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도니체티의 '영국의 로스몬다' - 24

정준극 2013. 5. 15. 23:53

로스몬다 딩길테라(Rosmonda d'Inghilterra) - 영국의 로사문드(Rosamund of England)

게타노 도니체티의 2막의 멜로드라마(오페라)

12세기 헨리2세와 사랑했던 로스몬드 드 클리포드의 이야기

130년만에 찾은 스코어

 

영국의 로스몬다(로사문드). 존 윌렴 워터하우스 작

                         

'로스몬다 딩길테라'(Rosmonda d'Inghilterra)는 게타노 도니체티가 작곡하여 1834년 2월 27일 플로렌스의 테아트로 델라 페르골라에서 초연을 가진 2막의 멜로드라마 또는 오페라이다. 대본은 당대의 펠리체 로마니가 썼다. 펠리체 로마니는 원래 '로스몬다 딩길테라'의 대본을 카를로 코치아(Carlo Coccia: 1782-1878)를 위해 썼다. 카를로 코치아는 펠리체가 제공한 대본으로 1829년에 '로사문다'라는 타이틀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하지만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도니체티가 '로스몬다 딩길테라'에 관심을 표명하여 작곡을 하게 되었다. 로마니는 도니체티를 위해 '사랑의 묘약' 등 주옥과 같은 대본을 제공했다. 따라서 두 사람은 막역한 콤비였다. 펠리체 로마니의 대본은 12세기 영국의 전설적인 인물인 로사문드 클리포드(Rosamund Clifford)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로사문도 클리포드는 '아름다운 로사문드'(The Fair Rosamund)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20대 중반에 하늘나라로 불러갔다.

 

도니체티의 '로스몬다 딩길테라'는 초연에서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가 초연이 있은지 3년 후인1837년에서 나폴리에서 한번 다시 공연되었다. 나폴리에서는 제목을 Eleonora di Gujenna(구제나의 엘레오노라)라고 바꾸어서 공연했다. '로스몬다 딩길테라'는 다시 잠들어 있다가 초연으로부터 11년이 지난 1845년에 오리지널 제목대로 리보르노에서 리바이발되었다. 그후에는 무대에서 찾아볼수가 없이 1백년도 훨씬 넘는 세월을 침묵 속에서 지냈다. 그러다가 1975년에 나폴리음악원의 도서실에서 참으로 우연하게 도니체티의 친필 서명이 들어 있는 '로사몬다 딩길테라'의 스코어를 발견되어 한 세기를 뛰어 넘어 빛을 보게 되었다. 나폴리음악원의 도서실에서 오리지널 스코어를 발견한 사람은 '희귀 오페라'(Opera Rara)의 공동설립자인 패트릭 슈미드(Patric Schmid)라는 사람이었다. 곧이어 런던의 엘리자베스여왕홀에서 콘서트 형식의 공연이 있었다. 로스몬다 역은 호주 출신의 프리마 돈나인 이본느 케니(Yvonne Kenny)가 맡았다. 그후로부터 이 오페라는 음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으며 자주 공연하는 작품이 되었다.

 

로스문다의 조앤 서덜랜드.

 

시기는 12세기 후반이며 장소는 영국 우드스톡(Woodstock)성과 그 인근이다. [1막] 1장. 우드스톡성 앞의 넓은 경지에서 마을  사람들이 엔리코(헨리 2세: T)가 아일랜드에서 전투를 마치고 무사귀환하는 것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그때 레오노라(Leonora: MS: 엘레아노르 왕비)가 나타난다. 왕비의 뒤를 따라서 왕의 시종인 아르투로(Arturo: Cont)가 등장한다. 아르투로는 어릴 때 고아가 되었는데 왕비가 데려다가 보살펴 주었고 이제는 왕의 시종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르투로는 언제나 왕비에게 큰 빚이라도 진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아르투로는 그러한 감정 때문인지 왕비를 돕는다는 생각에서 왕비에게 왕의 커다란 비밀을 말해주었다. 엔리코가 어떤 아가씨를 마치 정부처럼 데리고 있다는 것이며 전투를 하러 아일랜드로 떠나기 전에 그 아가씨를 우드스톡성의 어떤 탑방에 비밀리에 있도록하고 아르투로로 하여금 보살피고 감시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 아가씨의 정체는 너무나 비밀이어서 왕으로부터 보살펴 주라는 특별한 당부를 받은 아르투로조차도 그 아가씨의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레오노라 왕비는 아르투로가 그 미지의 여인을 대단히 걱정했던 것을 상기하고 아무래도 아르투로가 그 여인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르투로에게 비록 왕이 데려온 아가씨이지만 왕이 어쩌지는 못할 것이므로 이 참에 그 아가씨와 멀리 사라져서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묻고 그럴 생각이라면 왕비로서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왕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 미지의 아가씨를 자기의 라이발로 간주하여 복수할 생각을 갖는다.

 

엘레아노르와 로사문드. 현대적 연출

 

엔리코의 무사귀환을 환영하는 마을 사람들이 다시 무대에 나와서 엔리코가 지나갈 길에 꽃들을 뿌린다. 레오노라 왕비와 아르투로는 왕이 돌아와서 어떤 행동부터 할지를 살펴보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킨다. 엔리코는 오랫만에 사랑하는 여인을 만날 생각으로 기쁨에 들떠 있다. 엔리코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러 갈 때에 어려서부터 스승이었던 클리포드(Clifford: B)를 만난다. 엔리코는 오랫만에 스승인 클리포드를 만나지만 반가움보다는 당황함이 앞선다. 왜냐하면 자기가 비밀리에 데리고 있는 아가씨가 바로 클리포드의 딸인 로스몬다(Rosmonda: S)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클리포드는 딸 로스몬다가 어떻게 되었는지 하나도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프랑스에 외교적인 임무를 띠고 몇달 동안 갔다가 방금 돌아왔기 때문에 집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클리포드는 딸 로스문다가 집에서 자기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클리포드는 프랑스에서 돌아오면서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 왕이 왕비인 레오노라를 버리고 새로 어떤 아가씨를 정부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클리포드는 왕의 스승이라는 입장에서 '사람이 그러면 되느냐?'고 질책을 해주기 위해 왕을 만나러 온 것이다. 엔리코 왕을 만난 클리포드는 그 아가씨가 누구인지 만나보겠다고 요청한다. 그 아가씨를 만나서 젊은 여자가 정조와 덕성을 지키라고 충고해 줄 생각에서이다. 엔리코는 스승의 요청이므로 어쩔수 없이 그렇게 하라고 허락한다. 다만, 만나기는 만나더라고 지나친 감정에 치우쳐서 대하지는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면서 또한 클리프드에게 그 여인을 만나 누구인지 정체를 알게 되면 그 여인에게 왕이 영국의 왕관이라도 주고 싶은 정도로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엘레아노르 왕비와 로스몬다. 조지 캐트모울 작.

 

2장. 로스몬다 홀로 탑방에 있다. 사랑하는 그 사람이 떠난지도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로스몬다는 그 사람을 다만 에데가르도라고 알고 있다. 에데가르도는 아르투르에게 로스몬다를 맡기고 떠났다. 로스몬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떠나자 그를 더욱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집을 버리고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따라 나선 것이 후회되기도 한다. 이제 로스몬다는 사랑과 후회의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로스몬다는 하프를 연주하며 자기의 슬픔을 노래한다. 아래쪽 정원에 있는 아르투르가 그러한 로스몬다의 노래에 화답하여 로스몬다의 처지를 동정하는 노래를 부른다.

 

아르투로가 로스몬다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 사람이 왕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한다. 한편, 로스몬다는 어떤 노기사가 문 밖에서 만나기를 원하여 기다린다는 전갈을 받는다. 로스몬다는 그 노기사가 다름아닌 자기 아버지인 클리포드라는 것을 알고 두려움과 함께 놀란다. 로스몬다는 언젠가는 자기의 정체가 밝혀질 것으로 생각하여 먼저 아르투로에게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로스몬다는 아버지 클리포드를 피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급기야는 두려움 속에서 어쩔수 없이 아버지와 단 둘이 만나게 된다. 클리포드는 처음에는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다가 잠시후 그 여인이 다름아닌 자기의 딸 로스몬다인 것을 알고는 크게 놀란다. 그리고 사태를 파악하고는 로스몬다를 심하게 꾸짖고 비난한다. 클리포드의 비난과 저주는 로스몬다가 계속 후회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야 겨우 중단된다. 로스몬다는 아버지를 통해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비로소 알게된다. 로스몬다는 문밖에서 엔리코가 자기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소리를 듣자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엔리코와 엘레아노르

 

엔리코는 로스몬다의 번뇌와 고통을 이해하고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걱정이다. 잠시후 정신을 차리고 깨어난 로스몬다는 엔리코에게 제발 자기를 떠나서 레오노라에게 돌아가라고 간청한다. 그러한 때에 레오노라가 궁정의 모든 사람들과 함게 나타난다. 레오노라는 엔리코가 로스몬다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일부러 놀란척 한다. 그러면서 왕은 어찌하여 모든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냐면서 비웃듯이 말한다. 엔리코가 레오노라의 말에 몹시 분노하여 레오노라를 비난한다. 클리포드는 당황하여 어찌할줄 모른다. 로스몬다는 눈물만 흘리고 있다. 클리포드는 마침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딸 로스몬다를 레오노라 왕비에게 소개하고 이 어린 것을 왕비가 친히 데리고 잘 좀 보살펴 달라고 부탁한다. 레오노라가 그렇게 하겠다고 수락한다. 그러나 엔리코는 레오노라가 분명히 어떤 사악한 계획을 가지고 로스몬다를 시녀로 두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용단을 내려 레오노라에게 '그대는 이제 더 이상 왕비가 아니오. 그러니 어서 이곳에서 떠나시오'라고 선언한다.

 

엘레아노르와 로스몬다. 엘레아노르 왕비가 로스몬다에게 '야, 너 사람이 그러면 안돼'라며 꾸짖고 있다.

                           

[2막] 1장. 우드스톡성의 대접견실이다. 엔리코 왕의 원로원들은 왕이 레오노라 왕비를 심히 부담스럽게 생각한다면 이혼을 해야 할것이라며 마지못해 동의한다. 엔리코는 레오노라가 영국에 있으면 자기가 더욱 위험해 질 것이라고 말하고 오히려 레오노라의 고향인 아퀴타니아(Aquitania)에 있는 것이 덜 위험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퀴타니아는 지금의 프랑스 보르도 지방을 말한다.] 엔리코는 시종들에게 레오노라를 내일 당장 프랑스로 돌아가게 하라고 명령한다. 그 소식을 들은 레오노라는 결코 만만히 물러서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대접견실에서 원로원들이 회의를 마치고 자리를 뜨자 레오노라는 문밖에서 엔리코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평상시처럼 얘기를 주고 받지만 레오노라가 '누구 덕분에 왕의 자리에 올랐는지 잊었느냐?'고 말하자 엔리코는 그 말에 기분이 몹씨 상하여 레오노라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으려 하지 않는다. 레오노라는 엔리코의 마음을 돌려서 다시 사랑을 받고자 원했으나 결국 나중에는 서로 비난과 위협으로 끝을 맺는다.

 

피날레 장면. 로스몬다가 엘레아노르 왕비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엔리코가 달려오지만 이미 때는 늦는다.

                                     

2장. 로스몬다가 있는 탑의 회랑이다. 아루트로가 홀로 로스몬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러나 자기는 한낱 왕의 시종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로스몬다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아르투로는 자기가 왕비의 증오와 음모에서 한 몫을 차지하고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후회한다. 그러나 왕비에게 갚아야 할 은혜가 크므로 어쩔수 없었다는 생각을 한다. 아르투로는 회랑의 한쪽에 있는 비밀문 안에서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그것이 왕비라고 생각하여서 문을 열어 준다. 그는 다름아닌 로스몬다의 아버지인 클리포드였다. 엔리코의 명령에 의해 감옥에 갇혔으나 왕비 레오노라가 풀어주었던 것이다. 레오노라는 아르투로가 로스몬다를 깊히 사랑하고 있는 것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르투로와 로스몬다를 프랑스의 아퀴타니아로 함께 보내 결혼하여 살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로스몬다를 설득해야 하고 그러자면 클리포드가 나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서 클리포드를 몰래 석방시킨 것이다. 아르투로와 로스몬다는 클리포드로부터 그러한 제안을 듣고 놀란다. 로스몬다는 엔리코에게 자기로부터 떠나 달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작 그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괴로운 심정이다. 로스몬다는 클리포드에게 자기는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클리포드가 다시 한번 그러면 모두에게 죽음 밖에 남는 것이 없다고 얘기하고 아울러 아르투로도 그렇게 하는 것이 왕비도 살리는 길이라고 설득하자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며 마지못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얼마후 엔리코는 로스몬다가 수심에 가득 차서 홀로 있는 것을 본다. 엔리코는 로스몬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원로원이 자기와 레오노라의 이혼을 허락했으며 로스몬다와의 결혼을 인정한다는 말을 해 준다. 엔리코는 왕국의 모든 백성들이 로스몬다가 왕비가 되는 것을 기뻐하고 환영할 것이라는 말도 해 준다. 로스몬다의 마음은 이미 굳게 결정되어 있다. 로스몬다는 엔리코에게 그가 이미 레오노라와 결혼하였으므로 자기는 결코 왕비가 될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엔리코를 영원히 떠나겠다고 서약했음을 밝힌다. 로스몬다는 눈물을 흘리며 엔리코를 떠난다.

 

3장. 우드스톡성의 넓은 정원 한 구석이다. 로스몬다는 아르투로와 정원에서 만나 함께 저 멀리 아퀴타니아로 떠나기로 약속하여 만나기로 한 장소를 찾아간다. 레오노라 왕비의 시종이 로스몬다의 뒤를 몰래 쫓아오면서 로스몬다가 약속대로 아르투로와 함께 떠나는지를 지켜본다. 로스몬다는 약속 장소에 왔지만 아르투로가 보이지 않아 놀라고 당황한다. 로스몬다는 아르투로가 무엇때문에 오지 않았는지 궁금해 한다. 잠시후 누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뜻밖에도 레오노라 왕비이다. 레오노라는 로스몬다에게 왕에 대하여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소리 높여 비난한다. 왜냐하면 주위에 경비병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왕비로서는 로스몬다를 비난하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었다. 레오노라는 그러면서 단검을 꺼내든다. 로스몬다는 결백하다면서 해치지 말아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면서 이곳에 온 것은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기 때문이며 곧 이어 멀리 프랑스로 떠날 것이므로 모든 것을 너그럽게 용서해 달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레오노라는 로스몬다를 측은하게 생각하여 가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왕비의 시종들이 뛰어들어오면서 지금 엔리코 왕과 그의 충성스런 시종들이 무장을 하고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전한다. 레오노라는 순간적으로 왕이 자기를 죽이기 위해 쫓아오는 줄로 알았다. 그래서 억울하게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이 모든 것이 로스몬다 때문에 일어난 상황이라고 믿어서 들고 있던 단검으로 로스몬다를 찌른다. 로스몬다는 엔리코와 클리포드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둔다. 레오노라는 엔리코에게 이러한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만든 것이 모두 엔리코 때문이라면서 그를 비난한다. 두 사람은 결국 하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음반] 로스몬다, 레오노라, 엔리코, 아르투로, 클리포드 - 지휘자, 오케스트라

- 1975년: Yvonne Kenny, Ludmila Andrew, Richard Greager, Enid Hartle, Christian du Plessis - Alun Francis, Ulster Orchestra and Chorus of the Northern Ireland Opera Trust

- 1994년: Renée Fleming, Nelly Miricioiu, Bruce Ford, Diana Montague, Alastair Miles - David Parry, Philharmonia Orchestra and Geoffrey Mitchell Choir

 

* 프란츠 슈베르트의 작품으로 '로자문데'(Rosamunde)의 막간음악(Incidental Music)이 있다. 그 로자문데는 로사문드(로스몬다) 클리포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슈베르트의 '로자문데'는 키프러스의 공주 로자문데에 대한 것이다. 헬미나 폰 헤치(Helmina von Chézy)가 쓴 희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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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로사문드 클리포드는 누구?

 

'아름다운 로스몬다'(로사문드). George Catemole 작.

 

도니체티의 오페라 '로스몬다 딩길테라'의 주인공인 로스몬다는 영국의 실존인물이다. 1150년 경에 태어나서 1176년 쯤 세상을 떠났다. 20대 중반에 세상을 떠난 셈이다. 원래 이름은 로사문드 클리포드(Rosamund Clifford)이다. 클리포드 가문의 규수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하여 '아름다운 로사문드'(The Fair Rosamund) 또는 '세상의 장미'(Rose of the World)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로스몬다(로사문드)는 영국왕 헨리(엔리코) 2세의 연인(또는 정부)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영국의 전설이나 민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로사문드 클리포드는 여러 예술 작품의 주제가 되어왔다. 로사문드 클리포드는  사뮈엘 다니엘의 1592년도 시 The Complaint of Rosamond(로사몬드의 고충)의 주제였다. 로사문드 클리포드는 버지니아 헨리(Virginia Henley)의 1988년도 역사애정 소설인 The Falcon and the Flower(매와 꽃)에 등장한다. 헨리 2세와의 정사는 샤론 펜맨(Sharon Penman)의 역사소설인 Time and Chance(시간과 기회)에 자세하게 나온다. 이 소설은 헨리 2세의 삶을 소개한 것이며 그 후에 나온 Devil's Brood(악마의 빗자루)에는 로사문드 클리포드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자세히 나온다. 헨리 2세와 로사문드 클리포드의 관계는 로빈 페이지(Robin Paige)의 미스테리 소설인 Death at Blenheim Palace(블렌하임 궁전에서의 죽음)의 소재가 되었다. 로사문드 클리포드는 린제이 샌즈(Linsay Sands)의 애정소설인 Always(올웨이스)에 수녀지망생의 어머니로 등장한다. 딸의 이름도 로사문드로 되어 있다. 헨리 2세는 수녀지망생의 아버지로 설명되어 있다. 로사문드 클리포드는 파멜라 카우프만(Pamela Kaufman)의 소설 A Novel of Eleanor of Aquitaine(아퀴텐의 엘리아노르 소설)에도 등장한다. 엘리자베스 채드위크(Elizabeth Chadwick)의 2008년도 소설인 The Time of Singing(노래부르는 시간)에 헨리2세의 정부로 나온다. 로사문드 클리포드는 알리슨 웨이어(Alison Weir)의 역사소설인 The Captive Queen: A Novel of Eleanor of Aquitaine에 부주인공으로 나온다. 이밖에도 여러 문학작품에 나오면 그림으로도 조지 캐트모울(George Cattenmole) 등 수많은 화가들이 로자문드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다. 영화에도 물론 등장한다. 미국 여배우인 모드 필리 베커(Maude Fealy Becker)가 로사문드의 역할을 맡은 작품이 있다.

 

여배우 모드 필리가 로사문드의 역할을 맡았다.

 

로사문드의 아버지는 영국 변경지대의 영주인 월터 드 클리프도(Walter de Clifford)였다. 로사문드 아버지는 영주의 집사장이었고 이름은 월터 피츠 리챠드(Walter Fitz Richard)였다. 그러다가 영주가 되고서는 이름도 월터 드 클리포드로 바꾸었다. 로사문드의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던 성은 와이(Wye)강변에 있는 클리포드성이었다. 로사문드에게는 다섯 명의 형제자매들이 있었다. 로사문드가 헨리2세를 처음 만난 것은 1163년 클리포드성에서였다. 헨리2세가 웨일스에서의 전투에 출전하기 위해 지나가다가 들렸다고 한다. 로사문드라는 이름은 라틴어의 rosa mundi, 즉 '세계의 장미'라는 단어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한다.

 

로사문드의 아버지인 월터 드 클리포드가 소유했던 클리포드성의 유적. 이곳에서 로사문드가 헨리 2세를 처음으로 만났다고 한다.

 

사학자들이 로사문드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과연 로사문드가 헨리 2세와의 관계에서 자녀를 생산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는 별별 얘기가 다 있지만 그것을 믿을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학자들은 로사문드가 헨리 2세와의 관계에서 어린 아이 하나를 낳았다고 보지만 언제 어디서인지는 증거가 없어서 모른다. 반면에 앨리슨 웨이어와 같은 현대 작가는 로사문드가 헨리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낳은 일이 없다는 견해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자녀를 낳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며 또 자녀들을 낳았다면 그 자녀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분명히 알수 없다.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로사문드는 헨리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고 한다. 조프리 플란타제네트(1151-1212)와 윌렴 롱기스피(William Longespee: 1180-1226)이라는 것이다. 조프리 플라타제네트는 요크대주교가 되었고 윌렴 롱기스피는 살리스베리경이라는 작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헨리와는 관계가 없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헨리가 로사문드를 만난 것은 1163년이며 두 사람의 관계는 오페라와는 달리 1176년까지 13년이나 지속되었다. 더구나 조프리 플라타제네트는 1151년에 태어났다고 하므로 그렇다면 어머니가 된다는 로사문드와 거의 같은 나이가 되는 것이니 그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가 아닐수 없다. 아마 조프리 플라타제네트는 헨리와 다른 여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겠느냐는 의견이다. 둘째 아들이라고 하는 윌렴 롱기스피도 로사문드와는 관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나중에 발견된 것으로 롱기스피가 자기 어머니로 생각되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첫 머리에 '어머니 이다 백작부인'(Comitissa Ida, mater mea)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헨리 2세

 

로사문드는 물론이고 헨리 2세의 왕비인 엘레아노르에 대하여도 여러 전설이 있지만 신빙성이 있는 얘기들은 아니다. 로사문드가 질투심에 넘쳐 있는 엘레아노르(레오노라)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또한 헨리 2세가 로사문드를 위해 우드스토크성 구내에 사냥숙사를 짓고 그 숙사의 주변에ㅔ 마치 미로와 같은 정원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 미로정원은 우드스톡성 인근에 블렌하임궁을 건설할 때에 철거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근거가 있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하하면 '런던의 프랑스 연대기'(French Chronicle of London)에는 질투심 많은 헨리 3세의 부인인 프로방스의 엘레아노르가 로사문드를 붙잡아서 불에 굽듯이하여 죽였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저런 별별 괴상한 전설이 다 있지만 엘리자베스 시대에 가장 유력한 스토리는 로사문드가 헨리 2세의 부인인 아퀴텡의 엘레아노르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토마스 들로니(Thomas Deloney)의 Ballad of Fair Rosamond(아름다운 로사몬드의 발라드), 사뮈엘 다니엘의 Complaint of Roosamund(로사문드의 고통)은 모두 픽션이다.

 

엘레아노르가 로사문데를 독살코자 하고 있는 그림

 

로사문드가 헨리와 관계를 갖게 된 시기는 아마도 엘레아노르가 마지막 아이를 임신했을 때라고 본다. 헨리와 엘레아노르의 마지막 아이인 존은 1166년 12월 24일에 태어났다. 원래 엘레아노르는 우드스톡성에서 출산할 예정이었으나 우드스톡성에 로사문드가 있는 것을 알고는 보몽궁전으로 가서 존을 낳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엘레아노르는 이미 1166년 이전에 헨리와 로사문드가 깊은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헨리는 공무로 잉글랜드에 자주 갔었으며 또한 유럽에 있는 소유지에도 시간이 있는대로 갔었다고 한다. 그럴 때에 로사문드가 함께 갔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우드스톡성에서 혼자 조용히 지냈는지에 대하여는 기록된 사항이 없어서 알수가 없다. 만일 로사문드가 헨리의 부재 중에 우드스톡성에서 지냈다고 한다면 두 사람은 1166년부터 1176년까지의 기간에 함께 있었던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으며 최대로 생각해도 전체 기간의 3분의 1정도 밖에 함께 있지 않았다고 할수 있다. 그런 견지에서 본다면 로사문드는 헨리 2세의 여러 정부들 중에서 가장 외면당했던 여인이라고 할수 있다. 다만, 사학자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사항은 로사문드가 엘레아노르의 미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헨리와 로사문드가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믿어서 대단히 증오했다는 것이다.

 

헨리와 로사문드의 관계가 공공연하게 알려진 것은 1174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가 끝난 것은 로사문드가 1176년에 옥스포드 인근에 있는 곳스토우(Godstow) 수녀원에 들어가면서라고 한다. 로사문드는 수녀원에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로사문드에 대한 추모예배는 1176년 7월 6일에 히어포드(Hereford) 교회에서 거행되었다. 나중의 일이지만 7월 6일은 헨리 2세의 추모일이기도 하다. 헨리 2세는 1133년에 태어나서 1189년 7월 6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므로 로사문드와는 거의 20년이라는 나이차이가 있으며 로사문드가 세상을 떠난후 13년을 더 살았다. 로사문드의 묘지는 곳스코우 수녀원 교회의 중앙제단 앞에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주교가 로사문드는 창녀나 다름 없으므로 교회 안에 유해를 둘수 없다고 주장하여 교회 밖의 수녀원 건물 옆의 수녀원 공동묘지로 이장되었다. 그러다가 헨리 8세 때에 수도원 정비정책에 의해 수녀원이 철거되는 바람에 함께 철거되었다. 현재 로사문드의 유해를 담은 관은 곳스토우 소수도원에 아직 남아 있어서 일반인들이 찾아오고 있다. 비문에는 '여기 묘지에 순수한 장미는 아니지만 세상의 장미가 누워 있다. 감미로운 내음을 내뿜었던 여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음은 나지만 감미롭지는 않다'고 적혀 있다. (Here in the tomb lies the rose of the world, not a pure rose; she who used to smell sweet, still smells - but not sweet).

 

아퀴텡의 엘레아노르 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