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38. 주세페 베르디의 '활슈타프'(Falstaff)

정준극 2013. 10. 24. 21:54

활슈타프(Falstaff)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 최후의 작품

셰익스피어 원작의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과 '헨리 4세'를 바탕으로 한 3막의 코미디 오페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활슈타프'. 타이틀 롤은 베이스 브린 터플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는 생전에 28편(또는 26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 중에서 '활슈타프'는 다 아는 대로 베르디의 마지막 작품이다. 베르디가 80세의 노령에 완성한 작품이다. 그런 노령에 이런 훌륭한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것은 하늘의 축복이 아닐수 없다. '활슈타프'는 또한 베르디의 유일한 코믹 오페라이다. 다른 모든 작품들은 비극인데 '활슈타프'는 희극이다. 물론 베르디의 코믹 오페라로서 그가 청년시절에 처음 작곡한 '왕궁의 하루'(Un giorno di regno: 1840)라는 것도 있지만 이것은 성공을 거두지 못해서 오늘날 거의 공연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활슈타프'를 베르디의 유일한 코믹 오페라라고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니다. '활슈타프'는 오페라의 장르로 보면 코메디아 리리카(commedia lirica)에 속한다. 리리카라는 말은 서정시라는 뜻이지만 오페라라는 의미로 더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코메디아 리리카라고 하면 그저 코믹 오페라라고 풀이할수 있다. 비교적 근자에 들어와서 코메디아 리리카에 속하는 이탈리아 오페라들을 내세워보면, 레오카발로의 '차차'(Zaza)와 '라 보엠'(La Boheme), 마스카니의 '가면'(Le maschera)과 '친구 프리츠'(L'amico Fritz), 푸치니의 '제비'(La Rondini) 등이 있다.

 

'활슈타프'의 대본은 아리고 보이토(Arrigo Boito)가 맡았다. 아리고 보이토는 잘 아는대로 베르디를 위해 '오텔로'의 대본을 썼기 때문에 베르디가 대단히 신뢰하는 인물이다. 아리고 보이토는 기본적으로 작곡가였다. 오페라 '메피스토펠레스'는 그의 대표작이다. 아리고 보이토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인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The Merry Wives of Windsor)과 헨리 4세(파트 1과 파트 2)를 바탕으로 하여 오페라 대본을 만들었다. 활슈타프라는 명칭은 이들 희곡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활슈타프의 풀 네임은 Sir John Falstaff(존 활슈타프 경)이다. 헨리 4세에서 활슈타프는 장차 헨리 5세가 되는 왕세자 할(Hal)의 친구로 나온다. '활슈타프'는 베르디가 '맥베스'와 '오텔로'에 이어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오페라로 만든 세번째 케이스이다. 베르디는 '맥베스'를 완성하고 나서 다음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리어 왕의 복잡하고 난해한 성격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여서 포기했다. 아리고 보이토는 베르디에게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추천했지만 베르디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베르디의 '활슈타프'는 지금부터 120여년 전인 1893년 2월 9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역사적이라고 한 것은 모두들 '활슈타프'를 그야말로 베르디 선생의 마지막 오페라 작품이라고 믿어서 대단히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활슈타프'의 로마 초연에는 이탈리아의 국왕이 만사제쳐놓고 참석한 것만 보아도 알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활슈타프'는 대단한 인기를 끌긴 했지만 '아이다', 그리고 바로 전에 작곡한 '오텔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역시 희극보다는 비극을 선호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음악가들이나 평론가들은 '활슈타프'를 오히려 높게 평가하였다. 찬란한 오케스트레이션, 재치와 기지가 번쩍이는 대사, 그리고 세련된 멜로디로 넘쳐 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곤경에 처한 활슈타프

                     

여기서 잠시 셰익스피어의 오리지널 희곡에서는 활슈타프라는 인물이 어떻게 설명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에 표현되어 있는 설명을 정리해보면 '뚱뚱하고 먹고 마시기를 좋아하며 짓궂은 행동을 즐겨하는 인물'(a fat, convial, roguish character)이라고 되어 있다. 또 다른 설명에는 '뚱뚱하고 쾌할하지만 어딘가 뻔뻔스럽고 철면피와 같은 기사'(a fat jovial somewhat unscrupulous knight)라고 되어 있다. 이런 설명도 있다. '뻔뻔스럽지만 쾌활하고 뚱뚱한 인물로서 도덕적인 관념이나 양심의 가책이 거의 없는 기사'(a jovial, fat knight of brazen assurance and few scruples)이다. 한편, '헨리 4세에 묘사되어 있는 내용을 보면 '술과 여인과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 하지만 행동은 비겁하며 마치 용감한 행동이나 한 것 처럼 허풍떨기를 좋아하는 사람'(a lover of wine, women, and song; although a coward in practice, he loves to tell tales of his supposed bavery)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뚱뚱하며 허영심과 자만심이 많다. 그런가하면 비겁하여서 할 왕자를 곤란하게 만들기가 일수였다. 그래서 할 왕자가 왕이 된 후에는 버림을 받았다'라는 설명도 있다. 이런 저런 설명들을 종합해보면 활슈타프는 뚱뚱하고 비교적 쾌활한 성격으로 술마시기를 좋아하고 여자들과 수작부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철면피처럼 뻔뻔스럽고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며 또한 허풍떨기를 즐겨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면 무난할 것이다. 활슈타프는 경(Sir)이라는 작위를 갖고 있다. 아마 나중에 헨리 5세가 되는 할 왕자의 친구였기 때문에 그런 작위를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을갖게 한다. 하지만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이건 '헨리 4세'이건 모두 실화가 아니라 희곡일 뿐이다.

 

활슈타프 역의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베르디는 74세 때엔 1887년에 참으로 오랫만에 '오텔로'로서 대성공을 거둔 후에 코미디를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적당한 대본을 찾기가 어려웠다. 1890년에 베르디가 밀라노에서 보이토를 다시 만났을 때 보이토는 베르디에게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을 제안했다. 베르디는 보이토에게 '그럼 어디 한번 대본의 초안을 만들어보라'고 넌지시 말했다. 그로부터 몇 주 후에 보이토가 베르디에게 대본의 초안을 보냈다. 그때 베르디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희곡들을 훓어보면서 어떤 것이 적당할까를 저울질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보이토가 보낸 초안을 보자 베르디는 당장 보이토에게 답장을 보내어 '베니시모! 베니시모!...참으로 당신만큼 훌륭한 대본을 쓰는 사람을 없소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다음날 베르디는 보이토에게 다시 편지를 보내어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 건강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과연 새로운 코믹 오페라를 완성할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걱정이었다. 계속해서 베르디는 '만일 완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대의 시간과 노력을 공연히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더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베르디는 특히 보이토가 유능한 작곡가로서 당시에 '네로네'(Nerone)라는 오페라를 작곡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담이 될것 같아 걱정을 했던 것이다.

 

걱정은 그렇게 했지만 실상 베르디는 또 하나의 오페라, 그리고 이번에는 제대로의 코미디를 만든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베르디의 전기작가인 메리 제인 필립스 마츠(Mary Jane Phililips Matz)에 의하면 베르디는 보이토를 만난지 한달 후에 보낸 편지에서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관중들에게 '우린 다시 손을 잡았습니다. 와서 보십시오"라고 말할수 있으니 말이다'라고 썼다는 것이다. 베르디가 이어 다시 보이토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런 감정이 더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아멘. '활슈타프'를 만듭시다. 이제부터는 어떤 장애물도 생각하지 맙시다. 나이도 생각하지 말고 병들어서 누워있다는 생각도 하지 맙시다. 다만, 우리가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지를 당분간은 철저하게 비밀로 합시다. 사람들이 알아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아마 나의 아내인 페피나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페피나는 비밀을 지킬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 이제 준비가 되었으면 대본을 쓰기 시작하시오."라고 썼다. 베르디와 보이토가 간직한 비밀은 그로부터 18개월 동안 지켜졌다. 세상은 베르디와 보이토의 새로운 합작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말할수 없는 기대를 하였다. 그리고 처음 베르디가 밀라노에서 보이토를 만나 얘기를 나눈지 3년도 채 안된 1893년 2월 9일, 베르디의 마지막 오페라인 '활슈타프'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모습을 보였다.

 

'활슈타프'는 베르디의 다른 오페라와는 조금 다른 점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활슈타프'는 스토리의 전개 순서대로 작곡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 각 장면이 독립적이기 때문에 순서대로 작곡해야할 필요성이 없지 않았겠느냐는 짐작이다. 또한 '활슈타프'는 베르디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작곡의 진척이 더디었다. 왜냐하면 연로한 베르디였기 때문에 혹시나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채 세상을 떠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많았다. 베르디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가까웠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친구들이라고 해도 거의 모두가 노령이었으므로 세상을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디에게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떠나는 것이 큰 충격이었다고 특히 지휘자인 에마누엘레 무치오(Emanuele Muzio: 1825-19=890)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베르디는 '과연 내가 활슈타프를 완성할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인가? 나는 그저 목적지가 없는 작품을 하루의 몇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작곡하고 있을 뿐이다'라는 생각이었다. 아무튼 베르디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서 작곡을 제대로 밀고 나가지 못하였던 것이다. 또 하나 '활슈타프'가 다른 오페라들과 다른 점은 다른 오페라들은 대개 어느 특정 극장의 요청으로 작곡을 한 것이었지만 '활슈타프'는 그런 구속이 없이 정말로 베르디 자신만족을 위해 작곡했다는 것이다. 구속을 받지 않고 자기의 즐거움만을 위해 작곡할 수 있다는 것은 베르디로서 하나의 축복이었다. 사실상 베르디는 '활슈타프'를 어느 극장을 위해서, 또는 어느 성악가를 염두에 두고 작곡할 필요가 없었다.

 

로마극장의 무대. 활슈타프가 알리스와의 데이트를 위해 시동인 로빈과 함께 나타난다.

 

베르디는 1891년에 접어들면서 아무래도 그 해에는 '활슈타프'를 완성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다가 6월 쯤 되어서 '활슈타프'에 진전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베르디는 이미 4월 중순에 1막의 음악을 완성했으며 6월과 7월에는 예상 출연자들과 의논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진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상 출연자들과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활슈타프의 타이틀 롤을 맡을지도 모르는 바리톤 빅토 모렐(Viictor Maurel)이 너무나 이것저것 요구사항을 내놓은 것이었다. 빅토 모렐은 베르디의 '오텔로'에서 이아고를 맡았던 인물이다. 베르디는 빅토 모렐이 지나치게 여러가지를 요구하자 '그 사람의 요구는 터무니 없고 과대하며 말도 안되는 것이다. 계속 그렇게 나온다면 이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할수 밖에 없다'고 까지 선언하였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온 동리 사람들의 베르디의 '배불뚝이'(The Big Belly)를 고대하고 있는 터에 중단이라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활슈타프'의 처음 제목은 '배불뚝이'였다. 그러다가 '활슈타프'로 결정되었다.] 다행히 악보출판가인 리코르디의 노력으로 베르디에 대한 출연 예상자들의 지나친 요구들은 타협되거나 무마되었다. 다음으로는 극장이었다. 밀라노의 라 스칼라가 당연히 '활슈타프'의 초연 장소로 결정되었다. 다만, 베르디는 라 스칼라로부터 제작의 모든 면을 일일히 콘트롤 할수 있다는 양해를 받았다. 그리고 라 스칼라는 1892-93년도 시즌에 아무때나 공연한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이미 확정된 스케줄 때문에 '활슈타프'의 초연은 현실적으로 1983년 1월 2일 이후가 될수 밖에 없었다. 라 스칼라와 베르디가 합의한 또 하나의 사항이 있다. 베르디가 주장하면 드레스 아무리 리허설까지 끝냈다고 해도  공연을 중지할수 있다는 것이었다. 라 스칼라는 그만큼 베르디에게 전권을 주었다.

 

활슈타프 역의 Licio Bruno

 

라 스칼라는 이런저런 여건 때문에 혹시라도 '활슈타프'가 공연되지 못한다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1892년 12월에 1893년 1월의 프로그램을 예고하면서 '활슈타프' 또는 '탄호이저'를 공연한다고 발표했다. 그 점이 베르디의 심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초연의 일자는 1893년 2월 9일로 잡았다. 그리고 관례에 따라 베르디는 세번째 공연의 밤까지 밀라노에 머무는 것으로 했다.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관중들은 앙코르와 브라보를 연호하면서 극장을 떠날 줄을 몰랐다. 위대한 베르디 선생과 출연진들에 대한 박수갈채는 거의 한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아마 라 스칼라의 역사상 처음 있는 장시간 박수였을 것이다. 막이 겨우 내려지고 베르디와 부인 주세피나와 대본을 쓴 보이토가 밀라노의 그랜도 호텔에 도착했을 때 호텔에서는 또 한번의 대단한 환영파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베르디와 주세피나는 3월 2일까지 밀라노에 머물렀다. 친구이며 악보출판가인 리코르디는 4월 14일로 예정되어 있는 로마 공연에도 반드시 참석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리하여 베르디와 부인 주세피나와 보이토 등은 움베르토 1세 왕이 왕림한 로마 공연에 참석하였다. 움베르토 왕은 로열석에 함께 앉은 베르디를 관중들에게 직접 소개하면서 '이탈리아는 베르디 선생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 뜨거운 박수로서 베르디 일행은 환영하였다. 아무튼 국왕이 작곡가를 옆에 앉도록 하고 관중들에게 직접 소개하며 찬사를 보낸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영광이었다.

 

파리 공연의 무대

 

'활슈타프'의 음악은 베르디의 다른 어느 작품보다도 스타일이 독특하다. '활슈타프'에서는 대화 속에 음악적 표현이 나타나 있다. 그러다보니 다른 오페라처럼 아리아나 앙상블, 또는 합창이 거의 없다. 전통적인 아리아는 단 한곡 뿐이다. 이러한 스타일은 베르디로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베르디가 인지하고 있었던지 아니던지 '활슈타프'는 20세기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주도하였던 것이다. '활슈타프'가 이탈리아 이외의 지역에서 처음 공연된 것은 그해(1893) 5월 비엔나에서였다. 프란츠 요셉 황제의 오스트리아 제국이 아직도 북부 이탈리아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때였으므로 밀라노의 공연이 비엔나로 직수출됨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어 함부르크 초연은 이듬해인 1894년 1월로서 구스타브 말러가 지휘했다. 영국 초연은 1894년 5월 코벤트 가든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였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임에도 불구하고 대본이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베르디에게 위임을 받은 윌렴 비티 킹스턴이라는 사람이 영어로 번역했다. 미국 초연은 1895년 2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였다. 초연에서 타이틀 롤의 이미지를 창조했던 프랑스 출신의 바리톤 빅토 모렐이 뉴욕 초연에서도 타이틀 롤을 맡았다.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 활슈타프(Bar)의 원래 호칭은 Sir John Falstaff(존 활슈타프 경)이다. 포드(Ford: Bar)는 부유한 사람이며 그의 부인이 알리스 포드(Alice Ford: S)이고 이들의 딸이 나네타(Nannetta: S)이다. 여기에 윈저의 부인들인 메그 페이지(Meg Page: MS), 미스트레스 귀클리(Mistress Quickly: Cont)이 등장한다. 펜튼(Fenton: T)은 나네타에게 청혼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활슈타프의 하인으로는 바르돌포(Bardolfo: T)와 피스톨라(Pistola: B)가 있다. 활슈타프의 시종 소년의 이름은 로빈(Robin)이다. 로빈은 마을 주막 겸 여관인 가터 인(Garter Inn)의 주인과 함께 대사를 하지 않는 역할이다. '활슈타프'의 시기는 영국 헨리 4세의 치하(1399-1413)이다. 장소는 잉글랜드의 윈저이다.

 

활슈타프역의 Robert Millard. LA 오페라

 

[1막] 첫 장면은 가터 여관의 어느 방이 무대이다. 활슈타프는 하인들인 바르돌포와 피스톨로, 그리고 여관집 주인들과 함께 있다. 그때 의사인 카이우스가 들어와서 활슈타프가 자기 물건을 훔쳤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런 비난도 잠시뿐, 활슈타프는 그를 밖으로 쫓아낸다. 활슈타프는 두 하인들에게 미스트레스 알리스 포드와 미스트레스 메그(마가렛) 페이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각각 주면서 전달하라고 지시한다. 알리스 포드와 메그 페이지는 모두 부유한 사람들과 결혼한 여인들이다. 활슈타프의 편지는 두 여인에게 각각 사랑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각 편지의 내용은 똑같다. 활슈타프가 이들에게 러브 레터를 보내는 진짜 목적은 이들의 남편들이 가지고 있는 돈을 우려낼 생각에서이다. 두 하인은 그런 내막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하인의 신세이기 하지만 남자로서 명예가 있으므로 그런 심부름은 하지 못하겠다고 거절한다. 화가 난 활슈타프는 편지를 대신 시종인 로빈에게 주어 전달토록 한다. 그러면서 이른바 '명예를 존중하는' 하인들에게 '명예가 밥먹여 주냐?'면서 비난한다. 활슈타프의 노래가 L'onore! Ladri..!(명예! 악당들 같으니라구)이다. 활슈타프는 두 하인에게 보기도 싫으니 눈 앞에서 썩 꺼지라고 호통을 친다.

 

두번째 장면은 포드씨의 집 정원이 무대이다. 알리스와 메그는 활슈타프가 보낸 편지를 전해 받는다. 그런데 읽어보니 내용이 글자하나 틀리지 않고 똑 같다. 알리스와 메그는 활슈타프가 자기들을 업수이 여기고 조롱한다고 생각해서 미스트레스 퀴글리, 나네타 포드와 함께 그놈의 뚱뚱보 기사를 혼내주기로 작정한다. 한편 활슈타프에게서 욕을 먹고 쫓겨난 하인 바르돌포와 피스톨로는 두 여인 중의 하나인 알리스 포드의 남편 포드씨를 만나서 활슈타프가 알리스 포드에게 러브 레터를 보냈는데 실은 포드씨의 돈을 우려낼 생각으로였다고 말해주고 속아넘어가지 않도록 단단히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화가 치민 포드씨는 두 하인과 함께 활슈타프에게 무조건 복수하기로 작정한다. 알리스는 남편 포드씨가 대단히 질투심이 많은 사람인 것을 알고 활슈타프가 자기에게 러브 레터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면 가만히 있지 않고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아서 편지를 받은 사실을 숨긴다. 포드씨의 고용인인 펜튼은 포드씨의 딸인 나네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해 달라고 간청한다. 나네타도 펜튼이 싫지는 않다. 한편, 미스트레스 퀴클리는 알리스에게 활슈타프를 골탕 먹이려면 우선 그와 만나겠다고 하여 집으로 초청하자고 제안한다. 그런 후에 무슨 걔략을 꾸며서 활슈타프를 골탕 먹이자는 것이다. 이번에는 남자들의 계략 꾸미기 차례이다. 두 하인은 포드에게 활슈타프를 만나기는 하되 포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인 것처럼 이름을 바꾸어서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한다. 아무튼 1막의 마지막은 네 여인과 세 남자들이 모두 활슈타프에게 복수를 하자고 다짐하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알리스 포드, 메그 페이지, 미스 퀴클리, 나네타. 편지의 장면. '아니, 활슈타프 영감이 보낸 편지의 내용이 똑 같잖아..'라면서 웃음을 터트리는 여인들.

                       

[2막] 첫 장면은 가터 여관의 어떤 방이다. 이제는 포드씨로부터 보수를 받게 된 바르돌포와 피스톨라는 활슈타프를 찾아가서 자기들이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빌어서 우선 활슈타프의 마음을 안심시킨다. 잠시후 미스트레스 퀴클리가 활슈타프를 찾아온다. 알리스가 활슈타프를 만나고 싶어하니 집으로 와 달라는 초청장을 전해주러 온 것이다. 미스트레스 퀴클리는 활슈타프에게 메그 페이지도 활슈타프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말하면서 실은 두 여인이 각각 활슈타프로 부터 편지를 받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활슈타프는 입이 함박만큼 벌어지면서 잘하면 두 여인과 각각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기뻐한다. 활슈타프의 노래가 Va, vecchio John(가자, 관록있는 존이여. 하고 싶은 대로 하자)이다. 잠시후 포드씨가 시뇨르 폰타나라는 가명으로 활슈타프를 찾아온다. 두 하인들이 미리 활슈타프에게 시뇨르 폰타나에 대하여 얘기를 해놓았기 때문에 활슈타프도 그를 만나고 싶어하던 차였다. 시뇨르 폰타나(포드씨)는 활슈타프에게 알리스 포드와 다리를 좀 놓아 달라고 간청하며 일만 잘되면 크게 사례하겠다고 말한다. 활슈타프는 자기가 어떻게 해보려던 알리스를 시뇨르 폰타나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다리를 놓아달라고 하니까 상당히 당황했지만 돈이 생기는 일이라고 하니까 구미가 당긴다. 시뇨르 폰타나(포드씨)는 활슈타프에게 알리스가 활슈타프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 들였다는 것은 곧 자기에게도 마음을 줄수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라면서 활슈타프를 설득한다. 활슈타프는 까짓것 그렇게 하자고 말하면서 실은 알리스가 이미 자기와 만나자고 연락을 해 왔다고 하면서 여자의 마음은 다 그런 것이니 시뇨르 폰타나를 소개하여 잘되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내세운다. 활슈타프는 시뇨르 폰타나(포드씨)에게 알리스를 2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 시간에는 남편이란 사람이 출타 중일 것이라고 덧 붙인다. 여자들이 활슈타프에게 복수를 하려는 계획을 알지 못하는 포드씨는 자기 부인인 알리스가 이미 활슈타프와 2시에 만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 질투심이 생긴다. 포드씨의 노래가 E sogno o realta?(이것이 꿈이냐 생시이냐?)이다.

 

활슈타프의 수작을 받아들이는척 하는 알리스 포드

 

두번째 장면은 포드씨 집의 어떤 방이 무대이다. 알리스 포드, 메그 페이지, 미스 퀴클리가 모여서 활슈타프를 골탕 먹일 계략을 의논한다. 세 여인의 노래가 Gaie Comari di Windsor(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 이제 시간이 되었다)이다. 나네타는 아버지 포드씨가 자기를 늙어도 한참 늙은 카이우스와 결혼시킬 생각인 것을 알고는 참으로 황당해 한다. 세 여인은 나네타에게 그런 일이란 절대로 있을수 없다면서 위로한다. 잠시 밖에 나갔던 미스 퀴클리가 들어와서 활슈타프가 찾아왔다고 전한다. 알리스는 커다란 바구니와 휘장을 이미 준비해 놓았다. 방에 들어온 활슈타프는 알리스의 환심을 사느라고 자기로 말하자면 과거에 이러이러한 영웅적인 행동을 했다고 하면서 자랑한다. 활슈타프의 노래가 Quand'ero paggio del Duca di Norfolk(내가 노포크 공작의 시종이었을 때에는 날씬했었다)이다. 활슈타프가 한참 떠벌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에 미스트레스 퀴클리가 갑자기 들어와서 주인인 포드씨가 도착했다고 전한다. 포드씨는 부인인 알리스가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친구들과 하인들을 데리고 아내의 정부를 혼내주기 위해 달려왔다는 것이다. 포드씨가 사람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알리스는 활슈타프에게 어서 휘장 안에 숨으라고 했다가 그곳도 안심이 안되므로 다른 부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활슈타프를 미리 준비해 놓은 커다란 바구니 안에 숨도록 한다. 한편, 나네타와 펜튼도 데이트를 하다가 포드씨가 갑자기 나타나자 휘장 안에 숨는다. 방으로 들어와서 활슈타프를 찾던 포드씨를 비롯한 사람들은 휘장 안에서 키스하는 소리를 듣는다. 사람들은 이제야 활슈타프와 알리스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휘장을 들치고 보니 펜튼이다. 포드씨는 펜튼에게 당장 나가라고 말한다. 활슈타프는 바구니 안이 너무 비좁고 더워서 땀을 많이 흘리고 있다고 불평한다. 사람들이 다시 활슈타프를 찾기 시작한다. 여자들은 사람들에게 저기 있는 큰 바구니는 이제 필요없으니 창문을 열고 밖에 있는 시궁창으로 던져버리라고 말한다. 바구니 안에 들어있는 활슈타프는 꼼짝도 하지 못하괴 시궁창에 던져질 운명에 처한다. 활슈타프는 사람들이 자기를 조롱하고 비웃는 소리를 참을수 밖에 없다.

 

포드씨가 사람들과 함께 활슈타프를 찾으러 나타나자 여인들은 활슈타프를 커다란 바구니 안에 숨도록 한다.

 

[3막] 무대는 여관집 앞이다. 한바탕 창피를 당한 활슈타프는 무슨 놈의 팔자가  이러냐면서 세상을 저주한다. 그러나 맛있게 데운 포도주를 얼큰하게 마시자 금새 기분이 좋아진다. 활슈타프가 하인들을 불러 놓고 야단을 치고 있을 때 미스 퀴클리가 찾아와서 알리스가 보낸 또 다른 초청장을 전달한다. 윈저 숲에서 가장파티가 열리므로 그곳에서 만나자는 내용이다. 다만, 모두 가장을 하기 때문에 누가 누군지 모르므로 알아보기 쉽게 사슴뿔을 머리에 달고 나와 달라는 얘기도 곁들여 있다. 사냥꾼 헤른(Herne the Hunter)은 전래 전설에 나오는 유령으로 사슴뿔 모자를 쓰고 사냥꾼으로 가장한 사람을 말한다. 활슈타프는 이번에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다고 생각해서 주저하다가 알리스가 만나자고 했으므로 일단 기대에 부풀어서 가기로 한다. 여인들과 남자들은 활슈타프를 단단히 골탕 먹일 계획으로 분주하다. 나네타의 아버지인 포드씨는 늙은 카이우스에게 윈저 숲의 가장 파티에 와서 나네타를 만나서 청혼을 잘 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기회를 이용해서 나네타와의 결혼식을 올려 어쩔수 없이 부부가 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미스 퀴클리가 엿듣는다.

  

윈저 숲에서 조롱받고 있는 활슈타프

 

다음 장면은 윈저 숲의 커다란 참나무가 있는 곳이 무대이다. 헤른의 참나무라고 불리는 나무이다. 달빛이 환히 비치는 밤이다. 펜튼이 참나무가 있는 곳에서 나네타도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고 행복의 노래를 부른다. Dal labbrao il canto estasiato vola(나의 입술로 환희의 노래가 나오네)이다. 나네타가 나타나서 펜튼과 함께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노래를 부른다. 잠시후 여자들이 나와서 펜튼을 수도승처럼 분장시킨다. 그러면서 포드씨와 카이우스의 음모를 망치기 위해서 하는 일이니 잘 따라달라고 말한다. 나네타는 요정의 여왕의 역할을 맡는다. 그러면서 여왕의 시녀들로 분장한 여자들에게 이러저러하게 행동하라고 지시한다. 이 때의 노래가 Sul fil d'un soffio etesio(향기로눈 미풍과 함께, 날아라 날렵한 요정들이여)이다. 잠시후 활슈타프가 나타난다. 알리스를 보자 과연 약속대로 나타났다고 기뻐하여 수작을 건다. 그때 마녀들이 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 때문에 활슈타프와 알리스의 사랑의 장면은 중단된다. 이어 이런저런 요정들로 가장한 남자들이 나타나서 채찍으로 활슈타프를 때리며 소란을 떤다. 활슈타프는 요정들 틈에서 하인 바르돌포를 알아보고 이 모든 것이 장난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자기가 너무 욕심을 부리고 못된 짓을 했기 때문에 이런 벌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포드씨가 카이우스와 약속한 대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선언한다. 가장한 카이우스가 나타난다. 포드씨는 딸 나네타가 요정의 여왕으로 분장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저 쪽에 있는 요정의 여왕을 나오도록 한다. 그런데 실은 하인 바르돌포도 요정의 여왕으로 가장해 있다. 그래서 결혼식은 카이우스와 바르돌포을 앞세우고 진행될 참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커플이 나타나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한다. 팬튼과 나네타가 그 기회를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펜튼은 수도승으로 가장했고 나네타는 요정의 여왕으로 가장했기 때문에 포드씨나 카이우스는 이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포드씨는 펜튼과 나네타를 잘 알아보지 못하고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한다. 활슈타프는 자기만이 바보가 아님을 알고 기뻐한다. 활슈타프가 Tutto nel mondo e burla...Tutti gabbati(세상만사가 장난이야...사람은 웃으려고 태어났고 남으로부터 조롱을 받으려고 태어났다)라고 선창하자 모두들 합창으로 화답하는 중에 막이 내린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무대. '세상만사는 모두 장난이요 농담'이라고 선언하는 활슈타프

                     

[명음반] 활슈타프, 포드씨, 펜튼, 미세스 포드, 미스 퀴클리 - 지휘자, 오케스트라

 

- 1957: 티토 고비(Tito Gobbi), 롤란도 파네라이(Rolando Panerai), 루이지 알바(Luigi Alva),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Elisabeth Schwarzkopf), 페도라 바르비에리(Fedora Barbieri) - 허버트 폰 카라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합창당(잘츠부르크 공연 녹음)

- 1963: 제랭 에반스(Geraint Evans), 로버트 메릴(Robert Merrill), 알프레도 크라우스(Alfredo Kraus), 일바 리가부에(Ilva Ligabue), 줄리에타 시미오나토(Giulietta Simionato) - 게오르그 솔티, RCA 이탈리아나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 1966: 디트리시 피셔 디스카우, 롤란도 파네라이, 후안 온치나(Juan oncina), 일바 리가부에(Ilva Ligabue), 레지나 레스니크(Regina Resnik) - 레오나드 번슈타인, 비엔나 필과 비엔나 슈타츠오퍼 합창단

- 1976: 도날드 그램(Donald Gramm), 벤자민 럭슨(Benjamin Luxon), 막스 르네 코소티(Max-Renee Cosotti), 케이 그리펠(Kay Griffel), 누치 콘도(Nucci Condo) - 존 프릿챠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글린드본 합창단

- 1980: 주세페 타데이(Giuseppe Tadei), 롤란도 파네라이, 프란치스코 아라이자(Francisco Araiza), 라이나 카바이반스카(Raina Kabaivanska), 크리스타 루드비히(Christa Ludwig) - 허버트 폰 카라얀, 비엔나 필 오케스트라

- 1982: 레나토 브루손(Renato Bruson), 레오 누치(Leo Nucci), 달마치오 곤잘레즈(Dalmacio Gonzalez), 카티라 리키아렐리(Katia Ricciarelli), 루치아 발렌티니 테라니(Lucia Valentini Terrani) -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로스 안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1991: 롤란도 파네라이(Rolando Panerai), 알란 티투스(Alan Titus), 프랭크 로바르도(Frank Lobardo), 샤론 스위트(Sharon Sweet), 매릴린 혼(Marilyn Horne) - 콜린 데이비스, 심포니 오케스터 데스 바이에리센 룬트풍크스

- 2001: 브린 터블(Bryn Terfel), 토마스 햄슨(Thomas Hampson), 다닐 쉬토다(Danil Shtoda), 아드리안느 피촌카(Adrianne Pieczonka), 라리사 다이드코바(Larissa Diadkova) - 클라우디오 아바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 2009: 크리스토퍼 퍼브스(Christopher Purves), 타시스 크리스토야니스(Tassis Christoyannis), 벌렌트 베츠두즈(Bulent Bezduz), 디나 쿠츠네초바(DinaKuznetsova), 마리 니콜 르뮤(Marie-Nicole Lemieux) - 블라디미르 주로브스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글린드본 합창단

 

1982년 로스 안젤레스 공연을 녹화한 DVD. 레나토 브루손, 카티아 리키아렐리, 바바라 헨드릭스 등 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