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기념상/음악가

비엔나 이외 지역의 음악가 묘지와 기념상, 기념 명판

정준극 2016. 4. 23. 17:15

비엔나 이외 지역의 음악가/대본가 기념관, 묘지, 기념상, 기념 명판

Museen, Denkmäler & Gräber

오페레타 작곡가, 대본가들을 중심으로

 

오스트리아에서 비엔나 이외 지역에 있는 오페레타 음악가들의 기념관, 묘지, 기념상, 기념 명판(Gedenktafel) 등을 정리해 본다. 성지순례라고 생각하고 이들이 있는 곳을 방문하는 것도 크나큰 기쁨일 것이다. 몇몇 오페라/오페레타 대본가도 포함하였다. 지명은 알파벳 순서. 이름은 연도별.

 

○ 바덴 바이 빈(Baden bei Wien)

 

- Ludwig van Beethoven(루드비히 반 베토벤). 라트하우스가쎄 10번지는 베토벤이 1821년부터 1823년까지 여름철에 휴양을 위해 지냈던 집이다. 현재는 베토벤기념관으로 되어 있다. 베토벤은 이 집에 기거하면서 여러 작품들을 손질하였는데 대표적으로는 교향곡 9번도 수정한 것이다.  


라트하우스가쎄 10번지의 베토벤하우스

베토벤하우스의 기념명판


- Richard Genée(리하르트 즈네). 오페라 대본가. 1823년 폴란드의 그단스크 출생, 비엔나에서 활동하다가 1895년 바덴 바이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표적인 대본으로서는 '박쥐'(Die Fledermaus), '베니스의 하룻밤'(Eine Nacht in Venedig), '거지학생'(Der Bettelstudent)), '보카치오'(Boccaccio), '화티니차'(Fatinitza), '유쾌한 전쟁'(Der lustige Krieg), '비엔나의 칼리오스트로'(Cagliostro in Wien) 등이다. 슈타프화르프리드호프(Stadtpfarrfriedhof)에 묘지가 있다.

- Johann Brandl(요한 브란들). 지휘자 겸 작곡가. 1835년 보헤미아 활케나우(Falkenau)의 키르헨비르크(Kirchenbirk)에서 태어났다. 외덴부르크, 비너 노이슈타트, 바덴, 프레스부르크 등지의 극장에서 음악감독으로 활동했고 비엔나에서는 테아터 안 데어 요제프슈타트(Theater an der Josefstadt)와 칼테아터(Carltheater)에서 지휘자로서 활동했다. 칼테아터에서는 오펜바흐, 요한 슈트라우스, 폰 주페, 르코크 등의 오페레타를 초연 지휘했다. 1913년 비엔나의 4구 봐이링거가세(Weyringergasse) 13번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묘지는 바덴 바이 빈의 슈타트화르프리드호프에 있다.

- Carl Adam Zeller(칼 아담 첼러). 오페레타 작곡가. 1842년 장크트 페터 인 데어 아우()에서 태어났다. 현재에도 그곳에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 마르크트플라츠 13번지이다. 모두 15편의 오페레타를 남겼다. 대표작은 '예콘데'(Jeconde), '포르나리아'(Die Fornarina), '카르보나리'(Die Carbonari), '새장수'(Der Vogelhändler), '바가분트'(Der Vagabund) 등이다. 1898년 바덴 바이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비엔나의 중앙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 Karl Millöcker(칼 밀뢰커). 오페레타 작곡가. 1842년 비엔나의 라임그루베()에서 태어났다. 21편의 오페레타를 남겼다. 대표작은 '거지학생'(Der Bettelstudent), '가난한 요나단'(Der arme Jonathan), '뒤바리 백작부인'(Gräfin Dubarry) 등이다. 1899년 요한 슈트라우스가 세상을 떠난 해에 세상을 떠났다. 바덴 바이 빈의 회첸도르프플라츠(Hötzendorf-platz) 8번지는 칼 밀뢰커가 세상을 떠난 집으로 기념명판이 붙어 있다. 칼 밀뢰커는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의 음악가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 Karl Komzak(칼 콤차크). 작곡가. 1850년 오늘날의 체코공화국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당시에 체코공화국은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해 있었다. 60편이 넘는 행진곡, 20편 이상의 왈츠, 기타 남성합창곡 등을 작곡했고 오페라로스는 폭스오퍼인 '에델봐이스'(Edelweiss)를 남겼다. 1905년 바덴 바이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바덴 바이 빈에서 거주했던 집은 벨처가쎄(Welzergasse) 17번지이며 봐이커스도르퍼 플라츠(Weikersdorfer Platz) 1번지의 로렐트무제움(Rollettmuseum)에는 그에 대한 전시품들이 있다.

- Johann Strauss II(요한 슈트라우스 2세: 1825-1899). 라트하우스가쎄(Rathausgasse) 11번지는 그가 1876년과 1877년에 바덴에 와서 연주를 했다는 내용의 명판이 붙어 있다. 실제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바덴에 요양을 위해 상당기간 체류한 일이 있다.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 대하여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탄생 1백주년을 기념해서 바덴시가 헌정했다.

 

왈츠의 왕인 요한 슈트라우스가 1876-77년에 바덴 바이 빈의 이 집에서 연주했다는 기념 명판.

                                         

- Carl Wolfgang Zeller(칼 볼프강 첼러). 오페레타 작곡가인 칼 아담 첼러의 장남이다. 칼 볼프강 첼러도 역시 오페레타 작곡가였다. 1876년 비엔나에서 태어나서 1965년 바덴 바이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은 '네글리제를 입은 여인'(Die Frau um Neglise), '하렘의 소녀'(Haremsmädel), '뵈르터제에서 온 망아지'(Die Rosl vom Wörthersee) 등이다. 바덴 바이 빈의 모차르트슈트라쎄 14번지는 그가 살았던 집이다. 장크트 헬레나(St Helena) 공동묘지에 그의 묘지가 있다.

- Carl Michael Ziehrer(칼 미하엘 치러). 오페레타 작곡가. 1843년 비엔나에서 태어나서 1922년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은 '관광안내원'(Die Fremdenführer), '떠돌이'(Die Landstreicher) 등이다. 바덴 바이 빈에는 그가 잠시 거처했던 회첸도르프 플라츠(Hötzendorf-Platz) 8번지에 기념 명판이 붙어 있다. 그의 묘지는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의 음악가 묘역에 있다.

- Heinrich Strecker(하인리히 슈트레커). 오페레타 및 비엔나 노래 작곡가. 1893년 비엔나에서 태어나서 1981년 바덴 바이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표적인 오페레타는 '비엔나 아가씨'(Mädel aus Wien), '영원한 왈츠'(Der ewige Walzer), '하니문'(Honeymoon) 등이다. 묘지는 바덴의 헬레넨프리드호프(Helenenfriedhof)에 있다. 바덴 바이 빈의 호흐슈트라쎄(Hochstrasse) 51번지에 있는 카이저 프란츠 요제프 무제움(Kaiser Franz Josef Museum)의 방 하나는 하인리히 슈트레커 기념실이다.

 

바덴 바이 빈의 카이저 프란츠 요제프 무제움. 이 건물의 방 하나는 하인리히 슈트레커를 위한 전시실이다.

 

○ 바드 할(Bad Hall).

 

- Robert Stolz(로베르트 슈톨츠). 작곡가인 로베르트 슈톨츠(Robert Stolz: 1880-1975)는 그라츠에서 태어났므며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다. 슈톨츠 기념비는 여러 곳에 있지만 오버외스터라이히의 바드 할에 있는 쿠어파르크(Kurpark)에도 있다. 슈톨츠의 묘지는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에 있다. 저명인사 1만번째 묘지이다. 슈톨츠는 약 50편의 오페레타를 남겼다. 대표작은 '4분의 3박자의 두 마음'(Zwei Herzen im Dreivierteltakt), '프라터의 봄'(Frühling im Prater) 등이다.

 

○ 바드 이슐(Bad Ischl)

 

- Carl Carl(칼 칼). 배우 겸 극장감독. 1787년 현재 폴란드의 크라카우에서 태어났으며 1854년 바드 이슐에서 세상을 떠났다. 비엔나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을 때 레오폴드슈타트극장을 매입하여 칼테아터(Carltheater)라고 명칭을 바꾸었다. 1854년에 바덴 바이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칼 칼은 슈타트프리드호프(시립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 Johann Nestroy(요한 네스트로이). 오스트리아의 연극배우 1호이다. 1801년 비엔나에서 태어나서 1862년 그라츠에서 세상을 떠났다. 작곡가는 아니지만 그는 연극을 공연하는 중에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바덴 바이 빈의 네스트로이베그(Nestroyweg) 1번지는 요한 네스트로이가 살던 집이다. 바덴 바이 빈에는 카이저 프란츠 요셉 슈트라쎄 8번지에 네스트로이를 기념하는 명판이 붙어 있다.

- Johann Strauss II(요한 슈트라우스 2세). 바드 이슐에 연주를 위해 와서 묵었던 집에 기념 명판이 붙어 있다. 카이저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쎄 8번지이다.

 

바드 이슐의 요한 슈트라우스 기념 명판. 1855-1899년간 여름철이면 바드 이슐에 와서 연주를 했다는 내용의 기념 명판. 바드 이슐 저축은행(슈파르카세)이 1977년에 헌정했다.

                                

- Carl Michael Zieher(칼 미하엘 치러). 바드 이슐에서 잠시 거주했었다. 크로이터러슈트라쎄(Kreutererstrasse)에 빌라가 있다.

- Franz Lehar(프란츠 레하르). '메리 위도우'로서 유명한 오페레타 작곡가. 나치를 피해서 스위스에서 기거하다가 전쟁 후에 바드 이슐로 와서 여생을 보냈다. 그가 살았던 집이 '레하르 하우스'로서 그의 이름을 딴 거리인 프란츠 레하르 카이(Franz-Lehar-Kai) 8번지에 있다. 기념상은 바드 이슐의 쿠어파르크(Kurpark)에 있으며 그의 묘지는 시립공동묘지(Stadtfriedhof)에 있다. 그리고 레하르를 기념하는 영화관이 크로이츠플라츠(Kreuzplatz) 16번지에 있다.


레하르 빌라


- Oscar Straus(오스카 슈트라우스). '왈츠의 꿈'(Ein Walzertraum), '초콜릿 병사'(The Chocolate Solider) 등의 오페레타를 작곡한 오스카 슈트라우스는 1870년 오스트리아제국 당시에 비엔나에서 태어났으며 1954년 바드 이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처음 바드 이슐을 방문했던 것은 1876년이었고 종전후인 1951년에 다시 와서 살다가 195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살았던 집이 뷔징거 슈트라쎄(Wiesinger Strasse) 1번지이다. 외부벽면에 그런 내용의 기념 명판이 붙어 있다. 오스카 슈트라우스의 묘지는 바드 이슐 시립공동묘지에 있다.


오스카 슈트라우스 기념명판


- Robert Stolz(로베르트 슈톨츠). 카이저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쎄(Kaiser-Franz-Josef-Strasse) 8번지에 그에 대한 기념 명판이 붙어 있다.


- Emmerich Kalman(엠메리히 칼만). 오페레타 작곡가. 1882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시오포크(Siofok)에서 태어나서 1953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은 '마리차 백작부인'(Grafin Mariza), '시카고에서 온 공녀'(Die Herzogin von Chicago), '차르다스 공주'(Die Czardas Prinzessin) 등이다. 바드 이슐에서 잠시 거주했던 집이 엠머리히 칼만 슈트라쎄 1번지에 있다. 쿠어파르크에는 기념상이 있다.

 

엠머리히 칼만 기념 명판

 

- Rudi Gfaller(루디 그팔러). 오페레타 작곡가 겸 배우. 1882년 비엔나에서 태어났으며 1972년 바드 이슐에서 세상을 떠났다. 10편 남짓의 오페레타를 남겼다. 대표작은 '불타는 엘리아스'(Der feurige Elias), '자기 부인의 남편'(Der Mann seiner Frau) 등이다. 바드 이슐 시립공동묘지의 그의 묘지가 있다.

- Fritz Löhner-Beda(프리츠 뢰너 베다). 수많은 아름다운 가사를 지어낸 작사가 겸 오페레타 대본가. 1883년 보헤미아의 빌덴슈버트 지방의 베드리치 뢰비(Bedrich Lowy)에서 태어났으며 비엔나에서 생활하다가 유태인이어서 나치에 의해 1942년 아우슈비츠에서 세상을 떠났다. '주디타'(Giuditta), '하와이의 꽃'(Die Blume von Hawaii) 등의 노래 가사를 썼으며 수많은 노래 가사를 만든 중에 대표적인 것은 '그대는 나의 유일한 마음'(Dein ist mein ganzes Herz)이다. 슈타인바흐(Steinbach) 43번지는 그가 살았던 집이며 벽면에 기념 명판이 붙어 있다.

- Alfred Grünwald(알프레드 그륀발트). 오페레타 대본가이다. 30편이 넘는 오페라의 대본을 썼다. 대표적인 것은 '마리차 백작부인', '마지막 왈츠'(Der letzte Walzer) 등이다. 1884년 비엔나에서 태어나서 2차 대전 중에 미국으로 떠났다가 1951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바드 이슐에는 칼텐바흐슈트라쎄(Kaltenbachstrasse)에 기념 명판이 붙어 있다.

- Richard Tauber(리하르트 타우버). 유명한 테너였다. 1891년 린츠에서 태어났으며 2차 대전 중에 영국으로 떠나 1948년에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바드 이슐에는 그가 잠시 머물렀던 집에 기념 명판이 붙어 있다. 트라운 카이(Traun-Kai) 17번지이다. 바드 이슐을 그를 기념하여서 리하르트 타우버 베그(Richard Tauber-Weg)라는 거리이름을 붙였다.

- Marcel Prawy(마르셀 프로비). 저명한 오페라 평론가. 1911년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유태계여서 나치 치하인 1938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가 1955년에 오스트리아로 귀환했고 2003년에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바드 이슐에서 잠시 활동했던 것을 기념하여서 그가 세상을 떠나자 바르 이슐 시립공동묘지에 기념석을 세웠다. 마르셀 프로비의 묘지는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에 있다.

 

○ 가르스 암 캄프(Gars am Kamp). 니더 외스터라이히주의 마르크트게마인데에 있는 작은 온천장 마을이다. 오스트리아의 북부, 체코공화국과의 국경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다. 바벤버그 왕조 시대에는 잠시동안 오스타리키의 수도였다. 그후에는 온천장으로 유명해졌다.

 

- Franz von Suppe(프란츠 폰 주페). 오페레타 작곡가. 1819년, 오스트리아 제국 시절에 달마티아의 스팔라토(Spalato)에서 태어났고 비엔나에서 활동하다가 1895년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지는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에 있다. 폰 주페는 가르스 암 캄프에 여름 별장을 가지고 있었다. 가르스 암 캄프의 차이트브뤼케(Zeitbrücke) 기념관의 전시실 하나는 프란츠 폰 주페를 기념하기 위한 방이다.

 

○ 그문덴(Gmunden). 오버외스터라이히주에 있다. 오스트리아의 북서쪽, 아름다운 트라운제(Traunsee)의 호반에 있다. 잘츠캄머구트의 속한 지역이다. 그문덴 도자기로 유명하다.

 

- August Pepock(아우구스트 페푀크). 작곡가. 10여편의 오페레타 등을 작곡했다. 대표적인 오페레타로서는 '쇤브룬 궁정무도회'(Hofball im Schonbrunn), '잘츠카머구트 이야기'(G'schichte aus dem Salzkammergut) 등이다. 1887년 그문덴에서 태어나서 1967년 그문덴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문덴에 기념상이 있다.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작곡한 그에게 '교수'(Professor)라는 직함을 헌정했다.

 

○ 그라츠(Graz)

 

- Robert Stolz(로베르트 슈톨츠). 그라츠 출신의 오페레타 작곡가. 그라츠 슈타트파르크에 기념상이 있으며 그가 살았던 슈미데가쎄(Schmiedegasse) 26번지에는 기념 명판이 붙어 있다.

 

○ 힌터브륄(Hinterbrühl). 니더외스터라이히주 뫼들링(Mödling)에 속한 마을. 비엔나에서 서남쪽으로 17km에 있다. 여름 휴양지여서 여러 유명인사들이 여름을 보낸 곳이다. 베토벤도 이곳에서 어느해인지 모르지만 여름을 보냈다. 슈베르트는 이곳에 있는 횔트리히스뮐레(Höldrichsmühle)에서 영감을 얻어 유명한 '보리수'(Der Lindenbaum)을 작곡했다. 구스타브 말러는 이곳에서 1890년의 여름을 보내면서 작곡활동을 했다.

 

- Richard Heuberger(리하르트 호이버거). 오페라, 오페레타, 발레 등 작곡가. 1850년 그라츠에서 태어났으며 비엔나에서 활동하다가 1914년 1차 대전이 시작되던 해에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은 오페레타 '오페라무도회'(Der Opernball) 등이다. 그는 힌터브륄을 사랑하여서 힌터브륄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니더외스터리아히주 뫼들링의 힌터브륄공동묘지에 있는 리하르트 호이버거의 묘비. 유명한 오페레타 작곡가이다.

 

○ 홀렌슈타인/입스(Hollenstein/Ybbs). 니더외스터라이히주의 아이젠부르첸()에 있는 홀렌슈타인 안 데어 입스()이다. 모스트피어르텔()에 속한 지역이다.

 

- Gustav Davis(구스타브 다비스). 오페레타 대본가 겸 저널리스트. 1856년 브라티슬라바에서 태어났으며 1951년 홀렌슈타인 안 데어 입스의 구트 호엔레엔(Gut Hohenlehen)에서 세상을 떠났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삼림관'(Der Waldmeister) 등의 대본을 썼다. 홀렌슈타인 안 데어 입스의 버그프리드호프(Bergfriedhof)에 안장되었다.

 

○ 린츠(Linz)

 

- Richard Tauber(리하르트 타우버). 헤렌슈트라쎄(Herrenstrasse) 11번지는 리하르트 타우버가 태어난 집이다. 춤 슈봐르첸 배렌(흑곰장) 호텔이다. 기념 명판이 붙어 있다.

- Igo Hofstetter(이고 호프슈테터). 린츠 출신의 오페레타 작곡가. 1926년 린츠에서 태어나서 2002년 린츠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은 '마음의 룰레트'(Roulette der Herzen), '보스를 궁지에 몰아넣기'(Schlach dem Boss) 등이다. 린츠의 바르바라프리드호프(Barbarafriedhof)에 안장되었다.

 

린츠의 '흑곰 호텔'(Hotel Zum schwarzen Bären). 이 건물에서 테너 리하르트 타우버가 태어났다.

 

○ 마리아 엔처스도르프(Maria Enzersdorf). 오스트리아의 동쪽, 니더외스터라이히주 뫼들링에 있는 마을이다.

 

- Moritz West(모리츠 베스트). 수많은 오페레타의 대본을 썼다. 1840년 비엔나에서 태어나서 1904년 오버외스터라이히주의 아이겐 임 뮐크라이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칼 첼러, 리하르트 즈네, 프란츠 폰 주페, 에드문트 아이슬러 등의 오페레타 대본을 썼다. 대표적인 대본은 '새장수'(Der Vogelhändler)이다. 마리아 엔처스도르프의 교구공동묘지(Pfarrfriedhof)에 안장되었다.

 

○ 잘츠부르크(Salzburg).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가 태어난 곳이어서 여러 곳에 모차르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모차르트에 대하여는 너무나 많이 설명되어서 여기에서는 생략코자 한다. 하지만 이밖에도 기념해야할 인물들이 있다. 허버트 폰 카라얀과 니코 도스탈이다.

 

- Herbert von Karajan(허버트 폰 카라얀). 지휘자. 1908년 잘츠부르크의 마카르트슈테그()에 있는 저택에서 태어나서 1989년 잘츠부르크 인근의 아니프()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니프 교구교회에 그의 묘소가 있다. 알프스를 등지고 있는 아니프에는 카라얀을 기념하여서 카라얀 슈트라쎄가 있다. 또한 잘츠부르크에는 카라얀을 기념하여 허버트 폰 카라얀 플라츠라는 지명이 있고 그의 생가에는 기념 명판을 붙이고 정원에 지휘하는 모습의 카라얀 기념상을 세웠다. 비엔나에도 카라얀을 기념하는 장소들이 있다. 오페른링에서 필하모니커슈트라쎄에 이르는 길에 허버트 폰 카라얀 플라츠가 있다.

 

잘츠부르크 인근 아니프의 교구교회 공동묘지에 있는 허버트 폰 카라얀의 묘지. 검소하다.

 

- Nico Dostal(니코 도스탈). 오페레타 작곡가. 1895년 니더외스터라이히주의 코르노이부르크(Korneuburg)에서 태어났으며 1981년 잘츠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20편이 넘는 오페라, 역시 20편이나 되는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대표적인 오페레타는 '헝가리 결혼식'(Die ungarische Hochzeit), '세번째 소원'(Der dritte Wunsch), '돈 후안과 피가로'(Don Juan und Figaro) 등이다. 잘츠부르크의 콤무날프리드호프(Kommunalfriedhof)에 묘지가 있다.

 

○ 장크트 페터 인 데어 아우(St Peter in der Au)

 

- Carl Adam Zeller(칼 아담 첼러). 오페레타 작곡가. 1842년 장크트 페터 인 데어 아우에서 태어났고 1898년 바덴 바이 빈(Baden bei Wien)에서 세상을 떠났다. '새장수'(Der Vogelhändler)가 대표작이다. 장크트 페터 인 데어 아우의 마르크트플라츠(Martkplatz) 13번지는 그의 생가로서 기념 명판이 붙어 있다. 그는 오르츠프리드호프(Ortsfriedhof)의 가족묘에 안장되었다. 또한 그를 기념하여 포겔핸들러플라츠라는 지명을 만들고 여기에 새장수 분수를 만들었다. 호프가쎄(Hofgasse) 6번지에는 '칼 첼러 기념관'이 있다.

 

○ 장크트 볼프강(St Wolfgang). 오스트리아의 서쪽, 오버외스터라이히주의 그문덴 지역에 있다. 볼프강제(Wolfgangsee)와 잘츠캄머구트 사이에 있어서 경관이 빼어나다.

 

- Ralph Benatzky(랄프 베나츠키). 오페레타 작곡가. 1884년 보헤미아의 매리슈 부드비츠()에서 태어났으며 1957년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세상을 떠났다. 약 20편의 오페레타/징슈필을 작곡했다. 대표작은 '삼총사'(), '백마장 여관'(Im weissen Rössl) 등이다. 장크트 볼프강의 마르크트(Markt) 74번지는 그의 징슈필의 이름을 따서 붙인 호텔 '백마'(Weisses Rössl)이다. 이 건물에 기념 명판이 붙어 있다. 그는 이곳의 공동묘지에 안치되었다.

 

볼프강제에 있는 랄프 베나츠키 묘소

 

○ 트레펜 암 오시아허제(Treffen am Ossiachersee). 캐른텐(Kärnten)주의 빌라흐 란트(Villach-Land)에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 Rudolf Kattnigg(루돌프 카트니그). 오페레타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 1895년 트레펜 암 오시아허 제에서 태어났으며 1955년 클라겐푸르트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은 '발칸 사랑'(Balkanliebe), '카타리나 여제'(Kaiserin Katharina) 등이다. 트레펜 교구교회에 기념 명판이 설치되어 있다.

 

트레펜 교구교회에 설치되어 있는 루돌프 카트니그 기념 명판

 

○ 봐이센바흐 안 데어 트리에스팅(Weissenbach an der Triesting). 비엔나의 동쪽, 니더외스터라이히주의 비너발트(Wienerwald)에 속한 지역이다.

 

- Camillo Walzel(카밀로 발첼). 오페레타 대본가. 1829년 독일 마그데부르크에서 태어났으며 비엔나에서 활동하다가 1895년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리하르트 즈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칼 밀뢰커, 프란츠 폰 주페, 칼 첼러 등을 위해 오페레타 대본을 제공했다. 봐이센바흐의 아크라덴프리드호프(Arkadenfriedhof)에 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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