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매력의 분수

1구 인네레 슈타트의 분수들 - 2

정준극 2013. 5. 19. 19:00

1구 인네레 슈타트의 분수들 - 2

역사의 향기

 

⊙ Hannakenbrunnen(하나켄브룬넨) - 하나케 분수

 

하나케 분수는 암 게슈타데 2-4번지 건물 앞에 있다. 하나케(Hannake)는 체코에 살고 있는 하나크족을 말한다. 하나크 사람들은 돈벌이를 하러 제국의 수도 비엔나로 왔다. 특별히 할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주로 벽돌 만드는 일에 종사했다. 체코 사람으로서 비엔나에서 벽돌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치겔뵘(Ziegelböhm)이라고 불렀다. 치겔은 벽돌을 말하고 뵘은 보헤미아 사람, 즉 체코 사람들을 의미했다. 체코의 하나크 사람들이 비엔나에 처음 와서 모여 살던 곳이 암 게슈타데 인근이다. 도나우 운하의 옆에 있는 언덕지대이다. 하나케 분수는 조각가 루돌프 슈미트(Rudolf Schmidt: 1894-1980)가 1937년에 제작했다.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합병 당하기 1년 전이다. 전설에 의하면 하나크족의 왕(Hannakenkönig)이 전쟁에서 큰 부상을 입었는데 두 사람의 부하들이 그를 부축하여 데려와 살렸다고 한다. 그 내용을 분수의 조각으로 만들었다. 하나크 사람들의 충성과 우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아무리 다른 나라에 와서 살더라도 체코 하나크 족의 긍지를 잃지 말자는 의미이다. 한편, 암 게슈타데(Am Gestade 또는 Am Stade)에 있는 유서깊은 마리아 암 게슈타데 성당은 비엔나에 있는 체코인들의 구심점이다. 체코인들을 위해 체코어로 미사가 진행된다.

 

하나케분수

 

⊙ Heinrich-Jasomirgott-Brunnen(하인리히 야소미어고트 브룬넨) - 하인리히 2세 야소미어고트 분수

 

쇼텐슈티프트(아일랜드수도원)의 구내에 있다. 쇼텐슈티프트는 바벤버그 왕조의 하인리히(헨리) 2세(1077-1177)가 창설했다. 신앙심이 유독히 깊은 그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야소미어고트(Ja so mir Gott: 하나님의 뜻대로)라고 입버릇처럼 말했기 때문에 야소미어고트 대공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야소미어고트 대공은 비엔나를 바벤버그 왕조의 수도로 삼고 처음으로 궁전을 지었다. 그곳이 암 호프이다. 야소미어고트 대공은 독일에 있던 아일랜드 수도승들을 비엔나로 불러와서 백성들에게 기독교를 더욱 전파하도록 했다. 그들을 위한 수도원이 쇼텐슈티프트이며 그 안에 쇼텐키르헤(수도원교회)가 있다. 수도원교회의 거리쪽 벽면에는 벽감 스타일의 하인리히 2세의 기념상이 있다. 쇼텐슈티프트의 하인리히 야소미어고트 분수는 일찍이 1652년에 세바스티안 바그너라는 조각가가 제작하였다. 하인리히 대공은 원래 금박을 입혔으나 나중에 그의 소박한 생활을 존경하여서 금박을 제외하였다.

 

프라이융의 쇼텐슈티프트 첫번째 내정(호프)에 있는 하인리히 야소미어고트 분수

 

⊙ Herkulesbrunnen(헤르쿨레스브룬넨) - 헤라클레스 분수

 

부르크가르텐에 있는 아름다운 분수이다. 분수 가운데에는 자연석 좌대 위에 헤라클레스가 사자와 싸우는 조각이 있다. 원래 6구 마리아힐르프의 에스터하지파르크에 있던 것이다. 1770년에 에스터하지 가문이 제작을 의뢰한 것이다. 그것을 1948년에 현재의 부르크가르텐으로 옮겨왔다. 마리아힐르프의 에스터하지파르크에는 2차대전 당시 고사포대가 거창하게 남아 있다. 하우스 데어 메르(수족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부르크가르텐에 있는 헤라클레스 분수. 헤라클레스가 사자와 싸우는 장면이다.

 

⊙ Isterbrunnen(이스터브룬넨) - 이스터 분수

 

헤렌가쎄(Herrengasse) 13번지 알테스 란트하우스(구의사당)의 내정에 있는 이 분수는 1844년 경에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겸 조각가인 요셉 클리버(Joseph Klieber: 1773-1850)가 니더외스터라이히주의 란트하우스(의사당)를 위해 제작한 분수이다. 요셉 클리버는 알베르티나의 대회의실에 있는 아폴로와 9 뮤즈를 제작하였고 미네르바홀의 팔라스 아테네도 만들었다. 또한 벨베데레의 오스트리아 갤러리에 있는 샤를르 대공의 기념상도 만들었다. 원래 그 자리에는 격자로 된 분수가 있었으나 1846년에 현재의 것으로 대체하였다. 현재는 분수가 나오지 않지만 조각품으로서 보존하고 있다.

 

니더외스터라이히주 구의사당 내정에 있는 이스터 분수

 

⊙ Josefsbrunnen(요제프스브룬넨) - 요셉 분수 또는 그라벤 분수(Grabenbrunnen)

 

그라벤의 페스트조일레 양 쪽으로 두 개의 비교적 작은 분수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아버지요 성모 마리아의 남편인 성요셉 분수, 그리고 성레오폴드 분수이다. 청동으로 만든 성요셉 분수는 1804년에 오스트리아의 조각가인 요한 마르틴 피셔(Johann Martin Fischer: 1740-1820)이 제작한 것이다. 서실 그 전에 요한 프뤼비르트라는 조각가가 레오폴드 1세의 요청으로 1680년에 납으로 만든 요셉상이 있었으나 납이기 때문에 독성이 문제가 되어 교체키로 하여 120여년이 지난 때에 요한 마르틴 피셔가 당시의 모습대로 새로 만들었다. 청동으로 새로 만들어 설치한후 그 전에 있던 납으로 만든 것은 분실되어 종적을 알수 없게 되었다. 조각은 어떤 소년이 성요셉의 족보를 적은 두루마리를 성요셉에게 보여주는 모습이다. 하단에는 두개의 부조가 있다. 하나는 성요셉이 천사(주의 사자)로부터 수태고지를 받고 있는 장면(마태 1: 20-25)이며 다른 하나는 헤롯의 박해를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가는 장면(마태 2: 13-23)이다. 다른 하나인 레오폴드 분수는 Leopoldbrunnen 이기 때문에 L 로 시작하는 항목에서 소개코자 한다. 부탁하건대 그라벤에 가서 이 분수를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자세히 관찰하면 신앙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라벤의 성요셉 분수. 소년이 성요셉에게 요셉의 족보를 적은 두루마리를 건네주고 있다.

 

⊙ Kastalia-Brunnen(카스탈리아 브룬넨) - 카스탈리아 분수

 

쇼텐링의 비엔나대학교 구내에 있는 조각분수이다. 카스탈리아(Kastalia: 영어로는 Castaly)는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로와 뮤즈들이 살고 있다는 파르나서스(Parnassus) 영산에 있는 샘(神泉)을 말한다. 그로부터 카스탈리아는 시작(詩作)에 영감을 주는 뮤즈로 알려졌고 나아가 시인들, 시단, 시문집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카스탈리아가 대학교 구내에 있는 것은 문학적인 영감을 얻으려는 아이디어일 것이다. 뮤즈인 카스탈리아가 왕좌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발아랫쪽에는 뱀이 기어가고 있다. 카스탈리아의 아버지인 아켈레오스(Acheleos)가 뱀의 모습으로 보인 것이다. 조각의 뒷편에 있는 부조에는 뱀이 사람을 감고서 재압하는 장면이 있다. 뱀은 지혜의 상징으로 되어 있다. 1910년에 오스트리아의 조각가인 에드문트 헬머(Edmund Hellmer: 1805-1935)가 제작하였다. 에드문트 헬머는 슈타트파르크에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황금기념상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비엔나대학교 구내에 있는 카스탈리아 분수. 아랫쪽에 검은 색의 뱀이 기어가고 있는 모스을 볼수 있다.

 

⊙ Kanbe mit Delfin(크나베 미트 델핀) - 델핀과 함께 있는 소년 분수

 

독토르 이그나즈 자이펠 플라츠(Dr-Ignaz Seipel Platz)에 있는 오스트리아학술원(Österreichisches Akademie der Wissenschaften: ÖAW)건물의 현관 쪽 양 옆에 소년이 괴수처럼 생긴 커다란 물고기를 제압하고 있는 조각분수가 있다. 이 건물은 학술원 본부로 쓰기 전에 구비엔나대학교의 본부건물이었다. 이 건물의 대연주회장에서 1802년 3월 27일,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하이든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연주되었다. 하이든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참석한 연주회였다. 그리고 베토벤의 교향곡 제7번도 초연되었다. 오스트리아학술원 건물의 건너편에는 구비엔나대학교 기숙사로 쓰던 건물이 있다. 슈베르트가 비엔나소년합창단의 멤버로 있을 때 이 건물에서 지냈다는 명판이 붙어 있다. 광장의 가운데에는 예수회교회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수수한 교회이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가보면 놀랍도록 화려하고 공을 들인 장식들이 마중한다. 오스트리아학술원 건물의 정면 벽면에 설치된 두개의 분수는 1755년에 프란츠 요제프 렌츠바우어(Franz Joseph Lenzbauer)라는 조각가가 제작한 것이다. 소년이 델핀이라고 하는 괴수처럼 생긴 물고기에 올라타고 있는 모습이다. 이 분수의 델핀은 물이 나오는 주둥이로 사용되고 있다. 슈테판성당과 같은 고딕건물을 보면 지붕의 처마에 괴수 모습의 낙수물 주둥이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수 있다. 그것들과 같은 용도이다. 그것을 독일어로 봐서슈파이어(Wasserspeier)라고 부른다.

 

오스트리아학술원 벽분수

 

⊙ Leopoldsbrunnen(레오폴즈브룬넨) - 성레오폴드 분수

 

그라벤의 성요셉분수와 함께 설치된 분수이다. 그라벤에 있기 때문에 그라벤분수라고도 불린다. 성요셉분수도 그라벤분수라고 불린다. 12세기 오스트리아 군주였던 레오폴드 3세(1073-1136)는 신앙심이 독실하여서 나중에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레오폴드 3세는 비엔나 교외에 있는 클로스터노이부르크(Klosterneuburg) 수도원을 설립한 인물이다. 그의 부인인 아네스(Agnes)도 신앙심이 두터웠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을 세우게 된데에는 다음과 같은 에피스도가 있다. 어느날 아네스가 가지고 있던 베일이 바람에 날아가 찾지 못한 일이 있었다. 얼마후 병사들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그 베일을 우연히 발견했고 아네스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그 위치에 수도원을 짓도록 했으니 그것이 오늘날의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이다. 성레오폴드는 1095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136년까지 비엔나의 수호성인이었다. 훗날 17세기에 오스트리아의 레오폴드 1세 황제가 성레오폴드를 기념하여서 그라벤에 기념분수를 만들도록 했다. 1680년이었다. 처음에는 기념상을 납으로 만들었으나 1804년에 요한 마르틴 피셔라는 조각가가 청동 동상으로 다시 만들었다. 조각은 성레오폴드가 푸토(어린 천사와 같은 신화의 인물)가 들고 있는 클로스터노이부르크 교회의 설계도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하단의 부조에는 성아네스의 베일을 발견하고 있는 장면, 그리고 그 장소에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을 짓고자 협의하는 모습이 마련되어 있다.

 

그라벤에 있는 성레오폴드 분수

성아네스의 베일을 발견하고 있는 장면의 부조

 

⊙ Lobkowitzbrunnen(로브코비츠브룬넨) - 로브코비츠 궁전 분수

 

로브코비츠플라츠에 있는 로브코비츠 궁전은 바로크 궁전으로서  팔레 디트리히슈타인 로브코비츠(Palais Dietrichstein-Lobkowitz)라고 불린다. 현재는 미술사박물관에 속하여 있는 극장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의 현관을 들어서면 동굴스타일의 분수가 있다. 헤르쿨레스분스(Herkulesbrunnen)이다. 헤르쿨레스에게 면류관을 씌어주고 있는 장면의 조각이다. 헤르쿨레스의 양 옆에는 사자와 크레타 짐승이 웅크리고 있다. 로렌초 마티엘리(Lorenzo Mattielli)가 제작했다. 극장박물관에 갈 일이 있으면 현관 입구(베스티뷜)에 있는 헤르쿨레스 분수를 눈여겨 보시도록.

 

로브코비츠 궁전(현 극장박물관) 현관에 있는 헤르쿨레스 분수

                                                

⊙ Magna-Mater-Brunnen(마그나 마테르 브룬넨) - 어머니 사랑 분수

 

비엔나 시당국은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1925년에 어린이보호숙박시설(킨더위버남스슈텔레)을 만들었다. 집이 없이 방황하는 어린이, 어른들로부터 학대받는 어린이, 가난하여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수용하고 이들이 정당한 직업을 가질 때까지, 그리고 정당한 입양을 할 때까지 보호하는 시설이다. 현재까지 6만 3천여명이 이 시설을 다녀갔다고 한다. 처음에는 9구 루스트칸들가쎄 50번지에 있었으나 현재는 23구로 옮겨 슈파이징거 슈트라쎄(Speisinger Strasse) 258번지 건너편 광장에 위치하고 있다. 사랑의 어머니가 팔을 벌여 아이들을 사방에 있는 무서운 뱀들로부터 보호하고 있는 모습이다. 뱀들은 폭력, 거짓, 유흥, 학대 등 도시의 위험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 분수는 뱀들의 입에서 물이 뿜어 나오도록 만들었다. 안톤 하나크(Anton Hanak: 1875-1934)가 제작했다. 어린이보호숙박시설로 사용했던 건물은 현재 율리우스 탄들러 하임이라고 부르는 주거시설이다. 분수의 명칭인 마그나 마테르라는 말은 라틴어로서 '위대한 어머니'라는 뜻이다.

 

마그나 마테르 분수

                                    

⊙ Minervabrunnen(미네르바브룬넨) - 미네르바 분수

 

슈트벤링 3번지의 거리에 있는 벽면 분수이다. 비엔나응용미술대학교(Die Universität für angewandte Kunst)와 응용미술박물관(Das Österreichisches Museum für angewandte Kunst)사이에 있다. 1873년에 비엔나 만국박람회의 예술관을 위해 제작한 것을 응용미술대학교 당국이 국가예산으로 구입하여 이곳에 이전 설치하였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혜와 기예의 여신인 미네르바를 모자익으로 조각하였다. 모자익 타일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비엔나응용미술대학교와 오스트리아응용미술박물관을 연결하는 건물의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 분수이다. 미네르바의 모습이다.

 

⊙ Ministrienbrunnen(미니스트리엔브룬넨) - 전쟁성 분수

 

슈투벤 링 1번지의 과거 전쟁성 건물의 앞에 있다. 라데츠키 장군 기마상을 양 옆에 날개처럼 설치되어 있는 분수이다. 1912년에 루드비히 바우만(Ludwig Baumann)이 제작했다. 라데츠키 장군의 기마상은 당초에 프라이융에 있었으나 이곳으로 이전되었다. 그후 전쟁성 청사의 위용을 더욱 높이기 위해 라데츠키 기마상의 양 옆에 미니스트리엔 분수를 설치하였다. 상단에는 제국을 상징하는 쌍두의 독수리가 당장이라도 비상할 것처럼 날개를 넓게 펴고 있는 모습의 조각이 있다. 하단의 물이 흘러나오는 곳은 사방에 사자머리를 만들어 사용했다. 종전의 전쟁성 청사는 현재 정부종합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미니스트리엔브룬넨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전쟁성(Kriegsministerium)과 연관하여 붙인 이름이다. 오다가다 무심코 보는 기둥이지만 내역을 알면 더 흥미롭다.

 

구 전쟁성 청사(현 정부종합청사) 앞에 있는 미니스트리엔브룬넨

 

⊙ Mosesbrunnen(모제스브룬넨) - 모세 분수

 

프란치스카너플라츠의 한 가운데에 있다. 프란치스카너플라츠에는 프란치스카너키르헤(프란치스코 교회)가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다. 출애굽의 지도자인 모세의 기념상이 있는 분수이다. 1798년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시스 1세 황제 때에 만들어졌다. 원래는 프란치스카너플라츠 6번지에 있던 것을 광장의 중앙으로 옮겼다.

그라벤의 성요셉분수와 성레오폴드분수를 제작한 요한 마르틴 피셔가 만들었다.

 

프란치스코 교회 앞에 있는 모세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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