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이르민 슈미트의 '고어멘가스트' - 69

정준극 2014. 2. 7. 09:49

고어멘가스트(Gormenghast)

이르민 슈미트(Irmin Schmidt)의 3막 오페라

머빈 피크(Mervyn Peake)의 '고어멘가스트 3부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

 

이르민 슈미트

 

오페라 '고어멘가스트'(Gormenghast)는 영국의 작가인 머빈 피크(Mervyn Peake: 1911-1968)의 '고어멘가스트 3부작'을 바탕으로 독일의 작곡가이며 키보디스트인 이르민 슈미트(Irmin Schmidt: 1937-)가 3막의 오페라로 작곡한 작품이다. 오페라 대본은 영국의 소설가인 던칸 활로웰(Duncan Fallowell: 1948-)이 작성했다. 이르민 슈미트는 베를린 출신으로 1960년대 후반에 쾰른에서 유명한 록 그룹인 칸(Can)을 설립한 인물이다. 1960년대의 독일 록 음악을 크라우트록(Krautrock)이라고 불렀으며 그룹 칸은 크라우트록의 발판을 마련해준 역할을 했다. 이르민 슈미트는 영화음악도 상당수 작곡했다. 대표적인 것은 '팔레르모 슈팅'(Palermo Shooting)의 음악을 작곡한 것이다. 오페라 '고르멘가스트'는 1998년 11월 15일 독일의 부터탈 오페라하우스(Opernhaus Wuppertal)에서 초연을 가졌다. 이어 CD로 제작되었다. 뉴질랜드의 록 그룹인 스플리트 엔츠(Split Enz)는 이 오페라에 나오는 노 래 중에서 Stranger Than Fiction 과 Titus를 음반에 수록했으며 더 큐어(The Cure)는 오페라와는 별도로 피크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The Drowning Man을 취입했다. 그리고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인 스트럽스(Strawbs)는 1973년에 Bursting at the Seams 라는 앨범에 Lady Fuchsia라는 곡을 넣었다. 피크의 원작에 영감을 받은 음악은 또 있다. 북아일랜드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프러프(Fruupp)는 1975년에 Gormenghast 라는 타이틀의 노래를 이들의 앨범인 Modern Masquerades를 통해 발표했다. 소설에 영향을 받은 록 그룹들도 생겨났다. 1960년대 포크 록 밴드인 훠크시아(Fuchsia)와 1960년대 후반의 록 밴드인 타이터스 그론(Titus Groan)이 그것이다. 그만큼 고어멘가스트라는 소설은 많은 관심을 끈 작품이다. 

 

BBC에서 나온 DVD

 

1946년부터 1959년 사이에 발표된 머빈 피크의 '고어멘가스트 3부작'은 스티어파이크(Steerpike)라는 사악한 키친 보이가 나중에 고어멘가스트 성과 그 성에 살고 있는 귀족집안 사람들을 모두 지배하게 된다는 내용이지만 실은 괴기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3부작은 1) 타이터스 그론(Titus Groan) 2) 고어멘가스트(Gormenghast) 3) 외로운 타이터스(Titus Alone)이다. 다른 3부작처럼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독립적인 것은 아니다. 고어멘가스트 3부작의 내용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벤자민 브리튼이 1950년대에 이 소설을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들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어쩐 일인지 포기하였다. 독일 출신의 이르민 슈미트는 부퍼탈 극장으로부터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는 요청을 받자 평소부터 알고 지내던 시인 던칸 활로웰을 만나 이 소설을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작업은 1990년대 초반부터 착수되었다. 이르민 슈미트는 1950년대에 슈토크하우젠과 리게티로부터 작곡을 배운 일이 있다. 그는 이들로부터의 영향 때문인지 아방 갸르드 록 음악인으로서 예술계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1968년에 록 그룹인 '칸'을 설립하여 1978년까지 10년 동안 이 그룹의 키보드 연주자로서 활동했다. 활로웰은 이미 1987년에 슈미트의 앨범인 Musk at Dusk의 가사를 썼으며 1991년에는 Impossible Holidays라는 앨범의 가사를 써서 록 사회에서는 생소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르민 슈미트는 '고어멘가스트'를 '환상적 오페라'(fantasy opera)라고 불렀다. 그러나 오페라의 성격에 있어서나 형식에 있어서는 그랜드 오페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뮤지컬 또는 록 콘서트적인 요소와 특징이 담겨 있음을 강조했다. 한편, 이 오페라에서는 모던 댄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슈미트는 1995년 런던에서 '영국머빈피크협회'의 모임에 참석해서 작곡중인 '고어멘가스트'에 나오는 곡 중에서 세곡을 테이프에 녹음해 와서 들려주었다. 고르멘가스트 성의 부엌 장면, 코라와 클래리스 쌍뚱이의 듀엣, 그리고 스티어파이크가 성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부르는 '술취한 노래'였다. 고어멘가스트 성의 부엌 장면의 음악은 슈미트가 자기 집 부엌에서 쟁반이나 포크, 접시, 프라이팬 등을 타악기로 사용해서 녹음한 것이다. 슈미트는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고르멘가스트'의 작곡을 통해서 자기는 더 이상 아방 갸르드 작곡가가 아닌 것을 보여주게 되었다고 말했다. 부터탈에서의 초연은 세 시간이나 걸리는 것이었다. 그래도 관중들은 지루하게 생각하지 않고 진지하게 감상하며 음악을 즐겼다. 전체적인 음악은 부퍼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미리 녹음한 것이지만 두 명의 성악가들과 현악 4중주단, 그리고 타악기 연주는 라이브였다. 오케스트라를 연주할 때에는 과거 그의 록 그룹이 연주한 음악을 컴퓨터로 복합하여 들려주었다. 테너는 세 사람이 출연한다. 그중에서 한 명은 오페라 테너이며 두 사람은 록 가수들이다.

 

고르멘가스트 성을 비유한 무대 세팅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타이터스 그론(Titus Groad: 마임 역할) - 고어멘가스트 백작영지의 상속자

- 시펄크레이브 경(Lord Sepulchrave: Lyric Bar) - 타이터스 그론의 아버지

- 거트루드 부인(Lady Gertrude: MS) - 타이터스 그론의 어머니

- 코라(Cora: Coloratura Sop) - 시펄크레이브 경의 누이동생

- 클래리스(Clarice: Coloratura Sop) - 코라의 쌍둥이 자매

- 스웰터(Swelter: lyric T) - 시펄크레이브 경의 주방장

- 바퀜틴(Barquentine: rock T) - 고어멘가스트 성의 의전장(Master of Rituals)

- 닥터 프륀스퀘일러(Dr Prunsquallor: Countertenor) - 고어멘가스트 성의 주치의

- 훠크시아(Fuchsia: S) - 타이터스 그론의 누이

- 플레이(Flay: Speaking role) - 시펄크레이브 경의 하인

- 스티어파이크(Steerpike: rock Tenor) - 부엌에서 잡일이나 하던 키친보이였다. 야심에 찬 청년. 마키아벨리적 음모가

- 내니 슬랙(Nanny Slagg: Speaking role) - 과거에 타이터스와 훠크시아의 유모, 현재는 훠크시아의 친구

 

오페라 '고어멘가스트'의 무대

 

고어멘가스트는 영국의 어느 산중에 있는 고성이다. 깍아 지를 듯한 벼랑 위에 자리잡고 있어서 일반인들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성이다. 주변에는 숲이 우거져 있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건물의 벽들은 고색창연하게 담장이넝쿨로 덮혀 있으며 높이 치솟아 있는 타워는 마치 괴기영화에나 나올 법한 을시년스러운 모습이다. 성에서 가장 높은 타워의 명칭은 '부싯돌 탑'(Tower of Flints)이다. 탑에는 올빼미들만이 살고 있다. 성은 너무 광대하기 때문에 성에 사는 사람들은 혹시 무슨 행사가 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굳이 밖에 나갈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성밖은 어떠한가? 민가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북쪽 벽쪽으로 진흙 밭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있다. 마치 포도송이처럼 한데 모여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브라이트 카버스(Bright Carvers)라고 부른다. 주로 목각을 만들어서 내다 팔아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에서 좋은 조각들은 성의 주인인 백작에게 선물로 드리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들도 고어멘가스트 성의 거주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외부에 사는 사람으로서 성에 출입할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다. 닥터 프륀스퀘일러는 오래전부터 백작가문의 주치의였으므로 언제라도 드나들수 있다. 키친 보이였던 스티어파이크가 언젠가 밖에 나갔다가 원숭이 한마리를 사온 적이 있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래서인지 성에 사는 사람들은 말할수 없이 내향적이고 편협하며 마치 썩은 물이 고여 있는 듯 정체되어 있다.  

 

고어멘가스트 성의 주방

         

첫번째인 '타이터스 그론'은 고어멘가스트 성주인 그론 가문의 상속자로 태어난 타이터스 그론에 대한 이야기이다. 타이터스라는 이름은 옛날 로마 황제 타이터스(티투스: 티토)처럼 용감하고 자비로우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태어나자 마자 붙여진 타이터스라는 이름은 고작 1년을 사용하지 못하고 대신 '그론 경'(Earl of Groan)으로 불려지게 된다. 그의 아버지 시펄크레이브 경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타이터스는 3부작의 첫번째 항목에서 겨우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초점은 고어멘가스트 성에 살고 있는 괴이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맞추어져 있다. 특히 키친 보이에 불과했던 스티어파이크가 어떻게 그론 가문의 실권을 잡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스티어파이크는 소년 시절부터 모략이 뛰어났다. 그는 시펄크레이브 백작의 쌍둥이 두 여동생인 코라와 클래리스를 부추켜서 오랫동안 고어멘가스트 성을 지배하여 온 고리타분하고 괴이한 규율들을 하나하나 성공적으로 타파한다. 그중에서도 대단한 사건은 시펄크레이브 백작이 애지중지하던 도서실을 불태워 버린 것이다. 그 일로 인하여 시펄크레이브 백작은 결국 정신 이상을 일으키고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코라와 클래리스는 도서실 화재에 직접 관련이 없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은 스티어파이크의 치밀한 계획아래 방화에 함께 가담했다. 그래서 코라와 클래리스는 결국 스티어파이크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형국이 된다. 스티어파이크의 다음번 음모는 세상 떠난 시펄크레이브 백작의 충성스런 하인인 플레이와 주방장을 맡았던 스웰터를 이간질하여 서로 싸우게 하고 결국 스웰터가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도록 한 것이다.

 

고어멘가스트 성의 도서실. 시펄크레이브 백작의 유일한 도피처는 도서실이었다. 그러나 도서실이 불에 타자 그는 미치게 되었고 자신이 부싯돌의 탑에 있는 죽음의 올빼미라고 믿는다.

 

두번째 소설인 '고어멘가스트'는 그론 가문의 상속인인(우리 식으로는 맏상주인) 타이터스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로서 그가 일곱살 때부터 열일곱살이 될때까지의 기간에 일어났던 사건들이다. 타이터스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자기의 앞에 놓여진 운명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성주로서 오랜 전통을 답습해야 하며 여러 의식을 보존해야하는 것이 말할수 없는 부담으로 생각하고 있다. 타이터스는 그런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유에 대한 그의 갈망은 그의 수양 여동생을 만나고부터 새로워진다. 수양 여동생은 그동안 이름도 없이 '그것'(The Thing)으로 불려져 왔다. 누가 보더라도 천박하고 야생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훠크시아(Fuchsia)이다. 수양 여동생의 어머니는 오래전에 그론 가문에서 쫓겨나서 갈데가 없기 때문에 성밖의 브라이트 카버스(목각 장인들)들과 함께 살았다. 질퍽한 진흙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타이터스는 수양 여동생이 야생에서 마음껏 자유스럽게 생활하고 있는 것을 보자 그런 생활도 있다는 것을 기이하게 여기며 자기도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서 그런 생활을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는 생각을 한다. 한편, 스티어파이크는 더욱 세력을 잡기 위해 자기에게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하기로 작정한다. 그래서 성에서 의식을 책임지고 있는 바퀜타인을 살해하고 그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그러나 결국 나중에는 배신자이며 살인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어느날 극심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타이터스는 더 이상 스티어파이크의 사악한 행동을 참지 못하여 결투를 벌인다. 성안은 홍수가 넘쳐들어와서 물바다가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서 두 사람의 결투가 벌어진다. 스티어파이크가 죽임을 당한다. 이로써 타이터스가 고어멘가스트 성을 통치하는데 장애물이 제거된 셈이다. 하지만 타이터스는 고어멘가스트 성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타이터스는 고어멘가스트 산맥 너머에 있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해서 고어멘가스트 성을 과감히 떠난다.

 

세번째 소설은 '홀로된 타이터스'(Titus Alone)이다. 고어멘가스트에서 멀리 떠나 여행을 하고 있는 타이터스는 산업화와 신기술이 있는 미래적인 세상을 발견한다. 타이터스는 증기의 힘으로 기계를 움직이는 것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는다. 고어멘가스트의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못하던 새로운 세상이었다. 타이터스는 그론 가문을 위해 새로운 기술로서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이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방안이라고 믿는다. 오페라 '고어멘가스트'에 대하여 타임지는 1998년 11월 24일자에서 음악은 난폭하고 소란하며 육감적이고 무슨 음모를 꾸미는 듯하며 특히 이국적인 타악기의 연주는 대단히 인상적이라고 썼다. 이어서 '만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록 음악을 작곡했다면 바로 이렇게 들렸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디터 린츠(Dieter Lintz)라는 평론가는 '고어멘가스터'는 생각보다는 듣기에 편한 작품이다. 바로크 음악적인 요소도 있으며 벤자민 브리튼과 같은 느낌도 준다. 그리고 앤드류 로이드 웨버 스타일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