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풍운아 바그너

바그너의 영향과 유산

정준극 2013. 2. 17. 21:08

바그너가 끼친 영향, 그리고 그가 남긴 유산

 

2013년 바그너 탄생 200 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고향인 라이프치히에서 준비한 기념행사의 포스터.

 

 

바그너는 비록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세계의 예술과 문화의 발전에 괄목할만한 기여를 하였다. 특정 음악인들에게는 열렬 팬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바그너의 경우는 열렬이라는 말을 떠나서 실로 광신적이라고 할만큼 대단한 팬들이 많이 있다. 바그너가 끼친 영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의미이다. 바그너의 열렬 팬들은 어떤 경우에 바그너를 마치 신과 같은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 하기야 노르웨이의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에드바르드 그리그는 바그너의 '링 사이클'을 보고 나서 '하늘이 작곡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음악이 나올수 있단 말인가!'라며 찬사를 보낸 일이 있다. 바그너의 작품들, 특히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새로운 음악적 스타일을 개척한 것이었다. 바그너 이후, 많은 작곡가들이 바그너의 노선에 동조하고 그의 스타일에 침전되었음은 부인하지 못할 사항이다. 물론 어떤 작곡가들은 의도적으로 바그너의 스타일에 반기를 들기도 했지만 말이다.

 

안톤 브루크너와 휴고 볼프는 바그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작곡가들이라고 할수 있다. 세자르 프랑크, 앙리 뒤파르크, 에르네스트 쇼송, 쥘르 마스네,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 한스 피츠너 등도 바그너의 영향을 받았다. 이렇듯 수많은 작곡가들이 직접, 간접으로 바그너의 영향을 받자 구스타브 말러는 '이 세상에는 베토벤과 바그너만 있을 뿐이다'라고까지 말했다. 클로드 드비시와 아놀드 쇤버그에 의한 20세기 하모니의 혁명은 그 원류를 찾는다면 '트리스탄'에서 찾을수 있다. 이탈리아의 사실주의 오페라 형태인 베리스모도 바그너적인 음악형태를 재건해 보자는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

 

바그너의 '음악 드라마', 즉 '악극'에 대한 이론은 다른 예술의 장르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스타 워스'(Star Wars)에 사용된 존 윌렴스의 음악은 바그너의 악극 스타일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미국의 제작자인 필 스펙터(Phil Spector)의 '소리의 벽'(wall of sound)은 바그너의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락 음악의 장르에 속한 헤비 메탈 음악은 바그너의 무종교적인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볼수 있다. 독일의 람슈타인 비트(Rammstein Witt)와 요아힘 비트(Joachim Witt)의 음악도 바그너의 음악으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요아힘 비트의 가장 유명한 앨범의 이름은 '바이로이트'이다. 영화 '니벨룽의 반지'는 역사적인 사항을 바탕으로 하긴 했지만 바그너의 오페라를 더 많이 참고한 것이다. 이 영화는 다른 여러 나라에서 각각 다른 제목으로 상영되어 인기를 끌었는데 미국에서는 '어둠의 왕국: 용의 왕'(Dark Kingdom: The Dragon King)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1865년 6월 10일 뮌헨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한스 폰 뷜로브가 지휘했다. 테너 루드비히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Ludwig Schnorr von Carolsfeld)가 트리스탄의 이미지를 창조하였고 소프라노 말비나 슈토르 폰 카롤스펠트(Malvina Schnorr von Carolsfeld)가 이졸데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두 사람은 실제로 부부였다.

 

바그너는 문학과 철학에도 두드러진 영향을 끼쳤다.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1870년대 초반에 바그너의 인너 서클에 속하여 있었다. 니체는 그의 첫 출판물인 '음악의 정신' 중에서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ödie aus dem Geiste der Musik: The Birth of Tragedy)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유럽 문화의 디오니서스적인 부활'이라고 말했다. 그러한 니체였는데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이후 그는 바그너와 결별했다. 니체는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들이 지나치게 기독교적인 신앙에 영합하는 것이며 나아가 선동적인 새로운 독일 제국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영국 출신의 미국 시인인 와이스탄 휴 오든(W.H. Auden: 1907-1973)은 바그너를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라고 불렀다. 토마스 만(Thomas Mann)이나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도 바그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그들의 소설에서 바그너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나온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는 바그너를 싫어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지만 그의 작품에서 바그너의 작품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는 내용이 나온다. T.S.엘리오트의 '황무지'(The Waste Land)는 바그너가 주제로 등장할 정도이다. '황무지'에는 '트리스탄'의 구절들이 나오며 '링 사이클'과 '파르지팔'과 관련된 내용도 나온다. 샤를르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스테판 말라메(Stephane Mallarme), 폴 베를랭(Paul Verlaine)과 같은 사람들은 아예 바그너를 숭배했다. 바그너의 여러 아이디어, 예를 들면 '트리스탄'에서 사랑과 죽음의 관계(에로스와 타나토스)는 나중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연구보다 앞서는 것이었다.

 

20세기 음악에 있어서 클로드 드비시 또는 아놀드 쇤버그에 의한 하모니의 혁명은 그 시작을 바그너의 '트리스탄'에서 찾을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한 장면.

                                                             

바그너에 대한 반응이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독일의 음악계는 한때 두 부류로 분류된 일이 있었다. 바그너 지지자들과 브람스 지지자들이었다. 브람스 지지층은 유명한 평론가인 에두아르트 한슬리크(Eduard Hanslick)의 후원을 받았으며 전통적인 형태의 음악을 옹호하였다. 이들은 바그너의 개혁주의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전선을 이끌었다. 심지어 프랑스의 드비시도 바그너를 '늙어빠진 독살자'(old poisoner)라면서 비난했다. 그런 작곡가들이 의외로 많았다. 차이코브스키도 그중의 하나였다. 차이코브스키는 만일 그대로 놓아 두었다가는 바그너의 영향을 너무 커져서 전통적인 음악계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로시니와 같은 사람들도 바그너에게 비판적이었다. 로시니는 '순간적으로 보면 바그너의 음악은 훌륭하다. 하지만 장시간으로 보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로시니의 '귀욤 텔'(Guillaume Tell)은 오페라의 길이에 있어서 바그너와 막상막하이다. '귀욤 텔'은 무려 4시간 이상이나 걸리는 오페라이다. 

 

로시니의 '귀욤 텔'(윌렴 텔)은 공연시간에 있어서 바그너와 막상막하이다. 무려 4시간 이상이나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