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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의 '타향으로부터의 귀향' - 68

정준극 2014. 2. 4. 10:01

타향으로부터의 귀향(Die Heimkehr aus der Fremde)

Return of the Roamer(떠돌이의 귀환) - Son and Stranger(아들과 나그네)

펠릭스 멘델스존이 가족 공연을 위해 작곡한 징슈필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이인 홰니 멘델스존. 화가인 빌헬름 헨젤과 결혼. 빌헬름 헨젤의 스케치 작품. 펠릭스와 홰니는 1847년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홰니가 42세, 펠릭스가 38세 때였다. 홰니 멘델스존은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고 펠릭스의 음악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오른쪽은 펠릭스 멘델스존의 여동생인 레베카 멘델스존이다. 역시 빌헬름 헨젤이 스케치한 작품이다.

 

'타향으로부터의 귀향'(Die Heimkehr aus der Fremde)은 멘델스존이 20세 때인 1829년에 작곡한 1막의 징슈필이다. 대본은 멘델스존의 친구인 시인 칼 클링게만(Karl Klingemann: 1798-1862)이 썼다. 칼 클링게만은 나중에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Elijah)의 대본도 썼다. 영어제목은 '아들과 나그네'(Son and Stranger)라고 했다. 이 제목은 영국의 시인이며 평론가이고 극작가인 헨리 촐리(Henry Choley)가 1851년의 런던 공연을 위해 독일어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붙인 것인데 오늘날 까지도 영어권 국가에서 공연할 때에는 그렇게 불리고 있다. 제목은 간혹 '떠돌이의 귀환'(Return of the Roamer)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징슈필은 멘델스존의 사후에 작품번호 89로서 출판되었다.

 

멘델스존은 1829년 8월에 영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그런데 8월의 영국 날씨는 좋지 않아서 그는 아일랜드에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웨일스의 몰드(Mold)라는 곳에서 아는 사람의 집에 며칠 더 눌러 있었다. 존 테일러(John Taylor)라는 사람으로 광산엔지니어이면서 사업가였다. 멘델스존은 웨일스에 머물면서 12월에 있을 부모님의 은혼식을 위해 '외국에서의 귀한'을 작곡했다. 단막의 코믹 징슈필이었다. 함부르크의 집에 돌아온 멘델스존는 '외국에서의 귀환'을 다듬어서 그해 12월 26일 가족들과 친지들만을 초청하여 그의 저택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참석한 사람은 거의 120명이나 되었다. 멘델스존의 어머니는 '외국에서의 귀환'이 비록 단막의 징슈필이지만 극장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공연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지만 그는 이 작품이 순전히 부모님의 은혼식을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족공연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국에서의 귀환'은 멘델스존의 생전에는 출판되지 않았으며 일반을 위한 공연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징슈필이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멘델스존이 세상을 떠난지 4년 후인 1851년 4월 10일 라이프치히에서였다. 영국에서의 첫 공연도 1851년에 이루어졌다. 헨리 촐리의 영어 대본에 의한 공연이었다.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이인 홰니 멘델스존의 남편인 화가 빌헬름 헨젤. '외국에서의 귀환'에서 마을 촌장인 슐츠의 역할을 맡았다.

 

멘델스존 자신이 첫 공연을 지휘했다. 가족 공연이기 때문에 멘델스존의 가족들이 모두 출연했다. 다만, 주역인 테너만이 전문 성악가를 초청하여 출연토록 했다. 테너 에두아르드 만티우스(Eduard Mantius)였다. 마을 촌장인 슐츠(Schultz: B)는 멘델스존의 매형, 즉 누이 홰니의 남편인 빌헬름 헨젤(Wilhelm Hensel: 1794-1861)이 맡았다. 빌헬름 헨젤은 루벤스 스타일의 작품을 잘 그린 유명한 화가였다. 빌헬름 헨젤은 멘델스존 가족의 초상화를 그리기를 즐겨했다. 멘델스존의 초상화도 그가 그린 것이다. 그러나 그는 원래 음악에 대하여는 실력이 없어서 악보를 제대로 볼줄도 몰랐다. 그래서 멘델스존은 빌헬름 헨젤을 위해 아주 간단한 노래 한 소절만을 만들어 주었다. 촌장의 아들 헤르만(Hermann: T)은 앞에서 소개한 대로 테너 에두아르드 만티우스가 맡았고 촌장의 부인이며 헤르만의 어머니(MS)는 멘델스존의 누이인 홰니 멘델스존(Fanny Mendelssohn: 1805-1847)이 맡았다. 홰니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지만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역할을 맡았다. 촌장의 집에서 살고 있는 리스베트(Lisbeth: S)는 멘델스존의 누이동생인 레베카 멘델스존(Rebecka Mendelssohn)이 맡았다. 그리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행상인 카우츠(Kauz: B)는 멘델스존의 친구인 에두아르 드브리앙(Eduard Devrient)이 맡았다. 헤르만의 부모들은 카우츠가 헤르만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등장하여 합창을 하는 장면도 있다. 마을 사람들은 집안의 하인들과 하녀들을 연습시켜 출연토록 했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사람들은 펠릭스 멘델스존의 재능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였다. 물론 듣기 좋으라고 그랬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서곡이 특히 찬사를 받았다. 서곡은 나중에 네 손을 위한 피아노 곡으로 만들어졌다. 행상인 카우츠의 패터 송(영어 제목은 I am a Roamer)은 가장 훌륭한 곡이라고  인정을 받아 그후 콘서트나 살롱 음악회에서 자주 불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징슈필은 그후 라이프치히와 런던을 제외하고는 거의 공연되지 않았다. 현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공연된 것은 2009년 보스턴에서였다. 그것도 콘서트 버전이었다.

 

펠릭스 멘델스존의 매형인 빌헬름 헨젤이 그린 펠릭스 멘델스존의 초상화

 

스토리는 전형적인 코믹이다. 신분을 감추는 바람에 오해가 생기고 나중에 밝혀져서 해피엔딩이 된다는 것이다. 마을 촌장인 슐츠는 하나뿐인 아들 헤르만이 집을 떠난지 오래 되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걱정이다. 헤르만은 슐츠 촌장이 후견인으로 있는 리스베트와 약혼하였으나 군대에 나간지 몇년이나 되었다. 헤르만의 어머니는 어떤 왕비가 자기 아들인 왕자를 여자로 변장하여 군대에 보냈는데 얼마후 큰 공을 세우고 영웅으로 돌아왔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에 화답이라도 하듯 리스베트가 헤르만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부른다. 리스베트가 헤르만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어린 소녀시절이었다. 야경꾼으로 변장한 떠돌이 행상 카우츠가  리스베트의 미모에 반하여 청혼하겠다고 말한다. 카우츠는 온 유럽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며 자랑을 한다.

 

카우츠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진짜 헤르만이 등장한다. 헤르만은 유랑하는 음유시인으로 변장하고 있다. 헤르만은 평화의 수호자인 병사들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 리스베트는 그 노래가 예전에 헤르만이 부르던 것임을 기억한다. 리스베트는 그 음유시인이 분명히 헤르만인 것으로 믿는다. 그러자 헤르만은 리스베트가 그 오랜 세월동안 자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확인하고 기쁨에 넘친다. 헤르만은 리스베트에게 당분간 정체를 감추고 다른 사람으로 행세하고 싶다고 말한다. 리스베트는 그러한 헤르만의 생각을 존중하여서 음유시인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한편, 헤르만의 부모들은 카우츠가 헤르만인줄로 알고 카우츠와 리스베트가 어서 서로를 알아보고 결혼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날 저녁, 카우츠는 카우츠대로, 음유시인으로 변장한 헤르만은 헤르만대로 각각 리스베트의 창문 아래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며 사랑을 호소한다. 리스베트는 카우츠가 헤르만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카우츠는 리스베트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어서 내친 김에 결혼식까지 올릴 생각을 갖는다. 다음날 아침에, 카우츠는 마을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마치 자기가 헤르만인 것처럼 슐츠 촌장의 50회 생일을 축하한다. 그때 음유시인이라고 믿었던 진짜 헤르만이 나타나서 비로소 자기의 신분을 밝힌다. 리스베트와 헤르만이 행복한 앞날을 약속하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