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파파 하이든

하이든의 첫 오페라 '절름발이 악마'(Der krumme Teufel)

정준극 2013. 1. 8. 07:48

'절름발이 악마'(Der krumme Teufel)

하이든의 첫 오페라...유명 코믹 배우인 펠릭스 쿠르츠를 위해 작곡

 

요제프 하이든

 

'절름발이 악마'(Der krumme Teufel)는 하이든이 19세 때인 1751년에 작곡한 그의 첫 오페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오페라의 스코어가 남아 있지 않아서 어떤 음악의 오페라인지는 모른다. 대본은 남아 있다. 대본은 당시 비엔나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코믹 배우인 요한 요제프 펠릭스 쿠르츠(Johann Joseph Felix Kurz)가 썼다. '절름발이 악마'는 1751년 초연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두어번 공연 후에 당국이 대본의 내용 중에 인신공격 및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으므로 공연할수 없다고 하여 더 이상 공연하지 못했다. 몇년 후인 1757년에 펠릭스 쿠르츠가 대본을 수정하고 또한 하이든이 음악을 수정하여서 '돌아온 절름발이 악마'(Der neue krumme Teufel)라는 타이틀로 겨우 공연을 재개할수 있었으나 어느 때에 스코어가 분실되는 바람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하지만 수정본 대본도 아직까지 남아 있다.

 

코믹 배우였던 펠릭스 쿠르츠(1715-1786)

                                     

'절름발이 악마'는 징슈필의 장르에 속하는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주가 있는 레시타티브가 없고 대신 대화체의 대사가 나온다. 음악은 코믹 배우인 쿠르츠의 판토마임 스타일의 연기를 고려하여 작곡되었다. 쿠르츠는 '베르나르동'(Bernardon)이라는 예명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개인 극단을 가지고 당시 주로 캐른트너토르극장에서 공연하였다. 캐른트너토르극장은 현재의 자허호텔 자리에 있던 극장이었다. 쿠르츠가 쓴 '절름발이 악마' 대본에는 임프레사리오(흥행가)이며 극장감독인 주세페 아플리지오(Giuseppe Affligio: 1722-1788)를 조롱하는 내용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비엔나에서 활동하고 있던 '다플리지오'(d'Affligio)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절름발이로서 쿠르츠의 라이벌이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비엔나에 와서 활동하고 있는 다플리지오는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흥행하는 데에도 관여했다고 한다. 다플리지오는 사기 혐의로 구속되어 1779년에 종신형을 받고 감옥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하이든의 '절름발이 악마'가 처음 선을 보였을 때에는 다플리지오가 비엔나 사회에서 행세깨나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를 조롱하고 비방하는 내용의 이 오페라가 온전히 공연되기는 어려웠다. 물론 하이든으로서는 다플리지오를 조롱하려는 의사가 하나도 없었으며 다만 대본을 쓴 쿠르츠가 그런 사연을 제공했다고 보면 된다. 하이든은 쿠르츠의 요청으로 '절름발이 악마'를 작곡하였으나 그후에 다시 쿠르츠와 협동하여 오페라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당시 19세에 불과했던 하이든은 이 오페라로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여 얼마후에는 모르친 백작에게 고용되었고 이어 에스터하지 공자에게 고용되어 작곡가로서의 탄탄한 길을 걷게 되었다.

 

하이든이 '절름발이 악마'를 작곡하게 된 연유로는 두가지가 얘기되고 있다. 모두 저명한 음악학자들이 네새운 이야기들이다. 하나는 하이든의 전기작가인 게오르그 아우구스트 그리징거(Georg August Griesinger)가 1810년에 내놓은 자료에 따른 것이다. 소년 시절에 슈테판성당의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던 하이든은 나이가 들어 변성이 되자 더 이상 합창단원으로 행세할수 없게 되었다. 하이든은 생계를 돕는 수단의 하나로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 주었다. 그러던중 어떤 날, 어떤 사람이 돈을 조금 넉넉히 줄테니까 어떤 부인을 위해 세레나데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비엔나에서 코믹 배우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요한 요셉 펠릭스 쿠르츠(베르나르동)의 부인이었다. 하이든이 쿠르츠 부인의 창문 아래에서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는 중에 마침 쿠르츠가 집으로 돌아왔다. 쿠르츠는 하이든을 야단치치닪고 대신에 '노래가 아주 듣기 좋은데 누가 작곡한 것이냐?'라고 물어 보았다. 하이든은 자기가 작곡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쿠르츠는 하이든을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자기가 쓴 대본을 보여주며 오페라로 작곡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절름발이 악마'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음악학자인 알베르트 크리스토프 디에스(Albert Christoph Dies)가 쓴 책에 나와 있는 이야기이다. 디에스는 1810년에 하이든을 직접 인터뷰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썼다. 역시 코믹 배우인 쿠르츠가 관련된 이야기이다. 어느날 쿠르츠가 젊은 하이든을 우연히 만나서 자기 집에 초청하였다. 쿠르츠는 하이든에게 피아노 앞에 앉으라고 하고서는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장면의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하이든은 가만히 눈을 감고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며 피아노를 연주했다. 잠시후 쿠르츠는 갑자기 의자위에 덥석 배를 깔고 누워서 마치 헤엄치는 것처럼 행동을 했다. 이어 하인을 불러서 자기가 엎드려 있는 의자를 방안에서 이리저리 끌고 다니라고 했다. 마치 파도 속에서 허우적 대는 모습이었다. 하이든은 더욱 열심으로 파도 소리를 내고 헤엄을 치는 모습을 표현했다. 마침내 쿠르츠는 하이든의 덥석 포옹하고서는 '여보게 젊은이, 당신은 나를 위한 사람이라네. 나를 위해 오페라를 만들어 주게나.'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절름발이 악마'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디에스에 의하면 '절름발이 악마'는 두번 공연되었는데 그때마다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후 대본의 내용이 다플리지오를 인신공격하는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공연금지를 받았다. 그렇지만 이듬해인 1752년에도 성공적으로 공연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수정본인 '돌아온 절름발이 악마'가 마련되어 1757년에 역시 성공적으로 공연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절름발이 악마'의 음악은 안타깝게도 분실되어서 내용을 알수 없다. 피터 브랜스콤(Peter Branscombe)이라는 사람이 대본을 가지고 음악을 재건해 보았다. 32개의 아리아가 나오며 듀엣과 트리오, 그리고 합창이 나오는 대규모 음악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판토마임 장면도 나온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쿠르츠의 대본에 음악을 입혔다고 해서 그것이 하이든의 오페라가 될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쨋든 오페라 '절름발이 악마'는 청년 하이든의 음악 경력에 커다란 힘이 되어준 것이었다. 작곡가로서의 길을 걷도록 확실하게 격려해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이든은 쿠르츠의 도움으로 지내다가 모르친 백작에게 고용되었으며 그후 에스터하지 공자게에 고용되어 지내게 되었으니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장대하였다.

 

영화로 만든 '절름발이 악마'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