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기념상/링슈트라쎄 기념상

퀸스틀러하우스의 예술가 기념상

정준극 2013. 7. 28. 03:44

퀸스틀러하우스의 예술가 기념상

Künstlerhaus Wien

 

칼스플라츠 한 쪽에 있는 퀸스틀러하우스(Künstlerhaus)의 앞쪽 벽면에는 8명의 역사상 위대한 예술가들의 조각이 설치되어 있다. 페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알브레헤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티치안(Tizian: 1490-1576), 도나테 브라만테(Donate Bramante: 건축가: 1444-1514), 디에고 로드리게즈 벨라즈케즈(Diego Rodriguez Velazguez: 1599-1660), 부로나로티 미켈란젤로(Buonarroti Michelangelo: 1475-1564), 산티 라파엘(Santi Rafael: 1483-1520)이다. 제작된지 오래되서인지 손가락이 부러지는 등 파손된 부분들이 있지만 위대한 예술가들을 한자리에서 볼수 있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퀸스틀러하우스(예술가의 집) 정면의 예술가 조각상들 

   

루벤스                                 뒤러                                  다 빈치

   

티치안                                브라만테                              벨라즈케즈 

 

미켈란젤로                           라파엘 

                                  

비엔나 퀸스틀러하우스 전시장은 1865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868년에 완성되었다. 현재의 오스트리아예술가협회(Gesellschaft bildender Künstler Österreichs, Künstlerhaus)가 건축을 주관했다. 오스트리아예술가협회는 오스트리아에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예술가들의 협회이다. 비엔나 퀸스틀러하우스는 개관이래 회화, 조각, 건축, 응용미술 전시장으로 사용되었다. 1947년부터는 영화관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또한 매년 열리는 비엔날레 영화 페스티발(Viennale film festival)의 심사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오스트리아예술협회는 처음에 현재의 마리아힐르프의 한 파트인 라임그루베(Laimgrube)에서 출발했다. 그곳에 있었던 어떤 여관집에 레오폴드 에른스트가 1847년에 네오 고틱 양식의 페스티발 홀을 건축하였다. 이 홀은 1851년부터 젊은 예술가 및 학자들의 모임 장소로 이용되었다. 이 모임은 나중에 '알브레헤트 뒤러 협회'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알브레헤트 뒤러 협회'는 1861년에 아인트라하트(Eintracht)라는 또 다른 예술가협회와 통합하여 '비엔나예술가협회'로 발족하였다. '비엔나예술가협회'는 1868년에 칼스플라츠 한 쪽에 있는 현재의 퀸스틀러하우스로 이전하였다. 그러다가 1897년에 상당수 예술가들이 '비엔나예술가협회'에서 탈퇴하여 '비엔나 분리파(제체시온)'을 설립하였다.

 

빈 분리파의 모임장소인 제체시온

 

분리파가 떨어져 나간 '비엔나예술가협회'는 1972년에 응용미술에도 문호를 개방하였고 1976년에는 '오스트리아예술가협회, 퀸스틀러하우스'(Gesellschaft bildender Künstler Österreichs, Künstlerhaus)라고 명칭을 변경하였다. 1983년부터는 영화 제작과 시청각 예술도 회원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예술가협회, 퀸스틀러하우스'는 1985년에 '퀸스틀러하우스 GmbH'라는 자회사를 설립하였다. 이 자회사가 퀸스틀러하우스에서의 모든 전시회를 주관한다. 이 자회사는 다른 박물관에서의 전시회도 용역을 맡아 주관한다.

 

지붕의 한 가운데에 공처럼 생긴 것이 있는 하얀 건물이 제체시온이다. 그 옆에 있는 검은 조각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이다. 왼편의 건물들을 따라서 가면 유명한 테아터 안 데어 빈이 나온다.

 

퀸스틀러하우스의 건축을 아우구스트 베버(August Weber: 1836-1903)이 맡았다. 석재는 오스트리아의 여러 지방에서 가져온 것을 사용했다. 정초식에는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가 직접 참석하여 정초를 놓았다. 퀸스틀러하우스는 1868년에 초기 링슈트라쎄 건축물의 하나로 완성된 것이다. 건축양식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빌라 양식이다. 처음 이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에는 건물 옆에 빈강(Wien Fluss)가 흐르고 있었으나 상당부분을 복개하여 지금은 지하로 명목상이나마 강물이 흐르고 있다. 1882년에는 본관 건물의 양 쪽으로 부속건물이 추가되었다. 그래서 부속건물은 1949년부터 영화관으로 사용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비엔나 시의 건축 전문가들은 퀸스틀러하우스가 너무 오래 되었고 또한 다른 건물들에 비해서 낮게 건축되었기 때문에 허물고 신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들을 내 놓았다. 1930년대에는 퀸스틀러하우스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8층짜리 아파트를 짓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계획도 있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정상 철거하고 다시 짓지는 못하고 당장 필요한 대로 내부만을 보수하였다. 1956-57년에는 슈티프터잘(Stiftersaal)을 현대식으로 보수하였다. 1966년에는 퀸스틀러하우스를 허물고 그 자리에 IBM 사무실 건물을 지으려는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비엔나 예술가, 학자, 지식인들, 그리고 언론의 반대에 부딪혀 성사되지 못했다. 근자에 들어와서 퀸스틀러하우스를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그래서 칼스플라츠에 있는 '비엔나박물관'(구비엔나시립박물관) 등과 연계하여 하나의 박물관 구역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었다. 이에 대한 검토가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비엔나 퀸스틀라하우스 본관 건물의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