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와 여인들

오페라 속의 팜 파탈(Femme Fatele)

정준극 2013. 5. 12. 07:02

오페라 속의 팜 파탈(Femme Fatale)

요부를 주인공으로 삼은 오페라 탐방

델릴라, 살로메, 카르멘, 룰루 등등

 

생 상스의 '삼손과 델릴라'의 한 장면. 델릴라는 구약시대의 대표적인 요부(팜 파탈)로 인식되고 있다. 팔로 알토 공연. 델릴라가 그다지 요부처럼 생기지가 않고 착하게 생겼다. 삼손도 어눌하게 생겼고.

 

'팜 파탈'이란 용어가 있다. 프랑스어로 Femme fatale 라고 쓴다. '운명을 결정하는, 치명적인 여인'(Fateful woman)이라는 뜻이다. 한글 사전을 보면 '요부'(妖婦)라고 설명되어 있다. 또 어떤 자료에는 신비스럽고 유혹적인 여인을 의미한다고 되어 있다. 신비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잘못하다가는 신성(神性)과 관련이 있는 뜻이라고 생각할수가 있어서 난처하다. 이 경우에 신비하다는 말은 무엇이라고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뜻과 같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러므로 무엇이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남자를 유혹하여 꼼짝 못하게 만드는 여인을 말하는 것이라고 짐작된다. 사전에는 '팜 파탈'에 대하여 '아름다움, 매력, 섹스로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를 마치 포로나 노예처럼 만들어서 결국은 파멸로 이끄는 여자'라는 설명도 있다. 물론, 반드시 아름답거나 매력이 있지 않아도 남자를 파멸로 끌어 들여서 요부라는 호칭을 받는 경우도 없지 않다. 아무튼 팜 파탈이 어떤 여인을 말하느냐는 것을 설명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므로 대강 여기에서 마친다. 사실은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런데 팜 파탈은 예술 작품의 주인공으로 제격이어서인지 자주 등장한다. 팜 파탈에 속하는 여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페라만 해도 여러 편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델릴라' '살로메' '카르멘' '클레오파트라' '쿤드리'(파르지팔), '룰루' 등...계속 내세울수 있다.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팜 파탈로는 누가 있는지를 집중 탐구해 본다. 사족이지만, 팜 파탈을 악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악처는 크산티페(Xanthippe)라고 한다.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의 부인의 이름이다. 역사상 대표적인 악처로 꼽히는 여자이다. 그리고 크산티페 이외에 보통 악처라고하면 톨스토이의 부인인 소피아, 모차르트의 부인인 콘스탄체도 포함한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루크레치아 보르지아'(Lucrezia Borgia)의 타이틀 롤인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도 팜 파탈에 영입될수 있다. 루크레치아 보르지아(1480-1519)는 나중에 교황이 된 알렉산더 6세의 딸로서 그야말로 팜 파탈의 전형이었다.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그 전에 고대로부터 팜 파탈이라고 불리는 여인들은 누구누구가 있는지 알아보자. 동양은 제외하고 서양의 경우만을 따져 본다. 그리고 팜 파탈이라고 불리는 여인들은 실존 인물인 경우도 있지만 단순히 전설, 신화, 상상 속의 여인일수도 있다. 예를 들면 아프로디테(비너스), 사이렌, 스핑크스, 스킬리아, 메데아 등이다. 아프로디테(비너스)는 여신이지만 예술작품에서 세상적인 요부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에서 비너스는 탄호이저를 이런 저런 방법으로 유혹하여 어디 가지도 못하고 눌러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팜 파탈의 반열에 넣었다. 사이렌(Sirens)은 여신은 아니고 바다의 요정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요정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좀 귀여운 면이 있어서 과연 바다의 요정이라고 소개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사이렌은 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노래를 부르는데 한 번 들으면 정신을 빼앗아 버릴 정도의 매혹적이고 신비하며 괴기한 노래를 부르고  또 그런 식으로 속삭이기 때문에 항해하던 뱃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어 결국 바위에 좌초하게 만든다는 존재들이다. 사이렌들은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율리세의 조국 귀환'(Il ritorno d'Ulisse in patria)에 잠시 등장하며 현대작품으로는 독일의 아우구스트 분게르트(August Bungert: 1845-1915)의 '오디세이의 귀환'(Odysseus Heimkehr)에도 잠시 등장한다. 하지만 사이렌들이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경우는 아직은 없다.

 

사이렌이 노래를 불러 지나가던 배의 선원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들어 결국 배를 침몰시키는 장면의 그림

             

스핑크스(Sphinx)는 신화에 나오는 존재이지만 얼굴 생김이 대체로 여성이며 뭇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해서 그 또한 팜 파탈의 범주에 포함하고 있다. 오페라에서는 외디푸스 신화와 관련하여 스핑크스가 등장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서 알아 맞히지 못하면 재앙을 주는 역할이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외디푸스 렉스'(Oedipus rex)에서는 테베의 사람들에게 수수께씨를 내고 맞히지 못하자 테베에 저주를 주어 무서운 역병이 돌게 한다. 그러한 차에 외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알아 맞혀서 테베에 대한 저주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루마니아의 게오르그 에네스쿠(1891-1955)의 오페라 '외디프'(Oedipe)에도 스핑크스가 등장한다. 스킬라(Scyll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괴물이다. 그런데 스핑크스와 마찬가지로 얼굴이 여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팜 파탈의 대열에 포함하고 있다. 스킬리아(또는 실라)는 바다의 좁은 해협에 살고 있으면서 지나가는 배들을 침몰시킨다는 존재이다. 신화에서는 이탈리아 반도와 시실리 사이의 해협에 살고 있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힌두의 신인 비슈누의 여성 아바타인 모히니(Mohini)도 팜 파탈로 간주한다. 마법을 부리는 모히니는 남자 연인들을 정신이상이 생기도록 하여 파멸시킨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또 다른 인물로서는 메데아(Medea)와 클리템네스트라(Clytemnestra)가 있다.

 

메데의 소프라노 로잘린드 플로라이트. 1989년 로열 오페라 하우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데아에 대한 이야기는 무대가 코린토(Corinto: Corinthus)이다. 메데아는 콜키스의 공주로서 마법과 요술에 능하다. 메데아는 제이슨을 사랑하여 아버지 이이테스의 뜻을 거역하고 제이슨이 황금양털을 차지하도록 도와준다. 제이슨이 콜키스를 떠나려하자 메데아도 함께 떠나 다른 곳에서 제이슨의 부인으로서 몇 년을 같이 살며 두 아이까지 낳는다. 얼마후 제이슨은 코린토 크레온왕의 딸 크레우사와 결혼코자 한다. 이를 안 메데아는 크레우사에게 축하의 선물로 결혼 가운(웨딩드레스)을 보낸다. 누구든지 그 가운을 입으면 불이 붙어 죽는다는 무서운 가운이다. 크레우사가 가운을 입자마자 불에 타서 죽는다. 메데아는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 두 아이들까지 살해한다. 또 다른 버전에 따르면 성난 코린도 시민들이 제이슨과 크레우사를 돌로 쳐 죽인다고 되어 있다. 그후 메데아는 아테네로 가서 이게우스왕과 결혼한다. 케루비니의 '메데아'는 그동안 별로 알려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1953년 마리아 칼라스가 타이틀 롤인 메데아의 역할을 맡자 크게 각광받게 되었다. 이로서 메데아는 오늘날 오페라 애호가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메데아(마리아 칼라스)와 두 아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데아(프랑스어로는 메데)를 주인공으로 하여 여러 사람이 오페라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은 마르크 안투안 샤펜티에(Marc Antoine Charpentier: 1643-1704)의 '메데'(Medée)이다. 1693년에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그리고 1953년에 마리아 칼라스가 맡아서 열광을 받았던 작품이다. 오페라의 연혁에서 글룩과 파치니(Giovanni Paccini: 1796-1867)의 오페라 경연대회는 유명한 일화이다. 파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글룩과 파치니 중에서 누가 더 훌륭하냐를 판정하는 별 이상한 다툼이었다. 두 사람에게 같은 제목으로 오페라를 만들도록 하여 그것을 보고 판단하자는 이벤트였다. 그때의 내어준 제목이 '메데'였다. 루이지 케루비니(Luigi Cherubini: 1760-1842)의 '메데아'도 유명하다. 벨칸토 시기에 활동했던 사베리오 메르카단테(Saverio Mercadante: 1795-1870)의 '메데아'도 있지만 거의 공연되지 않고 있다. 현대에는 미국의 벤자민 리스(Benjamin Lees)라는 작곡가가 1791년에 만든 '고린도의 메데아'(Media in Corinth)가 있다.

 

세기의 미인이라는 클레오파트라도 팜 파탈의 열전에 포함된다. 클레오파트라와 시저(체사레. 케사르), 그리고 안토니우스(안토니)에 얽힌 이야기는 오페라의 소재로서 훌륭했다. 헨델이 '이집트의 줄리오 세자레'(Giulio Cesare in Egitto)는 오늘날에도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이다. 타이틀에는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팜 파탈인 클레오파트라가 주인공인 논란의 여지가 없다. 도메니코 치마로서(Domenico Cimarosa: 1749-1801)도 '클레오파트라'라는 타이틀의 오페라를 만들었다. 클레오파트라와 줄리어스 시저의 사랑이야기이다. 미국의 사무엘 바버(Samuel Barber: 1910-1981)는 '안소니와 클레오파트라'라는 오페라를 만들었다. 독일의 칼 하인리히 그라운(Karl Heinrich Graun: 1704-1759)은 1742년에 3막의 '시저와 클레오파트라'(Cesare e Cleopatra)를 작곡했다.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카우어(Ferdinand Kauer: 1751-1831)은 1814년에 단막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Antonius und Cleopatra)를 작곡하여 비엔나의 요제프슈타트극장에서 초연을 가졌다. 미국의 헨리 킴벌 해들리(Henry Kimball Hadley: 1871-1937)는 1920년에 '클레오파트라의 밤'(Cleopatra's Night)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러나 무어라해도 쥘르 마스네의 '클레오파트라'를 빼놓을 수 없다. 1914년, 1차 대전이 일어나던 해에 몬테 칼로에서 초연되었다.

 

 

클레오파트라의 소프라노 엘리사베스 차로프

 

구약성서에 거론되는 인물들 중에서도 팜 파탈로 인정을 받는 인물들이 있다. 릴리스(Lilith)는 실존인물은 아니다. 이사야 34장에 릴리스를 상징하는 구절이 나온다. 여호와께서 원수들을 벌하시는 내용이다. 여러 짐승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의 하나라 릴리스라는 것이다. 유태교 신화에 의하면 릴리스는 첫 여자 악마라는 것이다. 어떤 전설에는 릴리스가 아담의 첫 부인이었다는 것이며 뱀으로 모습을 바꾸어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도록 했고 이어 아담도 먹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릴리스를 팜 파탈의 범주에 포함하고 있다. 오페라에는 릴리스가 직접 등장하는 경우가 아직 없다. 그러나 미국의 현대 작곡가인 헨리 몰리코네(Henry Molicone: 1946-)가 작곡한 뮤지컬 '호텔 에덴'에는 릴리스가 등장한다. '호텔 에덴'은 에덴 동산을 현대의 미국 팜 비치에 있는 호텔로 바꾸어 놓은 작품으로 1막에서 아담, 이브, 릴리스가 나온다. 그러나 릴리스라는 존재는 말하자면 유태인의 신화에 등장하는 가공인물이지만 구약성서에서 팜 파탈로 인정을 받고 있는 다른 인물들은 실존인물들이라고 말할수 있다. 그 첫번째 케이스가 구약성서 사사기 4장에 나오는 야엘(Yael: Jael)이다. 가나안의 야빈(자빈) 왕이 시스라(Sisera) 장군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침략초록 하여 점령하자 헤벨이라는 이스라엘 사람의 부인 야엘의 장막을 찾아온 시스라를 환대하여 잠들게 하고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아 죽인 내용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다는 것이다. 그러한 야엘을 어찌하여 팜 파탈의 대열에 포함시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역시 여자의 몸으로서 적장을 환대하는 척 하다가 죽였기에 그런 끔찍한 일을 했다는 이유로 팜 파탈이라고 부르게 된 모양이다.

 

뱀의 형상을 한 릴리스. 그림

 

구약성서에 나오는 또 하나의 두드러진 팜 파탈은 이세벨(Jezebel: Izabel)이다. 열왕기상 18장을 중심으로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세벨은 페니키아왕의 딸로서 북이스라엘 아합왕의 부인이 되었다. 이세벨은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의 대고모(great aunt)라고 한다. 디도에 대하여는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이 '디도와 이니아스'(Dido and Aeneas)라는 오페라를 작곡한 것이 있다. 아무튼 이세벨은 이스라엘의 왕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거부하고 바알 신을 섬겼고 그로 인하여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파멸되었다. 지금까지 등장한 팜 파탈들은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나서지는 못하였다. 성서에 나오는 여인 중에서 정작 대표적인 팜 파탈들로서는 델릴라(Delilah)와 살로메(Salome)를 빼놓을 수 없다. 델릴라에 대하여는 프랑스의 카미유 생 상스가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Samson et Dalila)를 작곡했다. '삼손과 델릴라'는 1877년 12월에 봐이마르에서 초연되었다. 그런데 델릴라에 대하여는 구약성서 사사기 14장으로부터 16장까지 자세히 나오지만 살로메에 대하여는 신약성서에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 다만,  마태복음 14장 6-11절과 마가복음 6장 21-28절에 ‘헤로디아의 딸’에 대한 스토리가 나온다. 헤로디아의 딸에게 살로메라는 이름을 붙여준 사람은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이다. 그가 1893년에 내놓은 희곡의 제목이 ‘살로메’이다. 그로부터 '아하, 성경에 나오는 헤로디아의 딸의 이름이 살로메구나'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희곡 '살로메'에서 살로메가 세례 요한을 깊이 사랑하였다는 내용을 넣었다. 그리고 유명한 '일곱 베일의 춤' 역시 오스카 와일드의 창작이다. 아무튼 '살로메' 이야기야 말로 픽션이지만 창작의 자유를 무어라고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희곡을 바탕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오페라 '살로메'는 1905년 12월 드레스덴 궁정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킨 오페라였다. 특히 살로메가 쟁반에 담은 세례 요한의 머리를 들고 있는 장면은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참혹한 장면이어서 어떤 극장에서는 공연금지의 결정을 내린 일도 있다.

 

살로메가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들여다 보고 있다. 소프라노 마리 구타일 쇼더. 1918년

                            

팜 파탈은 중세에 들어와서도 예술작품의 일반적인 소재였다. 중세에서 여성의 섹스에 대한 사항을 거론한다는 것은 금기에 가까운 사항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헐적이나마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중세 초기에 간혹 등장한 이브는 좋은 예이다. 이브를 유혹적인 마법사이며 사악한 팜 파탈로 그린 작품들이 더러 있었다. 아서왕의 전설에 등장하는 마법사 모간 르 페이(Morgan le Fay)는 이브를 비유한 설정이다. 모르간 르 페이가 아서왕을 유혹하여 아발론 섬으로 간다는 이야기는 아서왕의 전설에서 잘 알려진 스토리이다. 모르간 르 페이는 오페라에도 간혹 잠시 등장한다. 예를 들면 해리슨 버트위슬(Harrison Birtwistle: 1934-)의 가웨인(Gawain)이다. 중세의 후반기, 즉 계몽시기에 등장하는 오페라의 팜 파탈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은 아무래도 모차르트의 '마술피리'(Die Zauberflöte)에 나오는 '밤의 여왕'일 것이다. '밤의 여왕'은 그다지 사악한 인물로는 그려져 있지 않지만 딸 파미나 공주에게 자라스트로를 죽이라고 단검을 건네주며 만일 말을 듣지 않으면 '내 딸도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인 것을 보면 팜 파탈의 범주에 늦게나마 포함해도 무방할 것이다.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팜 파탈은 당시의 기분도 그렇지 않고 하여서 여러 예술분야의 주제로서 각광을 받았다. 예를 들어 미술분야만 보더라도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 구스타브 클림트,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의 작품에서 팜 파탈의 모습을 찾아볼수 있다. 혹자는 클림트의 '유딧'(Judith)도 팜 파탈의 카테고리에 넣음이 가하다고 말하지만 글쎄 그건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유딧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이스라엘의 용감한 여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로메는 분명히 팜 파탈 협회의 멤버로 간주하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가 창안한 살로메가 다른 오페라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그너의 '파르지팔'에서 쿤드리가 대표적이다. 쿤드리는 사탄인 클링조르에 예속되어 있는 여인으로서 성배를 지키는 가시들을 유혹하여 붙들어 놓는 행동을 한다. 쿤드리는 파르지팔도 유혹하지만 파르지팔은 순진무구하기 때문에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쿤드리는 나중에 성배에 의해 저주가 풀어져서 성배를 찬양하는 진실한 여인이 된다. 그렇게 진실한 여인이 되었다고 해도 전력이 유혹녀였고 수많은 기사들을 파멸로 몰아갔었기 때문에 팜 파탈로 분류한 것이다.

 

'파르지팔'에서 쿤드리. 바이로이트 공연 장면

                                

오페라에서 팜 파탈이라고 하면 델릴라도 델릴라이지만 단연 카르멘을 꼽지 않을수 없다. 카르멘에 대하여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다만, 오페라에서는 자기 자신이 상대방 남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카르멘을 죽인 돈 호세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였지만 평소의 행색으로 보아 팜 파탈로 인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카르멘이 부르는 '사랑은 길들이지 않은 들새와 같은 것'(L'amour est un oiseau rebelle)를 들어보면 '와, 참으로 섹쉬하다'며 혀를 내두르지 않을수 없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겠어요'라는 메시지이다. 푸치니의 부인 엘비라는 팜 파탈의 범주에 넣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건 확실치 않다. 아무튼 푸치니의 부인 엘비라는 평소에 여성들로부터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는 남편 푸치니를 항상 감시하고 의심하여서 결국은 집에서 일하는 어린 하녀와 푸치니가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의심한 나머지 동네방네 다니면서 하녀인 도리안을 모함하였는데 억울하게 모함을 받은 도리안은 자기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급기야 자살을 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부검한 결과 도리안은 남자와의 관계가 없었던 것으로 입증되었다. 이로 인하여 도리안의 가족들은 푸치니의 부인 엘비라를 무고죄 등등으로 고소하여 엘비라는 당장 유치장에 갇혔고 이어 재판을 받아 구류처분을 받았으나 푸치니가 도리안의 가족들과 위로금으로 합의를 하여 엘비라를 겨우  유치장에서 꺼낸 일이 있다. 이같은 사건을 미국의 마이클 프래트(Michael Pratt)라는 작곡가가 '마담 푸치니'라는 타이틀의 오페라로 만들었다.

 

카르멘과 돈 호세. 파리 오페라 코미크 공연

                                   

현대에 와서도 몇 명의 팜 파탈이 오페라에 등장한다. 우선 알반 베르크(Alban Berg: 1885-1935)의 '룰루'(Lulu)를 들지 않을수 없다. 원래 룰루라는 이름은 프랑스에서 귀엽고 예쁜, 그러면서도 명랑한 아가씨를 미미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미에서는 그런 아가씨를 룰루라고 부르지만 베르크의 오페라에 나오는 룰루는 사정이 다르다. 오페라 '룰루'의 대본은 프랑크 베데킨트(Frank Wedekind)의 희곡 Erdgeist(땅의 정령)와 Die Büchse der Pandora(판도라의 상자)를 바탕으로 작곡자 자신이 썼다. 1939년 취리히에서 2막까지의 미완성으로 초연을 가졌으며 3막까지 추가한 초연은 1979년 파리에서였다. '룰루'의 무대는 1830년대, 독일의 어느 마을이다. 룰루와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죽는다. 그러는 와중에 룰루는 동성연애까지 한다. 그러다가 무슨 일이 잘못되어서 창녀가 된다. 룰루는 결국 잭 리퍼라는 무지막지한 남자를 만나 오히려 죽임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룰루를 팜 파탈로 선정하는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다만, 내용이 너무 외설적이고 폭력적이어서 청소년 관람불가이다.

 

룰루 역의 소프라노 말리스 페터센

                     

오페라에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근대에 있어서 희대의 팜 파탈은 마타 하리라는 별명을 가진 희대의 스파이였다. 마타 하리의 원래 이름은 마르가레타 게르트루이다 첼레(Margaretha Geertruida Zelle)였으며 1876년 네델랜드에서 태어나 1917년, 향년 41세로 프랑스에서 독일 스파이로 검거되어 총살형을 당하였다. 마타 하리는 글래머였으며 선정적이었고 무엇보다도 이국적인 춤을 잘 추었다. 자바의 춤이라고 한다. 마타 하리에 대한 스토리는 소설과 영화로 여러 편 만들어졌지만 아직 오페라로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한 시대를 풍미한 팜 파탈로서는 프랑스의 이사벨라, 노르웨이 크리스티아니아(현재의 오슬로)의 헤다 가블러(Hedda Gabler),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안토니아(1755-1793: 마리 앙뚜아네트)를 빼놓을수 없다. 마리아 안토니아(마리 앙뚜아네트)는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열다섯번째 자녀로서 프랑스의 루이 16세와 결혼하여 얘기에 의하면 사치와 향락만을 일삼다가 38세의 젊은 나이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헤다 가블러는 노르웨이의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1828-1906)의 희곡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헤다는 결국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다. 프랑스의 이사벨라는 프랑스 국왕인 필립 4세의 딸로서 어릴 때에 영국의 에드워드 2세의 왕비가 된 여인이다. 이사벨라는 '프랑스의 암늑대'(She-Wolf of France)라고 불릴 만큼 대단한 야심으로 권력을 쥐고 흔든 여자였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오페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프랑스의 이사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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