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

음악극 '아프터 아이다'(After Aida)

정준극 2013. 2. 26. 09:17

음악극 '아프터 아이다'(After Aida)

 

음악극 '아프터 아이다'의 포스터

 

음악극(play with music) '아프터 아이다'(After Aida)는 '아이다'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은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베르디를 설득하여 '아이다'이후 16년 만에 '오텔로'를 작곡하게된 배경 스토리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영국의 극작가로서 최근 영화로도 제작되어 관심을 끈 Another Country(어나더 컨트리)를 써서 인정을 받은 줄리앙 미첼(Julian Mitchell: 1935-)이 대본을 썼다. 오리지널 타이틀은 '베르디의 메시아'(Verdi's Messiah)이다.

 

대본을 쓴 줄리앙 미첼

 

영국 웰쉬내셔널오페라(WNO)의 총감독인 브라이언 맥마스터(Brian McMaster)는 줄리앙 미첼에게 웰쉬의 지방소도시 순회용의 연극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웰쉬내셔널오페라단은 별도의 오페라극장이 없는 지방소도시를 다니며 연극이나 오페라를 공연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맥마스터는 미첼에게 오페라 공연의 뒷무대 이야기를 한번 엮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다. 사람들은 오페라의 앞무대만을 볼뿐이며 무대 뒤의 이야기는 알지 못하므로 이번 기회에 뒷무대의 이야기를 보여주자는 의도에서였다. 미첼은 도대체 어떤 내용으로 극본을 써야할지 몰라서 걱정을 하던 중에 프랑크 워커(Frank Walker)가 쓴 베르디의 자서전인 The Man Verdi의 마지막 장에 Boito and Verdi 를 읽고 이 내용이라면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첼은 위대한 작곡가가 자기 갈등의 기산을 보내다가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작곡의 펜을 들게 되었다는 것은 마치 '돌아온 탕자'와 같은 시놉시스라고 생각했다.

 

미첼은 극작가이지 작곡가가 아니었다. 물론 그는 젊은 시절부터 오페라를 좋아하여 오페라극장을 자주 찾아갔지만 그렇다고 위대한 베르디의 이야기를 극본으로 쓸 줄을 상상도 못했다. 미첼은 오페라를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50세의 나이에 성악레슨을 받기 시작했으며 오페라 리허설이 있으면 빠짐없이 참석해서 찬찬히 연구했다. 심지어는 오페라에 출연할 성악가들을 오디션하는 장소에도 나타나서 참관하였다. 그런가하면 지휘자, 출연 성악가, 무대감독, 연출자, 연습코치, 무대장치가 등을 일일이 만나서 얘기를 나누었다. 미첼은 비록 무대라는 것이 한정된 스페이스이지만 그 무대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맡은 일을 힘들여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배타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예술가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제약도 많았다고 털어 놓았다. 그렇게 하여 미첼은 1985년에 음악극 '아프터 아이다'의 대본을 완성했다.

 

베르디의 역할을 맡은 리챠드 그리피스

 

2막으로 구성된 '아프터 아이다'는 1879년부터 1887년까지 베르디를 둘러싼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다. 베르디의 두 친구인 음악출판가 줄리오 리코르디(Giulio Ricordi)와 지휘자 프랑코 파치오(Franco Faccio)는 베르디가 본업인 오페라는 작곡하지 않고 집에서 마당이나 쓸면서 지내는 것을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했다. 이들은 베르디가 작곡의 펜을 내려 놓은 것이 이탈리아를 위해서도 큰 손해이고 자기들 개인으로 볼 때에도 손실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리코르디로서는 베르디가 자꾸 작곡을 해야 악보를 출판해서 돈을 벌수 있는데 그런 기회가 없으니 손해이며 파치오로서도 오페라를 자꾸 공연해야 지휘를 해서 돈을 벌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 손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모의를 하여 베르디로 하여금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토록 설득할 생각을 했다. 젊은 대본가인 아리고 보이토(Arrigo Boito)를 앞에 내세우기로 했다. 아리고 보이토는 전에 베르디를 위해 '시몬 보카네그라'의 대본을 수정해 준 일이 있다. 그때 베르디는 아리고 보이토의 재능을 높이 치하하였다. 게다가 아리고 보이토는 능력있는 작곡가이기도 했다. 리코르디와 파치오는 베르디가 셰익스피어의 열렬 팬인 것을 감안하여 아리고 보이토에게 '오텔로'의 대본을 써서 베르디에게 보여줄 것을 당부했다. 아리고 보이토의 동생인 카밀로 보이토도 베르디와 각별한 관계이 있었다. 카밀로 베르디는 베르디를 위해 '음악가를 위한 안식원'(Casa di Riposo per Musicisti)의 설계를 했다. 베르디의 부인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도 베르디로 하여금 작곡을 재개토록 하는 일을 거들었다. 실상 주세피나는 베르디가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이 미상불 보기에 민망스러웠던 터였다. 미첼의 대본은 베르디의 창작생활에서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이 된 사실을 부각하였다.

 

주세피나 스트레포니를 맡은 젬마 존스

 

연극은 연극이지만 음악이 함께 있는 연극이므로 귀에 익은 음악들이 등장한다. 베르디의 작품으로서는 '아이다' '리골레토' '에르나니' '맥베스' '시몬 보카네그라' '진혼곡' 그리고 '오텔로'의 음악이 나온다. 또한 아리고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와 로시니의 '오텔로'에 나오는 아리아도 등장한다. 음악극 '아프터 아이다'는 1985년 10월 24일 웨일스의 스완시(Swansea)에 있는 탈리신 극장(Taliesin Theater)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이후 원래의 계획대로 웨일스의 11개 소도시 극장에서 순회공연을 가졌다. 웰쉬내셔널오페라의 지방순회공연은 비록 규모가 작은 것이고 대단한 관심을 끄는 것도 아니었지만 출연진은 정상급이었다. 베드리 역은 노련한 배우 리챠드 그리피스(Richard Griffiths)가 맡았다. 주세피나 스트레포니는 초에 워나메이카(Zoe Wanamaker)가 맡았다. 1986년 3월 11일 런던의 올드빅(Old Vic)극장에서 런던초연을 가질 때에는 오리지널 캐스트가 대부분 그대로 등장하였으나 다만 주세페나 스트레포니만은 관록이 있는 젬마 존스(Gemma Jones: 1942-)가 맡았다. '아프터 아이다'는 기본적으로 연극이므로 배우들이 주역들을 맡았으며 성악가들은 오페라의 아리아들을 불렀다. '아프터 아이다'는 호의적인 리뷰를 받았다. 지성적이며 유머가 있고 당당하다는 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