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풍운아 바그너

바그너의 작품세계

정준극 2013. 2. 16. 21:30

바그너의 작품세계

오페라와오펠 오페라 이외의 음악, 저술활동, 극장설계와 운영

 

바그너의 첫 오페라 작품이라고 할수 있는 '요정들'(Die Feen)의 한 장면

 

바그너의 오페라, 또는 악극(music drama)은 작곡가로서 그의 중심되는 예술적 유산이다. 그의 오페라는 시대적으로 세 기간으로 구분할수 있다. 초기, 중기, 말기이다. 바그너가 처음 시도한 오페라는 그가 19세 때인 1832년으로 '결혼'(Die Hochzeit)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그너는 '결혼'을 작곡하다가 초기에 포기했다. 그러므로 완성된 오페라는 아니다. 바그너의 초기에 완성한 세 편의 오페라는 '요정들'(Die Feen), '사랑금지'(Das Liebesverbot), 그리고 '리엔치'(Rienzi)이다. 이들 작품의 스타일은 전통적이고 관습적이며 형식적인 것이었다. 다시 말하여 세계 음악사에 있어서 바그너를 특별한 위치에 올려 놓은 개혁적인 모습을 볼수 없는 작품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바그너는 훗날 이 세편의 오페라를 성숙하고 완성된 오페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말한바 있다. 바그너는 그의 생전에 이상하게도 '리엔치'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에 대하여 마땅치 못하게 생각했다. 오늘날 이상의 세 작품은 별로 공연되지 않고 있다. 다만, '리엔치'의 서곡만은 콘서트의 레퍼토리로서 간혹 등장할 뿐이다.

 

바그너의 중기 오페라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의 중기 오페라들은 극작가로서, 그리고 작곡가로서의 그의 능력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들이다. 바그너의 중기 오페라는 '방랑하는 화란인'(Der fliegende Holländer)으로 시작하며 '탄호이저'(Tannhäuser)와 '로엔그린'(Lohengrin)이 포함된다. 이들 중기 오페라들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자주 공연되는 것들이다.

 

바그너의 말기 오페라들은 오페라 예술을 한발짝 앞서가게 만든 걸작들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는 바그너의 오페라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는 바그너의 오페라 중에서 유일한 코미디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물론 초기의 '사랑금지'도 코미디에 속하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이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바그너의 오페라 중에서 가장 공연시간이 길지만 아직도 자주 공연되고 있는 것을 보면 길이와는 상관 없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된다. 보통 '링 사이클'이라고 불리는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는 대체로 게르만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과 줄거리에 기본을 둔 것으로 특히 북구의 신화에 바탕을 둔 것이다. '링 사이클'은 잘 아는대로 네편의 오페라로 구성되어 있다. 바그너는 '링 사이클'의 제작에 있어서 아이슬랜드의 서사시, 즉 '포에틱 에다'(시 에다: Poetic Edda), 볼숭가 사가(Volsunga Saga),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니벨룽의 노래(Nibelungenlied)로부터 많은 참고를 했다. '링 사이클'은 구상부터 완성까지 무려 약 2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으며 네 편을 모두 공연한다면 17시간이나 걸리는 대작이다. 음악사학자들은 '링 사이클'이 바그너의 음악작품 중에서 가장 야심적인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으로서 특별히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의 오프닝을 위해 작곡된 '파르지팔'(Parsifal)은 성배(聖杯)의 전설에 바탕을 둔 무언가 명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파르지팔'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의 오프닝을 위해 작곡한 것이므로 스코어에 '무대봉헌을 위한 축제공연'(Bühnenweihfestspiel)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링 사이클' 중의 '지그프리트'의 한 장면

 

바그너는 새로운 형태의 오페라를 주창하면서 그것을 '악극'이라고 불렀다. '악극'이라고 한 것은 음악적인 요소와 드라마틱한 요소가 함께 융합할 때에 완성된 음악극을 만들어 낼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명칭을 붙인 것이다. 바그너는 다른 오페라 작곡가들과는 달리 오페라의 대본이나 노래가사를 모두 그가 직접 썼다. 오페라 작곡가들이 모두 바그너와 같다면 아마 웬만한 대본가들은 굶어 죽어야 했을 것이다. 바그너는 자기가 쓴 대본을 대본(리브레티)이라고 부르지 않고 시(포임)라고 불렀다. 바그너 오페라의 줄거리는 대체로 북구의 신화거나 전설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말하자면 게르만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바그너는 작곡 스타일에 있어서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노래를 부르는 성악가의 역할과 동등하게 처리했다. 오케스트라의 드라마틱한 역할은 라이트모티프(Leitmotifs)를 충실하게 연주하는 것을 포함한다. 라이트모티프라는 것은 어떤 특정 주인공, 장소, 사건 등을 표현하는 음악적 주제를 말한다. 라이트모티프의 복잡한 전개와 발전은 드라마의 진전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 장면. 환상적인 무대. 바이에른 보훔

 

바그너의 음악적 스타일은 가끔 클래시컬 음악에서 낭만주의 기간을 압축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과거에는 볼수 없었던 감정표현의 새로운 탐험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모니와 음악적 형태에 있어서 극도의 반음계주의를 포함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하였다. '트리스탄 코드'(Tristan chord)라는 말이 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첫 음을 말한다. 음악학자들은 '트리스탄 코드'로부터 현대 클래시컬 음악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전통적인 토널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개념을 개발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음조들과 코드들에게 각각의 주체성을 부여하였다. 그리하여 20세기에 무조주의로 가는 길을 제시하였다. 다음은 바그너 오페라의 시기별 작품 구분을 도표로 정리한 내용이다.

 

  초기

1832: 결혼(Die Hochzeit) - 완성하지 않고 포기

1833: 요정들(Die Feen)

1836: 사랑금지(Das Liebesverbot)

1837: 리엔치(Rienzi) - 정식명칭은 Rienzi, der Letzte der Tribunen 

  중기

1843: 방랑하는 화란인(Der fliegende Holländer)

1845: 탄호이저(Tannhäuser)

1848: 로렌그린(Lohengrin)

  말기

1859: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1867: 뉘르네르크의 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1854: 라인의 황금(Das Rheingold)

  1856: 발퀴레(Walküre)

  1871: 지그프리트(Siegfried) - 원래 제목은 '젊은 지그프리트'(Jung-Siegfried)

  1874: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 - 원래 제목은 지그프리트의 죽음'(Siegfrieds Tod)

1882: 파르지팔(Parsifal)

 

[오페라 이외의 음악]

바그너는 오페라 이외의 음악은 별로 작곡하지 않았다. 19세 때에 '파우스트 심포니'라는 교향곡을 하나 작곡하려 했지만 제1악장만 완성했을 뿐이었다. 나중에 이 음악은 '파우스트 서곡'이라는 명칭의 작품이 되었다. 바그너는 몇 편의 서곡들과 합창 음악, 피아노 소품 들도 작곡했다. 그리고 글룩의 '올리드의 이피제니'(Iphigenie en Aulide)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다시 만든 것이 있다. 이들 중에서 오늘날에도 그나마 자주 연주되고 있는 것은 '지그프리트 이딜'(Siegfried Idyll)이라는 작품이다. 바그너가 두번째 부인인 코지마의 결혼후 처음 맞는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것으로 이 곡에 나오는 몇 개의 멜로디는 나중에 '링 사이클'의 모티프로 사용되었다. 다음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베젠동크 리더'(Wesendonck Lieder)이다. '여성 음성을 위한 다섯 노래'(Five Songs for a Female Voice)라고 알려진 것이다. 바그너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 중에 마틸데 베젠동크의 시를 사용하여 작곡한 것이다. 좀 색다른 곡은 1876년에 만든 '미국 1백주년 행진곡'(American Centennial March)이다. 필라델피아가 센테니얼 엑스포를 개최하면서 기념으로 바그너에게 의뢰한 작품이다. 당시 바그너는 첫번째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을 개최하고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지휘를 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달려가서 지휘를 하고 사례를 받아 조금이라도 적자를 메꾸려 했다. 바그너는 필라델피아로부터 작곡료로 5천불을 받았다. 바그너는 말년에 '파르지팔'을 완성하고나서 교향곡에 손을 대려고 마음 먹었었다. 하지만 운명의 신이 그를 데리고 가는 바람에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

 

두번째 부인인 코지마와 함께.

 

바그너의 중기 및 말기 오페라에 나오는 서곡, 또는 중간에 나오는 오케스트라만의 음악들은 콘서트 레퍼토리로 자주 연주되고 있다. 바그너는 그런 예상을 하고 서곡이나 기타 오케스트라만의 음악들을 조금 손질하여 갑자기 끝나지 않고 그럴듯하게 끝나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어 '파르지팔'의 전주곡이나 장송행진곡을 보면 알수 있다.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주곡도 연주회용으로 손질을 했다. 그런데 인기가 없어서 거의 들을수 없다. 오리지널 전주곡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페라에 나오는 음악으로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자주 들을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그너의 '로엔그린'에 나오는 '신부의 합창'(Bridal Chorus)일 것이다. 결혼식에서 신부가 입장할 때에 연주되는 '딴 딴따단...'이다. 영어권에서는 보통 'Here Comes the Bride'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곡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오페라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결혼식장에서 '로엔그린'에 나오는 음악을 듣게 되니 바그너가 위대하기는 위대하다. 그런데 이 곡은 실은 오페라에서 로엔그린과 엘자가 결혼의 예식을 마치고 신혼의 방으로 들어갈 때에 연주되는 곡이다. 그러므로 신부가 자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주례석으로 입장할 때 연주되는 음악은 아니다. 그래서 한때는 신부가 입장할 때에 연주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여 그러지 말라는 캠페인도 있었으나 워낙 신부가 입장할 때 관례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도무지 바로 잡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로엔그린'의 무대

 

[집필]

바그너는 무슨 글쓰는 재주가 그렇게도 많은지 수많은 글을 썼다. 논문도 쓰고 에세이도 썼으며 시도 쓰고 오페라의 대본와 노래의 가사도 썼다. 게다가 아는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들도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그렇게 쓴 글들을 정리하면 수백편이 넘는다. 바그너의 글들은 분야가 폭이 넓다. 정치에 대한 글도 있으며 철학적인 글도 있다. 또한 자기 오페라를 세부적으로 분석한 글도 있다. 에세이들은 나중에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대표적인 에세이집은 오페라의 이론에 대한 '오페라와 드라마'(Oper und Drama: 1851), 유태계 작곡가들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표명한 '음악에 있어서 유태인'(Das Judenthum in der Musik: 1850) 등이 있다. '음악에 있어서 유태인'은 특별히 자코모 마이에르베르를 겨냥한 비판적인 내용이다. 바그너는 또한 자서전인 '나의 삶'(Mein Leben: 1880)을 썼다.


'발퀴레'에서 발키리의 비행. 잉글리쉬 내셔널 오페라

 

[극장 설계와 운영]

바그너는 바이로이트 페스트슈필하우스의 건설을 통해 몇가지 중요한 변화를 추진하였다. 바이로이트 페스트슈필하우스는 바그너가 그의 오페라만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건설한 극장이다. 바그너는 이 극장을 거의 자신이 직접 설계했다. 다만, 과거 친구로서 건축가인 고트프리트 젬퍼(Gottfried Semper)의 아이디어를 많이 참고하였다. 바그너가 채택한 변화에서 대표적인 것은 공연 중에 오디토리엄(객석)을 어둡게 하는 것,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관중들이 볼수 없는 피트(무대 바로 앞의 오케스트라석)에 두는 것이다. 바이로이트의 오케스트라석은 다음 두가지 면에서 대단히 흥미롭다. 첫째는 제1바이올린을 지휘자의 오른쪽에 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제1바이올린을 지휘자의 왼쪽에 둔다. 왜 오른쪽에 두느냐면 제1바이올린의 소리가 일단 무대쪽으로 갔다가 다시 객석으로 반향되어 오도록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제1바이올린의 음향이 우선 무대쪽으로 간다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로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분명하게 노래를 부를수 있다는 설명이다. 두번째 특징은 콘트라베이스와 첼로, 그리고 만일 하프를 하나 이상 사용하게 된다면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오케스트라 피트의 양쪽에 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스테레오 개념이다.

 

바이로이트 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는 무대에서 상당히 아래에 있어서 관중들이 볼수가 없다.

 

 

ö   ä   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