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기념상/음악가

보헤미아 작곡가 요제프 라보르(Josef Labor)

정준극 2013. 7. 27. 20:30

보헤미아 작곡가 요제프 라보르(Josef La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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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라보르. 그는 눈먼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오르가니스트였다.

 

파울 비트겐슈타인의 동생으로 철학자이며 작가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요제프 라보르(Josef Labor: 1842-1924)를 오스트리의 가장 위대한 음악가 6인 중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6인의 음악가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그리고 요제프 라보르라는 것이다. 요제프 라보르는 보헤미아(체코) 출신으로 뛰어난 피아니스트 겸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였다. 그의 기념상이 베토벤플라츠 건너편, 콘체르트하우스 앞에 있다. 무심히 지나칠수 있지만 요제프 라보르의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감흥이 있어서 그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혹자는 체코 출신이므로 비엔나의 작곡가라고 볼수 없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보헤미아(체코)가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하여 있었다.

 

베토벤플라츠에 있는 요제프 라보르 기념상

 

라보르는 보헤미아의 호로비츠(Horowitz: 체코어로는 Hořovice: 호로비체)에서 태어났다. 그는 세살 때에 천연두의 후유증으로 눈이 멀게 되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그는 비엔나의 맹아학교에 다녔고 이어 비엔나악우회음악원(Konservatorium der Gesellschaft der Musikfreunde)에 다니며 브루크너의 스승인 시몬 제흐터로부터 작곡을 배웠고 에두아르드 피커르트(Eduard Pickhert)로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유럽의 여러 곳을 순회하면 연주회를 가졌고 그러는 과정에서 하노바의 게오르그 5세 국왕과 평생 친구가 되었다. 게오르그 국왕도 장님이었다. 게오르그 국왕은 1865년에 라보르를 왕실챔버피아니스트로 임명하였다. 게오르그 국왕은 은퇴하여서 라보르와 함께 비엔나에 정착하여 함께 지냈다. 라보르는 비엔나에서 오르간 레슨을 하며 작곡도 계속하였고 간혹 피아노 연주회도 가졌다. 1904년에 라보르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로부터 황실 궁정오르가니스트(K. u K. Hoforganist)라는 칭호를 받았다. 오늘날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만든 오르간 작품들은 그때 비엔나에서 작곡한 것이다. 라보르는 초기 바로크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져서 하인리히 비버(Heinrich Biber)의 소나타를 위한 콘티누오를 작곡하기도 했다.

 

요제프 라보르가 태어난 체코공화국의 호로비체 마을 중심지

 

라보르는 비엔나에 있으면서 여러 인사들에게 음악 레슨을 하였다. 구스타브 말러와 결혼했던 알마 쉰들러에게도 피아노 레슨을 했고 파울 비트겐슈타인, 아르놀드 쇤버그에게도 레슨을 했다. 알마 쉰들러는 그가 14세 때부터 라보르로부터 6년 동안이나 배웠다. 알마 쉰들러의 일기를 보면 스승인 라보르에 대한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많이 적혀 있다. 라보르는 비트겐슈타인 가족들과 대단히 가깝게 지냈다. 라보르는 비트겐슈타인의 저택에서 열리는 이브닝 음악회에 자주 참석하여 당시 비엔나에서 활동하던 브람스, 클라라 슈만, 구스타브 말러, 브루노 발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과 교분을 가지며 지냈다. 비트겐슈타인이 1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오른 팔을 잃자 비트겐슈타인은 누구보다도 먼저 라보르에게 왼손만을 위한 피아노 곡을 작곡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나중에 왼손만을 위한 작품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모리스 라벨, 벤자민 브리튼,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프란츠 슈미트 등에게도 부탁했다. 슈미트의 A 장조 클라리넷 5중주의 피날레는 라보르의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5중주 작품번호 11의 주제를 바탕으로 변주곡으로 만든 것이다. 이 작품은 비트겐슈타인이 라보르에게 마지막으로 위촉한 작품이다.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의 요제프 라보르 부부 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