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기념상/저명 인사

화가 봘트뮐러 기념상

정준극 2014. 1. 4. 07:13

비더마이어 시기의 풍경화가 페르디난트 게오르그 봘트뮐러 기념상

Ferdinand Georg Waldmüller(1793 – 1865)

 

라트하우스파르크(시청공원)에 있는 페르디난트 게오르그 봘트뮐러 기념상

 

라트하우스파르크의 한 쪽에 오스트리아가 낳은 비더마이어 시기의 위대한 화가인 페르디난트 게오르그 봘트뮐러의 기념상이 있다. 그가 스케치한 그림을 어떤 아기 엄마에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봘트뮐러는 주로 풍경화를 그렸다. 오스트리아 시골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화폭에 담았다. 그는 인물화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베토벤의 초상화를 그린 것은 역사적인 일이다.

 

페르디난트 봘트뮐러의 베토벤 초상화. 1823년.

 

비엔나에서 태어난 봘트뮐러는 비엔나미술아카데미(Akademie der bildenden Künste Wien)에 다닐 때에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궁정화가로서 발전할수 있었으나 그보다는 서민들의 생활과 자연 풍경에 깊은 사랑을 가져서 풍경화를 주로 그렸고 나중에는 생계를 위해 초상화도 그렸다. 1811년에는 크로아티아에 가서 어떤 귀족 집의 어린이들을 위한 미술교사로서 3년동안 지내기도 했다. 비엔나에 돌아온 그는 자기의 그림 능력을 높이기 위해 옛 작품들의 모사 일을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자연에 흥미를 느껴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연의 색채에 대한 센스가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그래서 오늘날 그의 풍경화들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봘트뮐러는 비엔나미술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학교 당국과 의견이 맞지 않아서 결국은 그만 두어야 했다. 그는 학교가 자연을 이해하는 공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봘트뮐러는 1857년에 비엔나미술아카데미를 어쩔수 없이 퇴직하고 지내다가 1863년에 비엔나 근교의 뫼들링에 있는 힌터브륄 마을에서 세상을 떠났다.

 

페르디난트 봘트뮐러 작 '성체축일의 아침'(Am Fronleichnamsmorg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