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서울

성북동 길상사(吉祥寺)

정준극 2012. 5. 8. 16:22

성북동 길상사(吉祥寺) -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법정(法頂) 스님이 정기법회를 하던 곳

 

참선도량

 

성북동에 길상사가 있다는 얘기는 오래전에 얼핏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게으른 탓에 한번도 찾아가 보지 못하다가 이번에 뜻한바 있어서 면무식이나 하기 위해 찾아가 보았다. 2012년 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절 이름이 길상사이기 때문에 언뜻 전등사가 있는 강화의 길상면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전등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길상이라는 이름은 이 곳에 절을 짓도로 큰시주를 한 김영한 여사의 법명이 길상화(吉祥花)이므로 그분의 깊은 뜻을 기려서 길상사라고 한것 같다. 길상사는 오래된 절이 아니다. 공식적으로는 1997년 2월 14일에 개산(開山)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2012년으로 15년의 연륜을 쌓은 셈이다. 길상사가 1997년에 오픈하기까지는 꼭 10년이라는 예비기간이 소요되었다. 돌이켜보아 1987년에 길상화 김영한 보살님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 설법을 접하고 뜻한바 있어서 자기 소유의 요정 스타일의 유명 음식점인 대원각을 불도량으로 만들어 주기를 청하므로서 오늘의 길상사가 태동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만사가 쉽게 되는 법은 없다. 무소유의 기쁨을 주장하시는 법정 스님으로서 당시 1천억원이 넘는 큰 재산을 시주받는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었기에 한사코 고사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제발 받으시라느니, 그럴수 없다느니 하기를 8년이나 흘려 보냈다는 것이다.

 

일주문

 

드디어 법정 스님은 공덕주의 한결같은 간청에 감복하여 1995년 길상화 김영한 여사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서 '대법사'라는 명칭으로 새로운 절의 개산을 등록하였다. 순천에 있는 송광사의 말사로 한 것은 법정 스님이 송광사의 소속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대원각을 개편하여 절을 짓는 공사가 착수되었다. 2년이라는 공사기간이 소요되었다. 새로운 절을 등록하였으므로 주지스님을 임명해야 했다. 1997년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에 청학 스님이라는 분이 초대 주지 스님으로 취임하였다. 그리고 기왕에 절 이름도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바꾸었다. 2년 후에는 나중에 조계종 총무원장까지 지내신 훌륭하신 지관 스님이 2대 주지로 취임하였다. 지관 스님은 법정 스님과 지기였다. 지관 스님이 주지 스님으로 취임한 1999년부터 길상사에서는 법정 스님의 정기 법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공덕주 길상화 보살이 세상을 떠난 것은 그해 11월이었다. 법정 스님의 법회는 비록 두어달마다 한번씩 열리는 것이었지만 장안에서 화제가 될만큼 대단한 관심을 끈 것이었다. 길상사에서의 법정 스님의 정기 법회는 2010년 3월, 법정 스님이 입적하므로서 막을 내렸다.

 

길상사 간판

 

길상사는 예전에 대원각이 있던 넓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주소는 성북구 성북2동 323번지이며 홈피주소는 www.gilsangsa.or.k 이다. 길상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홈피를 보면 된다. 길상사 올라가는 길은 선잠로라고 부른다. 선잠단지가 있기 때문에 선잠로라고 부른다. 선잠단지는 누에치기를 처음 했다는 중국 상고 황제(皇帝)의 황후 서릉씨(西陵氏)를 누에신(蠶神)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지금도 큰길의 도로변에 홍살문이 있고 사당이 있다. 선잠단지라고 하니까 무슨 가구단지, 전자공업단지와 같은 단지(團地)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라 선잠단(先蠶壇)이 있는 터(址)를 의미한다. 선잠단지라고 하여 철문을 자물쇠로 채워놓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별것도 없고 다만 비석이 한두개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북동까지 간 김에 선잠단지를 보는 것도 역사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일주문을 지나서

 

길상사를 가는 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지하철 4호선 한성대(삼선교)역에서 내려 6번 출구로 나와 잠시 걸어가면 동원마트라는 작은 수퍼가 있는데 그 앞에서 출발하는 길상사 전속 버스를 타면 된다. 마을 버스 1111번, 또는 2112번을 탄다면 삼선교 역으로부터 세번째 정류장인 홍익중고교 앞에서 내려서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한다. 그러므로 시간만 맞는다면 길상사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는 것이 편리하다. 바로 '삼각산길상사'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 앞에서 내리며 삼선교로 돌아올 때에도 그 자리에서 떠나기 때문이다. 참고로 삼선교에서 버스가 떠나는 시각은 08:30, 09:20, 09:40, 10:00, 12:00, 13:00, 15:00, 16:30이다. 길상사에서 다시 삼선교로 가는 버스 시각은 길상사에 내려서 살펴보기 바란다. 자가용을 가지고 간다면 절 위편에 별도의 주차장이 있으므로 편하게 주차할수 있다.

 

극락전 앞마당의 연등

 

길상사 경내는 마치 커다란 공원과 같다. 대웅전에 해당하는 극락전의 뒷쪽으로 발걸음도 조용하게 올라가면 방갈로 스타일의 별채들이 숲속에 드믄드믄 자리 잡고 있다. 모두 스님들이 참선수행하는 장소들이다. 다른 절에 가서 보면 스님들이 수행하는 별채들이 기와집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 길상사의 수행별채들은 산뜻한 양옥이어서 얼핏 산중별장처럼 느껴진다. 각각의 참선도량에는 간판이 붙어 있는데 지혜실, 정진실, 인욕실, 지계실, 보시실, 육화당, 반야당, 죽림당, 능인당 등이어서 어쩐지 마음이 정연해 진다. 다른 처소들의 이름도 일견 그윽하다. 가장 큰 집인 지장전 및 도서실 건물의 옆에 있는 찻집의 이름은 '나누는 기쁨'이다. 템플 스테이 건물의 한쪽에 있는 커피자동판매기 장소는 '바람 속 향기'이다. 화장실은 정랑(淨廊)이라고 되어 있으므로 공연히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수고를 하기 전에 정랑이라는 단어의 뜻을 마음에 두고 있어야 할 것이다.

 

법정 스님의 어록간판. 이런 간판들이 경내의 여러 곳에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극락전은 길상사의 본법당이다. 극락전에는 아미타부처를 봉안하였다. 다른 절에서는 아미타전, 미타전, 또는 무량수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길상사에 들어서면서 일주문의 왼편에 있는 커다란 건물은 지장전이다.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모시고 있는 전각이다. 설법전은 대규모의 설법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석가모니부처를 주존으로 모시고 있다. 설법전 앞에는 아름다운 화단이 있고 그곳에 돌로 만든 관음보살상이 있다. 길상사가 개산될 당시 봉안한 것으로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라는 분이 제작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종교간 화해의 염원이 담긴 관음상이라고 한다. 극락전 옆의 범종루는 자못 웅장하다. 범종은 개산 당시 공덕주 길상화 보살이 단독시주하여 봉안한 것이라고 하나 2009년 여러 불자들의 동참으로 다시 조성되었다고 한다.

 

극락전의 아미타부처

 

길상사는 산속에 있어서 조용하기도 하지만 그윽한 운치가 있다. 계곡이 있고 구름다리가 있으며 커다란 연못이 있다. 그런가하면 이곳저곳에 앉아서 쉬거나 명상할수 있는 탁자와 의자들이 마련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곳곳에 작은 간판과 같은 팻말들을 세우고 법정 스님의 말씀을 다시한번 기억하도록 한 배려이다. 아래 사진에서 볼수 있듯이 팻말에 적혀 있는 말씀들은 평범한 말씀이지만 한번 읽고 두번 읽을 때마다 은연중 가슴 속에서 솟아나는 생각이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길상사에는 화사한 연등들이 언제나 설치되어 있어서 좀 과장되게 말하면 마치 극락선경에 온 것같다. 그리고 아직도 법정 스님의 올곧은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아서 시원하다.

 

법정 스님의 말씀관음보살상. 천주교신자가 제작하여 봉안했다. 

설법전. 법정 스님의 정기법회가 열린 곳 

범종루.  

극락전 뒷길 참선도량으로 올라가는 길 

계곡의 다리. 보기만해도 시원. 

곳곳에 이런 쉼터가 많이 마련되어 있다. 남을 위한 배려 

지장전. 아랫층은 도서관. 길상사 주위는 온통 갑부들의 거대한 저택들이 즐비하다. 성북동 갑부들이다.

지장전의 지장보살 

예전 서울의 3대 요정 중 하나였던 대원각 시절의 문인듯

반야당. 방갈로처럼 생겼다. 

길상사의 꽃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