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매력의 분수

1구 인네레 슈타트의 분수들 - 1

정준극 2013. 5. 18. 21:28

1구 인네레 슈타트의 분수들 - 1

영광의 역사를 간직한 뛰어난 예술품

 

⊙ Akademische Gymnasium Moses-Brunnen(아카데미셰 김나지움 모제스 브룬넨)

 

1구 베토벤플라츠 1번지에 슈베르트가 졸업했고 페터 알텐버그가 졸업한 아카데미셰 김나지움이 있다. 1863-66년에 거장 프리드리히 폰 슈미트(Friedrich von Schmidt: 1825-1891)가 건축한 신고딕양식의 아름다운 건물이다. 프리드리히 폰 슈미트는 비엔나 신시청(라트하우스)건물을 완성한 건축가이다. 아카데미셰 김나지움의 건물 내에 브룬넨하우스(분수의 집)라는 공간이 있고 여기에 빈센츠 필츠(Vincenz Pilz: 1816-1896)가 제작한 모세 분수가 있다. 아마 학생들에게 모세처럼 위대한 지도자가 되라고 하기 위해 대리석의 모세 기념상을 마련한 모양이다. 분수라는 명칭이지만 분수로서의 기능은 없고 그냥 모세 기념상으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카데미 김나지움에 있는 모세 분수

 

⊙ Albrechtsbrunnen(알브레헤츠브룬넨) - 알브레헤트 분수

 

알베르티나 미술관과 연계되어 있는 아름다운 분수이다. 가운데의 인물들은 도나우강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분수의 또 다른 이름은 다누비우스브룬넨(Danubiusbrunnen)이다. 도나우슈트롬(Donaustrom) 분수라고도 한다. 도도히 흐르는 도나우 강이라는 뜻이다. 오버외스터라이히의 마우타우젠에서 나오는 대리석을 사용했다. 마우타우젠 대리석은 품질이 뛰어나서 조각작품에 많이 사용된다. 짙은 회색과 청색을 띠고 있는 대리석이다. 미술사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의 사이에 있는 마리아 테레지아 기념상, 헬무트 칠크 플라츠(Helmut-Zilk-Platz)에 있는 공화국 기념상, 국립도서관 앞 요제프스플라츠에 있는 요제프 2세 기마상의 하단 등은 모두 마우타우젠 대리석을 사용한 것이다. 우리가 굳이 알브레헤츠브룬넨의 제작을 맡은 조각가의 이름까지 알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해서 이름을 열거하면 두 사람으로서 하나는 모리츠 폰 뢰르(Moritz von Loehr)이고 다른 하나는 요한 마익스너(Johann Meixner)이다. 관광안내원 자격시험에 나올지도 모르므로 기억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완성은 1869년이다. 오스트리아에서 벽분수로서 이만큼 뛰어난 작품은 없을 것이다. 알브레헤트 분수라고 이름 붙인 것은 현재 알베르티나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 18세기에 알브레헤트(알베르트) 대공이 거처로 삼았던 건물이기 때문이다. 알브레헤트 대공은 유명한 샤를르 대공의 큰아들이다.

 

알브레헤트 분수 또는 다누비우스 분수

 

중앙에 있는 빈도보나와 다니비우스 조각상의 양쪽 옆에 인물 조각상들이 4개씩 늘어서 있다. 어른 모습의 조각상도 있지만 대부분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이들은 모두 도나우와 관련이 있는 강들을 상징한다. 무르(Mur), 잘차흐(Salzach), 마르흐(March), 자베(Save), 타이쓰(Theiss), 라아브(Raab), 엔스(Enns), 트라운(Traun), 드라우(Drau), 인(Inn)을 상징한다. 그중에서 드라우와 인의 조각상은 부르크가르텐에 같은 것을 만들어 세워놓았다. 빈도보나 여신상은 비엔나를 상징한다.

 

빈도보나 여신(비엔나시를 상징함)이 비엔나 시의 열쇠를 잡고 있다. 다니비우스(도나우) 신이 빈도보나를 부드럽고 다정하게 손으로 감싸고 있다.

 

⊙ Andromedabrunnen(안드로메다브룬넨) - 안드로메다 분수

 

안드로메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티오피아의 공주로서 바다의 괴수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지려는데 용사 페르세우스에게 구출되어 그의 아내가 된 아름다운 여인이다. 안드로메다 분수는 뷔플링거슈트라쎄에 있는 비엔나 구시청(알테스 라트하우스)의 구내에 있다. 1741년에 제작되었다. 현재 구시청 건물은 비엔나 제1구 인네레 슈타트의 구청 청사로 사용되고 있으며 한쪽에는 오스트리아저항운동박물관(실은 저항운동관련 문서보관소)과 비엔나제1구박물관이 자리잡고있다. 안드로메다 분수를 이곳에 만든 목적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비엔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수 조각의 하나이다. 제작은 라파엘 돈너가 했다. 돈너는 노이에 마르크트의 돈너 분수 등을 제작한 거장이다. 양쪽 기둥에는 큐피드와 같은 푸토들이 윗쪽에 있는 발코니를 받치고 있다. 발코니의 철책도 아름답다. 

 

비엔나 구시청에 있는 안드로메다 분수

 

안드로메다에 관한 전설은 다음과 같다. 안드로메다는 에티오피아의 왕비인 카시오페이아의 아름다운 딸이다. 자만심과 허영심이 많은 카시오페이아는 해신 네레우스(포세이돈)의 딸들인 네레이데들보다 더 아름다워지기를 바랬다. 해신 네레우스는 카시오페이아의 자만심과 허영심을 꺾기 위해 에티오피아의 전역을 황폐화했다. 백성들은 바다의 괴물(용)에게 산제사를 드려야 살수 있다고 생각하여 안드로메다를 제물로 드리기로 했다. 안드로메다는 바다 한 가운데의 바위에 쇠사슬로 두 팔이 묶인채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때 마침 고르곤(Gorgon)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제우스의 아들 페르세우스(Perseus)가 천마 페가수스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에 바다 한가운데의 바위에 묶여 있는 안드로메다를 발견한다. 고르곤은 괴물 세 자매를 말하며 그 중의 하나가 메두사이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가방에 넣어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안드로메다가 용에게 잡혀 먹을 순간이었다. 페르세우스는 급히 바다로 내려와서 용감하게 괴물 용을 처치하고 안드로메다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두 사람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기다.

 

천마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페르세우스

안드로메다와 페르세우스와 바다의 용

                                                                                  

⊙ Austriabrunnen(오스트리아브룬넨) - 오스트리아 분수

 

프라이융은 비엔나 구시가지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이다. 프라이융은 1구의 암 호프 광장과 쇼텐슈티프트(아일랜드 수도원) 사이에 있다. 주소가 있어서 프라이융 7번지이다. 프라이융은 부활절 시장이 유명하며 크리스마스에도 시장이 열린다. 프라이융의 오스트리아 분수는 1846년에 완성되었다. 페르디난트 황제가 비엔나에 상수도를 설치한 것을 기념하여 세웠다. 그래서 기둥 위의 여신은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여신이지만 하단의 네 인물은 합스부르크가 거느리고 있는 지역의 대표적인 네 강을 의미한다. 즉, 엘베(Elbe), 도나우, 폴란드의 봐이히젤(Weichsel), 이탈리아의 포(Po)이다. 또한 합스부르크의 권세가 미치는 네개의 바다도 상징한다. 즉, 북해(Nordsee), 흑해(Schwarze SMeer), 발트해(Baltisches Meer), 아드리아해(Adria)이다. 발트해는 동해(Ostsee)라고 부르기도 한다. 거장 루드비히 슈봔탈러(Ludwig Schwanthaler)와 페르디난트 폰 밀러(Ferdinand von Miller)가 공동으로 제작했다.

 


프라이융의 오스트리아 분수. 그림

오스트리아분수(아우스트리아브룬넨) 상단의 오스트리아를 상장하는 여신상

                

오스트리아분수의 하단에 있는 네명의 인물은 여성 2명, 남성 2명이다. 여성은 봐이히젤 강과 도나우 강을 상징한다. 남성상은 엘베강과 포강을 상징한다. 각 조각상의 아래쪽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포강의 아래에는 UNTER DER REGIERUNG(치하에서)라고 적혀 있으며 도나우에는 KAISER FERDINANDS I(페르디난드 1세 황제)라고 적혀 있고 봐이히젤에는 VON WIENER BURGERN(비엔나 시민에 의해서)라고 적혀 있으며 마지막으로 엘베의 아래에는 ERRICHTET MDCCCXVI(1846년에 세우다)라고 적혀 있다. 도나우는 팔에 조개껍질로 만든 팔찌를 차고 있고 손에는 머리카락 뭉치를 들고 있다. 봐이히젤은 수문열쇠를 들고 있다. 포는 수문열쇠와 커다란 삽을 들고 있다. 아마 준설을 의미하는 것 같다. 엘베는 산신령의 얼굴에 손을 대고 있다. 슐레지엔주에 있는 거인산(리젠게비르게)에 있는 산신령이다. 강물의 근원은 산이고 산은 산신령이 관장하므로 경외하는 의미이다.

 

오스트리아분수의 하단에 있는 조각상. 엘베와 도나우. 도나우는 여인으로 의인화했다. 풍요와 번영을 상징한다.

 

⊙ Befreiung-der-Quelle-Brunnen(베프라이웅 데어 크벨레 브룬넨) - 막힌 샘물 터놓기 기념 분수

 

프란츠 요셉 1세 황제 시절인 1903년에 만든 분수이다. 슈타트파르크 옆을 흐르는 빈강(Wien Fluss)과 관련하여 만들어 놓은 분수이다. 두 사람이 막혀 있는 샘물을 터 놓기 위해 돌을 치우고 부수고 있는 모습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지나며 도도히 흐르는 도나우강도 실은 작은 샘물로부터 발원하였다. 막혀 있는 샘물을 발견하여 물길을 터 놓는 일은 주민들의 생활과도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었다. 계단 위에 있기 때문에 정중한 모습이다. 도심에 있는 슈타트파르크에 가면 구석구석에 자못 의미있는 조형물들이 있어서 산책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막힌 샘물을 터놓는 작업을 하고 있는 두사람의 분수

 

⊙ Bellonabrunnen(벨로나브룬넨)- 벨로나 분수

 

암 호프 광장의 한 쪽에 비엔나소방서(Wiener Feuerwehrzentrale) 건물이 있다. 원래는 시민병기고(Bürgerliche Zeughaus) 건물이었다. 칼이나 창과 같은 무기들을 평상시에는 이곳에 집중보관하고 있다가 유사시에는 시민군에게 나누어 주어 전투에 임하도록 했다. 멀리 16세기 터키의 비엔나공성 때부터 그런 역할을 한 건물이었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이곳 안뜰에 로마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여신인 벨로나(Bellona)를 내세운 벽감분수를 만들어 놓았다. 투구를 쓰고 한 손에는 방패를 들었으며 다른 한 손에는 군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사자 위에 올라타고 있다. 이와 같은 벽감 형태의 분수를 니센브룬넨(Nischenbrunnen)이라고 부른다. 처음에 만들어 진 것은 1730년이었다. 그러다가 1945년 2차 대전의 막바지에 폭격의 여파로 파손되었다. 다행히 옛날 분수를 그려 놓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토대로하여 1950년에 새로 만들었다. 소방서의 내정에 있기 때문에 거의 보기가 어렵지만 얘기하고 들어가면 된다. 벨로나 여신의 모습을 볼수 있어서 가치가 있다. 물줄기가 나오지 않은지는 오래인것 같다. 주변 청소 좀 하시지!

 

벨로나 분수

               

⊙ Brunnen im Rathauspark(브룬넨 임 라트하우스파르크) - 시청공원 분수

 

수반 안에 석조의 섬을 만들고 그곳에서 물이 뿜어 오르게 만든 전형적인 분수이다. 똑 같이 생긴 분수가 두개 있다. 공원의 북쪽과 남쪽에 각각 있다. 시청앞 광장의 옆 숲 속에 있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 시민들이 시원하게 여유있는 시간을 보낼수 있다. 1873년에 만들었다. 처음에는 자연 샘물을 이용한 분수였으나 1910년에 비엔나 상수도에 연결되어 물을 뿜어내게 되었다. 무더운 여름의 한 낮에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분수를 바라보고 쉬는 것도 별미이다.

 

시청공원의 분수

 

⊙ Delphinbrunnen(델핀브룬넨) - 돌고래 분수

 

델핀브룬넨을 돌고래 분수라고 번역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돌고래는 아니다. 그저 대단히 큰 물고기여서 어찌보면 괴물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그것들을 아이들이 잡고서 놀고 있는 조각들을 간혹 볼수 있다. 바다라고는 구경도 할수 없는 오스트리아에서 돌고래는 웬 돌고래인지 모르겠지만 도나우 강에서 잡히는 큰 물고기라면 이해가 간다. 프라이융의 한 쪽에 있는 쇼텐슈티프트(아일랜드수도원)의 구내에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보기 힘들다. 그러나 꼭 보고 싶으면 얘기하고 들어가서 보면 된다. 1874년에 만들었다. 쇼텐슈티프트에는 두 군데의 호프(내정)가 있는데 그 중 제2의 호프에 있다. 돌고래처럼 생긴 물고기가 분수 꼭대기에 자그마하게 설치되어 있다.

 

쇼텐슈티프트 호프(내정: 안뜰)에 있는 델핀브룬넨

                         

⊙ Die Macht zu Lande(디 마하트 추 란데) - 땅의 권세 분수

 

호프부르크의 웅장한 미하엘러토르(미하엘문)의 양 옆에 마치 쌍둥이 분수처럼 만들어 진 것의 하나이다. 하나는 땅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다에 대한 것이다. 호프부르크 만큼이나 웅장하고 멋있는 분수이다. 역시 벽에 붙어 있는 봔트브룬넨(Wandbrunnen: 벽분수)이다. 바다의 권세 분수는 1895년에 만들어졌고 땅의 권세 분수는 2년 후인 1897년에 만들어졌다. 재질은 라써 대리석(Lasser Marmor)을 주로 사용했다. 라써 대리석은 이탈리아 북부, 남티롤지방의 라써 계곡에서 생산된 아주 단단한 대리석으로 대체로 붉은 색조를 띠고 있다. 영웅이 검을 들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독수리가 뱀을 제압하고 있는 모습과 거인들이 두려워 하고 있는 모습이다.

 

'땅의 권세 분수'

'땅의 권세' 분수 하단의 세부조각

 

⊙ Die Macht zur See(디 마하트 추르 제) - 바다의 권세 분수

 

호프부르크의 미하엘러트락트(미하엘건물)에 '땅의 권세 분수'와 대칭되어 있다. 1895년에 만들었다. 역시 같은 재질인 라써 대리석을 사용했다.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여신이 배를 타고 가는 모습이며 배의 아래쪽에는 바다의 괴물이 배의 앞길을 제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조각이 있다. 그리고 해신 넵튠처럼 생긴 거인과 바다의 괴물(Seeungeheuer)이 서로 다투는 듯한 모습의 조각이 있다.

 

 

'바다의 권세' 분수

'바다의 권세' 분수 하단 디테일

 

⊙ Donaunixenbrunnen(도나우닉센브룬넨) - 도나우 님프 분수

 

프라이융의 한 쪽에 있는 팔레 페르스텔(Palais Ferstel) 안에 있다. 팔레 페르스텔의 아랫층은 아케이드 상점들이기 때문에 누구나 들어가서 볼수 있다. 상점들이 있기 때문에 이 분수가 있는 공간을 바자르호프(Basarhof)라고 부른다. 아름다운 도나우 님프가 분수의 꼭대기에 자립잡고 있다. 그래서 제대로 님프의 모습을 감상하려면 목이 좀 아파야 한다. 조각들은 청동으로 만들었지만 아래의 기단은 대리석이다. 하인리히 폰 페르스텔(Heinrich von Ferstel), 안톤 도미니크 리터 폰 페른코른(Anton Dominik Ritter von Fernkorn), 안톤 봐써부르거(Anton Wasserburger)가 공동제작했다. 폰 페르스텔은 팔레 페르스텔을 설계한 사람이다. 1861년에 만들었다.

 

팔레 페르스텔 안에 있는 도나우님프 분수

 

⊙ Donauweibchenbrunnen(도나우봐이브헨브룬넨) - 도나우 여인 분수

 

슈타트파르크에 있다. 거장 한스 가써(Hans Gasser)가 1858년에 만들었으나 설치는 1865년이었다. 한스 가써는 여러 조각들을 제작하였는데 그 중 하나만 예를 들어 보면 베스트반호프(서부역)에 있는 엘리자베트 왕비(씨씨)의 조각이다. 원래 이 조각은 호에 마르크트(Hohe Markt)에 있었던 생선시장(Fischhof)에 설치했다가 슈타트파르크로 옮긴 것이다. 그러다가 2차 대전 중에 상당부분이 파괴되었던 것은 조각가 펠링거(Fellinger)가 1948년에 복원하였다. 도나우봐이브헨이라는 말은 도나우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여인을 말한다. 그래서 호에 마르크트의 생선시장에 세웠던 것이다. 봐이브헨이라는 단어는 자그마하고 귀여운 부인을 지칭할 때에 사용하는 것으로 사랑스러운 아내 정도로 번역할수 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 새잡이 파파게노가 부르는 Eine Madchen oder Weibchen 이라는 명랑한 노래가 나온다. 이것을 '아가씨거나 귀여운 아내나'라고 번역해 놓았다.

 

슈타트파르크의 도나우봐이브헨 분수

'도나우봐이브헨브룬넨' 상단

 

⊙ Donnerbrunnen(돈너브룬넨) - 돈너 분수

 

이 분수를 제작한 라파엘 돈너(Rafael Donner)의 이름을 따서 돈너 분수라고 한다. 노이어 마르크트의 광장 가운데에 있다. 비엔나 시내에 있는 분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수일 것이다. 비엔나 시당국이 돈너에게 의뢰하여 제작한 바로크 분수이다. 당시로서는 군주나 왕족, 귀족들만이 바로크 양식의 조형물을 주문할수 있었는데 비엔나 시당국이 바로크 분수를 설치했다는 것인 예외였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아버지인 샤를르 6세의 통치 막바지인 1739년에 설치되었다. 그런데 그후 실질적인 군주였던 마리아 테레지아는 도덕재무장을 내세우고 도덕위원회를 구성하여 사회정화 및 도덕함양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것이 돈너분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돈너 분수에는 사방에 옷을 거의 걸치지 않는 남녀의 조각이 있었는데 마리아 테레지아는 그것이 미풍양속에 저해된다고 하여 분수를 철거토록 했던 것이다. 이 분수의 원래 이름은 프로비덴티아브룬넨(Providentiabrunnen)라고 불렀다. 신의 섭리를 표현하기 위한 분수라는 뜻이다. 사방에 있는 네 인물은 도나우의 4대 지류강을 의미한다. 또는 멜마르크트브룬넨(Mehlmarktbrunnen)라고도 불렀다. 멜(Mehl)은 곡식이라는 뜻이다. 노이에 마르크트가 원래 곡물시장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원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만든 사람을 기억하여서 돈너분수라고 부른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지시에 의해 철거된 분수는 현재 벨데데레궁전의 오스트리아 화랑에 전시되어 있고 노이어 마르크트에 있는 것은 나중에 복사품으로 만든 것이다. 복사품을 만들 때에 벗은 사람들에게 약간의 옷을 입혔다. 돈너분수는 1995년에 X-세대 영화인 'Before Sunrise'에 나와서 더 유명해졌다.

  

노이어 마르크트(슈타트오퍼 뒤편)의 돈너분수  

돈너분수 상단의 여신상. 뱀을 잡고 있고 들고 있는 방패에는 야누스가 그려져 있다. 뱀은 지혜를 상징하며 야누스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배려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여신은 프로비덴티아(Providentia)이다. 섭리 또는 예정의 여신이다. 프로비덴티아는 인간들에게 사전준비를 하도록 조언해 주는 역할도 한다.

돈너 분수의 오리지날 조각은 현재 하벨베데레(운테렌 벨베데레)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