010년 이스라엘 오페라 설립 25주년 기념으로 마사다의 야외무대에서 공연된 것이다.

 

베로나 야외극장에서의 '나부코' 공연. 현대적 연출이다.

 

'나부코'는 베르디의 생애에 커다란 변화를 준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나부코'는 이탈리아의 역사에도 깊이 연관이 되어 있다. '나부코'에 나오는 대표적인 합창곡인 Va, pensiero 는 이탈리아의 해방과 통일을 이끄는 국민적인 노래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제2의 이탈리아 국가로 간주되고 있을 만큼 유명한 곡이 되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오늘날 처럼 하나의 국가로서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으며 여러 강대국들이 나누어서 통치하고 있었다. 밀라노가 포함되어 있는 이탈리아의 북부 지역은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이탈리아 국민들은 이탈리아의 해방과 통일을 염원하였으며 그러한 때에 '나부코'가 나왔던 것이다. '나부코'는 바벨론 제국의 억압을 받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들이 자유와 해방을 갈구하는 내용이어서 이탈리아의 실정과 흡사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연유 때문인지 '나부코'에 나오는 Va, pensiero 는 베르디의 장례식에서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고 부르는 노래였다.

 

이스라엘 마사다에서의 공연. 피날레

                       

전 4막의 '나부코'는 베르디가 29세 때인 1842년 3월 9일 라 스칼라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무명의 젊은 작곡가의 오페라를 전통있는 라 스칼라가 과감히 무대에 올린 것도 뜻 깊은 일이었다. '나부코'의 대본은 이탈리아의 작곡가 겸 대본가인 테미스토클레 솔레라(Temistocle Solera: 1815-1878)이 썼다. 솔레라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내용과 1836년에 오귀스트 아니스 부르조아(Auguste Anicet-Bourgeois)와 프랑시스 코르뉘(Francis Cornue)가 쓴 희곡을 바탕으로하여 '나부코'의 대본을 완성했다. 다시 말하지만 베르디는 오페라 '나부코'로서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완전하게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오페라의 제목을 간단히 '나부코'라고 부르지만 1842년, 라 스칼라에서 초연하였을 때에는 타이틀이 '나부코도노소르'(Nabucodonosor)였다. 나부코는 나부코도노소르라는 이름을 축소하여 부른 이름이다. 나부코도노소르는 바빌로니아의 왕으로서 영어식으로는 느브갓네살(Nebucahdnezzar)라고 표현한다. 그러다가 라 스칼라에서의 초연으로부터 2년이 지난 1844년 코르푸섬의 산 자코모 극장(Teatro San Giacomo)에서 공연할 때부터 '나부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나부코도노소르'라는 타이틀을 '나부코'라고 간단하게 부르기 시작한 것은 시기는 같은 시기이지만 루카(Lucca)의 질리오극장(Teatro Giglio)에서의 공연부터라고 주장했다. 투스카니 지방의 루카는 푸치니를 비롯해서 케루비니 등 여러 음악가를 배출한 고장이다.

 

나부코가 초연된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

                           

'나부코'의 베스트 넘버인 Va, pensiero(날아라, 상념이여)가 유명해 진 것은 라 스칼라에서의 초연때부터였다. 1842년 3월 초순, 라 스칼라에서 '나부코도노소르'(현재의 '나부코')의 최종 리허설이 있었다. 무대에서는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고 극장의 다른 종사자들은 무대장치를 만들고 극장 안을 정리하느라고 정신들이 없었다. 그때 Va, pesnsiero 가 천천히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될 때 극장 안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일손을 놓고 조용한 가운데 이 합창곡의 멜로디에 끌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약 4분에 걸친 합창이 끝나자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박수를 보내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고 이튿날 역사적인 초연이 있었고 그 다음날 Va, pensiero 는 이미 밀라노의 거리에서 사람들이 흥얼거리는 노래가 되었다. 그만큼 모두의 마음을 끌어 당기는 노래였다. 특히 당시 이탈리아의 통일운동(Risorgimento)의 분위기가 어울려서 대단한 감동을 준 노래였다. Va, pensiero 는 어찌나 사랑을 받았던지 오늘날까지도 '나부코'가 공연될 때에는 다른 노래는 몰라도 이 합창곡만은 반드시 앙코르를 부르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되어 있다. 그런데 사족이지만, 일부 음악학자들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앙코르를 외쳤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Va, pensiero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후에 나오는 Immeso Jehova(전능하신 여호와)에 대하여 앙코르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히브리 노예들이 그의 백성들을 구원한 여호와께 감사를 드리는 노래이다. 이런 주장이 나오자 이탈리아 통일운동, 즉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 운동의 중심에 있는 베르디의 위상이 격하되지나 않았을까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베르디의 장례식에서 모두들 Va, pensiero를 불렀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우에 불과한 일이 아닐수 없다.

 

바빌론의 강가에서 부르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날아라, 나의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의 장면

 

'나부코'의 프리마 돈나인 아비가일(Abigaille)은 소프라노로서 대단히 감당하기 어려운 역할이라는 것이 정평이다. 아비가일의 역을 맡았던 소프라노들은 너무 힘든 역할을 맡았던 관계로 목소리가 손상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초연에서 아비가일을 맡았던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Giuseppina Strepponi)가 그랬다. 주세피나 스트레포니는 나중에 베르디의 두번째 부인이 된 사람이다. 근자에 아비가일을 맡았던 엘레나 술리오티스(Elena Souliotis)와 아니타 체르케티(Anita Cerquetti)도 고음을 너무 자주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음성에 무리가 와서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힘든 역할을 맡은 보상은 컸다. 뜨거운 박수갈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많은 소프라노들이 아비가일에 도전하고 있다. 실로 아비가일의 등장은 어느 오페라에서도 볼수 없는 드라마틱한 것이다. 아름다운 아리아가 있고 놀랄만큼 힘있고 격정적인 카발레타가 있다. 그런가하면 나부코와의 듀엣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의 장면! '나부코'의 전체를 압도하는 장면이다. 혹자는 아비가일의 죽음의 장면을 '전체 무대를 훔쳐 갈만한 장면'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아비가일의 레시타티브마저 비르투오적인 효과가 있고 에너지에 넘쳐 있다. 어떤 파트의 레시타티브는 무려 두 옥타브를 뛰어 넘어 하이 C를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마리아 칼라스는 아비가일을 단 세번만 맡았다. 그중에서 1949년의 공연만이 녹음으로 남아 있다. 이 공연의 녹음을 들어보면 Va, pensiero가 나올 때에는 관중들이 너무 소리를 쳐댔기 때문에 소란하였으나 앙코르 때에는 모두가 쥐죽은 듯이 조용하였고 앙코르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편, 레온타인 프라이스(Leontyne Price)와 조앤 서덜랜드(Joan Sutherland)는 아비가일을 맡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최근에 아비가일을 훌륭하게 소화하여 박수를 받은 소프라노로서는 크리스티나 도이테콤(Cristina Deutekom), 마리사 갈바니(Marisa Galvany), 게나 디미트로바(Ghena Dimitrova), 돈야 베이초비크(Dunja Vejzovic), 힐다 홀츨(Hilda Holzl), 야드란카 요바노비치(Jadranka Jovanovic) 등이다.

 

아비가일 역을 맡은 불가리아 출신의 소프라노 게나 디미트로바(1941-2005)

 

나부코(B)의 역할은 감정의 모든 표현을 다 해야하는 힘든 것이다. 오만한 호전성에서부터 아버지로서의 애틋한 사랑을 표현해야 하며 광란에 넘쳐 있는 모습에서부터 히브리의 여호와에 대한 겸손한 믿음을 표현해야 한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나부코에게 요구되는 이같은 폭넓은 연기력은 베이스라면 누구나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오페라의 역할이다. 스가랴(Zachary: Zaccaria: B)의 역할은 마치 '시실린의 만종'(I Vespri Siciliani)에서 프로치다(Procida)와 같은 것이다. 음악에서도 그렇고 연기에서도 그렇다. 스가랴는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굳세고도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에게 주어진 음악은 종교적인 면을 강조하면서도 백성들을 간곡하게 충고하는 것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단순하면서도 광포한 행동과 신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이 혼합된 모습이다. 어찌보면 스가랴의 모습은 나중에 작곡된 '돈 카를로스'의 종교재판관과 같은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스가랴가 나부코의 딸인 페네나를 죽이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나부코'의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타이틀 롤인 나부코(느브갓네살: Bar)은 바벨론의 왕이다. 아비가일(S)는 나부코 왕의 큰 딸로 나오며 나부코를 정신병자로 몰아서 왕좌에서 쫓아내고 자기가 바빌론의 왕이 된다. 페네나(Fenena: MS)는 나부코 왕의 딸로서 이스라엘(히브리)인들에게 포로로 잡혀 있다. 이스마엘(Ismaele: T)은 예루살렘 왕의 조카로서 페네나를 사랑하고 있다. 페네나는 콤프리마리오(Comprimario)의 역할이다. 주역은 주역이지만 오히려 프리마 돈나인 소프라노를 돕는 역할이다. [콤프리마리오라는 말은 con primario에서 비롯한 것으로 '주역과 함께'라는 뜻이다.] 스가랴(Zaccaria: B)는 선지자이며 유태인의 대제사장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지자 스가랴(Zechariah)와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다. 스가랴라는 단어는 '그 이름을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라는 뜻이다. 안나(Anna: S)는 스가랴의 여동생이다. 아드발로(Adballo: T)는 바벨론의 군인이다. 이밖에 바알신전의 대제사장(B), 그리고 군중들과 병사들이 등장한다. '나부코'의 시기는 주전 587년이며 무대는 예루살렘과 바벨론(바빌로니아)이다. 전4막이며 각 막에는 구약성경 예레미아의 말씀이 설명되어 있다.

 

바벨론의 공중누각에서 아비가일이 바벨론의 여왕임을 선포하고 있다.

                 

1막. 예루살렘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성경말씀은 예레미아 21: 10의 말씀인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읍으로 향함은 복을 내리기 위함이 아니요 화를 내리기 위함이라 이 성읍이 바벨론 왕의 손에 넘김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사르리라'이다.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의 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오자 기도하고 있다. 대제사장인 스가랴가 백성들에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고 말한다. 스가랴의 아리아가 D'Egitto là su i lidi(애굽의 강가에서 그가 모세의 생명을 구하셨다)이다. 스가랴는 결박하여 데리고 나온 페네나를 가르키며 이 포로로 인하여 혹시 바벨론과 평화를 이룰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페네나는 바벨론의 왕 나부코(느브갓네살)의 작은 딸로서 지난번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 때에 이스라엘 병사들에게 포로로 잡혀 있다. 이어진 스가랴의 아리아가 Come notte a sol fulgente(태양이 오기 전의 흑암처럼)이다. 스가랴는 이스마엘에게 페네라를 맡기며 엄중히 감시하라고 당부한다. 이스마엘은 예루살렘 왕의 조카로서 전에 바벨론에 사자로서 다녀온 일이 있다.

 

이스마엘과 페네나만이 남게 되자 두 사람은 이스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었던 일,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게 된 일, 그리고 페네나의 도움으로 이스마엘이 바벨론을 탈출한 일 등을 주마등처럼 떠 올리며 회상한다. 그때 나부코의 첫째 딸인 아비가일이 바벨론 병사로 변장하고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들어온다. 아비가일도 이스마엘을 사랑하고 있다. 두 연인을 발견한 아비가일은 만일 이스마엘이 페네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과 바벨론에 대한 반역자로 고발하겠다고 위협한다. 이어 아비가일은 만일 이스마엘이 아비가일의 사랑을 받아 들인다면 나부코 왕에게 청원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다. 이스마엘은 아비가일에게 그를 사랑할수 없다고 말한다. 아비가일은 복수를 다지며 사라진다. 잠시후 나부코 왕이 전사들과 함께 성전 안으로 들어선다. 전사들의 합창이 Viva Nabucco(나부코 왕 만세)이다. 스가랴가 성전을 침범한 나부코 왕과 전사들을 몹시 비난한다. 그러면서 만일 나부코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기 위해 공격한다면 페네나 공주를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스가랴의 말을 들은 이스마엘이 페네나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고 간청하지만 스가랴와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스가랴의 말에 분노한 나부코 왕이 병사들에게 성전을 공격하고 파괴하라고 명령한다. 스가랴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마엘을 배반자라고 하며 저주한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히브리 백성들

                   

2막. 우상숭배자(The Impious one)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성경구절은 예레미아 30: 23 이다. '보라 여호와의 노여움이 일어나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 위에서 회오리칠 것이라'이다. 1장은 바벨론의 왕궁이다. 나부코 왕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는 동안 페네나를 섭정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히브리 포로들을 관리토록 책임을 맡긴다. 아비가일은 우연히 자기가 나부코의 진짜 딸이 아니라 노예의 딸이라는 문서를 발견한다. 아비가일은 나부코가 이스라엘과의 전투에 앞장서라는 지시를 완강하게 거부한다. 그러면서 아비가일은 아무것도 모르고 지낸 행복했던 지난 날을 회상한다. 아비가일의 아리아가 Anch'io dischiuso un giorno(나도 한때는 행복에 대하여 마음을 열었었다)이다. 바알 신의 대제사장이 아비가일에게 페네나가 히브리 포로들을 석방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대제사장은 아비가일을 바벨론의 통치자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이를 위해 대제사장은 나부코가 전쟁에서 죽었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린다. 그 소문을 들은 아비가일은 이번 기회에 왕위를 차지하기로 결심한다. 아비가일의 아리아가 Salgo gia del trono aurato(나는 피로 얼룩진 황금 왕좌에 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이다.

 

아비가일의 명령에 의해 나부코가 체포되는 장면

                     

2막 2장은 궁전의 어떤 방이다. 스가랴가 율법서를 읽고 있다. 스가랴의 아리아가 Vieni, o Levita(율법서를 가져오라)이다. 이어 스가랴는 페네나를 불러오기 위해 나간다. 한 무리의 레위 사람들이(제사장들) 이스마엘의 반역을 비난한다. 스가랴는 누이동생 안나와 페나나와 함께 돌아온다. 안나는 레위 사람들에게 페네나가 유태교로 개종했다고 말하고 이스마엘을 용서하라고 강조한다. 아드발로가 들어와서 나부코 왕이 전쟁에서 죽었으며 그의 딸인 아비가일이 나부코 왕에 대한 반란을 획책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아비가일이 바알 신의 대제사장과 함께 들어와서 페네나에게 왕관을 내놓으라고 강요한다. 그때 뜻밖에도 죽었다고 하던 나부코가 무리 사이를 헤집고 나타난다. 나부코는 왕관을 빼앗아 들고 자기는 바벨론의 왕일뿐 아니라 바벨론 백성들의 신이라고 선언한다. 스가랴는 자기가 신이라고 하는 나부코를 저주하여 하늘의 응징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 소리를 들은 나부코는 대노하여서 히브리 포로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다. 페네나가 나부코에게 유태교로 개종하였음을 밝히고 히브리 백성들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고 말한다. 그 소리를 들은 나부코는 더욱 분노하여서 그가 신이라는 주장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나부코의 아리아가 Non son piu re, son dio(나는 왕이 아니다. 나는 신이다)이다. 이때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나부코는 당장 정신을 잃고 미쳐버린다. 왕관이 그의 머리에서 떨어진다. 아비가일이 얼른 왕관을 집어 든다. 그리고는 자기가 바벨론의 통치자임을 선포한다.

 

아비가일이 스스로 바벨론의 왕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3막의 부제는 예언이다. 성경말씀은 예레미아 50: 39이다. "그러므로 사막의 들짐승이 승냥이와 함께 거기에 살겠고 타조도 그 가운데에 살 것이요 영원히 주민이 없으며 대대에 살 자가 없으리라'이다. 아비가일은 이제 바벨론의 여왕이다. 바알 신전의 대제사장이 아비가일에게 히브리 포로들과 페네나를 죽이라는 내용의 문서를 보여준다. 아직도 미쳐있는 상태인 나부코는 그런 중에도 왕관이 자기 것임을 주장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비가일은 그런 나부코 왕에게 히브리 포로들과 페네나를 죽이라는 명령서에 서명토록 유도한다. 나부코는 자기의 진정한 딸인 페네나를 죽이라고 위임한것을 깨닫고는 비탄과 분노에 넘친다. 나부코는 아비가일에게 자기의 진정한 딸이 아니며 노예의 딸이라고 말하고 이를 증명하는 서류가 있으니 찾아오라고 지시한다. 아비가일은 나부코에게 자기가 진짜 나부코의 딸이라고 적혀 있는 가짜 문서를 보여준후 금방 찢어 버린다. 나부코는 이제 아무런 권력도 없음을 깨닫고 아비가일에게 페네나의 목숨만을 살려 달라고 간청한다. 나부코의 아리아가 Oh di qual onta aggravasi questo mio crin canuto(아 이 무슨 모욕이란 말인가 늙은 나는 고통을 당하도다)이다. 아비가일은 나부코의 간청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부코에게 당장 궁궐에서 나가라고 명령한다.

 

2장은 유프라데스강변이다. 히브리 포로들이 고향을 그리는 노래를 부른다. Va, pensiero, sull'ali dorate(날아라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이다. 스가랴가 다시한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강조하며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히브리 포로들은 용기와 희망을 갖는다.

  

유브라데 강변에서 히브리 백성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합창 Va, pensiero.

 

4막의 부제는 부서진 우상이다. 성경말씀은 예레미아 50: 2이다. 기록된바 "바벨론이 함락되고 벨(Bel)이 수치를 당하며 므로닥(Merodach)이 부스러지며 그 신상들은 수치를 당하며 우상들은 부스러진다 하라'이다.

4막 1장은 바벨론 궁전의 왕의 거실이다. 나부코가 깨어난다. 하지만 아직도 혼미한 상태이고 더구나 분노에 넘쳐 있다. 나부코는 사랑하는 딸인 페네나가 쇠사슬에 묶여서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본다. 절망에 빠진 나부코는 히브리인들의 신인 여호와에게 기도를 드린다. 나부코는 자기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만일 히브리인들의 신이 자기의 기도를 들어준다면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고 유태교로 개종하겠다고 약속한다. 나부코의 아리아가 유명한 Dio di Giuda(유태의 신이여. 성전의 제단이 다시 세워지리이다)이다. 그러자 놀랍게도 나부코의 정신이 돌아오고 힘이 생긴다. 그때 아드발로를 비롯한 왕궁의 근위병들이 나부코 왕을 석방시키려고 몰려온다. 나부코는 배반자를 응징하고 페네나와 히브리 포로들을 구출하기로 결심한다.

 

4막 2장은 바벨론의 공중정원이다. 페네나와 히브리 포로들이 제물이 되기 위해 끌려온다. 이들이 부르는 합창이 Va! La palma del martrio(가라, 처녀들이여, 순교의 종려나무를 정복하라)이다. 페레나는 의연히 죽음을 맞이하기로 준비한다. 나부코가 아드발로를 비롯한 병사들을 이끌고 뛰쳐 들어온다. 나부코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지을 것이며 히브리 백성들의 신인 여호와를 경배할 것이라고 선포한다. 이어 그는 바알 신상을 부셔버리라고 명령한다. 그의 말이 끝나자 바알 신상이 바닥으로 넘어지며 산산조각으로 부서진다. 나부코는 히브리 포로들에게 이제 모두 자유롭다고 말하고 모두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말한다. 아비가일이 병사들을 이끌고 들어선다. 아비가일은 이미 사태를 파악하고 독약을 마신터이다. 아비가일은 페네나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기도한 후에 숨을 거둔다. 스가랴는 나부코가 하나님의 종이 되었으며 왕중의 왕이라고 소리 높여 선포한다.

 

스가랴가 나부코를 하나님의 종이요 왕중의 왕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나부코의 주요 음악]

1막 스가랴의 아리아: D'Egitto là su i lidi(애굽의 강가에서 그가 모세의 생명을 구하셨다)

1막 스가랴의 아리아: Come notte a sol fulgente(태양이 오기 전의 흑암처럼)

1막 전사들의 합창: Viva Nabucco(나부코 왕 만세)

2막 아비가일의 아리아: Anch'io dischiuso un giorno(나도 한때는 행복에 대하여 마음을 열었었다)

2막 아비가일의 아리아: Salgo gia del trono aurato(나는 피로 얼룩진 황금 왕좌에 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

2막 스가랴의 아리아: Vieni, o Levita(율법서를 가져오라)

2막 나부코의 아리아: Non son piu re, son dio(나는 왕이 아니다. 나는 신이다)

3막 나부코의 아리아: Oh di qual onta aggravasi questo mio crin canuto(아 이 무슨 모욕이란 말인가 늙은 나는 고통을 당하도다)

3막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 Va, pensiero, sull'ali dorate(날아라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4막 나부코의 아리아: Dio di Giuda(유태의 신이여. 성전의 제단이 다시 세워지리이다)

4막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 Va! La palma del martrio(가라, 처녀들이여, 순교의 종려나무를 정복하라)

 

그리스국립극장에서의 현대적연출에 의한 공연. 아비가일이 배반자인 이스마엘을 처형하라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