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15. 리하르트 바그너의 '파르지팔'(Parsifal) - 1

정준극 2013. 2. 21. 09:49

바그너의 '파르지팔'(Parsifal) - 1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 - 성배의 기사 파르지팔의 이야기

  

스위스오페라의 무대

 

바그너 최후의 오페라인 '파르지팔'(WWV: 111)은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인 1882년 7월 26일 제2회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에서 초연된 3막의 오페라이다. 오페라 '파르지팔'의 대본은 바그너의 모든 오페라가 그렇듯이 바그너가 직접 썼다. 바그너는 대체적으로 아서왕의 기사 파르지발(Parzival: Percival)의 이야기를 다룬 13세기 독일의 시인 볼프람 폰 에센바흐(Wolfram von Eschenbach)의 서사시 '파르지발', 그리고 12세기 말 프랑스의 슈레티앙 드 트로예(Chrétien de Troyes)가 쓴 성배에 대한 스토리인 '퍼세발, 성배 이야기'(Perceval, the Story of the Grail)를 참고로 하여 대본을 만들었다. '파르지팔'은 구상에서부터 완성까지 가장 오랜 기간이 걸린 오페라 중의 하나이다. 무려 25년이나 걸렸다. 바그너가 '파르지팔'을 처음으로 구상한 것은 1857년이므로 첫 공연때까지의 기간을 보면 그렇다.

 

'파르지팔'은 세상에서 음향이 가장 뛰어나다는 바이로이트 극장이 완성된 후에 그곳에서 공연되었으므로 바그너가 의도했던 대로 공연되었다는 의미가 있다. 잘 아는대로 바그너는 바이로이트의 음향을 위해 심지어는 오케스트라의 배치까지 색다르게 하였다. 예를 들면 제1바이올린을 지휘자의 왼편이 아니라 오른편에 둔 것 등이다.  그래야 제1바이올린의 소리가 관중석 보다는 무대쪽으로 먼저 전달되고 이어 무대로부터 관중석으로 메아리처럼 전달되기 때문에 출연자들의 소리가 제대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바그너는 '파르지팔'을 바이로이트에서만 공연하도록 못박았다. 다른 극장에서 공연하면 오리지널 제작의도가 손상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처럼 바이로이트가 '파르지팔'의 공연을 독점하였으나 바그너 사후 20년이 지난 1903년에 메트로폴리탄이 공연하는 바람에 그런 독점이 깨졌다. 물론 바그너가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되는 1913년부터는 저작권법에 의해 누구나 어디서든지 공연할수 있게 되었다.

 

바그너는 '파르지팔'을 오페라라고 부르지 않고 '무대봉헌공연'(Ein Buhnenweihfestspiel)이라고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다. 아무튼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오페라와는 다르다는 주장이었다. 바이로이트에서는 1막이 끝난 후에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이 전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바그너는 서곡(Overture)이라는 말 대신에 전주곡(Prelude)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였다. 파르지팔의 원래 표기는 Parzival 인데 그러면 Parsifal 이라는 새로운 스펠링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실제로 바그너는 Parzival 이라는 오리지널 타이틀을 1877년까지 사용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파르지팔'은 실은 아랍어의 Fal Parsi 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잘못 말해주는 바람에 Parsifal 이라고 쓰기 시작했다. 아랍어의 Fal Parsi 는 '순수한 어리석음'(pure fool)이라는 뜻이다. 바그너는 주인공인 '파르지팔'이 바로 순수하게 어리석은 사람이므로 그럴듯하다고 생각하여 Parsifal 로 고쳤다.

 

1882년 바이로이트 초연의 무대 스케치

 

[파르지팔이 탄생하기까지]

바그너가 볼프람 폰 에센바흐의 서사시인 파르지발(Parzival)을 처음 읽은 것은 1845년 마리엔바드(현재의 체코공화국 소재)에서 온천요양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1854년,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의 글을 읽고 동양철학, 특히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1855년 쯤해서 프랑스의 저명한 동양학자인 외진 뷔르누(Eugène Burnouf: 1801-1852)가 쓴 '인도불교입문'(Introduction à l'histoire du buddhisme indien)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아 부처의 생에를 오페라로 만들 생각을 했다. 바그너는 1856년에 새로 만들 불교 오페라의 제목을 우선 Die Sieger(승리자)라고 붙이고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승리자'는 사정상 중도하차했다. 그렇다고 기본 아이디어가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승리자'는 그후 '파르지팔'에서 환생하였다. '승리자'에서 처음에 소개되었던 자기부인(否認), 영혼불멸, 자비와 같은 사상은 나중에 '파르지팔'에서 다시 표현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사회의 특수계급('승리자'에서는 케이스트, '파르지팔'에서는 성배의 기사들)을 내세운 것도 서로 흡사하였다.

 

바그너의 자서전인 '나의 생활'(Mein Leben)을 보면 바그너는 '파르지팔'에 대한 아이디어를 1857년 4월, 성금요일의 아침에 취리히의 베젠동크 별채에 있을 때에 빛나는 햇빛과 그 햇빛을 받아 파랗게 빛나는 정원의 풀과 나무들, 그리고 지저기는 새소리를 듣고 비로소 품게 되었다고 한다. 바그너가 베젠동크의 별채에 있을 때는 4월 하순이었다. 그러나 1857년의 성금요일은 4월 10일이었다. 그때에는 바그너 식구들이 베젠동크의 별채에 들어와서 살지 않고 취리히의 첼트베그(Zeltweg) 13 번지에 살고 있을 때였다. 만일 바그너의 '나의 생활'에 적혀 있는 날짜가 정확하다면 '파르지팔'을 비로소 구상하던 시기를 4월 말로 인정할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나의 생활'의 그 부분은 남아 있지 않아서 그저 전해 내려오는 주장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바그너는 '파르지팔'을 구상하고 나서 즉시 작곡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일들 때문에 미루다가 8년 후에야 겨우 시작했다. 바그너는 그 8년이라 기간동안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완성했고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1865년 8월에 '파르지팔'의 대본과 가사를 초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그너가 게으른 탓에 그런지, 또는 다른데 신경 쓸 일들어 너무 많아서 그런지, 그렇지 않으면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 그런지 그는 8년만이 대본에 겨우 손을 댔다가 다시 펜을 놓았으며 그로부터 11년반이 지나서야 '파르지팔'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는 그 기간동안 이번에는 링 사이클에 전념했었다. 링 사이클은 1874년에 완성되어 1876년 8월에 바이로이트에서 전편을 첫선 보였다. 바그너는 링 사이클이라는 어머어마한 작품을 완성한 후에야 숨을 돌리고 '파르지팔'에 시선을 돌릴수 있었다.  그리하여 '파르지팔'의 음악과 시(대본)가 모두 완성된 것은 아마도 1879년 8월 쯤이었다. (바그너는 자기 오페라의 대본을 시라고 불렀다.)

 

클링조르의 마법의 정원에서의 파르지팔. 2막.

 

[바이로이트에서의 초연]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왕은 바그너가 '파르지팔'을 완성했다고 하니까 어서 듣고 싶어서 안달을 했다. 바그너는 실제로 무대에서 공연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면서 참으라고 했지만 루드비히는 조금 맛보기만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고 간청했다. 그래서 바그너는 1880년 11월 12일에 바이로이트극장이 아닌 뮌헨궁정극장에서 '파르지팔'의 전주곡을 루드비히를 위해 직접 지휘하여 들려주었다. 루드비히 왕은 우선 전주곡이지만 감동을 먹고 어서 전편을 보고 싶어했다. '파르지팔' 전편이 역사적인 초연을 가진 것은 그로부터 2년 후인 1882년 7월 26일 바이로이트극장에서였다. 유태인 지휘자인 헤르만 레비(Hermann Levi)가 지휘했다. 헤르만 레비는 당시 뮌헨궁정극장의 지휘자였다. 루드비히 왕이 바그너에게 '파르지팔'의 초연은 헤르만 레비가 지휘하는 것이 좋겠다고 강력히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실상 바그너는 성배에 관한 기독교 오페라인데 유태인이 지휘하는 것은 안된다고 거절했으나 대후원자인 루드비히의 청을 듣지 않을수 없어서 헤르만 레비로 하여금 초연의 지휘를 맡도록 했다. 그런데 헤르만 레비는 참으로 뛰어난 지휘자여서 바그너도 결국은 그를 무척 존경했다.

 

'파르지팔'에서 가장 장엄한 무대는 성배의 홀이다. 바그너는 이탈리아 시에나 대성당의 내부를 성배의 홀의 무대의 모델로 삼았다. 바그너는 1880년에 시에나 대성당을 방문하고서 '바로 이곳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클링조르의 마법의 정원은 라벨로(Ravello)에 있는 팔라쪼 루폴로(Palazzo Rufolo)를 모델로 삼았다. '파르지팔'은 7월 26일의 초연 이래 16회의 공연을 가졌다. 헤르만 레비와 프란츠 피셔(Franz Fischer)가 번갈아 지휘했다. 바이로이트에서의 '파르지팔' 공연에는 107명의 오케스트라, 135명의 합창단, 23명의 솔로이스트들이 출연하는 대규모였다. 주역급 솔로이스트들이 많은 것은 더블 캐스트였기 때문이었다. 바이로이트에서의 마지막 날 3막의 연주는 바그너 자신이 헤르만 레비로부터 바톤을 넘겨 받아 지휘를 했다. 바이로이트의 공연에서는 몇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1막에서 장면을 변경할 때에 무대배경을 옮기는 시간이 너무 걸리기 때문에 파르지팔과 구르네만츠가 성배의 홀에 도팍하기 전에 이미 간주곡이 끝난 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작을 보조하던 엥겔버트 훔퍼딩크는 이 간격을 커버하기 위해 약간의 음악을 덧붙여 놓았다. 그러나 그 다음해에는 장면을 바꾸는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서 훔퍼딩크가 만들어 넣은 추가음악을 연주하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성배의 홀'의 모델이 된 이탈리아 시에나 대성당의 중앙제단

                   

['파르지팔'은 바이로이트에서만]

'파르지팔'은 초연 이래 20년 동안 바이로이트에서만 공연되었다. 바그너가 그렇게 해야 된다고 강력히 주장했기 때문이다. '파르지팔'이 바이로이트를 떠나 공연되었던 예외도 있었다. 1884년과 1885년에 뮌헨에서 루드비히 왕을 위해 8회에 걸쳐 비공식적인 공연을 가진 것이다. 바그너가 '파르지팔'이 바이로이트에서만 공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다른 아무 장소에서나 공연되면 '파르지팔'의 신성함이 손상되므로 안된다는 것이었다. '파르지팔'을 사람들의 단순한 흥미꺼리로 공연한다면 작품이 퇴락된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므로 바이로이트에서만 바그너가 마음 속에 그린대로 공연될수 있다는 것이었다. 두번째 이유는 바이로이트에서만 '파르지팔'을 공연한다면 바그너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바그너의 가족들이 공연수입으로 생활에 도움을 받을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이로이트 당국은 바그너의 사후에 무대 공연이 아닌 콘서트로서는 다른 지역에서도 '파르지팔'을 연주할수 있다고 허용했다. 그래서 1884년에는 런던에서, 1886년에는 뉴욕에서, 암스테르담에서는 1894년에 '파르지팔'이 연주회 형식으로 연주되었으나 무대 공연은 바그너의 주장을 간곡히 받아들여서 바이로이트에만 국한하도록 했다. 그런데 1903년 12월 24일에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이 바이로이트에서 훈련받은 성악가들을 출연시켜 '파르지팔'을 공연하였다. 이를 위해 메트로폴리탄은 미국에서도 '파르지팔'을 공연할수 있다는 법원 허락을 받았다. 당시 독일의 저작권법에 의하면 작곡자의 사후 30년까지는 저작권에 해당하지만 그 이후에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저작권법은 작곡자의 사후 20년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1903년은 바그너가 세상을 떠난지 20년이 되는 해였다. 메트로의 책략에 속이 상한 코지마는 누구든지 뉴욕 공연에 출연했던 사람은 다시는 바이로이트의 무대에 설수 없는 줄 알라고 못박았다. 그런데도 바이로이트의 양해를 받지 않은 비공식 공연이 암스테르담에서 1905년, 1906년, 1908년에 열렸다. 바이로이트의 '파르지팔' 독점은 바그너 사후 만으로 30년이 지나는 1914년 1월 1일로 종료되었다. 이후 세계의 몇몇 극장들은 1913년 12월 31일 자정부터 '파르지팔'을 공연하기 시작했다. 첫번째로 공인된 공연은 바르셀로나의 리체우대극장에서 1913년 12월 31일 밤 10시 반에 시작한 것이었다. 바이로이트와 한 시간의 시차가 있는 것을 이용하여서였다. '파르지팔'에 대한 공연요청이 너무 많아서인지 1913년 1월 1일부터 1914년 8월 1일까지 유럽에 있는 50개 극장이 '파르지팔'을 공연하였다.

 

[박수에 대한 규정]

오늘날 바이로이트에서는 '파르지팔'이 공연될 때에 1막이나 2막이 끝나도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다. 바이로이트에서 박수는 3막이 다 끝나야 친다. 바그너의 요망에 의해서 그런 전통이 생겼다. 그런데 바이로이트의 그런 전통에는 약간의 오해가 있다. 바그너는 '파르지팔'의 초연에서 사람들이 1막이 끝나자 박수를 치자 오페라의 엄숙한 무드가 요란한 박수 때문에 유지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막이 끝나서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커튼 콜을 요구하자 무대 앞으로 나와서 출연자들은 전체 오페라가 끝날 때까지 커튼 콜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그너의 이런 말은 관중들을 혼란에 빠트린 것이었다. 관중들은 오페라가 끝나고 나서 출연자들이 커튼 앞으로 나올 때까지 박수를 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뜻으로 알아 들었다. 그래서 3막이 끝나고 막이 내려졌는데도 박수를 칠 생각을 잠시 보류하고 있었다. 바그너는 오페라가 다 끝났는데도 관중들이 박수를 치지 않고 조용히 있자 다시한번 무대 앞에 나와서 반드시 박수를 치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므로 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다. 바그너는 관중들이 박수를 치지 않고 조용히 있으니까 관중들이 '파르지팔'을 좋아하는지 어떤지를 알수 없기 때문에 답답했던 것이다. 다음날 공연에서 관중들은 바그너의 의중이 1막과 2막의 끝에만 박수를 치지 말라는 것이라고 알고 그렇게 했다. 그로부터 그것은 바이로이트의 전통이 되었다. 그런데 물론 이것은 바그너의 처음 의도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바그너는 2막에서 플라워 메이든(꽃 처녀)들이 퇴장하자 '브라보'라고 소리치면서 스스로 감탄했다. 관중들은 그런 바그너에게 조용히 하라고 오히려 힐난했다. 바이로이트 이외의 다른 극장에서 '파르지팔'이 공연될 때에는 하나의 막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는 것이 일반이다. 그러나 메트로폴리탄만을 비롯한 세계의 주요 극장들은 바이로이트의 전통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매 막마다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을 관례로 삼고 있다.

 

[전후의 공연]

'파르지팔'은 초연 이래 오늘날 까지 바이로이트에서 고정적으로 공연되고 있는 오페라 중의 하나이다. 그러면서 시대의 변화와 함께 제작상의 변천이 있어왔다. 2차 대전 이후의 제작 중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것은 1951년 바그너의 친손자인 빌란트 바그너가 제작한 것이다. 성배의 홀과 꽃 처녀들의 방이 상상력이 부족한 세트라고 생각되어 대단한 변화를 시도하였다. 대신에 조명으로서 효화를 주었다. 새로운 제작에서는 되도록이면 복잡한 무대배경을 지양하고 단순화한 배경을 도입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스위스의 무대디자이너인 아돌프 아피아(Adolphe Appia)의 아이디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오느날에는 보다 현대적인 감각에서 무대를 설정한다. 고전적인 세트를 고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대신에 바그너의 음악에 보다 충실코자 하고 있다. 빌란트 바그너의 공적을 간과할수는 없다. 그는 196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바이로이트 제작을 보다 세련되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12년도 바이로이트 제작의 '파르지팔'

 

[역할들]

타이틀 롤은 파르지팔(T)이다. 성배를 찾아 떠나는 기사이다. 가장 순수하고 천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기사이다. 쿤드리(Kundry: S 또는 MS)는 마법사인 클링조르의 권세 안에 있는 여인이다. 구르네만츠(Gurnemanz: B)는 성배의 기사 중에서 가장 연로한 선임자이다. 암포르타스(Amfortas: Bar)는 성배 왕국의 통치자이다. 클링조르(Klingsor: B-Bar)는 마법사이다. 티투렐(Titurel: B)은 암포르타스의 아버지이다. 여기에 두명의 성배기사(T. B)와 네명의 종자(S, A, 2 T)와 여섯 명의 꽃 처녀(3 S, 3 Cont. 또는 6 S), 천상의 소리(Cont), 성배의 기사들, 소년들, 꽃 처녀들이 추가로 등장한다.

 

타이틀 롤의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성창을 들고 있다.

 

[스토리]

파르지팔과 성배에 대한 스토리는 1170년과 1220년 사이에 유럽에서 여러 형태로 등장한 것이다. 자기 오페라의 대본을 모두 자기가 직접 써왔던 바그너는 파르지팔에 대한 중세로부터의 전설과 구전과 서적들을 참고하여 이번에도 대본을 직접 작성하였다. 바그너는 작곡자가 대본도 함께 쓸 때에 완벽한 오페라를 만들어 낼수 있다고 믿었다. 주인공인 파르지팔은 순진하고 순수한 청년이다. 다시말하여 '어리석고 바보와 같은' 청년의 이름이다. 그는 너무나 순수하지만 세상에 대하여 차차 이해하기 시작한다. 성배는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했던 포도주잔을 말한다. 성창(聖槍)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로마 병사가 예수께서 아지도 살아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창을 말한다. 성배와 성창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스러운 유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아리마대 요셉이 성배와 성창을 영국으로 가져온 것을 세월이 흘러 티투렐과 성배의 기사들이 스페인 북부 산악지대의 바위 산속에 몽살바트(Monsalvat) 성을 짓고 그곳에 비밀스럽게 간직해 왔다는 것이다. 티투렐의 아들이 성배의 기사들의 왕인 암포르타스이다. 성배의 왕국 옆, 즉 몽살바트성의 아래 쪽 계곡에는 마법사 클링조르의 성이 있다. 클링조르는 성배와 성창을 가져가려고 기회만 엿보고 있다. 성배의 기사들은 만에 하나라도 클링조르가 침입하여 성물들을 훔쳐갈 것에 대비하여 경계를 근엄하고 서고 있다. 마법사인 클링조르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처녀들(꽃 처녀들)을 마법의 정원에서 지내도록 하고 있다. 처녀들은 클링소르의 마법에 구속되어 있다. 처녀들 중의 하나가 쿤드리이다. 쿤드리는 이미 여러 명의 기사들을 클링조르의 마법의 힘을 빌어서 유혹한바 있다. 그런데 사실상 쿤드리는 성배의 성실한 메신저이다. 티투렐의 아들인 암포르타스도 쿤드리의 유혹에 저항할수 없었다. 암포르타스는 가지고 있던 창을 빼앗겼으며 심하게 부상을 당했으나 다른 가시들에 의해 겨우 구조되었다. 오페라가 시작되면 암포르타스가 고통 중에 누워있다. 암포르타스의 상처를 치료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클링조르가 빼앗아 간 성창으로서 상처의 부위에 대는 것이다. 클링조르로부터 성창을 다시 가져올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이 있다. '순수한 바보'로서 세상의 악함을 하나도 알지 못하며 꽃 처녀들이 아무리 유혹을 한다고 해도 넘어가지 않는 청년이어야 한다.

 

성배가 간직되어 있다고 하는 스페인 북부 산악지대의 몽살바트성 그림

 

1막 1장. 몽살바트성 인근의 숲이다. 몽살바트성은 성배가 간직되어 있는 곳으로 이곳에는 성배의 기사들이 성배를 지키고 있다. 성배의 기사 중에서 가장 연로하고 선임자인 구르네만츠가 시종들을 깨워 그들과 함께 기도를 드린다. 구르네만츠는 성배의 기사의 왕인 암포르타스가 다른 기사들과 함께 오는 것을 본다. 암포르타스는 마법사 클링조르와의 전투에서 그가 가지고 있던 성창으로 오히려 부상을 당했으며 성창은 클링조르에게 빼앗겼다. 암포르타스의 상처를 치료하자면 다른 모든 것은 필요없고 다만 성창이 있어야 한다.  

 

구르네만츠가 기사들의 대장에게 암포르타스의 상태를 물어본다. 기사장은 왕이 밤새도록 상처때문에 고생했으며 지금은 아침이 되어 성스러운 호수에 목욕을 하러 갔다고 대답한다. 왕의 종자들이 구르네만츠에게 어떻게 하면 왕의 상처를 치료할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구르네만츠는 대답을 회피한다. 그때 마치 정신나간 여자처럼 보이는 쿤드리가 뛰어 들어온다. 쿤드리는 구르네만츠에게 아라비아에서 가져왔다는 향유병을 주며 이것으로 암포르타스 왕의 고통을 덜어 줄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곧이어 쿤드리는 기진맥진하여 그 자리에 쓰러진다.

 

성배의 기사들이 들것에 누운 암포르타스 왕을 데리고 들어온다. 왕은 기사 가웨인(Gawain)을 찾는다. 가웨인은 암포르타스 왕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었으나 실패했다. 가웨인은 왕의 고통을 덜어줄수 있는 다른 방법을 구하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고 없다. 암포르타스는 가웨인이 자기의 허락도 없이 떠난 것은 (Ohn' Urlaub?)제멋대로의 충동에서 그런 것이라며 잘못하다가는 클링소르에게 붙잡힐수도 있으니 걱정이라고 말한다. 암포르타스 왕은 구르네만츠가 주는 약을 마시고 그 약을 가져온 쿤드리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쿤드리는 감사의 말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어서 가서 목욕을 하라고 권한다.

 

암포르타스의 일행들이 떠난다. 종자들은 쿤드리를 믿을수 없다는 눈치이다. 쿤드리가 그런 종자들에게 무어라고 대꾸하다가 금새 잠잠해 진다. 구르네만츠가 종자들에게 쿤드리는 지금까지 성배의 기사들을 자주 도와주었다고 말하고 다만 오고가는 것을 예측할수 없다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구르네만츠는 쿤드리에게 어찌하여 계속 머물면서 도와주지 않느냐고 묻자 쿤드리는 '나는 결코 누구를 돕지 않아요'(Ich helfe nie!)라고 대답한다. 종자들은 쿤드리가 마녀라고 생각한다. 종자들은 쿤드리에게 그렇게 도와주고 있고 능력이 있다면 어찌하여 성창을 찾아주지 못하느냐고 조롱한다. 구르네만츠는 성창을 찾는 일은 운명적으로 이미 다른 누구에게 맡겨진 일이라고 말한다. 구르네만츠는 암포르타스가 성창을 지키는 책임을 맡았지만 클링조르의 정원에 있는 어떤 매력적인 여인에게 유혹을 당하여 성창을 잃어버렸다고 설명한다. 클링조르는 암포르타스의 성창을 빼앗아 그것으로 암포르타스를 찔러 상처를 입혔다. 암포르타스는 말할수 없는 고통을 겪지만 그보다도 성창을 빼앗겼다는 수치심으로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되었다. 암포르타스는 자기의 잘못으로 성창을 잃었으므로 성창으로 상처를 치료받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왕의 종자들이 왕의 목욕실에서 돌아와서 구르네만츠에게 왕이 쿤드리가 가져온 향유로 목욕을 하였더니 상처의 고통이 상당히 완화되었다고 전한다. 구르네만츠의 시종이 구르네만츠에게 클링조르를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 구르네만츠는 십자가에 달리신 구세주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러 물과 피가 흐르게 만든 성창과 그 물과 피를 담았던 성배가 어떻게 영국으로 건너오게 되었으며 또 어떻게 몽살바트성에 간직되어 암포르타스왕의 아버지인 티투렐이 지키게 되었는지를 엄숙하게 설명한다. 이어 클링조르도 성창과 성배를 지키는 기사가 되고자 했으나 마음 속에 있는 순결치 못한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므로 기사단에서 추방당했다고 설명한다. 성배의 성에서 쫓겨난 클링조르는 어둠의 마법을 익혀서 성배의 성 아래쪽 계곡에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그곳에 매력적인 꽃 처녀들을 두어 성배의 성을 찾아오는 기사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암포르타스가 성창을 빼앗긴 곳도 바로 이곳이라는 것이며 클링조르는 성창을 가지고 있으면서 성배까지도 차지하려고 계략을 꾸미고 있다고 한다. 구르네만츠는 그후 암포르타스가 성스러운 환영을 보았는데 환영이 말하기를 '긍휼의 마음을 가진 순진한 바보'만이 상처를 고칠수 있다고(Durch Mitleid wissend, der reine Tor)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에 기사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린다(Weh! Weh!). 날아가는 백조 한마리를 누가 활로 쏘아 떨어트렸다는 것이다. 백조는 성배의 기사들이 신성시하는 새이다. 잠시후 백조를 쏘았다는 젊은이가 끌려온다. 손에는 활을 들었고 등에는 화살 한 묶음을 메고 있다. 구르네만츠는 젊은이에게 이곳은 성스로운 장소라고 엄숙히 꾸짖는다. 구르네만츠는 곧바로 젊은이에게 백조를 쏘았느냐고 묻는다. 젊은이는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이 날아가는 것은 모두 화살을 쏘아 맞출수 있다고 말한다(Im Fluge treff' ich was fliegt!). 파르지팔은 백조를 죽인 것이 잘못된 일인지를 모르고 있다. 구르네만츠는 젊은이에게 백조가 무슨 해를 끼쳤느냐고 묻고 죽은 백조를 보여준다. 죽은 백조를 본 젊은이는 후회하면서 다시는 활을 쏘지 않겠다는 뜻으로 가지고 있던 활을 부러트린다. 구르네만츠는 젊은이에게 어찌하여 이곳에 오게 되었느냐, 이곳은 어떻게 알았느냐,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젊은이는 질문들에 대하여 그저 모른다고 대답한다.

 

구르네만츠는 그러면 아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젊은이는 헤르첼라이데(Herzeleide)라는 어머니가 있으며 활은 그가 직접 만들었다고 대답한다. 한쪽에 있으면서 이런 대화를 듣고 있던 쿤드리가 나서서 이 젊은이의 아버지는 가무레트(Gamuret)라는 기사인데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말하고 그래서 젊은이의 어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처럼 될까보아 두려워서 기사의 아들이지만 칼을 쥐고 싸우는 법을 배우지 못하도록 했다고 설명한다. 젊은이는 어느날 숲에서 한 무리의 기사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집을 떠나 기사들의 뒤를 쫓아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쿤드리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말을 타고 이곳으로 오다 보니까 젊은이의 어머니가 아들이 집을 떠나자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젊은이는 슬픔에 넘쳐서 그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쿤드리도 피곤한지 잠이 들려고 한다. 그러자 쿤드리는 정신을 차린듯이 만일 한번 잠에 삐자면 절대로 깨어날수 없으므로 잠이 들면 안된다고 소리친다. 그러면서 쿤드리는 숲속으로 사라진다.

 

구르네만츠는 젊은이가 이곳까지 온 것은 성배가 인도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성배는 경건한 사람만을 몽살바트로 인도하여 오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이를 성배의 의식을 지켜 보도록 한다. 젊은이는 성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젊은이는 걸어가면서 도무지 움직이는 것 같지 않은데 뒤돌아보니 한참이나 지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구르네만츠는 성배의 영역에서는 시간이 공간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해 준다(Zum Raum wird hier die Zeit). 1장이 끝나고 오케스트라 전주곡이 2장으로 이끈다.

 

바이로이트에서의 '파르지팔' 초연에서 파르지팔을 맡은 헬덴테너 헤르만 빈켈만(Hermann Winkelmann), 구르네만츠를 맡은 베이스 에밀 스카리아(Emil Scaria), 쿤드리를 맡은 메조소프라노 아말리 마테르나(Amelie Materna). 1882년.

 

1막 2장. 모두들 성배의 홀에 들어선다. 기사들이 성배로서 성만찬을 받기 위해 모여 있다(Zum letzten Liebesmahle). 티투렐의 음성이 들린다. 그의 아들 암포르타스에게 성배를 덮었던 것을 벗기라고 말한다. 암포르타스는 수치심과 상처의 고통으로 제대로 처신을 하지 못한다(Wehvolles Erbe, dem ich verfallen). 암포르타스는 성배와 성창을 지키는 책임이 있지만 유혹에 못이겨 성창을 잃었다. 암포르타스는 이 집회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선언한다. 암포르타스는 울부짖으며 용서를 구한다(Erbarmen!). 그렇지만 암포르타스는 어떤 순진한 바보에 의해 구원받을 것이라는 약속의 소리를 들을 뿐이다. 

 

성배의 홀에서의 성만찬 의식

 

그 자리에 있던 젊은이는 암포르타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자 자기도 함께 암포르타스의 고통을 겪는듯 가슴을 쥐어뜯는다. 한편, 성배의 기사들과 티투렐의 음성은 어서 암포르타스에게 성배를 꺼내라고 다시 재촉한다(Enthüllet den Gral). 암포르타스는 비록 고통스러운 처지이지만 성배를 꺼내는 일이 자기의 의무이르모 마침내 성배의 덮개를 벗겨 모두에게 들어 보인다. 어둡던 성배의 방은 성배로부터 나오는 빛으로 환해진다. 기사들이 성만찬을 먹는다. 구르네만츠가 젊은이에게 성만찬에 동참하라고 손짓을 한다. 그러나 젊은이는 마치 황홀경에 빠진듯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한다. 암포르타스는 성만찬에 동참하지 않는다. 고통과 수치스러움 때문이다. 그는 성만찬이 끝날 때쯤해서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쓰러진다. 종자들이 그를 들것에 누여 데리고 나간다. 성배의 홀에 있던 기사들이 하나 둘씩 나가고 나중에는 구르네만츠와 젊은이만 남는다. 구르네만츠는 젊은이에게 지금까지 본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겠느냐고 묻는다. 젊은이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구르네만츠는 젊은이를 그저 그런 바보로 여기고 나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만일 반드시 사냥을 하게 된다면 백조 대신에 거위를 쏘라고 말한다. 위로부터 또다시 소리가 들린다. 긍휼함으로 깨달은 순진한 바보만이 성창을 찾을수 있고 암포르타스의 상처를 치료할수 있다는 소리이다.

 

쿤드리와 구르네만츠와 파르지팔

 

2막 1장. 클링조르의 마법의 성이 무대이다. 클링조르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쿤드리를 마법으로 깨운다. 클링조르는 쿤드리를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첫째 여자마법사, 지옥의 장미, 헤로디아스, 군드리지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쿤드리라고 부른다. 쿤드리는 이제 말할수 없이 매력적인 여인으로 변신해 있다. 암포르타스를 유혹할 때의 모습이다. 쿤드리는 클링조르가 남자의 구실을 못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 조롱한다. 그러면서 너무 순진하지 않느냐고 묻는다(Ha ha! Bist du keusch?). 그러한 쿤드리지만 클링조르의 마법의 힘에는 저항하지 못한다. 클링조르는 파르지팔이 걸어오는 것을 바라본다. 클링조르는 그의 마법에 걸린 기사들에게 저 소년과 싸우라고 한다. 클링조르는 파르지팔이 마법의 기사들을 물리치는 것을 바라본다. 클링조르는 무슨 기사들이 저러냐고 하면서 기사들을 모두 파멸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클링조르는 젊은이가(파르지팔) 꽃 처녀들이 있는 정원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모습을 본다. 클링조르는 쿤드리를 불러 젊은이를 유혹하라고 말한다. 쿤드리는 파르지팔에게 다가가서 유혹을 시작한다.

 

2막 2장. 마법의 기사들을 물리친 파르지팔은 마법의 정원에서 아름답고 요염한 꽃 처녀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꽃 처녀들은 파르지팔을 유혹하기 위해 별별 수단을 다 쓴다(Komm, komm, holder Knabe!). 그러더니 파르지팔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다투고 싸운다. 파르지팔이 견디다 못해 그 자리에서 도망가고자 한다. 그때 어떤 음성이 들린다. '파르지팔'이라고 부르는 소리이다. 그는 그제서야 어머니가 부르던 자기의 이름이 파르지팔인 것을 기억한다. 꽃 처녀들은 파르지팔을 바보라고 부르면서 사라진다. 무대에는 파르지팔과 쿤드리만이 남아 있다.

 

클링조르의 마법의 정원에서 꽃 처녀들이 파르지팔을 유혹코자 한다. 에어푸르트. 현대적 연출.

 

파르지팔은 그 정원에 있는 것이 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쿤드리에게 자기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는다. 쿤드리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Ich sah das Kind an seiner Mutter Brust). 파르지팔의 어머니는 그를 지극히 사랑하여서 그의 아버지와 같은 운명이 되지 않도록 보호해 왔다. 파르지팔은 그런 어머니를 버리고 떠났으며 결국 어머니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쿤드리는 파르지팔에게 그에 대하여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을 얘기해 준다. 파르지팔은 점점 기억을 찾으며 후회에 빠진다. 파르지팔은 어머니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고 하며 자책한다. 파르지팔은 자기야 말로 어머니조차 생각하지 못하는 바보라고 생각한다. 쿤드리는 파르지팔에게 어머니를 생각한다는 것은 깨달음의 시작이라고 말하면서 파르지팔에게 키스를 하며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파르지팔은 쿤드리와 키스를 하자 갑자기 고통스러워하며 암포르타스의 이름을 소리쳐 부른다. 파르지팔은 부상당한 암포르타스의 고통이 자기의 몸에서 타오르는 것처럼 느낀다. 파르지팔은 이제야 성배의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암포르타스가 보여준 고난을 이해할 것 같다(Amfortas! Die Wunde! Die Wunde!). 파르지팔은 이러한 긍휼함에 충만하여 쿤드리의 유혹을 거절한다.

 

파르지팔이 십자가의 공로에 힘입어 클링조르의 사악함을 퇴치한다.

 

쿤드리는 자기의 계략이 실패한 것을 알고는 분에 넘친다. 쿤드리는 파르지팔에게 만일 암포르타스에 대한 동정심이 생긴다면 자기에게도 같은 동정심을 보여주라고 요청한다. 쿤드리는 지난 수세기 동안 쉬지 못하는 저주를 받았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조롱을 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아서였다. 이제 쿤드리는 결코 눈물을 흘릴수 없다. 오직 웃기만 할뿐이다. 그리고 클링조르의 노예가 되어 있다. 파르지팔은 쿤드리에게 암포르타스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말한다. 쿤드리는 단 한 시간만이라도 함께 있자고 하면서 파르지팔을 만류한다. 그런 후에 암포르타스에게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한다. 파르지팔이 계속 거절하자 쿤드리는 그가 성배의 왕국을 찾지 못하고 방황만 하라고 저주한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자기의 주인인 클링조르를 부르며 도움을 청한다. 클링조르가 나타나서 파르지팔을 죽이기 위해 성창을 던지지만 성창은 파르지팔의 머리 위에 머물러 있고 파르지팔을 맞추지 못한다. 파르지팔이 손을 뻗어 성창을 잡아 십자가의 모습으로 만든다. 마법의 성이 무너진다. 파르지팔은 그 자리를 떠나면서 쿤드리에게 자기가 어디 있는지를 알 것이므로 찾아오라고 말한다.  

 

쿤드리는 십가가에 달려 고난을 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는다. 파르지팔의 한 장면.

                       

3막 1장. 무대는 제1막과 같은 성배의 성 인근 지역이다. 처음에 파르지팔이 성배의 홀에 동참했을 때로부터 몇년이 지났다. 구르네만츠는 이제 너무 연로하여서 거동하기에도 불편하다. 구르네만츠는 그가 머물고 있는 작은 암자의 부근에서 누가 신음하는 소리를 듣는다. 쿤드리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 마치 몇년 전 숲에서 발견했을 때와 마찬가지의 모습이다(Sie! Wieder da!). 구르네만츠는 성스러운 생에서 물을 떠서 쿤드리에게 마시게 하여 기운을 차리게 한다. 그러나 쿤드리는 오직 '서브'(Dienen)이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한다. 구르네만츠는 이 시점에서 쿤드리가 다시 나타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 한다. 그로부터 쿤드리는 기사들을 위해 하녀처럼 봉사한다. 그때 숲 속에서 어떤 기사가 검은 갑옷을 입고 창을 든 채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이상한 기사는 얼굴을 가리는 투구를 썼기 때문에 누구인지 알수 없다. 마침 그날은 성금요일이다. 구르네만츠는 성금요일에 미지의 기사가 찾아오자 이상하게 생각한다. 구르네만츠가 누구냐고 묻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다. 마치 유령과 같다. 하지만 쿤드리는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마침내 유령과 같은 그 기사가 투구를 벗는다. 구르네만츠는 예전에 백조를 쏘아 죽인 젊은이인 것을 알게 된다. 구르네만츠가 젊은이가 들고 있는 것이 성창인 것을 알고는 드디어 성창을 다시 찾았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파르지팔은 암포르타스에게 가고 싶다고 말한다(Zu ihm, des tiefe Klagen). 파르지팔은 그동안 몇년에 걸쳐 여러 곳을 방황하였으며 성배의 성에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하다가 이제야 돌아오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구르네만츠는 파르지팔에게 이제 쿤드리의 저주가 풀려 올바른 길을 찾아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암포르타스는 한번도 성배를 보여주지 않았으며 그의 아버지인 티투렐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한다. 구르네만츠는 오늘이 바로 티투렐의 장례식이 있는 날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파르지팔의 수행해야 하는 커다란 임무가 있다고 말한다. 구르네만츠는 파르지팔에게 성배의 기사의 복장을 입혀준다. 쿤드리가 나타나서 파르지팔의 발을 씻고는 자기의 긴 머리칼로 젖은 발을 닦는다. 마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발에 향유를 바르고 자기의 긴 머리칼로 씻는 장면과 같다. 구르네만츠는 파르지팔의 머리에 성스러운 샘에서 떠온 물을 부어 세례를 준다. 구르네만츠는 파르지팔이 '가장 순수한 바보'이며 긍휼함으로 깨달을 얻은 것을 인정한다. 구르네만츠는 파르지팔을 성배의 기사들의 새로운 왕으로 인정한다.

 

파르지팔은 주위를 둘러보며 초목의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구르네만츠는 오늘이 바로 성금요일이라고 말한다. 모든 세상이 새로워지는 때라는 것이다. 파르지팔은 눈물로서 참회하고 있는 쿤드리에게 세례를 준다. 세례가 끝나자 멀리서 종소리가 무겁게 들린다. 구르네만츠는 '정오이다. 시간이 되었다. 주여, 당신의 종이 당신을 인도하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세 사람은 성배의 성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어두운 느낌의 오케스트라 간주곡이 밝고 장중한 곡으로 바뀐다. 성배의 홀에 기사들이 모여 있는 다음 장면을 예언하는 음악이다.

 

쿤드리는 이제 죄악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쓴다.

                          

3막 2장. 성배의 성이다. 암포르타스를 성배의 홀에 데려온다. 티투렐의 석관도 이곳에 있다. 암포르타스는 아버지 티투렐의 죽음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는 이제로부터는 고통과 근심이 없이 평안히 쉬시라고 말하고 그의 죽음에 함께 하고 싶다고 바란다(Main Vater! Hochgesegneter der Helden!). 성배의 기사들이 암포르타스에게 이제 그만 애도하고 어서 성배를 꺼내어 보이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암포르타스는 다시는 성배를 보여주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주변에 있는 기사들에게 자기를 칼로 찔러 죽여서 자기가 겪은 수치와 고통을 끝내 달라고 당부한다. 그 순간에 파르지팔이 앞으로 나서면서 오직 하나의 무기만이 그의 상처를 치료할수 있다고 말한다(Nur eine Waffe taugt). 그러면서 들고 있던 성창으로 암포르타스의 상처를 매만진다. 상처가 깨끗하게 낫는다. 암포르타스의 고통은 행복으로 변한다. 동시에 암포르타스의 죄가 사함을 받는다. 제단이 열리면서 환한 광채에 싸인 성배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들 성배 앞에 무릎을 꿇는다. 쿤드리에게 내려졌던 저주가 풀린다. 그와 함께 쿤드리는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움직일 줄을 모른다. 평화스럽게 숨을 거둔 것이다. 모두가 용서함을 받았다. 그때 한 마리의 하얀 비둘기가 내려와 파르지팔의 머리 위에서 맴돈다. 음악은 성배와 성만찬에 대한 라이트모티프가 클라이막스를 이룬다.

 

파르지팔이 성배를 들고 감격해 하고 있는 중에 천사와 같은 성배의 기사들이 성배를 옹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