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슈베르트의 '알폰조와 에스트렐라' - 25

정준극 2013. 5. 16. 17:59

알폰조와 에스트렐라(Alfonso und Estrella) - Alfonso and Estrella

프란츠 슈베르트의 그랜드 로맨틱 오페라

 

프란츠 슈베르트

 

'가곡의 왕' 프란츠 슈베르트는 31세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가 세상을 떠났지만 주옥과 같은 가곡 이외에도 놀랍도록 찬란한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그런데 미사곡이나 피아노곡, 현악4중주곡, 교향곡들을 남긴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오페라를 작곡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된 오페라를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완성했다고 해도 오늘날 표준 레퍼토리에 포함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슈베르트는 오페라를 비롯한 무대작품에 크게 관심이 있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대음악의 작곡을 시도했다. 그래서 그나마 몇 편의 징슈필과 오페라를 남길수 있었다. 숫자적으로는 모두 19편의 오페라 또는 징슈필 등 무대작품을 시도하였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거의 반 이상이 미완성이다. 아마도 워낙 바쁘게 지내다보니 차분하게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슈베르트 학자들은 슈베르트가 무대작품의 작곡을 시작했다가 어쩐 일인지 만족하지 못하고 그냥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미완성이 많다는 것이다.

 

슈베르트가 처음으로 착수한 무대작품은 Der Spiegelritter(거울기사)라는 징슈필이었다. 징슈필이 어떤 형태의 무대작품인지는 설명을 생략코자 한다. 아무튼 슈베르트는 '거울기사'를 14세 때인 1811년에 작곡을 시작했다. 모두 3막으로 구상했다. 대본은 독일의 극작가인 아우구스트 폰 코체부에(August von Kotzebue: 1761-1819)가 쓴 것이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서곡과 1막의 일부분만 완성했을 뿐이었다. 완성을 하지 못했기 덮어 두었는데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지 거의 120년이 지난 1946년에 그나마 스코어가 발견되어 그해 12월에 취리히의 라디오 베로뮌스터가 처음 연주를 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슈베르트는 당시의 패션에 따라 독일어로 된 징슈필을 여러 편 시도하였다가 20대 중반부터는 징슈필의 패션에서 벗어나 독일정신을 이어 받는 그랜드한 로맨틱 오페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한 관심의 결과로 태어난 것인 오페라 '알폰조와 에스트렐라'이다. 슈베르트는 '알폰조와 에스트렐라'에 이어 '휘에라브라스'(Fierrabras)라는 오페라도 완성했다. 그러므로 이 두 작품이야 말로 슈베르트가 뜻한바 있어서 중간에 미완성으로 남겨 놓지 않고 끝까지 완성한 대표적인 오페라들이다. '알폰조와 에스트렐라'의 대본은 오스트리아의 시인인 프란초 폰 쇼버(Franz von Schober: 1796-1882)가 썼다. 슈베르트는 '알폰조와 에스트렐라'를 1822년에 완성했다. 그가 24세 때였다. 3막의 이 오페라는 영웅적인 로맨틱 오페라(Eine heroisch-romantische Oper)라고 정의되고 있다.

 

대본을 쓴 프란츠 폰 쇼버는 오스트리아인이지만 태어나기는 스웨덴의 말뫼에서였다. 슈베르트보다 한 살 위인 쇼버는 슈베르트가 오페라를 작곡하려고 생각하고 있을 시기에 비엔나에서 멀지 않은 장크트 푈텐(St Pölten)에 체류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나이도 비슷하기 때문에 의기투합하여 오페라의 작곡에 몰두하였다. 쇼버는 문학적인 재능이 뛰어난데다가 극장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리고 그때 슈베르트는 글룩의 개혁오페라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쇼버 역시 글룩의 개혁오페라를 적극 지지하고 있었다. 당시 독일의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베토벤의 '휘델리오', 베버의 '마탄의 사수'(Die Freischütz) 처럼 징슈필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슈베르트는 '알폰조와 에스트렐라'를 통하여 대화체의 대사를 지양하였다. 말하자면 독일의 징슈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대본을 쓴 프란츠 폰 쇼버

 

'알폰조와 에스트렐라'는 1822년에 완성되었지만 극장을 잡기가 어려웠다. 비엔나, 베를린, 드레스덴, 그라츠 모두 이런 저런 이유로 공연을 거절하였다. 그렇게 몇년이 흘렀다. 슈베르트는 1828년에 세상을 떠났다. '알폰조와 에스트렐라'는 슈베르트의 생전에 공연을 보지 못했다.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지난 1854년, 봐이마르에 있으면서 간혹 비엔나에도 찾아왔던 프란츠 리스트가 슈베르트의 미공연 오페라가 있는 것을 알고는 봐이마르극장에서 공연되도록 주선했다. 프란츠 리스트가 직접 지휘도 했다. 리스트는 6월 24일의 공연이 있기 전에 이 오페라를 소개하는 에세이를 써서 발표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미리 끌었다. 고마운 리스트였다. 그런데 리스트는 오리지널 슈베르트의 스코어를 제작상의 편의를 위해 몇군데 삭제하였다. 아무튼 봐이마르 공연은 그런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후 1880년대에 칼스루에, 비엔나, 베를린에서 한 차례씩 공연되었다. 그후 '알폰조와 에스트렐라'는 긴 동면에 들어갔다. 동면이 끝나고 기지개를 편 것은 봐이마르로부터 120여년이 지난 1977년 2월 22일 영국에서였다. 리딩대학교오페라단이 공연했다. 이 때에도 몇 부분을 삭제하였다. 이 오페라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풀 오리지널이 공연되지는 못했다. 1991년 그라츠와 1997년 비엔나에서의 슈베르트 기념공연도 삭제된 것이었다.

 

'알폰조와 에스트렐라'가 기대한 만큼 관심을 끌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평론가들은 드라마틱한 액션과 페이싱이 결핍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슈베르트는 생전에 자기의 오페라를 구경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아무런 수정이나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은 오리지널 스코어를 그대로 가지고 공연할수 밖에 없었다. 다른 작곡가들은 그렇지 않았다. 예를 들어 베토벤은 '휘델리오'의 초연이 있은후 평론가들의 코멘트 등을 들어서 수없이 스코어를 고치는 노력을 하였다. 슈베르트는 징슈필의 패턴에서 벗어나는 그랜드 로맨틱 오페라를 만들고자 했다.그래서 '알폰조와 에스트렐라'에서 대규모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등장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오페라의 여런 파트에서 전통적인 단순한 징슈필 패턴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할수 있다. 게다가 지나치게 강조한 성악 파트, 여기에 너무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 때문에 가사의 전달이 쉽지 않으며 화음의 진전은 어색한 면이 있었다. 슈베르트는 로시니의 음악 스타일을 인용하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그것이 더 어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베르트의 멜로디는 아름다우며 가사는 쉽게 전달되는 것이었다.

 

'알폰조와 에스트렐라'의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대규모 합창단이 동원되는 그랜드 스타일이지만 실제 주역들은 몇 명 안된다. 레옹왕국의 트로일라(Troila: Bar: 어떤 자료에는 Froila)왕, 왕의 자리를 찬탈한 마우레가토(Mauregato: Bar), 마우레가토의 아름다운 딸인 에스트렐라(S), 왕의 자리를 빼앗긴 프로일라 왕의 아들인 알폰조(T), 마우레가토의 충복 장군인 아돌포(Adolfo: B)이다. 1854년의 봐이마르 초연에서 마우레가토왕의 이미지는 바리톤 한스 페오도르 폰 밀데(Hans Feodor von Milde)가 창조하였으며 마우레가토 왕의 딸인 에스트렐라는 소프라노 로자 폰 밀데 아그테(Rosa von Milde-Agthe)가 맡았다. 두 사람은 부부였다. 한스 페오도르 폰 밀데는 봐이마르 극장에서 40년을 활동한 베테랑이었다. 이밖에 마을처녀 에드비가(Edwiga: S)와 마을 청년 구이스토(Guisto: T) 등이 나온다. 시기는 790년경이며 장소는 레옹(León)왕국의 수도인 오비에도(Oviedo)이다. 레옹왕국은 현재의 이베리아반도 서북방, 대서양에 면하여 있었던 강대한 왕국이었다. 오비에도는 대성당이 자리잡고 있는 중세의 고도이다. 오비에도 대성당에는 그리스도의 수의 중 수다리움(얼굴 수건)이 보관되어 있다고 하여 순례지가 되어 있다. 그러다가 1139년에 포르투갈이 독립하기 위해 분리해 나갔으며 그로부터 약 1백 후인 1230년에는 나머지 영토가 당시 카스틸레(Castile)왕국에 합병됨으로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왕국이다. 실제로 역사를 보면 레옹왕국에 트로일라(또는 프로일라)라는 왕이 있었으며 당시에 왕국은 권력투쟁으로 불안정하였다. 하지만 오페라에는 그러한 자세한 얘기에 대하여는 설명되어 있지 않다.

 

이 오페라의 무대가 된 오비에도. 대성당의 모습이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관련한 귀중한 성물이 보관되어 있어서 연중으로 수많은 순례자들이 다녀간다.

 

[1막] 1장. 깊은 계곡마을에 있는 트로일라의 집 앞이다. 레옹왕국의 왕이었던 트로일라는 신하였던 마우레가토에게 축출 당하여 지금은 오비에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깊은 계곡마을에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트로일라왕은 친절하고 겸손하며 자비로워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자기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없다. 마을의 농부들이 이 친절한 사람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트로일라의 아들인 알폰조는 무언가 나라를 위해서 헌신해야 할 때에 계곡에서만 지내는 것을 하는 일 없지 지내는 것을 힘들어 한다. 알폰조는 군대를 구성해서 마우가레토에게 대항할 생각이다. 트로일라는 그러한 알폰조에게 지금은 인내할 때라고 말하면서 금으로 만든 목걸이를 주며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보호해 줄 것이라고 말한다. 레옹왕국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오이리히의 목걸이이다. 2장은 마우레가토왕이 있는 궁전이다. 마우레가토왕은 요즘 근심이 있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부하인 아돌포 장군과의 약속 때문이다. 마우레가토는 트로일라왕을 몰아내는 전투에서 아돌포에게 승리를 하면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주겠다고 약속한바 있다. 아돌포는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그 결과 마우레가토가 레온의 왕이 되었다. 아돌포는 마우가레토에게 그의 아름다운 딸인 에스트렐라를 부인으로 맞아들이겠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에스트렐라는 아돌포와의 결혼을 거절하고 그와 결혼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까지 말한다. 아돌포는 마우레가토왕에게 어서 약속을 지키라고 강요한다. 궁지에 몰린 마우가레토왕은 자문관과 협의한다. 자문관은 공주와 결혼하는 사람은 오이리히 목걸이를 찾아오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우가레토왕은 아돌포에게 오이리히 목걸이를 찾아오면 에스트렐라와 결혼할수 있다고 말한다. 분노한 아돌포는 마우가레토와 전투를 벌일 생각이다.

 

[2막] 1장. 계곡의 숲이다. 사냥을 나온 에스트렐라는 숲에서 길을 잃는다. 그러다가 아니나 다를까 숲에서 알폰조를 만난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서로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한다. 알폰조는 가지고 있던 오이리히의 목걸이를 사랑의 징표로서 에스트렐라에게 준다. 그리고는 숲에서 안전하게 빠져 나가는 길을 일러준다. 2장은 오비에도 성문 앞이다. 아돌포가 마우레가토왕을 몰아내기 위해 반란군을 규합하여 왕궁을 공격하기 위해 오비에도 성문 앞에 모여있다. 3장은 다시 궁전 안이다. 마우레가토왕은 궁전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진 에스트렐라 공주에 대하여 걱정한다. 그럴 때에 에스트렐라가 돌아온다. 에스트렐라는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얘기하고 오이리히의 목걸이를 보여준다. 마우가레토는 그것이 레옹왕실의 오이리히 목걸이인 것을 알고 놀란다. 마우가레토가 에스트렐라에게 그 목걸이에 대한 내력을 얘기해 주려는 순간에 아돌포가 공격을 시작했다는 급박한 전갈이 들어온다. 마우가레토왕은 신하들에게 도피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신하들은 왕과 함께 반란군을 대적하여 싸우겠다고 다짐한다.

 

[3막] 다시 숲속이다. 마우가레토왕의 병사들과 아돌포의 반란군이 숲에서 대진하며 건곤일척의 전투를 앞두고 있다. 아돌포는 숲에서 에스트렐라는 만난다. 아돌포는 에스트렐라에게 만일 자기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죽이게싿고 위협한다. 한편, 알폰조는 숲에서 만난 미지의 여인이 마우가레토왕의 딸인 에스트렐라인 것을 알게된다. 알폰조는 에스트렐라가 아돌포에게 잡혀 있는 것을 알고 숲속의 사냥꾼들과 함께 아돌포를 급습하여 에스트렐라를 구출한다. 알폰조는 마우가레토왕의 병사들과 합세하여 아돌포의 반란군을 공격한다. 아돌포는 완전히 패배한다. 마우가레토왕은 알폰조가 누구인지 알게 되자 자기가 트로일라 왕의 자리를 차지한 것을 크게 후회한다. 하지만 트로일라는 마우가레토를 관용으로 용서하고 이제 자기는 나이가 많아 나라를 다스릴수 없으니 마우가레토가 나라를 위해 힘써 달라고 당부한다. 마우가레토가 감격하여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알폰조와 에스트렐라가 결혼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이다. 마우가레토와 트로일라는 알폰조를 레옹의 왕으로 선포한다.

 

소프라노 에바 메이와 테너 라이너 트로스트가 타이틀 롤을 맡은 음반

            

[명음반]

1978년에 오리지널 전곡을 수록한 음반이 나왔다. 오트마르 주이트너(Otmar Suitner)가 지휘하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 베를린 라디오합창단이 연주했다. 에스트렐라는 소프라노 에디트 마티스(Edith Mathis), 알폰조는 테너 페터 슈라이어(Peter Schreier), 마우가레토는 바리톤 헤르만 프라이(Hermann Prey), 트로일라는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 아돌포는 베이스 테오 아담(Theo Adam)이 맡은 호화 캐스트이다.

 

1978년에 취입한 레코드 커버. 에디트 마티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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