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제이크 히기의 '정사의 종말'- 66

정준극 2014. 2. 2. 21:47

정사의 종말(The End of the Affair) - 애종

제이크 히기(Jake Heggie)의 2막 오페라

2차 대전 블리츠 시기의 런던 시민과 9. 11 테러 이후의 뉴욕 시민의 심리 묘사

 

제이크 히기

 

1955년에 '애종'(愛終)이라는 영화가 나왔고 1999년에 '애수'(哀愁)라는 타이틀의 영화가 나왔었다. '애종'은 데보라 커와 밴 존스가 나온 영화이고 '애수'는 랄프 휘엔스(Ralph Fiennes)와 줄리안 무어(Julianne Moore)가 주역으로 나왔던 영화이다. 우리말 제목이야 어떻든 두 영화는 모두 영국의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 1904-1991)의 1951년도 소설인 The End of the Affair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레이엄 그린이라고 하면 캐롤 리드의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와 '심야의 탈주'(Odd Man Out)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혹시 '애수'라고 하나까 1950년대에 비비안 리와 로버트 테일러가 주연한 추억의 그 영화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애수'의 원래 타이틀은 '워털루 브릿지'(Waterloo Bridge)이다. 그레이엄 그린의 The End of the Affiar를 굳이 번역하자면 '사랑의 종말' 또는 '정사의 마지막'이라고 하는 것이 그럴듯 할텐데 우리나라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애종'이니 '애수'니 하여서 혼란을 불러오게 했다. 이렇듯 The End of the Affair가 진작부터 영화로 만들어져서 크게 히트를 했지만 미국의 제이크 히기(Jake Heggie: 1961-)가 오페라로도 만들어서 관심을 끌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나저나 필자는 이 오페라의 제목을 '정사의 종말'이라고 임시로 붙여보았다. 미국을 대표하는 중견작곡가인 제이크 히기는 '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 사형수 입장)이라는 오페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선 '애수'라고 번역된 The End of the Affair 의 한 장면. 랄프 휘엔스와 줄리안 무어.

 

오페라 '정사의 종말'의 대본은 작곡자 자신과 동료인 레오나드 폴리아(Leonard Foglia)가 공동으로 작성했다. 무대의 배경은 2차 대전중인 1944년과 전쟁이 끝난 후인 1946년의 런던이다. 종군작가인 모리스 벤드릭스(Maurice Bendrix)와 중견 공무원인 헨리 마일스, 그리고 그의 부인 사라 마일스(Sarah Miles)가 펼치는 3각 관계를 그린 내용이다. 원작자인 그레이엄 그린이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은 자기의 실제 경험담인 레이디 캐서린 월스턴(Lady Catherine Walston)과의 은밀한 로맨스를 회상해서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레이엄 그린은 이 소설을 완성하고 나서 책의 서두에 C 에게 헌정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출판된 소설에는 구체적으로 Catherine 에게 헌정한다고 되어 있다. 소설에서 모리스와 사라는 만일 자기들이 2차 대전의 폭격에서 살아남게 된다면 진정으로 불륜의 사슬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모리스를 걱정하는 사라는 하나님께 모리스를 폭탄의 세례 속에서 살아남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그렇게 해 준다면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성실한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한다. 모리스는 독일의 대대적인 런던 폭격에서 요행히 살아 남는다. 모리스는 사라의 마음이 변한 것이 하나님 때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비난한다. 사라는 남편에게 돌아간다. 그러자 모리스는 의처증이 있는 남편 헨리와 함께 살고 있는 사라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해서 개인탐정을 고용해서 사라와 헨리의 생활을 염탐한다.

 

 

원작자인 그레이엄 그린과 그와 깊은 관계에 있었던 레이디 캐서린 월스턴

                         

오페라 '정사의 종말'은 2004년 3월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에서 초연되었다. 휴스터 그랜드 오페라(HGO)는 미국 작곡가에 의한 창작 오페라의 진흥을 적극 후원하고 있는 오페라단이다. 초연에서 사라의 역할은 소프라노 셰릴 바커(Cheryl Barker)가 맡아서 박수를 받았다. 2007년에는 수정본이 캔사스 시티 리릭 오페라에서 공연되었다. 사라는 소프라노 에밀리 풀리(Emily Pully)가, 모리스는 바리톤 키스 파레스(Keith Phares)가 맡은 공연이었다. 이제 전체적인 등장인물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평범한 가정주부인 사라 마일스(S), 종군작가로서 사라 마일스와 우연히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된 모리스 벤드릭스(Bar), 사라의 남편으로 중견 공무원인 헨리 마일스(Bar), 개인탐정인 미스터 파키스(Mr Parkis: Bar), 사라의 어머니인 미세스 버트램(Mrs Bertram: MS), 그리고 사라와 헨리의 어린 아들인 랜슬롯(Lancelot: 스피킹 역할) 등이다.

 

1955년도 영화 포스터. 사라 역에 데보라 커, 벤드릭스 역에 반 존슨

 

소설의 줄거리를 알아보는 것이 오페라의 스토리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전쟁이 끝난지도 얼마 되지 않은 1946년 어느 비오는 밤에 벤드릭스는 런던에서 전에 자기의 애인이었던 사라의 남편 헨리를 우연히 만난다. 벤드릭스와 사라는 2년 전에 잠시 만나서 열정을 불태우다가 갑자기 관계를 끊은 일이 있다. 그후에 벤드릭스와 사라가 만났다는 얘기는 없다. 그런데도 남편 헨리는 사라가 아무래도 어떤 남자와 은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개인 탐정을 고용하여 사라의 뒤를 캐고 있다. 돌이켜보면 벤드릭스는 사라와 정사를 가지고 있을 때에 사라에게 남편을 떠나라고 설득한 일이 있다. 그리고 사라는 다시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일이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바 있다. 그래서 벤드릭스는 사라가 과연 그러한지 알고 싶었다. 벤드릭스는 사라를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헨리에게는 비밀로 하고 별도로 개인 탐정을 고용한다.

 

사라(셰릴 바커)와 벤드릭스(테디 타후 로우스)의 랑데부

 

드디어 2년 만에 벤드릭스와 사라가 만난다. 하지만 그 만남은 냉랭한 것이었고 앞으로 예전처럼 사랑을 하자는 것도 아니었다. 이어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당시의 상황이 플래시백처럼 지나가며 등장한다. 전쟁 중이었다. 그러다가 장면은 바뀌어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벤드릭스가 고용한 개인탐정인 파키스는 사라와 헨리의 어린 아들인 랜스롯을 이용해서 두 사람의 사이를 정탐한다. 랜스롯은 얼굴에 태어날 때부터의 반점이 있다. 그때문인지 랜스롯은 사람들의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한다. 파키스는 벤드릭스에게 사라가 치과에 간다고 하면서 그 틈을 이용해서 누군가를 별도로 만나고 있다고 보고한다. 벤드릭스는 파키스를 앞장 세워서 사라가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현장을 목격코자 한다. 스마이스(Smythe)라는 사람이다. 스마이스는 말하자면 사라의 아들인 랜스롯을 미끼로 삼아서 어떻게 해서든지 사라의 집에 접근하고자 한다. 스마이스는 실제로 교회의 성직자이다. 그렇지만 사라의 매력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스마이스는 사라를 알고 있고 벤드릭스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다고 밝힌다. 스마이스도 벤드릭스를 만나보고 싶어했다고 한다. 벤드릭스에게 이제는 더 이상 사라의 주변에서 모습을 보이지 말고 떠나라고 말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사라(메리 밀스)와 벤드릭스(필립 커틀립). 오페라 하기도 힘들다.

 

2막의 클라이막스는 벤드릭스와 사라가 열정적인 밤을 보내고 있는 장면이다. 창문 밖에서는 독일 V2 로켓이 떨어지는 폭발음이 요란하다. 집이 흔들린다. 벤드릭스가 침대에서 일어나서 폭격 중에 집주인 아주머니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계단을 내려간다. 그러다가 바로 그때 마침 그 집에 떨어진 폭탄 때문에 쓰러진다. 잠시후 정신을 차린 벤드릭스는 사라가 궁금해서 2층으로 올라간다. 사라는 정신없이 기도를 하고 있다. 사라는 벤드릭스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벤드릭스는 사라가 자기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실망하는 눈치인 것을 알고 비난한다. 사라는 떠나면서 벤드릭스에게 '사랑은 우리가 단지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사라(셰릴 바커)와 헨리.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

 

다시 1946년이다. 벤드릭스의 부탁을 받고 있는 개인탐정 파키스는 마침 헨리 마일스의 집에서 사교모임이 있는 것을 기회로 그 모임에 신분을 속이고 참석해서 기회를 엿보아 사라의 침실에서 사라의 일기를 훔쳐내어 벤드릭스에게 전한다. 벤드릭스가 의자에 앉아 일기를 일고자 할때 장면은 다시 1946년으로 돌아가서 내레이터가 이번에는 사라의 입장에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다. 사라는 벤드릭스가 계단을 내려가다가 폭탄을 맞아 쓰러지자 뛰어내려가서 벤드릭스를 부여잡고 보니 숨도 쉬지 않은채 맥박도 뛰지 않고 있다. 사라는 벤드릭스가 죽은 것으로 믿었다. 사라는 다시 2층으로 올라와서 하나님께 제발 벤드릭스를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사라는 하나님께 만일 벤드릭스를 살려 주신다면 다시는 벤드릭스를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런데 잠시후 벤드릭스가 살아서 올라온 것이다.

 

벤드릭스는 사라가 자기와는 물론 다른 어느 누구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라를 쫓아가서 제발 자기와 다시 만나는 것을 생각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사라는 벤드릭스 없이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킬수 없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다시금 열정을 불사른다. 벤드릭스는 사라에게 남편 헨리를 떠나라고 설득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라의 남편 헨리를 만나서 실은 자기가 파키스라는 개인탐정을 고용해서 사라가 치과에 간다고 하면서 나가서 누구를 만나는지 감시했었다고 고백한다. 그말을 들은 헨리는 분에 넘쳐서 벤드릭스가 스마이스에 대하여 조사해 놓은 자료들을 불태운다. 헨리는 사라에게 제발 자기로부터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한다.

 

교회를 찾은 사라(셰릴 바커).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 2004년 4월.

 

어느날 밤, 벤드릭스와 사라가 침대에 함께 있는데 헨리가 찾아온다. 벤드릭스는 보통 때 같으면 당연히 문을 열고 헨리에게 들어오라고 할터인데 그날은 도저히 그럴수가 없어서 문을 열어주지 않고 헨리를 그대로 보낸다. 헨리는 집 안에 누가 있는지 짐작한다. 헨리는 얼마후 집에 돌아온 사라에게 다음날 아침에 브라이튼에 함께 가자고 말한다. 사라로서는 가지 못하겠다고 말한 명분이 없어서 그러자고 승락한다. 다음날 헨리와 사라가 브라이튼을 향해 떠난다. 벤드릭스는 두 사람의 뒤를 파키스가 쫓아 가는 모습을 본다. 브라이튼에서 헨리는 무슨 용무가 있어서 잠시 외출하고 사라만이 호텔 방에 남아 있다. 벤드릭스는 사라와 헨리의 이혼을 앞당기게 하려면 사라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는 것을 증거로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사라가 머물고 있는 호텔 방에 몰래 들어가사 둘이서 키스하는 모습을 분명하지는 않지만 창문을 통해서 밖에서 볼수 있도록 하면 파키스가 사진을 찍어서 증거로 내놓을 것이고 그러면 이혼이 빨리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얼마후 헨리가 돌아온다. 벤드릭스는 자기의 계획이 효과를 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벤드릭스를 만난 헨리는 사라가 중병에 걸려 있기 때문에 얼마 살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혼해서 헤어지는 수속을 마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얘기다. 벤드릭스는 사라의 마지막 며칠 동안 헨리의 집에 머무르면서 지켜본다. 스마이스가 사라를 만나려고 찾아와 문을 두드리지만 벤드릭스는 스마이스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라가 누가 왔느냐고 묻지만 벤드릭스는 우편배달부라고 말해 준다. 드디어 사라가 임종할 때에 스마이스가 사라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주겠다고 하자 벤드릭스는 사라를 데려가는 하나님을 비난하면서 스마이스의 요청을 거절한다. 벤드릭스가 증오하는 대상은 사라도 아니요 헨리도 아니며 하나님인 것이 설명되어 있다. 벤드릭스는 '나는 당신이 존재한다고 하니까 당신을 증오합니다. 이제 나는 증오하는 것도 싫증이 납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도 그대로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사라의 장례식이 거행된다. 파키스는 벤드릭스에게 사라가 살아 있을 때에 아들 랜스롯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랜스롯의 얼굴에 있는 커다란 반점에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하며 그런 후에 랜스롯의 얼굴에 있던 반점이 기적적으로 사라졌다고 말한다. 랜스롯은 엄마 사라가 치유의 기적을 행하였다고 믿고 있다. 장례식 후에 벤드릭스는 사라의 집에서 또 다시 신의 존재와 은혜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는 얘기를 한다. 사실 벤드릭스는 사라가 폭격 중에 기도를 할 때부터 신의 존재를 의심해 왔었다. 벤드릭스는 마지막으로 '나에게는 다만 한가지 기도할 것이 남아 있다. 하나님이시여, 나를 잊어 주세요. 대신에 사라와 헨리를 보살펴 주세요'이다.

 

벤드릭스와 파키스

 

오페라의 시놉시스는 간단히 말해서 다음과 같다. 벤드릭스와 사라는 순간적으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벤드릭스는 사라와의 관계가 처음에 사랑에 빠질 때처럼 순간적으로 끝날 것이라는 예감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벤드릭스의 노골적이고도 공공연한 질투심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벤드릭스는 사라에게 비록 친절하고 신사적이지만 따분하기만 한 남편과 이혼하라고 재촉하지만 사라가 거절하는 바람에 실망한다. 어느날 벤드릭스가 사라와 함께 지내고 있을 때 그의 아파트에 폭탄이 떨어진다. 벤드릭스는 겨우 살아난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사라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벤드릭스와의 관계를 끊는다. 벤드릭스는 사라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것으로 오해를 한다. 그때 쯤해서 헨리도 사라에게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벤드릭스는 사라의 새로운 남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개인탐정을 고용한다. 개인탐정은 무슨 방법으로 사라의 일기를 손에 넣어 벤드릭스에게 전한다. 벤드릭스가 사라는 일기를 읽어 본다. 사라는 벤드릭스의 아파트에 폭탄이 떨어지던 날, 벤드릭스가 쓰러지자 하나님에게 기도하여 만일 벤드릭스를 살아나게 해 준다면 다시는 벤드릭스와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적혀 있다. 얼마후 사라는 폐염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난다. 어느 비오는 날밤, 벤드릭스는 옛일을 회상하며 자기가 살았던 아파트 단지 주변을 걷고 있다. 놀랍게도 몇가지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사라의 신앙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일들이다. 마침내 벤드릭스는 하나님을 믿게 된다. 하지만 사라를 일찍 데려간 하나님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정사의 종말'은 그레이엄 그린이 쓴 가톨릭 소설 중에서 네번째이며 마지막 작품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신앙과 불신앙의 투쟁을 강조하여 다루었다. 작곡자인 제이크 히기는 2차 대전 중이라는 '정사의 종말'의 시대적 상황을 미국의 9.11 사태의 시대적 상황과 비유하여 표현코자 노력했다.

 

영화 '애종'의 한 장면. 데보라 커, 밴 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