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체크(Wozzeck)
비엔나 출신인 알반 베르크의 첫 오페라
정부를 살해한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현대오페라
뮌헨의 바바리아 슈타츠오퍼 무대. 막사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 군악대장과 보체크
오페라를 애호한다고 해서 모차르트, 벨칸토, 그리고 베르디와 푸치니만을 즐겨할 필요는 없다. 현대작품도 더러는 관심을 갖고 감상하는 성의를 보여야 할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세기 아방 갸르드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하는 '보체크'를 소개한다. '보체크'는 비엔나에서 태어나서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난 비엔나의 작곡가 알반 베르크(Alban Berg: 1885-1935)의 첫 오페라이다. 알반 베르크가 40세 때인 1925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참고로 말하면, 베르크의 두번째 오페라인 '룰루'(Lulu)는 '보체크'가 나온지 12년 후에 선을 보였다. 오페라 '보체크'는 거의 정신이상이 된 보체크라는 병사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내용이다. '보체크'는 현대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인상적이며 가장 성공한 작품일 것이다. 비엔나의 작곡가라고 하면 어딘가 로맨틱하고 고전적인 작품을 작곡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보체크'를 보고나면 '이건 비엔나풍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심지어는 '아니, 이것도 음악인가?'라며 혐오감을 가질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번 듣고 두번 들으면 무언가 참신하다는 생각과 함께 '듣고 보니까 이것도 관찮은데'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것이 현대음악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보체크'는 1925년 12월 14일 베를린의 슈타츠오퍼에서 초연되었다. 거장 에리히 클라이버(Erich Kleiber)가 지휘했으며 타이틀 롤인 보체크 역은 바리톤 레오 쉬첸도르프(Leo Schützendorf)가 맡았고 상대역인 마리는 소프라노 지그리트 요한손(Sigrid Johanson)이 맡은 공연이었다. 일단은 성공이었다. 오페라 '보체크'는 24세로 요절한 독일의 극작가인 게오르그 뷔흐너(Georg Büchner: 1813-1837)가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보이체크'(Woyzeck)라는 극본을 바탕으로 만든 오페라이다. 오페라 '보체크'의 내용은 1824년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요한 크리스티안 보이체크(Johann Christian Woyzeck)라는 사람이 질투에 못이겨 그의 정부를 살해했기 때문에 끔찍하게도 참수형을 당한 사건이다. 베르크는 1824년의 무대를 10여년 후인 1835년으로 옮겼다. 다만, 장소는 독일의 어떤 작은 마을과 그 마을에 있는 작은 수비대의 병영으로 삼았다.
군중들. 리체우 공연
알반 베르크는 1914년 5월에 비엔나에서 연극 '보이체크'를 보고 당장 오페라로 만들 생각을 했다. 그는 극본을 구해서 3막 5장의 오페라 대본으로 직접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본에 있는 잔혹하고 야비한 언어와 표현등은 채택하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 1차 대전이 일어났다. 베르크는 군대에 가는 했다. 그 때문에 작곡은 전혀 진척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17년과 1918년에 부대에서 휴가를 주어서 그때로부터 비로소 작곡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4년간의 참담했던 1차 대전이 막을 내렸다. 모든 것이 혼란하던 시기였다. 베르크도 별다른 수입이 없어서 어려운 생활을 해야만했다. 하지만 '보체크' 작곡은 계속했다. 그리하여 1막은 1919년 여름에 완성했고 2막은 1921년 8월에 완성했다. 그리고 마지막 막은 그로부터 두 달 후에 완성했으나 정작 오케스트라 파트까지 마무리 된 것은 6개월이 지난 1922년 4월이었다. 비엔나에서 연극 '보이체크'를 보고 오페라로 만들어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때로부터 무려 8년이 지난 후였다. 그러나 당장 공연은 쉽지 않았다. 고전적인 음악이 아니라 아방 갸르드인지 뭔지하는 현대음악이라는 것도 문제였지만 내용이 도무지 사회적인 도덕기준에 맞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베를린의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와 연결이 되어서 작곡을 끝낸지 3년 후인 1925년에 초연을 가질수 있었다. '보체크'는 20세기 아방 갸르드 스타일의 첫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지만 그보다도 무조주의 스타일을 가장 대표적으로 인용한 작품이라는데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무조주의란 간단히 말해서 기존의 조성(調性)을 회피하거나 거부하여 작곡한 음악이다. 복잡하게 말하면 무조음악에서는 각각의 음이 독자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베르크는 특히 주인공이 정신착란이나 정신이상을 보이는 장면에서 무조음악을 확대사용하였다.
코벤트 가든. 보체크 역의 마티아스 괴르너.
알반 마리아 요한네스 베르크(Alban Maria Johannes Berg)는 아놀드 쇤버그 및 안톤 베베른과 함께 제2의 비엔나학파에 속하는 작곡가이다. 그는 말러적인 낭만주의(로맨티시즘)와 쇤버그의 12음 기법을 복합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인지 베르크는 20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베르크의 오페라들이 제2의 비엔나학파의 작곡가들의 작품 중에서 오늘날까지도 상당히 빈번하게 공연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수 있는 일이다. '보체크'의 음악적 특성에 대하여는 잘 알지도 못하고 또 조금 안다고 해도 나서서 설명할 처지가 되지 못하므로 생략코자 한다. 다만, 표면적이나마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내용은 베르크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12음 시스템에 개인적인 가치를 추가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하기야 이 말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참을수 밖에 없다. 오페라 '보체크'는 극심한 가난이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지를 보여준 작품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리고 구원이라는 것은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을 암시하는 것으로 끝맺음을 하였다눈 것이다. 베르크는 인간조건의 냉혹한 견해를 무조음악으로서, 빈약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서, 그리고 그의 스승인 쇤버그가 창안한 슈프레헤슈팀메(Sprechstimme)기법으로서 표현하였다고 한다. 슈트레헤슈팀메는 대화를 말과 노래의 중간쯤 되는 개념으로 진행하는 스타일을 말한다. 반쯤은 말하고 반쯤은 노래하는 스타일이므로 그것이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또는 말을 하는 것인지 분간하기가 힘든 스타일을 말한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으로 으스스하고 냉혹한 효과를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한다. 평론가들의 이런 코멘트들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는 알수 없는 노릇이지만 듣고 보니까 그런것 같기도 하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할 것이다.
바르셀로나 리체우에서의 공연. 무대를 군부대가 아니라 건설공사현장으로 삼았다.
다시 되돌아보아서, 1925년 베를린에서의 초연은 성공은 성공이지만 '뭐 이런 오페라가 다 있어? 너무 지나치잖아?'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나치에 의해 '퇴폐음악'으로 분류되었던 작품이라고 하니까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구경 온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문제는 내용이 지나치게 저속하다는데에 있었다. 그래서 어떤 평론가는 '보체크'를 '스캔들의 승리'라고까지 평했다. 아무튼 상당한 관심을 끌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계속 공연되었다. 이어 유럽의 다른 극장들에서도 서둘러 공연이 되었다. 베르크는 로열티를 받아서 비교적 여유있는 생활을 했다. 베르크는 공연이 있는 극장들을 찾아가느라고 여행을 자주 다녔으며 '보체크'에 대한 강연회도 가져서 나름대로 보람있는 생활을 했다. 미국 초연은 1931년 필라델피아에서였다. 레오폴드 스토코브스키가 지휘한 공연이었다. 쇤버그의 제자였던 사람으로서 지휘자 겸 BBC 프로그램 기획자인 에드워드 클라크(Edward Clark)는 1932년에 BBC 교향악단의 연주로 '보체크'의 일부 만을 콘서트 형식으로 방송했다. 그러다가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자 나치는 '보체크'도 '퇴폐예술'에 포함시켜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의 공연을 금지했다. 영국에서 비록 콘서트 형식이지만 '보체크'의 전부가 연주된 것은 1934년이었다. 영국에서 무대공연이 처음 성사된 것은 전쟁이 끝나고 한참 후인 1952년 1월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였다.
마리(수잰 오웬)와 보체크(보도 브링크맨)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보체크(Wozzeck: Bar)는 이발사로서 병사가 된 사람이다. 그의 내연의 처가 마리(Marie: Sop)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다. 트레블이 맡는다. 대위(Buffo T)는 보체크의 상사로서 보체크의 부도덕한 생활을 탓하는 사람이다. 의사(Buffo B)는 보체크가 정신질환이 있다고 생각하여 치료를 맡고 있다. 군악대장(Heldentenor)은 마리에게 수작을 거는 사람이다. 안드레스(Lyric tenor)는 보체크의 친구이며 마르그레트(Cont)는 마리의 이웃에 사는 여인이다. 이밖에 첫번째 도제(deep bass), 두번째 도제(high bar), 마담(high tenor), 그리고 병사들, 도제들, 여인들,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보체크는 가난하고 무기력한 병사이다. 가끔은 환각증세를 보이기도 하며 망상에 젖기도 하는 인물이다. 보체크는 군대에서 부대장인 대위와 군의관으로부터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는다. 대위는 가학적인 사람이다. 군의관은 자기의 연구를 위해 가난한 사병들에게 돈을 주어 인체실험을 하는 사람이다. 보체크는 일반 사람들처럼 어엿하게 결혼하지 못하고 내연의 처를 데리고 살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태어났다. 보체크의 아내인 마리는 돈도 못 벌고 무기력한 보체크로부터 마음이 떠나서 핸섬한 군악대장과 놀아난다. 하지만 군악대장은 성격이 잔인한 사람이어서 부대에서 보체크를 괴롭힌다. 보체크는 결국 정신이상이 생겨서 마리를 칼로 찔러 죽이고 자기도 물에 빠져 죽는다. 이 오페라의 에피소드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냉혹한 것이다. 마리의 어린 아들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해 당한 어머니의 시체를 보기 위해 가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 오페라의 기둥되는 주제는 인간과 사회의 잔혹성과 무관심에 대한 비판이다. 카프카적인 편집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보체크와 마리와 아이. 1955년 밴프 공연
[1막] 1장은 조곡(Suite)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부대에서 보체크가 상사인 대위의 면도를 해주고 있다. 대위는 보체크에게 면도를 천천히 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보체크가 좋은 사람이지만 부도덕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특히 교회의 축복도 받지 않은 아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안될 일이라고 핀잔을 준다. 보체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도덕이란 것은 사치스런 것이기 때문에 도덕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고 대꾸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대위에게 성경말씀인 마가복음 10장 14절에 나오는 '어린이가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Lasset de Kleinen zu mir kommen!)는 말씀을 상기시켜 주면서 이해하여 달라고 간청한다. 대위는 보체크로부터 그런 충고를 받자 옳다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보체크의 생활에 대하여 실망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2장은 '라프소디와 사냥노래'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보체크와 동료인 안드레스는 부대에서 땔나무를 다듬고 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문다. 보체크는 지는 해에서 어떤 무서운 환상을 보고 고함소리와 같은 소란한 소리를 듣는다. 보체크는 지는 해가 마치 온 세상을 불더미로 뒤덮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안드레스가 그를 진정시키려고 하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현대적 연출의 '보체크'. 마리와 군악대장의 데이트
3장은 '행진곡과 자장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거리에서 병사들이 행진하고 있다. 마리가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행진하고 있는 병사들과 시시덕거리고 있다. 마리는 그중에서도 특히 핸섬한 군악대장이 멋있다고 생각하여 눈웃음을 보낸다. 마리의 이웃집에 살고 있는 마르그레트가 그런 마리를 비웃는다. 마리는 창문을 닫고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준다. 잠시후 보체크가 들어와서 마리에게 무서운 환상을 보았다고 얘기해 준다. 보체크는 불행한 일이 벌어질 징조라고 얘기한다. 얘기를 마친 보체크는 마리가 그럴리가 없다고 하면 위로하는 소리도 듣지 않고 더구나 아들의 얼굴도 들여다보지 않고 즉시 나간다. 마리는 그런 보체크에 대하여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마리는 마리대로 무언가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마리는 아이를 그대로 방에 둔채 밖으로 나간다. 마리는 가난한 것을 한탄한다. 4장은 파사칼리아(Passacaglia)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파사칼리아는 조용한 3박자의 무곡이다. 보체크가 의사를 찾아간다. 보체크는 용돈이라도 벌어보기 위해 의사의 실험대상이 되고 있다. 의사는 보체크에게 지시한대로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있다고 책망한다. 보체크는 다이어트에 대한 의사의 소리는 한 귀로 흘려보내고 대신 타오르는 불길과 같은 환상을 보았다는 얘기를 한다. 의사는 그런 것은 한낱 상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아무래도 보체크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의사는 보체크의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기뻐한다. 왜냐하면 자기의 실험이 성공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사는 보체크를 대상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5장은 '론도'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마리는 군악대장을 보고 아주 흠모하는 눈치이다. 군악대장이 집 앞에 나와 있는 마리에게 수작을 건다. 마리는 처음에는 거절하는 척하며 조금 다투다가 얼마 후에는 군악대장을 팔장을 끼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마리와 아이. 로열덴마크오페라 공연
[2막] 1장은 '소나타 알레그로'이다. 마리가 아들을 재우려고 하고 있다. 마리는 군악대장이 선물로 준 귀거리를 보고 좋아하고 있다. 갑자기 보체크가 나타나자 마리는 귀거리를 감추려 한다. 하지만 귀거리를 본 보체크는 마리에게 그런 좋은 귀거리가 어디서 난 것이냐고 묻는다. 마리는 길에서 주섰다고 말한다. 이상하게도 보체크는 더 이상 따져 묻지 않는다. 보체크는 의사에게서 받은 돈을 마리에게 주고 나간다. 마리는 보체크가 자기를 위해 돈을 벌어 주는 것을 보고 군악대장과의 불륜에 대하여 크게 후회한다. 2장은 '세개의 주제에 대한 환타지아와 푸가'이다. 길을 급히 가던 의사가 대위와 우연히 맞부닥친다. 대위와 의사는 죽음과 질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마침 보체크가 지나간다. 의사와 대위는 보체크에게 아무래도 마리가 다른 남자와 섬싱이 있는 것 같다고 넌지시 얘기해 주며 비웃는다. 3장은 '라르고'이다. 화가 치민 보체크가 마리와 대면한다. 보체크가 마리의 불륜을 추궁하자 마리는 의외로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보체크가 화가나서 마리에게서 고백을 받고자 한다. 마리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마리에게 손찌검을 하려 한다. 마리가 보체크의 손을 막으며 자기의 아버지도 자기를 한번도 때리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짓이냐고 오히려 항의한다. 마리는 '당신이 내게 손찌검을 하도록 하느니 차라리 칼로 내 배를 찌르겠다'라고 말한다. 그 말은 오히려 보체크는 마리에게 앙갚음을 할 방법을 가르쳐 준 셈이다.
'보체크'의 체코 공연. 보체크가 아이를 버려두고 다른 사람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마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4장은 '스케르초'이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중에 마리가 군악대장과 춤을 추고 있다. 사람들은 흥에 겨워서 사냥의 노래를 부른다. 안드레스는 자기 옆에 앉아만 있는 보체크에게 어째서 가만히 앉아만 있느냐고 묻는다. 보체크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는다. 어떤 도제가 술에 취해서 사람들에게 엉터리 설교를 하고 있다. 그러더니 어떤 바보가 보체크에게 다가와서 '즐겁도다, 즐거워. 그런데 이 무슨 일인가? 피 냄새가 난다. 피 냄새가!'라고 소리친다. 보체크는 춤추는 사람들이 피에 흠뻑 젖어 있는 환상을 본다. 5장은 '론도'이다. 그날 밤, 보체크는 병영의 막사에서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옆에 있는 안드레스도 덩달아 잠을 자지 못한다. 그럴 때에 마치 술에 취해서 정신이 없는 듯한 군악대장이 막사로 들어와서 누워있는 보체크를 깨워 일으키며 자기가 마리를 정복했다고 자랑한다. 결국 보체크와 군악대장이 싸움을 벌인다. 보체크가 흠씬 얻어 맞고 쓰러진다. 병영의 막사 안에 있는 병사들의 코고는 소리를 함창으로 구성하여 시작하는 이 장면은 베르크가 1차 대전 중에 군대 막사에서 경험한 내용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막사에서 환각에 빠져 있는 보체크. 마드리드 공연
[3막] 1장은 '테마의 창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밤중이다. 마리가 성경을 읽고 있다. 간음한 여인에 대한 내용이다. 마리는 자기야말로 주님으로부터 죄사함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흐느껴 운다. 마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한다. 2장은 '싱글 음표(B)에 대한 창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보체크는 마리를 데리고 마을 밖에 있는 저수지로 간다. 두 사람은 저수지 옆의 숲에 앉아 있다. 마리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보체크가 마리를 붙잡고 가지 못하도록 한다. 보체크는 마리에게 키스를 하며 마리가 저지른 불륜에 대하여 비웃는 듯한 얘기를 한다. 피빛과 같은 달이 떠오른다. 보체크는 이미 결심을 했다. 자기가 마리를 가질수 없다면 다른 어느 누구도 가질수 없다는 결심이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해서 마리가 도망가려 하자 보체크가 갑자기 칼을 꺼내어 마리를 찌른다. 3장은 '리듬에 대한 창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사람들이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있다. 보체크가 주막에 들어선다. 보체크는 흥분한 듯 술을 퍼마시고 소리를 지른다. 보체크는 마리의 이웃집에 사는 마르그레트를 보자 그를 붙잡고 춤을 춘다. 그리고는 자기 무릎에 끌어 앉힌다. 보체크는 마르그레트에게 모욕적인 말을 서슴치 않는다. 그러더니 마르그레트에게 자기를 위해 노래를 부르라고 말한다. 마르그레트가 노래를 부르다가 보체크의 손과 팔꿈치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본다. 마르그레트가 보체크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묻지만 보체크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모두들 보체크에게 '사람을 죽였지!'라면서 소리를 친다. 그제야 자기 손과 팔꿈치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깨달은 보체크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당황하다가 밖으로 뛰쳐 나간다.
막사에서 싸움을 벌인 보체크와 군악대장.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4장은 '6개 음표의 코드 창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보체크는 저수지 옆의 살인장소로 온다. 보체크는 마침 칼을 갖고 있었던 것이 자기를 살인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칼을 찾아서 저수지로 던진다. 보체크는 피빛과 같은 달이 다시 비치자 불현듯 칼을 저수지 깊이 던지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금방 발견할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보체크는 칼에 혹시라도 묻어 있는 피를 씻어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와 함께 자기 옷에도 묻은 피를 씻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체크는 저수지 안으로 칼을 찾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는 저수지의 깊은 곳에까지 가서 빠진다. 마침 대위와 의사가 저수지 옆을 지나가다가 보체크의 신음 소리를 듣고는 겁이나서 걸음을 재촉하여 그냥 간다. 보체크가 물에 빠져 죽을 때의 음악은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의 '신포니아'에서 인용한 것이다. 4장이 끝나면 간주곡이 있다. 'D 장조 키의 창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후기 바그너적인 로맨틱 스타일의 음악이다. 마지막으로 5장은 '토카타 스타일의 8개 음표로 된 모토 페르페투오에 대한 창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다음날 아침이다. 햇빛이 밝게 비치는 아침이다. 아이들이 놀고 있다. 마을에서는 마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금방 퍼진다. 사람들이 모두들 보러 간다. 다만 마리의 어린 아들만이 아무것도 모르는 듯 계속 놀다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는 다른 사람들을 뒤쫓아 간다. '보체크'는 형식에 있어서 드빗시의 '플레아와 멜리상드'(Pelleas et Melisande)와 비슷하다. 종래의 일반적인 오페라에서 볼수 있는 아리아는 풍부한 오케스트라 배경으로 하여 글을 낭독하는 것같은 형태로 대체되었다. 베르크에 의하면 각 장면은 순수한 음악적 형태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소나타, 조곡, 후가 등이다.
마리와 군악대장
'보체크'와 게오르그 뷔흐너(Georg Büchner: 1813-1837)
게오르그 뷔흐너
게오르그 뷔흐너는 24세에 요절한 독일의 극작가이다. 참으로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영원히 남아 있다. 대표적인 알반 베르크가 오페라로 만든 '보이체크'(Woyzeck), 고트프리트 폰 아이넴이 오페라로 만든 '당통의 죽음'(Dantons Tod: Danton's Death), '레온스와 레나'(Leonce und Lena) 등이다. 그 중에서 '보이체크'는 미완성 작품이다. '보이체크'는 1824년 라이프치히에서 자기 정부를 칼로 찔러 살해한 보이체크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보이체크는 살인범으로 체포되어 라이프치히에서 처형되었다. 보이체크는 참수형을 당하기 전에 궁정의사인 클라루스 박사에게서 정신진단을 받았다.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질수 있는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진단이었다. 클라루스 박사는 보이체크의 정신상태가 정상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질투심에 불타서 정부를 난도질하여 죽인 것은 그가 도덕적으로 퇴폐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며 체질적으로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게오르그 뷔흐너는 보이체크의 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극본을 쓰기로 했다. 1836년부터 쓰기 시작했으나 장질부사로 병마와 싸우다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겨 놓았다. 뷔흐너가 세상을 떠난 후 그가 남긴 미완성 작품들은 동생인 루드비히가 간직하게 되었다. 하지만 루드비히는 미완성 작품들을 정리하거나 조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보이체크'의 원고는 1870년대까지 출판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칼 에밀 프란초스(Karl Emil Franzos)가 미완성 작품들을 발견하고 그중에서 '보이체크'의 원고를 정리하고 나름대로 수정하여 출판했다. 프란초스는 '보이체크' 원고를 편집하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글씨들이 지워지거나 그렇지 않더라고 희미하게 된 것들이 많아서 어떤 글자들은 화학처리를 해서 겨우 복구해야 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뷔흐너의 필체였다. 필체가 엉망이어서 무슨 말을 써 놓았는지 알수 없는 것들이 많았으며 더구나 너무 깨알 같은 글씨로 써 놓았기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뷔흐너는 Woyzeck 라고 써놓았지만 프란초스가 Wozzeck라고 보았던 것이고 그대로 출판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의 제목도 Wozzeck 가 되었던 것이다. 베르크는 Wozzeck 가 Woyzeck보다 어감상으로 더 좋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어려움도 있었다. 그나마 완성한 부분이라고 해도 페이지 번호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장면이 어떤 순서에 나와야 하는지 알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넘버링은 순전히 프란초스의 판단에 의해 정해진 것으로 원작자인 뷔흐너의 의도가 과연 그러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예를 들어 뷔흐너는 보체크의 죽음에 대하여 명확하게 설명해 놓지 않았다. 그래서 프란초스는 뷔흐너가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즉, 보체츠가 마리를 찔러 죽인 칼을 찾으러 저수지를 걸어다니다가 물에 빠져서 익사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극본을 그렇게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훗날 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보체크가 칼을 찾으로 물 속에 들어갔다가 사고로 익사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물에 빠져 죽으려고 저수지를 찾아갔다는 것이다.
1909년에 파울 란다우라는 사람이 뷔흐너의 작품들을 집대성하여 한 권의 책으로 출판했다. '보체크'와 관련해서는 프란초스가 순서를 정해 놓은 것을 참고로 하긴 했지만 몇몇 장면은 순서를 바꾸었다. 베르크는 란다우 버전을 바탕으로해서 대본을 써야 했는데 어쩐 일인지 프란초스의 것을 참고로 했다. 그리고 뷔흐너의 오리지널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이 Woyzeck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프란초스의 문헌대로 Wozzeck 를 따르기로 했다. 베르크가 Woyzeck 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의 악보에 Woyzeck 라고 주석을 달아 놓은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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