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에르네스트 블로흐의 '맥베스' - 26

정준극 2013. 6. 3. 22:09

맥베스(Macbeth)

에르네스트 블로흐의 3막 오페라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충실히 반영. 음악은?

 

스위스 출신의 작곡가 에른스트 블로흐

 

오페라 '맥베스'라고 하면 당연히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맥베스'라는 오페라가 또 하나 있다.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미국 작곡가인 에르네스트 블로흐(Ernest Bloch: 1880-1959: 어네스트 블라크)가 1906년에 작곡한 '맥베스'이다. 대본은 스위스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에드몽 플레그(Edmond Fleg: 1874-1963)가 프랑스어로 썼다. 블로흐의 '맥베스'는 1906년에 완성되었지만 당장 공연되지는 못하였고 4년 후인 1910년 11월 30일에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은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출연진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블로흐의 '맥베스'는 음악적으로나 드라마틱한 면에서나 대단히 뛰어난 작품이라는 후평이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로망 롤랑(Romain Rolland)은 블로흐의 '맥베스'에 대하여 놀랍도록 훌륭한 음악이라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블로흐의 '맥베스'는 초연으로부터 거의 한세기가 지난 근자에 이르러서야 리바이발되어 세계 오페라계의 관심을 다시 끌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의 공연은 2013년 6월 미국의 롱비치 오페라(LBO)가 캘리포니아주 산 페드로의 월드 크루즈 센터에서 리바이발한 것이었다. 

 

블로흐의 '맥베스' 음반

                    

에르네스트 블로흐는 다작의 작곡가이지만 오페라는 '맥베스'가 유일하다. 그는 '맥베스'를 1904년부터 작곡하기 시작했으나 다른 작곡 때문에 5년이 지난 1909년에야 겨우 완성할수 있었다. 블로흐의 딸인 수잔느는 그의 저서 'Ernest Bloch: Creative Spirit'에서 '아버지는 주인공들의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무척 고심하셨다'라고 썼다. 그것을 보면 블로흐가 '맥베스'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짐작코도 남음이 있다. 블로흐 학자인 알렉산더 크나프(Alexander Knapp)박사는 블로흐가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를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을 '음악과 심리학의 융합'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음악평론가인 귀도 가티(Guido Gatti: 1892-1979)는 베르디의 '맥베스'와 블로흐의 '맥베스'를 자세히 비교분석한 후에 결론적으로 '베르디는 보다 사실주의적이며 블로흐는 보다 상징주의적이다'이라고 말했다. 블로흐의 시대는 상징주의가 추세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귀도 가티는 블로흐의 '맥베스' 음악을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에 비교하기도 했다.

 

뉴올리언스대학교 공연

                    

블로흐의 '맥베스'가 파리에서 초연된 1910년은 베르디의 '맥베스'가 더 이상 공연되지 않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는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관심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듬해까지 겨우 15회의 공연을 마치고 물러서야 했다. 일설에 의하면 출연진들 간의 심각한 불화 때문에 더 이상 공연을 진행할수 없었다고 한다. 그후 블로흐의 '맥베스'가 다시 모습을 보인 것은 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돌고 있던 1938년 나폴리의 산 카를로에서였다. 하지만 단 한번의 공연으로 만족해야 했다. 반유태주의 정부인 무솔리니가 공연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블로흐는 출판사의 요청도 있고 해서 '맥베스'의 풀 스코어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별도로 스코어를 발간했다. 특히 1막의 1장과 2장 사이에 나오는 간주곡, 그리고 1막과 2막 사이에 나오는 간주곡을 별도로 발췌하여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후 '맥베스'의 간주곡만이 여러 나라에서 연주되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에도 블로흐의 '맥베스'라고 하면 전체 무대공연보다는 간주곡이 더 잘 알려져 있게 되었다.

 

레이디 맥베스와 시녀

 

블로흐의 '맥베스'가 이탈리아에서 다시 모습을 보인 것은 전쟁이 끝나고 한참 후인 1953년 로마에서였다.  에르네스트 앙세르메(Ernest Ansermet)가 지휘한 공연이었다. 이어 1957년에는 트리에스테, 1958년에는 브뤼셀에서 공연되었으며 1959년에 블로흐가 미국 오레곤주의 포틀랜드에서 세상을 떠나자 그를 추모하여 밀라노에서 공연되었다. 그후 블로흐의 '맥베스'는 또 다시 잠수하였다가 1973년에 뉴욕의 줄리아드에서 영어 대본으로 공연되었으며 영국 런던대학교 대학오페라단이 공연한 것은 2009년이었다. 물론 1960년대와 70년대에 미국의 이런저런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공부삼아 공연한 일은 있다. 한편, 블로흐는 1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17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블로흐는 미국에서 시인인 알렉스 코엔(Alex Cohen)의 도움을 받아 '맥베스'의 영어 대본을 완성했다. 영어 대본은 프랑스어 대본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더욱 충실하게 반영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셰익스피어의 원작은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

                            

블로흐의 '맥베스'는 5막의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3막으로 압축한 것이다. 등장인물은 맥베스(Bar), 레이디 맥베스(MS), 방코(T), 던칸 왕(T), 맥더프(B), 포터(Bar), 레녹스(Bar)이다. 각 막은 2장씩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6장이며 여기에 전주곡을 1장으로 간주하여 전체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페라 '맥베스'의 스토리는 원작에 충실했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를바가 없다. 그러므로 생략! 대신에 작곡자인 에르네스트 블로흐를 조금 더 소개코자 한다. 블로흐는 1880년에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블로흐는 청년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만인의 찬사를 받았다. 그래서 음악계에서는 블로흐는 바흐(Bach), 베토벤(Beethoven), 브람스(Brahms)에 이은 네번째 B 음악가라고 불렀다. 블로흐의 음악은 20세기를 맞이하여 새로운 시대에 대한 도전에 넘쳐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폭넓은 청중들에게 다가갈수 있는 것이다. 블로흐는 간혹 '유태인 작곡가'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의 작품 중에서 여러 곡이 유태적인 제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사울, 엘로힘, 시편, 이스라엘, 솔로몬, 환상과 비전 등이다. '맥베스'의 대본을 쓴 에드몽 플레그도 유태주의 시인이었다. 그래서 무솔리니가 '맥베스'의 이탈리아에서 공연을 금지하였고 히틀러의 나치도 블로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한편, 그의 작품은 르네상스, 신고전주의, 신낭만주의, 스위스 민속음악, 미국 인디언 음악, 중국음악, 그레고리아 성가 등 여러 분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에서 그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여러 제자들을 육성하였지만 따로 무슨 '학파'를 구성하지는 않았다. 그의 음악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모임으로서 미국에 American Ernest Bloch Society가 생겼고 이어 1937년에는 런던에 Ernest Bloch Society가 생겼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토마스 비첨경, 아서 블리스경, 아놀드 박스경, 존 바르비롤리경 등이 명예임원으로 되어 있는 협회이다. 블로흐는 작곡가, 지후휘자이면서도 대단히 뛰어난 사진작가였고 버섯전문가였다.

 

도르트문트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