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

베르디의 스페인 사랑

정준극 2013. 7. 23. 20:17

베르디의 스페인 사랑

 

세빌리아(세비야)의 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 25편을 고른다면 그 중에서 상당수는 스페인을 무대로 삼은 것이다. 스페인을 무대로 삼은 오페라 몇 편을 우선 생각나는대로 꼽아보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도니체티의 '라 화보리타', 비제의 '카르멘', 베토벤의 '휘델리오', 여기에 베르디의 걸작 4편이 있다. 오페라의 황제인 베르디는 28편의 오페라를 남겼는데 그중에서 4편이 스페인을 무대로 삼고 있다는 것은 흥ㅇ미로운 일이다.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 1835), '에르나니'(Ernani: 1844), '일 트로바토레'(Il Trovatore: 1853), '돈 카를로스'(Don Carlos: 1860)이다. 그런데 베르디도 그렇지만 모차르트로부터 비제에 이르기까지 세기의 작곡가들이 오페라의 배경을 스페인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스페인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와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 교회의 권세와 왕권간의 충돌, 이국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스페인의 멜로디, 활기에 넘친 전통 민속 춤의 리듬, 여인들의 정열만큼이나 뜨거운 날씨 때문일 것이다. 스페인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융합되어 있는 매력의 나라이다.

 

'에르나니'의 한 장면

                 

이 모든 요인들이 베르디의 마음을 끌었다. 베르디는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에서 이같은 요인들을 거장답게 발굴하였다. 평생을 억압에서의 해방과 자유를 지향해 왔고 장엄하고 화려한 무대를 이상으로 생각해 온 베르디는 강인한 성격의 인물로서 사랑과 증오, 은혜와 복수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주인공들을 찾았다. 가문간의 알력, 왕궁에서의 권력 다툼, 배신과 복수, 그리고 사랑과 용서와 화해는 베르디가 찾았던 소재였다. 특히 필립 2세와 같은 성격의 인물은 베르디의 요구조건을 충족시켜주는 대상이었다. 권력에 대한 한없는 욕망은 베르디의 스페인 오페라에서 자주 찾아볼수 있는 내용이다. 필립 2세는 권력에 집착한 인물이었다. 제국의 앞날을 위해 제국의 권세를 확대해야 한다는 무한한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그의 발아래에 있는 지역들이 그의 권력에 대항하여 고개를 든다면 가차없이 눌렀다. 플란더스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필립 2세에게도 인간적인 나약함이 있다. 특히 아무리 국왕이라고 해도 종교재판관의 발 아래에 있어야 했다. 그리고 왕비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베르디는 그러한 필립 2세에게 전체 오페라에서 가장 동정심을 받을 만한 아리아를 제공한다. 아마 '돈 카를로'에 대한 교회의 검열을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른다. 베르디는 또한 돈 카를로에 대하여도 무한한 동정심을 보여주었다. 돈 카를로스가 스페인으로부터 억압받고 있는 플란더스를 해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커다란 비중을 두었다. 그것은 당시 북부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의 억압을 받고 있으며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서였다.

 

베르디의 '돈 카를로스'(돈 카를로)의 한 장면. 돈 카를로가 필립 2세에게 플란더스의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스'는 원작인 쉴러의 '스페인의 왕자 돈 카를로스'에 비하여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오페라가 가지는 특성 때문에 스토리를 각색하였기 때문이다. 오페라에서는 돈 카를로가 어머니가 되는 왕비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서 돈 카를로와 엘이사베타 왕비의 역할이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실제로 돈 카를로스의 모습은 키가 작고 절름발이이며 더구나 정신적으로도 안정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신병을 고치기 위해서 당시에 뇌수술까지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 그런 의술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이상한 점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들은 모두 베르디의 영광스런 음악에 감싸여서 또 다른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되었다.

 

'돈 카를로스의 한 장면. 메트로폴리탄

                        

베르디가 좋아하는 문호들이 세명이 있다. 쉴러와 셰익스피어와 빅토르 위고이다. 베르디가 스페인을 배경으로 하여 만든 또 하나의 오페라인 '에르나니'는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무대는 1519년 사라고사이다. 사라고사는 아라곤 왕국의 수도였다. 바스크 지역을 거치는 중요한 지점이다. 그리고 스페인의 종교재판관의 이단사냥으로 인하여 수많은 순교자가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그와 같은 풍부한 역사적 배경이 베리디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운명의 힘'(La forza del distino 또는 Don Alvaro 또는 La Fuerza del Sino)는 스페인의 귀족인 '리바스 공작'(Duke of Rivas) 앙헬 페레즈 데 사베드라(Angel Perez de Saavedra)의 '격렬한 드라마'이다. 이야기는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에 따른 스페인 전쟁(1740-1748) 중에 일어난 내용을 드라마로 만든 것이다. 베르디는 원작에 그려진 사랑과 증오, 은인과 원수, 신에 대한 무한한 의지 등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또한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전쟁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수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의 내용이 허구적인 경우도 있고 또한 혼돈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운명의 힘'을 '혼돈의 드라마' 또는 '납득하기 어려운 스토리'라고 빈정대기도 했다. 실제로 그런지도 모른다. 증오로 인하여 무대에 널려 있는 시신들,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 복수와 살인, 종교의 개입 등은 좀 지나친 설정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가하면 '운명의 힘'은 마치 스페인 관광여행가이드나 마찬가지라는 소리도 있었다. 세빌라에서 시작하여 코르도바로 옮겼다가 다시 카디즈로 가소 이어 브루고스 인근의 수도원으로 가는가 하면 로마 근처의 스페인 군대의 진영으로 갔다가 마지막에는 수도원으로 돌아오는 대장정이므로 그런 소리가 나올만 했다. 그러나 음악만은 최고였다. 소프라노 레오노라의 아리아인 Vergine Degli Angeli(천사들의 성모마리아여)은 베르디의 소프라노 오페라 아리아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라는 평을 받았다. 테마음악은 너무나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이어서 예를 들면 이브 몽땅과  엠마뉘엘 베아르가 나오는 영화 '마농의 샘'의 주제곡으로도 사용되었다.

 

'운명의 힘'의 한 장면. 레오노라에 비올레타 우르마나.

                 

베르디의 스페인 배경 오페라 중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고 있는 것은 '일 트로바토레'이다. 스페인의 작가인 안토니오 가르시아 귀테레즈(Antonio Garcia Guiterrez)의 드라마 El Trobador(음유시인)를 바탕으로 했다. 15세기의 사라소사가 무대이다. 스토리가 복잡하기도 하지만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들도 있어서 혼돈을 준다. 특히 주인공들간의 관계가 모호하다. 애매한 설정은 전장터의 설정에서도 볼수 있다. 비스케이만으로부터 아라곤까지 걸쳐 있기 때문이다. 호머 스타일의 운명론이 지배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여러 상징들을 대면할수 있다. 어두운 밤의 타오르는 불길을 상징하는 바가 많다. 쇠사슬에 묶여 있는 만리코의 모습에서도 어떤 상징성을 읽을수 있다. 집시 여인(아주체나)은 마치 이 오페라의 주인공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베르디는 처음에 이 오페라의 타이틀을 '집시 여인'(La Zingara)이라고 하려고 했다. 이모든 모호와 혼돈이 있지만 이 오페라는 위대한 음악으로 불멸의 존재가 되어 있다.

 

'일 트로바토레'의 무대. 집시들의 '대장간의 합창'

 

[베르디 오페라의 무대배경] - 굵은 글씨는 스페인 배경. 오페라 제목의 알파벳 순서

 

○ Aida(아이다) - 이집트 멤피스

○ Alzira(알지라) - 페루 리마

○ Aroldo(아롤도) - 영국 켄트, 스코틀랜드

○ Attila(아틸라) - 로마 부근, 아드리아해 인근의 아퀴레이아

Don Carlos(돈 카를로스) - 파리 부근 퐁텐블러, 스페인 마드리드, 유스테 수도원

Ernani(에르나니) - 스페인 아라곤, 독일 아헨, 스페인 사라고사

○ Falstaff(활슈타프) - 영국 윈저

○ Giovanna d'Arco(조반나 다르코) - 프랑스 돔레미, 렝, 루앙 부근

○ I due Foscari(포스카리의 두 사람) - 베니스

○ I Lombardi alla prima crociata(첫 십자군의 롬바르디인) - 밀라노, 터키의 안티옥, 예루살렘 부근

○ I masnadieri(군도) - 독일 작소니, 프랑코니아

○ Il Corsaro(해적) - 에게해의 그리스 섬, 터키의 코로네

Il Trovatore(일 트로바토레) - 스페인 비스케이, 아라곤

○ Jerusalem(예루살렘) - 프랑스 툴루스, 팔레스타인, 예루살렘

○ La battaglia di Legnano(레냐노 전투) - 북부 이탈리아의 레냐뇨

La forza del destino(운명의 힘) - 스페인 세빌라, 호르나추엘로스, 이탈리아 벨레트리, 수도원

○ La Traviata(라 트라비아타) - 프랑스 파리와 파리 교외의 한적한 시골

○ Les vepres siciliannes(시실리의 만종) - 이탈리아 팔레르모

○ Luisa Miller(루이자 밀러) - 티롤

○ Macbeth(맥베스) - 스코틀랜드

○ Nabucco(나부코) - 예루살렘, 바벨론

○ Oberto(오베르토) - 북부 이탈리아

○ Otello(오텔로) - 사이프러스, 베니스

○ Rigoletto(리골레토) - 이탈리아 만투아

○ Simon Boccanegra(시몬 보카네그라) - 이탈리아 제노아

○ Stiffelio(슈티펠리오) - 독일 잘츠바흐 인근 마을

○ Un ballo in maschera(가면무도회) - 스웨덴 스톡홀름(또는 미국 보스턴)

○ Un giorno di regno(왕궁의 하루. 가짜 스타니슬라브) - 프랑스 브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