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서울

전쟁기념관에서의 전통궁중혼례

정준극 2013. 9. 29. 07:42

전쟁기념관에서의 전통궁중혼례

 

서울에는 전통 혼례를 올릴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필동의 '한국의 집'(코리아 하우스)이 대표적이다. 종로구 운니동에 있는 운현궁에서도 전통 혼례를 올릴수 있다. 장충동의 예지원에서도 전통 혼례를 올릴수 있다. 용인 민속촌에서는 민가에서의 전통 결혼식을 시연한다. 그리고 삼각지의 전쟁기념관에서 전통 결혼식을 올릴수 있다. 전통 혼례는 개인 집에서도 올릴수 있지만 고궁이나 민속촌 또는 한옥마을에서 올린다면 보기에 더욱 그럴사할 것이다. 삼각지 전쟁기념관에서의 전통결혼식은 다른 곳에서의 전통결혼식에 비해서 화려하고 거창하다. 화려하다고 말한 것은 일반 전통혼례와는 달리 조선시대 궁중에서의 혼례를 재현하는 것이므로 고증을 거친 장비들이 화려하기 때문이다. 거창하다는 것은 다른 전통예식장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십명의 인원들이 마치 영화 찍는데 엑스트라처럼 출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안하지만 혼주들이 부담할 경비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도대체 전쟁기념관과 결혼식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의아해 할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러시아를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신혼부부가 되면 우선적으로 전쟁영웅 기념탑, 또는 무명용사 기념탑을 찾아가서 경의를 표하고 사진도 찍고 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있기에 편안하고 행복하게 결혼식을 올릴수 있었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전쟁기념관에서 혼례를 거행한다는 것은 거룩한 일이고 칭송을 받을 일이다. 더구나 전쟁기념관의 전통 혼례는 다른 곳과는 달리 궁중혼례가 아니던가! 신랑은 상감마마가 되고 신부는 중전마마가 되는 궁중전통혼례이다. 취타대가 나오고 상궁나인들과 문무백관이 등장하며 호위무사(?)도 나오는 혼례이다. 그런 의미있는 혼례이기 때문인지 철저하게 고증을 해서 혼례를 진행하고 있고 또한 등장인물들은 물론이고 소도구에 이르기까지 가능한한 궁중혼례의 규범에 따라 준비한다고 하니 더욱 그럴듯 하다. 신랑신부가 마을의 갑돌이와 갑순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상감마마와 중전마마가 되는 것이니 그런 혼례라면 일생에 한번이기 때문에 자청해서라도 해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상감마마와 중전마마가 올라와서 좌정하기 전에 옥좌가 있는 곳을 늠름하게 지키고 있는 '호위무사?'

 

전쟁기념관에서의 혼례는 옛날 궁중에서 임금님이 결혼식을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절차로 진행한다고 하지만 시간상 몇가지 절차를 생략한다고 한다. 아무튼 대단하다. 궁중혼례에 박식하다고 하는 분이 진행 중에 간혹 '어어--으으--''라고 마치 시조를 읊는 것처럼 순서를 읽어내려가는 것을 보면 분위기에도 어울려서 아무튼 흥미롭다. 순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몰라도 거의 한 시간이나 걸리는 대단한 예식이다. 마침 2013년 9월 28일 낮 12시에 벨기에의 어떤 훌륭한 청년과 우리나라의 어떤 아름다운 신부가 삼각지의 전쟁기념관에서 백년가약의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잠시 참관하였기에 기념으로 사진 몇장을 찍어 소개하니 대강 어떤 규모의 결혼식인지 짐작하시기 바란다. 필자가 9월 28일에 전쟁기념관을 찾아갔던 것은 혹시나 9. 28 서울수복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을까해서였다. 그런데 가서보니 9월 27일 금요일에 이미 전쟁기념관에서 기념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아니, 기념행사도 날짜를 변경해서 할수 있나?'라며 그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토요일은 철저하게 놀아야 한다는 공무원들의 개념인것 같다. 아무튼 아래의 사진들을 게시하는 것은 우선 전쟁기념관의 사업 중에 궁중전통혼례를 주선하는 사업이 있다는 것을 소개코자 함이며 또 한가지 중요한 취지는 필자가 전쟁기념관을 찾아갔던 2013년 9월 28일 정오에 궁중혼례를 올린 아름다운 새가정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실만한 혼례였다고 생각한다.

 

전쟁기념관 동쪽에 있는 궁중전통혼례식장. 축가를 부를 어떤 남성중창단이 예식이 시작되기 전에 리허설을 하고 있다. 요즘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결혼식에 가보면 복음성가인지 무언지를 유행가처럼 부르는 축가순서들이 있는데 이날의 축가는 그것들과는 기본적으로 달라서 감동적이었다.

철저한 준비. 대단하다. 그런데 마이크와 스피커 스시템은 구닥다리이다. 가서 직접 보면 안다. 제발 좀 좋은 소리가 나는 것으로 교체했으면 한다. 그리고 축가 반주를 왜 그렇게 크게 트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수 없다. 신부 아버님의 정성스런 축가 때에도 스피커 반주는 찌그러지는듯 했다. 가족들 중에 누군가가 사전에 오디오를 체크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청사초롱. 잔치기분이 절로 난다. 청사초롱에 전기불이라도 밝혔으면 더 운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객들은 좀 떨어진 곳에 앉아들 계시다. 뒤에 앉으신 분들은 앞에서 어떤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잘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궁중혼례가 신기해서 점잖은 하객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신 분들이 많았다.

신랑신부(상감마마와 중전마마)의 입장을 선도하는 궁중 취타대. 중국 관광객들도 무언가 궁금해서 와서들 구경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역시 중국 사람들이었다. 엄숙한 결혼식장, 그리고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전쟁기념관인데도 고성으로 떠들고 별 주책들을 다 부린다. 한심하다.

여를 타고 입장하는 신랑 상감마마. 너무 오래 기다렸다가 시작하는 것이어서 시장하시겠다. 신랑의 부모님들은 아직 만리이역 벨기에에 계신데 비행기 여행이 어려워 참석하지 못하셨다고 하며 다만 여동생인듯한 아가씨가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분주히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상궁들의 보살핌 속에 연을 타고 입장하는 신부

 신부 입장 전에 상궁은 아닌듯한 여인들이 입장하여 예를 올린다. 누굴까?

대고를 치는 무관. 예식이 다 끝나면 신랑신부 앞에 나와서 '상감마마...소인을 물러갑니다'라고 크게 인사를 드리니 나의 우둔한 귀에는 '그러하오니 두둑한 봉투나 하나 주소서'라고 운을 띠는 것 같이 들린다.

취타대의 입장. 임금님의 국혼인데 취타대의 구성이 조금 초라하다. 하지만 그나마도 대단하다. 

중전이 될 신부가 좌정하여 있는 모습. 중전께서는 침착하시고 여유가 있으시다. 

아름답고 의젓하신 중전 신부가 신랑 전하를 마중하기 위해 만면에 웃음을 띠시고 계시다. 실은 저 앞에 신부 친구분들이 있어서 신부를 보고 손을 흔들고 아는체를 하며 난리여서 신부께서 '오 너네들 왔구나'라며 살포시 웃으시는 것이다.

신랑 입장. 저 멀리 메인 홀의 뒤편으로부터 여를 타고 전쟁기념관의 비행기 전시장을 약간 거쳐서 식장에 입장. 만조백관이 도열하여 국궁을 하고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뎌 신부와 대면. 참으로 의젓하시고 영명하신 전하로다. 

 성혼후 상궁들의 하례. 이어서 문무백관들이 천세 천세 천천세를 소리 높이 외치는 순서도 있었다. 아무튼...

이건 특별프로그램으로서 목사님이 축사 및 축도를 하는 시간이다. 아마도 신부 부모님이 봉사하시는 교회의 목사님이신듯 한데 축하의 말씀을 노트북에 적어 오시어서 낭독하시니 구구절절이 틀린 얘기는 없지만 너무 길어서 양산같은 것을 들고 있는 내시들이 지루해 하는 표정이었다. 자고로 설교를 포함한 제반 연설과 여인의 치마는 짧을수록 좋다고 하는 농담이 있는 것을 상기케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이건 오리지날 궁중혼례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신부 아버님의 친구분들이라고 생각되는 분들의 남성중창. 프로급의 중창이었고 더구나 가운데 두루마기 입으신 분이 신부의 아버지이신데 함께 사랑에 대한 축가를 부르시니 감동적이어서 소개하는 바이다. 그런데 신부 아버지께서는 중창이 끝난 후에 독창까지 하시었다. 필자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결혼식을 수없이 다녀 봤지만 신부 아버지가 딸과 사위를 위해 축가를 정성껏 부른 경우는 처음 보았다. 아무튼 대단하다. 중창단원들은 대체로 중년 이상의 분들인데 화음이 아주 훌륭했다. 이런 훌륭한 축가를 듣지 않고 옆에 있는 식당으로 식사나 자시러 가신 하객들이 많았으니 그분들의 후회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신부 아버지 되시는 분의 축가. 결혼하는 딸을 극진히 사랑하는 마음이 구구절절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성악을 전공하신분 같았다.

만조백관과 기념 촬영. 조신시대에 임금이 혼례를 올릴 때 사진기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멋있었을까? 만조백관들과 기념촬영이라니...그나저나 신부 중전마마의 헤드기어가 너무 무겁지나 않았을까 걱정.

신랑신부 퇴장. 신랑은 의젓하시고 신부는 아름다우실 뿐만 아니라 보기에 영특하시다.

이로써 궁중혼례도 끝났다. 

 

'발길 따라, 추억 따라 > 서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This is Arirang  (0) 2013.12.07
국군의 날 서울시가 행진  (0) 2013.10.01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0) 2013.07.30
국립박물관의 꽃  (0) 2012.05.10
성북동 길상사(吉祥寺)  (0) 2012.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