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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인스부르크의 호프키르헤

정준극 2013. 10. 3. 20:17

인스부르크의 호프키르헤(Hofkirche: Imperial Church)

슈봐르츠만더 키르헤(Schwarzmander-Kirche) 또는 프란치스카너키르헤(Franziskanerkirche)라고 함

 

높은 첨탑이 있는 인스부르크의 호프키르헤(궁정교회)

                 

호프키르헤(궁정교회)는 비엔나의 호프부르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비엔나 호프부르크의 교회는 부르크 카펠레(Burg Kapelle)라고 부르는 점이 다르다. 인스부르크에도 호프부르크가 있고 호프키르헤(호프카펠레)가 있다. 인스부르크의 호프키르헤는 호프부르크와 떨어져서 시내 중심가에 별도로 있다는 것이며 또한 '묘지교회'(Grabeskirche)라고 불릴만큼 막시밀리안 1세 황제(1459-1519)의 화려한 묘소가 제단 앞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막시밀리안 1세 황제의 아버지는 프레데릭 3세이다. 프레데릭 3세의 대리석관은 비엔나 슈테판대성당의 한쪽에 장엄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이들 부자는 교회안에서만 영원한 안식처를 구할 만큼 신앙심이 돈독했던 모양이다. 인스부르크의 호프키르헤는 2013년 2월 14일로 봉헌 450주년을 기념하였다. 일찍이 1563년 2월 14일에 처음 봉헌된 교회이다. 그만큼 대단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교회이다. 호프키르헤는 성십자가에게 봉헌된 교회이다. 인스부르크를 방문할 일이 있으면 스키장도 스키장이지만 호프키르헤를 방문하여 오스트리아와 합스부르크에 대한 이해를 높힐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호프키르헤의 슈봐르체 만더. 막시밀리안 1세 묘소에서 바라봄.

                      

호프키르헤는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운영했기 때문에 프란치스카너키르히(Franziskanerkirche: 프란치스코 교회)라고 부른다. 그런데 또 하나의 별명이 있다. 슈봐르츠만더 키르헤(Schwarzmander-Kirche)라는 것이다. 현지 사람들은 슈봐르츠만더 키르헤를 짧게 '슈봐르츠만더'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한다. 슈봐르츠는 '검다'는 뜻이지만 '만더'라는 말은 티롤 방언으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검은 사람들'(Schwarze Männer)이란 이 교회에 검은색 청동으로 만들어 세워놓은 무려 28개나 되는 인물상들을 말한다. 호프키르헤는 막시밀리안 1세 황제의 손자인 페르디난트 1세 황제가 세운 교회이다.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의 영묘를 위한 교회로 설립했다. 1553년에 착공되어 꼭 10년 후인 1563년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믹시밀리안 1세 황제는 1519년에 향년 60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비너 노이슈타트(Wiener Neustadt)의 궁정교회인 성게오르크 카펠레(Sankt Georg Kapelle)에 안치되었다. 그것을 페르디난트 1세 황제가 인스부르크의 호프키르헤가 완공되자 그곳으로 이장하였다. 호프키르헤의 중앙제단 앞에 자리잡고 있는 막시밀리안 1세 황제의 묘소는 아마 합스부르크 역대 황제들의 어느 묘소보다도 가장 웅대하고 화려하다. 비엔나의 카이저그루프트(황실납골당)에 있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프란시스 1세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관보다도 더 화려하며 비엔나의 슈테판대성당에 있는 프레데릭 3세 황제의 대리석관보다 더 웅장하다. 더구나 막시밀리안 1세 황제의 묘소 양 옆으로는 앞에서도 잠시 언급한바와 같이 28개나 되는 청동인물상들이 나열되어 있어서 마치 이들이 막시밀리안 1세 황제의 묘소를 호위하거나 경배하는 듯 하다. 간단히 말해서 세상에 이런 구도의 교회는 인스부르크의 호프키르헤 이외에는 아무데도 없다.

 

호프키르헤의 내부. 정면에는 막시밀리안 1세의 관이 있으며 양 옆으로 막시밀리안 1세 황제와 관련되는 인물들의 청동상들이 줄지어 서 있다. 대단하다.

                           

프레데릭 3세(1415-1493)의 아들 막시밀리안 1세(1459-1519),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 필립 1세(1478-1506), 필립 1세의 아들 샤를르 5세(1500-1558), 샤를르 5세의 동생 페르디난트 1세(1503-1564)로 이어지는 합스부르크 사람들의 이력과 가족관계를 설명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고 더구나 아주 복잡하기 때문에 설명을 해 보았자 오히려 혼돈을 야기할 것 같아서 생략코자 한다. 하지만 중요 사항만은 공부하는 셈 치고 기술코자 한다. 프레데릭 3세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아들이 막시밀리안 1세이다. 프레데릭 3세는 세상을 떠나기 10년전부터 아들 막시밀리안 1세와 공동으로 오스트리아를 다스렸다. 막시밀리안 1세는 아버지 프레데릭 3세가 세상을 떠난 1493년부터 1519년까지 26년 동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당시의 관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되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로마까지 가서 교황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면 교황이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을 주관했다. 그런데 막시밀리안 1세는 스위스와 전쟁을 해야 했고 다른 나라와도 분규가 극심하여서 도저히 로마까지 여행할 처지가 되지 못하였다. 먼 길에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막시밀리안 1세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대관식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서 기록되고 있다.

 

알브레헤트 뒤러가 그린 막시밀리안 1세

                   

그나저나 막시밀리안 1세 때에 합스부르크가 통치해 오던 스위스를 스위스연맹(Swiss Confedracy)에게 잃었다. 그러나 그는 브루군디의 메리와 결혼하여 합스부르크의 영향을 현재의 네덜랜드와 벨기에 일대의 저지대로 크게 확장하였다. 막시밀리안 1세가 부유한 브루군디의 메리와 결혼함으로서 막시밀리안 1세는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게 되어 당시 유럽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제왕이 되었다. 더구나 막시밀리안 1세는 아들 필립 1세를 스페인 카스티유의 요안나 여왕과 결혼시킴으로서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가문이 창설되도록 했다.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인 필립 1세가 카스티유의 요안나 여왕과 결혼함으로서 이들의 아들인 샤를르 5세(카를 5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스페인 황제를 겸직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샤를르 5세의 동생이 페르디난트 1세이다. 샤를르 5세가 1558년에 세상을 떠나자 동생인 페르디난트 1세가 형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페르디난트 1세는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를 대단히 존경하여서 그를 위해 별도의 교회를 짓고 그 교회에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의 묘소를 두기로 했다. 그리하여 인스부르크에 호프키르헤가 생기게 되었다.

 

슈봐르츠 만더의 뒤편에 있는 부조.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부조로 만들어 놓았다.

                         

호프키르헤는 1553년에 착공하여 10년 후인 1563년에 완공했다. 페르디난트 1세는 처음에 이 교회를 건설할 때부터 이 교회를 막시밀리안 1세 황제의 묘소로 삼을 계획이었다. 건축 책임은 니콜라우스 튀링이라는 사람이었다. 그의 할아버지가 인스부르크의 자랑인 '황금지붕'을 창조한 사람이다. 교회내의 중앙제단은 비엔나 궁정건축가인 니콜라우스 폰 파카씨가 맡아 완성했다. 중앙제단의 양 옆에는 아씨시의 성자 프란체스코(Hl. Franz von Assisi)와 아빌라의 성녀 테레시아(Hl. Theresia von Avilla)의 모습을 납으로 만든 기념상이 있다. 1768년에 인스부르크 출신의 궁정조각가인 발타자르 페르디난트 몰(Balthasar Ferdinand Moll)이 제작한 것이다. 페르디난트 1세의 아들인 페르디난트 2세는 교회가 풍화를 겪으면서 초라해지자 1577-1578년에 크게 수리를 하고 교회 내의 한 쪽에 묘지예배처(Grabkapelle)로서 질베르네 카펠레(Silberne Kapelle)를 만들어 봉헌하였다. 호프키르헤에서는 1655년 11월에 특별히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왕비의 장례식이 거행된 일이 있다. 스웨덴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에 전반적으로 개신교(루터교)를 받아들였으나 크리스티나 왕비는 로마 가톨릭이어서 인스부르크의 호프키르헤에서 장례미사를 거행하였던 것이다.

 

슈봐르츠 만더(검은 사람들)

                        

호프키르헤에는 티롤의 자유투사인 안드레아스 호퍼(Andreas Hofer: 1767-1810)의 묘소와 기념상이 설치되어 있다. 티롤에서 안드레아스 호퍼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말이 안된다. 나폴레옹군이 티롤을 점령하자 주민들을 격려하여 민병대를 조직하고 티롤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전투를 벌인 인물이다. 호프키르헤에는 안드레아스 호퍼의 기념상 이외에도 그의 지극한 동료인 요아힘 하슈핑거와 카예탄 스베트, 게오르그 하우거도 이 교회에 안치되어 있다. 이들은 1823년에 나폴레옹 군에게 체포되어 이탈리아 북부의 만투아에서 총살 당한 안드레아스 호퍼의 유해를 티롤로 가져올 때에 함께 왔다.

 

호프키르헤의 한 쪽에 있는 티롤의 독립투사 안드레아스 호퍼의 묘소와 기념비

                      

호프키르헤의 주인공인 막시밀리안 1세 황제는 생전에 여러 곳에 자기의 기념상을 세워놓았다. 그러나 묘지는 어느 곳에 만들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사실상 막시밀리안 1세는 거주지가 분명치 않았다. 비엔나에도 있었고 인스부르크에도 있었으며 말년에는 비너 노이슈타트에서 지냈다. 그런데 그는 실은 인스부르크를 가장 선호했다. 인스부르크에 있으면 좋아하는 사냥과 등산과 낚시를 마음 놓고 할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인스부르크 중심가에 '황금지붕'의 집을 지었으며 질(Sill)강변에 커다란 무기고도 지었다. 그리고 인스부르크 교외의 한적한 곳에 자기의 기념상도 세웠다. 기념상을 위해서는 독일의 쾰른과 이탈리아의 카라라에서 대리석을 가져왔다. 막시밀리안 1세는 자기가 세상을 떠난후 자기의 관이 안치될 장소에 40개에 이르는 실물대의 청동상을 만들어 세우도록 주문했다. 그러나 물론 그의 생애 중에는 청동상들이 완성되지 못하였고 그의 손자인 페르디난트 1세 때에야 호프키르헤와 함께 완성되었다. 40여명의 청동상은 세가지 부류의 인물들로 편성되었다. 첫째는 그의 가족들이다. 그의 두 부인인 마리아 폰 부르군트(부르군트의 메리)와 비안카 마리아 스포르차, 그의 자녀인 필립과 마르가레테, 그의 아버지인 프레데릭 3세 황제 등이다. 두번째 부류는 기독교와 관련된 인물들이다. 예를 들면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던 고트프리트 폰 부이용, 프랑켄의 첫번째 기독교 왕인 흘로비히(Chlowig) 1세 등이다. 세번째는 유럽의 다른 왕실 사람들이다. 부르군트의 카를(Karl der Kühne)과 필립(Philipp der Gute), 스페인의 페르디난트(Ferdinand)와 요한나(Johanna die Wahnsinnige) 등이다.

 

막시밀리안 1세가 운명한 오베르외스터라이히주 벨스의 부르크 벨스

                                                  

막시밀리안 1세 황제는 1519년에 벨스궁(Burg Wels)에서 임종을 맞이하였다. 벨스궁은 오버외스터라이히주의 벨스 중심가에 있는 건물이다. 막시밀리안 1세는 유언으로 자기의 관을 비너 노이슈타트의 장크트 게오르그 카펠레(Sankt-Georgs-Kapelle)에 놓아두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가족, 기독교 인물들, 다른 나라 왕족들의 청동상을 그곳에 배치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거운 청동상들을 무려 40개나 비좁은 장크트 게오르그 카펠레에 두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차일피일하던 중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인 페르디난트 1세가 인스부르크에 별도의 교회를 세우고 그곳에 할아버지의 관과 청동상들을 배치키로 했다. 다만, 28개의 청동상만을 배열키로 했다. 그러나 교회는 페르디난트 1세가 건축을 했지만 기타 등등이 구비된 것은 1584년 페르디난트 2세 대공에 의해서였다. 청동상 중에는 여성들도 여러 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28개 청동상의 주인공들은 다음과 같다.

 

- 막시밀리안의 며느리 요한나(Johanna die Wahnsinnige: 정신이상자 요한나)

- 스페인의 가톨릭 왕 페르디난트(Konig Ferdinand der Katholische von Spainien)

- 부르군트의 필립 대공(Herzog Philipp der Gute von Burgund: 선한 왕 필립)

- 부르군트의 칼 대공(Herzog Karl der Kühne von Burgund: 용맹왕 칼)

- 막시밀리안의 할버니인 마조피엔의 침부르기스 공비(Herzogin Zimburgis von Masovien)

- 막시밀리안의 딸인 마르가레테 대공녀(Erzherzogin Margarete von Österreich)

- 막시밀리안의 두번째 부인인 마리아 비안카 스포르타 황비(Kaiserin Maria Bianca Sforza)

- 오스트리아의 지그문트 대공(Erzherzog Sigmund der Münzreiche von Österreich)

- 페터 비세르의 아르투스 왕-아버지(König Artus von Peter Visicher dem Alteren)

- 포르투갈의 페르디난트 왕(König Ferdinand von Portugal)

- 오스트리아의 에른스트 대공(Herzog Ernst der Eiserne von Österreich)

- 동고트의 테오데리히 대왕(Theoderich der Grosse, König der Ostgoten, von Peter Vischer dem Alteren)

- 오스트리아의 알브레헤트 2세 대공(Herzog Albrecht II, der Weise von Österreich)

- 합스부르크의 루돌프(Rudolf von Habsburg)

- 막시밀리안의 아들 필립 1세(König Philipp I(der Schöne) von Kastilien)

- 흘로드비히 1세(König Chlodwig I)

- 알브레헤트 2세(König Albrecht II)

- 막시밀리안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3세 황제(Kaiser Friedrich III)

- 레오폴드 3세 변경백(Markgraf Leopold III der Heilige)

- 합스부르크의 알브레헤트 4세(Graf Albrecht IV von Habsburg)

- 오스트리아의 레오폴드 3세 공작(Herzog Leopold III von Österreich)

- 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 공작(Herzog Friedrich mit der leeren Tasche von Österreich)

- 알브레헤트 1세(König Albrecht I)

- 예루살렘 왕 고트프리트 폰 부이용(Gottfried von Bouillon, Kreuzfharer, König von Jerusalem)

- 룩셈부르크의 엘리자베트 왕비(Königin Elisabeth von Luxemburg)

- 막시밀리안의 첫부인인 부르군트의 마리아(Maria von Burgund)

- 괴르츠-티롤의 엘리자베트(Elisabeth von Görz-Tirol)

- 막시밀리안의 누이인 바이에른의 쿠니군데 공비(Herzogin Kunigunde von Bayern)

 

호프키르헤의 막시밀리안 1세 묘소와 슈봐르체 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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