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더 알기/유네스코 세계유산

후보 - 슈타이르 구시가지와 에르츠버그

정준극 2013. 10. 6. 19:47

슈타이르(Steyr) 구시가지와 에르츠버그(Erzberg) 아이젠슈트라쎄(Eisenstrasse)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광공업 지대

에르츠버그의 엔듀어로우(Enduro) 경기는 세계적

 

슈타이르 구시가지와 엔스강

 

슈타이르는 오베레 외스터라이히주에 있는 도시이다. 엔스(Enns)강과 슈타이르(Steyr)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있다. 슈타이르는 오스트리아에서 12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그리고 오베레 외스터라이히주에서는 세번째로 큰 도시이다. 슈타이르는 오래동안 제조업 도시로서 유명했다. 아직도 슈타이르라는 이름이 붙은 제조업체들의 본사가 슈타이르에 있는 것을 보면 알수 있다. 예를 들면 총포류 제조회사로 유명한 슈타이르 만리허(Steyr Mannlicher), 트랙터 생산으로 유명한 슈타이르 트락터(Steyr Tractor), 자동차 제조회사인 슈타이르 오토모빌(Steyr Automobile) 등이다. 그중에서도 슈타이르 만리허는 저격용 소총인 슈타이르 AUG(Armee Universal Gewehr: Universal Army Riifle)를 생산하여 유명하다. 오스트리아 군대에 지급되는 소총이다. 이처럼 슈타이르에서 제조산업이 발달한 것은 주변의 광산에서 철광과 동광 등을 채광하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는 오래전부터 금속공업으로 유명하며 그 배경에는 품질 좋은 철광석과 동광석이 있다. 슈타이르는 그 중심부에 있다. 중세로부터 광공업이 활발하다보니 철광석과 광산업으로 부유하게 된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의 건물들도 다른 도시들보다 뛰어났다. 슈타이르는 역사적으로 여러 스타일의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문화유산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리하여 오스트리아 정부는 2002년에 유네스코에게 슈타이르와 인근의 에르츠버그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에르츠버그는 철광산이 활발했던 지역이다. 현재 검토 중이다.

 

슈타이르 구시가지

                   

프란츠 슈베르트의 현악5중주로서 '송어'(Die Forelle)라는 것이 있다.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송어의 활기찬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슈베르트가 슈타이르를 방문했을 때 엔스강에서 뛰어 놀고 있는 송어들을 보고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작곡가인 안톤 브루크너는 슈타이르에 휴가를 와서 이곳 지방 교구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잠시 봉사한 일이 있다. 히틀러는 10대 청소년일 때에 이곳에 와서 지낸 일이 있다. 히틀러는 그륀마르크트(Grünmarkt)에 있는 어떤 집에서 지내면서 1904년에 슈타이르 고등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그 학교는 현재 성미하엘교회의 건물에 그대로 존속하여 있다. 슈타이르는 1934년, 오스트리아 내전 당시에 여러번이나 사민당과 기사당간의 전투 장소가 되었다. 사회민주당은 슈츠분트(Schutzbund)라는 군대조직을 가지고 있었으며 기독교사회당은 하임베르(Heimwehr)라는 군대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다. 슈타이르에서 두 군대가 전투를 벌인 결과, 오스트리아는 1938년 히틀러에 의해 독일과 합병하기 전까지 파치스트가 통치하게 되었다.

 

슈타이르 구시가지와 엔스 강

 

슈타이르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무기와 군용차량 생산기지여서 연합군의 폭격을 심하게 받았다. 도시 전체가 거의 폐허가 되었다. 하지만 군수공장들은 폭격을 받으면 우선적으로 복구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 슈타이르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어두웠던 사항은 나치의 강제수용소를 건설한 것이다. 악명 높은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의 일환으로였다.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때에는 슈타이르가 소련 적군의 공수부대와 미군 흑인부대의 회합장소가 되었다. 슈타이르가 해방된 후 소련군은 오스트리아의 동쪽으로 이동하여 슈타이르는 미군이 점령하고 지배하였다. 미군은 1955년 오스트리아가 공식적으로 중립국을 선언할 때까지 주둔하였다.

  

슈타이르 구시가지

 

슈타이르는 1980년에 도시창립 1천 주년을 기념하였다. 시민들은 1천년 전에 세워졌다는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를 이해 슈타이르는 도시 재발굴에 나서서 역사적인 건물들을 수리하고 복구하는 사업들을 열심히 펼쳤다. 그리하여 오늘날 슈타이르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천년 도시라는 찬사를 받았다. 슈타이르에서 역사적으로 보존이 가장 잘되어 있는 지구는 슈타트플라츠(Stadtplatz)라고 하는 중심가를 중심으로 한 곳이다. 2차 대전으로 손상을 입었지만 모두 복구하였다. 슈타이르에서 가장 역사적으로 유명한 건축물은 붐메를하우스(Bummerlhaus)라는 건물이다. 중부유럽에서는 가장 훌륭한 고틱 건물이다. 람버그(Lamberg)라는 명칭의 바벤버그 성도 유명하다. 그러나 람버그 성은 위치상으로 홍수 때문에 자주 피해를 보기도 했다.

 

에르츠버그 노천광산의 길

              

에르츠버그(Erzberg)는 슈티리아주의 아이젠에르츠(Eisenerz) 인근에 있는 노천 광산이다. 에르츠버그는 광산이라는 의미이며 아이젠에르츠는 철광석이라는 뜻이다. 에르츠버그는 그라츠 서북쪽 60km에 있으며 비엔나로부터는 남서쪽으로 260km 떨어져 있다. 에르츠버그는 오스트리아 최대의 철광산이다. 매장량이 무려 2억 3천 5백만 톤이나 된다고 한다. 에르츠버그는 매년 2백만 톤 이상의 철광석 원광을 생산하고 있다. 에르츠버그가 또 하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엔쥬어로우(enduro)이다. 자동차(주로 모터사이클) 로데오이다. 장거리 경주로서 험난한 지역을 경주하는 것이다. 1995년부터 시작하여 현재는 매년 수천명의 선수들이 참가하고 관람객들만 해도 2만명이 넘는다. 에르츠버그 엔듀어로우는 슈티리아주의 경제에 크게 기여하는 행사이다.

 

에르츠버그 엔듀어로우 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