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파파 하이든

하이든과 로빈스 랜던

정준극 2017. 8. 29. 15:44

하이든과 로빈스 랜던


로빈스 랜던


하이든은 먼 훗날 오스트리아도 아닌 미국에서 로빈스 랜던(Robins Landon)이란 인물이 태어나서 평생을 자기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연구를 하고 또한 여러 저서들을 남겨 수많은 사람들이 하이든을 새롭게 알도록 했다는 사실을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실로 로빈스 랜던은 음악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하이든 연구자였다. 로빈스 랜던은 하이든의 서거 200 주년을 기념하는 2009년에 향년 83세로 세상을 떠났으니 그것도 하이든과의 인연이라면 인연이라고 할수 있다. 로빈스 랜던이 하이든 연구에 얼마나 정진하고 헌신했는가 하는 것은 그가 남긴 위대한 저서들을 살펴보면 알수 있다. 대표적인 저서는 '하이든: 연대기와 작품'(Haydn: Chronicle and Works)이다. 다섯 권으로 구성된 대작이다. 1976년부터 1980년까지 4년에 걸쳐 완성한 저서이다. 그런데 3, 4, 5권을 먼저 쓰고 1, 2권은 나중에 썼다. 1권은 '하이든: 초기 시절'(Haydn: The Early Years: 1978), 2권은 '에스터하지에서의 하이든'(Haydn in Eszterhaza: 1980), 3권은 '영국에서의 하이든'(Haydn in England: 1976), 4권은 '하이든: 천지창조의 시기'(Haydn: The Years of The Creation: 1977), 5권은 '하이든: 마지막 시기'(Haydn: The Late Years: 1977)이다. 로빈스 랜던이 하이든 연구를 정리해서 처음 저서를 펴낸 것은 일찍이 1955년이었다. '요제프 하이든의 교향곡들'(The Symphonies of Joseph Haydn)이란 저서였다. 다음은 1959년에 펴낸 '요제프 하이든의 서신 모음과 런던 노트북'(The Collected Correspondence and London Notebooks of Joseph Haydn)이었고 이어 1968년에는 '하이든의 교향곡 107편의 오리지널 스코어(Critical edition of the 107 Haydn Symphonies)이었다. 이어 다섯권으로 구성된 대작 '하이든 연대기와 작품'을 끝낸 다음에는 '하이든: 문서적인 연구'(Haydn: a documentary study)를 1981년에 펴냈고 마지막으로는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 '하이든: 생애와 음악'(Haydn: his life and music) 을 출판했다. 마지막 저서인 '하이든: 생애와 음악'은 데이빗 윈 존스(David Wyn Jones)와의 공저였다.


로빈스 랜던의 대표저서인 '하이든: 연대기와 작품' 전 5권. 대단하다.


이렇듯 로빈스 랜던은 '하이든 연구의 대가'인데 그것만이라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랜던은 사람이 학식과 열정이 남달라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대한 조사연구도 깊이 하였고 그 결과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대한 여러 저서를 펴냈으니 과연 대단한 인물이 아닐수 없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관한 전문 저서를 연대별로 소개하면, 우선 모차르트와 관련한 저서로는 '모차르트 콤파니언'(The Mozart Companion: 1956), '모차르트와 프리메이슨'(Mozart and the Masons: 1982), '1791. 모차르트의 마지막 해'(1791: Mozart's Last Year: 1988), '모차르트: 황금기'(Mozart: the golden years: 1989), '모차르트 콘펜디엄'(The Mozart Compendium: 1990)[콤펜디엄은 개요라는 뜻이다], '모차르트와  비엔나'(Mozart and Vienna: 1991), '모차르트 에세이들'(The Mozart Essays: 1999) 등이 있다. 베토벤과 관련한 저서로는 '루드비히 반 베토벤: 기록적 연구'(Ludwig van Beethoven: a documentary study: 1970)가 있다. 그뿐이 아니다. 이밖에도 헨델과 관련하여서는 '헨델과 그의 세계'(Handel and his World: 1984), 비발디와 관련하여서는 '비발디: 바로크의 음성'(Vivaldi: voice of the Baroque: 1993 )이 있고 기타 저서로는 '18세기 음악에 대한 에세이'(Essays on Eighteenth-Century Music: 1969), '베니스 음악의 5세기'(Five Centuries of Music in Venice: 1991), 비망록인 '하이 씨에서의 혼'(Horns in High C: 1999)이 있다.


로빈스 랜던은 평생동안 28편의 음악서적을 저술했다. 그러다보면 로빈스 랜던은 평생을 책만 집필하다가 보낸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헌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음악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저널리스트로서, 역사학자로서 그리고 방송 캐스터로서 활동했다.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는 중에 런던의 더 타임스(The Times)에 가장 오랫동안 기고했다. 그리고 BBC 라디오와 텔리비전에 정규 출연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전파하였다. 로빈스 랜던은 세계에서 클래식음악에 관한한 가장 많이 초청받은 강사였다. 미국과 영국의 대학에서 강의요청이 줄을 이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모든 활동 중에서도 하이든 연구는 과연 대단했다. 그래서 로빈스 랜던에 의해서 하이든의 음악 중에서 소외되었던 수많은 작품들이 재평가를 받고 재인식되었다. 그리고 모차르트에 대한 일부 오해들도 로빈스 랜던의 연구를 통해서 해소되었으니 음악사에 있어서 놀라운 공적을 남긴 인물이다.


자택에서 로빈스 랜던


로빈스 랜던의 풀 네임은 하워드 챈들러 로빈스 랜던(Howard Chandler Robins Landon)이다. 1926년 3월 6일 매사추세츠주의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랑스의 위그노 후손으로 작가인 윌리엄 그리넬 랜던이었고 어머니는 음악가인 도로테아 르바롱이었다. 어머니의 결혼전 성이 로빈스였다. 그래서 어머니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가져와서 로빈스 랜던이 되었다. 로빈스 랜던은 애쉬빌학교에 다닐 때에 마침내 하이든을 알게 되었고 그로부터 평생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로빈스 랜던이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음악가인 어머니의 영향이 많았을 것이며 수많은 저서를 남길수 있었던 것은 작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로빈스는 1947년에 보스턴대학에서 음악학사학위를 받았다. 로빈스와 함께 수학한 사람은 역시 하이든 연구의 대가가 된 칼 가이링거(Karl Geiringer)였다. 로빈스는 그후 유럽으로 건너가서 평생을 살았다. 로빈스가 하이든 연구에 좀 더 가까이 갈수 있었던 것은 전쟁이 끝난후 비엔나 주둔의 미군부대에서 군대 사학자로서 활동하여서 였다. 그가 주로 한 일은 이탈리아를 해방시킨 미제 5군의 역할을 사학적인 관점에서 문서정리하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이탈리아에도 갔었고 음악에 대한 자료를 더 많이 접할수 있었다.


보스턴대학교의 '하워드 고틀리브 아키발 리서치 센타'(Howard Gotlieb Archival Research Center)가 주관한 '하이든와 그의 챔피언인 H. C. 로빈스 랜던' 전시회의 포스터 사진. 하이든 서거 200주년 기념으로 2009년에.


로빈스 랜던은 1949년에 하프시코디스트이며 음악학자인 크리스타 푸르만(Christa Fuhrmann)과 결혼했다. 크리스타는 로빈스의 저술 활동에 큰 조력자였다. 두 사람은 1950년대 중반에 이혼하였지만 이혼 후에도 서로 협조하였다. 로빈스는 1957년에 사학자인 엘제 라단트(Else Radant)와 재혼하였다. 로빈스는 크리스타와 결혼한 그 해에 군대에서 제대하고 석사후과정을 밟기 위해 보스턴으로 갔다. 로빈스는 고향 보스턴에서 가이링거를 포함한 여러 친구들과 합심하여서 세계최초로 하이든협회를 창설하였다. 이 협회의 목적은 하이든에 관한 서적을 출판하며 하이든의 미발표 음악들을 발굴해서 음반으로 취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실상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하이든의 여러 작품을 발견하여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하이든의 모든 것을 수록한 전 5권의 대작을 필생의 작업으로 완성했다. 하이든협회가 처음으로 취입해서 내놓은 음반은 하이든의 1802년도 '하모니미사'였다. 다행히 하모니미사 음반은 당장 매진되었다. 비엔나로 간 그는 하이든의 잊혀진 스코어들을 찾아내는 노력을 기울였다. 오스트리아 뿐만 아니라 헝가리와 독일, 그리고 영국에 걸쳐서 하이든의 미확인 스코어들을 찾는 노력을 기울였다. 보스턴에서 창설된 하이든협회는 로빈스가 비엔나에서 체류하는 바람에, 그리고 로빈스가 협회의 비서역할을 하는 바람에 비엔나에서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협회는 과거에 음반으로 접할수 없었던 하이든의 교향곡들과 미사곡들을 음반으로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였다. 또한 모차르트의 'C 장조 그레이트 미사'와 '이도메네오'도 음반으로 만들었다. 로빈스는 하이든의 스코어뿐만 아니라 서한문, 기고문, 원고등을 찾기 위해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을 폭넓게 찾아다녔다. 로빈스는 하이든의 크리티컬 에디션(Critical editions)을 정리하고 편집하였다. 주로 오페라와 미사곡들이었다. 하이든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잊혀졌고 또한 분실되었던 원본 악보들이었다. 로빈스는 이를 바탕으로 1955년에 첫번째 저서인 '요제프 하이든의 교향곡'을 발간하였다. 이 서적은 하이든의 교향곡을 연대순으로 정리하고 스코어를 분석하였으며 18세기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로빈스는 일에 따라서 거처를 옮겨다녀야 했다. 그래서 비엔나에서도 살았고 이탈리아와 영국에서도 살았다. 그러다가 1984년에 남불의 타른(Tarn)이라는 지역의 라바스텐스(Rabastens)에 있는 샤토 드 퐁쿠씨에레를 매입하여 정착했다. 그리고 1994년에는 두번째 부인과도 이혼하였다. 로빈스는 생애의 말년을 마리 노엘 레이날 브슈투아라는 여인과 동거하며 지냈다. 로빈스가 집필할 것은 다 마치고나서 말년에 열중했던 일은 5부작으로 된 텔레비전 시리즈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제목은 '마에스트로'(Maestro)였으며 베니스의 음악적 유산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로빈스는 이를 위해 작가이며 방송인인 존 줄리우스 노위치((John Julius Norwich)와 긴밀히 협동하였다. 두 사람이 협동해서 만든 프로그램은 '베니스와 가브리엘'(Venice and the Gabriels),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세계', '베니스와 비발디', '베르디와 베니스 극장', '베니스의 20세기 음악'이었다. 마지막 프로그램에서는 스트라빈스키와 브리튼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현대음악은 로빈스의 영역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지만 로빈스는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하였다. 로빈스 랜던은 2009년 11월 20일 향년 83세로 라바스텐스의 저택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