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더 알기/유네스코 세계유산

후보 - 티롤의 할(Hall)과 민트

정준극 2013. 10. 7. 20:41

티롤의 할(Hall)과 민트(주조)

 

티롤의 할(Hall)

                                                    

티롤의 마을들은 모두 그림같이 아름답지만 할(Hall)은 정말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뒤에는 만년설의 알프스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앞에는 빙하에서 흘러나온 맑은 물이 힘차게 흐르는 강이 있다. 여기에 중세로부터의 성과 교회의 첨탑들이 동화의 세계처럼 자리잡고 있으니 그림처럼 아름답지 않을수 없다. 할은 오래된 마을이다. 13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마을이지만 실은 그 이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경제활동을 한 곳이다. 할은 인스부르크에서 동쪽으로 약 15km 떨어져 있다. 그래서 찾아가기도 쉽다. 할에 가면 마치 중세에 온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중세로부터의 건축물들이 아직도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할은 중세로부터 부유한 마을이었다. 할이 부유한 마을이 되도록 만들어준 것으로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소금생산이며 둘째는 인(Inn)강을 이용한 무역의 중심지였다는 것이고 셋째로는 군주들의 기념 메달 주조소로서 유명했다는 것이다. 그 전통을 이어 받아서 현재 할은 민트박물관을 운영하고 있고 간혹 기념주화를 주문제작하고 있다.  

 

할구시가지의 오베레 할(상할). 민트박물관과 예수회교회의 탑

                             

할이 처음 기록에 등장한 것은 13세기 중반이다. 그리고 1256년에는 할에서 소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1286년에는 소금시장을 개설할수 있는 허락을 받았고 1303년에는 도시로서 자체법을 가졌다. 그후 할은 인근 할계곡(Halltal)에서 생산하는 소금으로 부를 축적할수 있었다. 할의 소금생산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해서 한때는 인스부르크보다 소금생산이 많았다. 소금을 통한 활발한 무역에는 인강의 기여가 컸다. 인강은 멀리 알프스 산록에서 벌채한 목재를 할까지 운반하는 역할도 했다. 목재들은 난방에도 사용되었지만 주로 소금증발을 위해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할은 15세기와 16세기에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중의 하나가 되었다. 장사가 잘되니까 세금을 많이 걷을수 있기 때문이었다. 할이 역사적으로 그리고 건축학적으로 중요시되는 것은 도시의 구조와 건축양식 때문이다. 할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지금은 북쪽에 성벽의 잔해가 남아 있을 뿐이지만 당시에는 완벽한 성곽도시였다. 할의 구시가지는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언덕받이에 있는 상할(오페레 할)과 아랫쪽의 하할(니더 할)이다. 상할이건 하할이건 모두 시가지의 중심이 되는 광장이 있다. 이곳의 집들은 중세로부터의 양식으로서 로마네스크, 고틱, 바로크 시기를 커버하고 있다.

 

할 전경

                                 

상할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고틱 양식의 성니콜라스교회와 1338년부터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수도원광장의 수도원교회(Stiftkirche)의 정면부분은 르네상스 양식을 포함하고 있다. 근처의 슈파르버에그(Sparberegg)건물은 1477년부터 1566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주조소가 하제그(Hasegg)성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주조소가 있던 건물이다. 전에 예수회수도원이던 건물은 현재 지방재판소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예수회교회(Jesuitenkirche: Allerheiligenkirche: 만성교회)는 아직도 교회로서 사용되고 있다. 예수회교회는 티롤의 북쪽에서는 처음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현재 민트박물관(Münzermuseum)이 자리잡고 있는 하제네그성은 15세기의 건물이다. 이곳에 민트박물관이 이전된 것은 1566년이었다. 민트탑(Münzerturm)이라고 불리는 탑에 올라가면 할의 파노라마를 내려다 볼수 있다. 살바도르 키르헤(구세주교회)는 규모는 작지만 '최후의 심판' 그림으로 유명하다. 15세기 초반의 하이 고틱 작품이다.

 

할의 예수회교회 내부

                              

할에 주화공장을 설치한 사람은 티롤의 지그문트 대공이었다. 실은 메란(Meran)에 있던 시설을 할로 옮겨온 것이다. 왜냐하면 할의 인근에는 훌륭한 은광이 있어서 주조에 편리하기 때문이었다. 할에서 첫 은화가 주조된 것은 1486년이다. 할탈에서 나는 은으로 만든 주화를 탈러(Taler)라고 불렀다. 탈러가 변천하여서 달러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1567년부터는 주화를 만들 때에 프레스 롤러를 사용하였다. 그 전에는 망치로 두드려서 만들었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은 스페인의 세고비아 주조소를 통해서 저 멀리 남미까지 수출되었다. 할의 주조소에서 만든 탈러는 세계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탈러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통화로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할의 주조 시설들은 일부 해체되어 뮌헨으로 옮겨졌다. 그러다가 1975년에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을 기념하는 오스트리아 정부의 100 쉴링짜리 기념주화를 생산함으로서 할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100 쉴링 주화와 500 쉴링 주화도 생산하였다. 2003년부터는 유로화의 등장으로 더 이상 쉴링을 만들지 않아도 되었다. 하제나그성에 민트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그때부터였다. 민트박물관에 가면 주화를 롤링기계로 만드는 것을 관람할수 있다.

 

 

할에서 만든 기념주화. 섬세하다.

 

바드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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