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 - 75

정준극 2014. 2. 18. 12:47

이도메네오(Idomeneo) -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오(Idomeneo, re di Creta)

또는 '일리아와 이다만테'(Ilia e Idamante)

모차르트 최초의 성숙한 오페라(뮤직 드라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35세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전체 작품을 일련번호로 정리하였더니 626번까지로 되어 있다. 미완성인 '진혼곡'(Requiem)이 KV626 번이다. 모차르트는 많은 교향곡을 작곡했다. '주피터' '런던' '프라하' 등등...그렇다고 모차르트를 교향곡 작곡가라고 분류하지는 않는다. 모차르트는 실내악과 협주곡 또는 중주곡도 많이 남겼다. 그렇다고 그를 실내악 작곡가로 분류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음악학자들은 모차르트를 오페라 작곡가로 분류하고 있다. 그만큼 모차르트는 오페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오페라는 모차르트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피리' 등등...모차르트의 오페라들은 아직도 세계의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다. 과연! 모차르트는 오페라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이정표를 세워준 사람이다. 모차르트의 초기 오페라들은 사실상 소년시절에 작곡한 독일 징슈필 스타일의 간단한 것들이었다. 그러다가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 스타일의 작품들을 내놓았다. '이도메네오'는 모차르트가 25세의 젊은 나이에 완성한 작품으로 어찌보면 오페라 세리아의 전형이다. K 366 이다. '이도메네오'는 모차르트가 과거에 텍스트에 음악을 붙이는 식의 단순한 작품에서 벗어나 바야흐로 뮤지컬 드라마로 입문한 작품이라고 말 할수 있다. 말하자면 진짜 본격적인 오페라 작곡가로서 선을 보인 작품이라는 뜻이다. '이도메네오'의 이탈리아어 대본은 잘츠부르크 궁정사제이며 시인 겸 음악가인 지암바티스타 바레스코(Giambattista Varesco: 1735-1805)가 앙투안 당셰(Antoine Danchet: 1671-1748)의 프랑스어 극본을 바탕으로 다시 쓴 것이다. 앙투안 당셰의 대본을 가지고는 1712년에 앙드레 깡프라(André Campra: 1660-1744)가 '이도메네'(Idoménée)라는 타이틀로 오페라를 만든 것이 있다. 따지고 보면 '이도메네오'는 고대 그리스의 호머의 대서사시인 '일리아드'의 사이드 스토리이다.

 

일리아와 이다만테

 

모차르트가 '이도메네오'를 작곡하게 된 것은 당시 바바리아의 선제후인 카를 테오도르(Kurfürst Karl Theodor: 1724-1799) 공작이 궁정 카니발을 위해 필요하다면서 작곡을 위촉했기 때문이다. '이도메네오'를 제목으로 선정한 것은 카를 테오도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작곡만은 모차르트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대본은 비록 프랑스의 극작가인 앙투안 당셰가 쓴 극본을 바탕으로 했지만 그보다도 전체적인 구성이나 사용된 시어(詩語)들로 보아서는 분명히 당대의 오페라 대본가인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Pietro Antonio Domenico Metastasio: 1698-1782)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도메네오'가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의 스타일을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합창, 행진곡, 발레는 누가 뭐래도 프랑스 스타일이다. 그리고 1막 마지막에서의 난파장면은 글룩의 '터리드의 이피제니'(Iphigénie en Tauride)의 난파장면과 거의 비슷하며 또한 사람을 제물로 드린다거나 신탁을 받는 장면은 글룩의 '얼리스의 이피제니'(Iphigénie en Aulide) 또는 '알체스트'(Alceste)의 구성과 거의 같다. 그러고 보면 '이도메네오'는 글룩의 영향도 많이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기야 그러지 않아도 대본을 쓴 바레스코는 그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이름을 떨쳤던 대본가 라니에리 데 칼자비지(Ranieri de' Calzabigi: 1714-1795)와 친분이 있었다. 칼자비지가 글룩을 위해 '알체스트'를 비롯한 몇 편의 오페라 대본을 제공한 것을 생각해 볼때 바레스코가 글룩과 칼자비지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수 있다. 모차르트가 '이도메네오'에서 프랑스 스타일의 합창, 발레 등을 인용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세리아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초연에 참가했던 성악가들로서는 그나마 힘들지 않고 무대에 설수 있었다. 왜냐하면 레치타티보를 포함한 아리아, 듀엣 등이 모두 전통 이탈리아 스타일이었고 성악가들로 말하더라도 그렇게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도메네오'의 작곡을 모차르트에게 위촉한 바바리아 선제후인 카를 테오도르 공작

 

'이도메네오'는 잘츠부르크나 비엔나가 아닌 뮌헨에서 1781년 1월 29일 초연을 가졌다.  25세의 모차르트 자신이 지휘를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도메네오'는 모차르트가 처음 발표한 본격적인 오페라이다. 오케스트라의 색채, 반주를 동반한 레치타티보, 멜로디의 라인 등에서 뛰어난 완벽함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드라마적인 요소에서도 '이도메네오'는 오페라 세리아의 전통을 견지한 것이다. 합창을 정식으로 이용했고 세트의 변화가 보다 자유스러운 것도 또 다른 특색이다. 모차르트는 '이도메네오'를 작곡 할 때에 대본을 마련한 궁정 사제인 바레스코와 자주 다투었다. 결국 모차르트는 음악적으로 합당치 않는 대본의 상당부분을 삭제하거나 다시 쓰도록 했다. 특히 성악가들이 좋아하지 않는 단어들, 예를 들어 린비고리르(rinvigorir)라는 단어는 'i'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발음하기가 어려우므로 그런 것들은 대체로 삭제하였다. '이도메네오'는 뮌헨에서 3회 공연을 가졌다. 그해 말에 모차르트는 '이도메네오'의 스코어를 대폭 수정할 계획을 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글룩 스타일로 수정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이도메네오를 테너가 아닌 베이스로 바꾸려 했으며 아다만테도 카스트라토가 아닌 테너로 바꾸려고 했던 것이다.

 

'이도메네오'가 초연된 뮌헨의 퀴빌리에 극장 오디토리엄

 

비엔나에서 '이도메네오'가 처음 선을 보인 것은 뮌헨으로부터 5년 후인 1786년이었다. 팔레 아우어슈페르크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회를 가졌다. 모차르트가 아직도 비엔나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식 무대공연을 가지지 못하고 그나마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회를 가졌다는 생각이다. 물론 아우어슈페르크 궁전은 비엔나에서도 알아주는 고급 장소이므로 그나마도 큰 소득이 아닐수 없다. 모차르트는 아우어슈페르크 연주회를 위해 몇군데를 삭제하고 새로운 음악을 써 넣기도 했다. 그리고 이다만테를 카스트라토가 아닌 테너가 맡도록 했다. 영국 초연은 뮌헨 초연으로부터 153년 후인 1934년이었다. 그러나 영국 초연은 런던에서가 아니라 글라스고에서 였으며 그것도 전문 오페라단의 공연이 아니라 아마추어 단체인 글라스고 그랜드 오페라 협회가 공연한 것이었다. 이렇듯 '이도메네오'는 상당기간 동안 잊혀져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스탠다드 레퍼토리에 속하게 되었다. 레코딩도 여러 개가 나왔으며 '이도메네오'에 나오는 일부 아리아들은 콘서트의 프로그램에 자주 포함되고 있다.

 

콘서트 형식이지만 '이도메네오'의 비엔나 초연을 가졌던 비엔나의 팔레 아우어슈페르크. '장미의 기사 궁전'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실제로 내부의 대연회장은 '장미의 기사' 홀이라고 부른다.

 

비엔나는 오랜 침묵을 깨고 '이도메네오'를 리바이발할 생각이었다. 1931년의 일이었다. 그 해는 '이도메네오'이 초연된지 15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였다. 비엔나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오페라극장들도 모차르트를 기념하여서 '이도메네오'를 공연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좀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 원래의 스코어로 공연하는 것이 당현하지만 15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만큼 관중들의 취향도 달라졌기 때문에 오리지널로 공연을 한다면 조는 사람도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비엔나와 뮌헨은 아무래도 '이도메네오'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음악을 수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20세기 오페라 작곡가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에게 위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작곡가는 모차르트를 존경하며 모차르트 스타일의 작곡을 선호하는 사람으로서 어떠한 부족함도 있어서는 안되었다. 뮌헨은 독일 계통의 이탈리아 작곡가인 에르만노 볼프 페라리(Ermanno Wolf-Ferrari)에게 수정을 부탁해서 1931년에 공연했다. 비엔나의 슈타츠오퍼는 같은 해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게 부탁해서 대단하 훌륭한 수정본을 만들어서 공연했다.

 

'이도메네오' 150주년을 맞이해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버전을 처음 공연한 비엔나의 슈타츠오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이도메네오'를 수정하면서 독일 대본가인 로타르 봘러슈타인(Lothar Wallerstein)을 기용하였다. 오리지널 이탈리아어 대본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음악에 맞추었다. 그러다보니 음악도 재정비해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슈트라우스가 오리지널 모차르트의 스코어에서 거의 3분의 1 정도를 고쳐서 자기의 음악을 넣었다는 것이다. 슈트라우스는 심지어 1928년에 발효한 '이집트의 헬렌'(Die ägyptische Helena)에 나오는 '트로이의 함락' 음악을 '이도메네오'에 사용하였다. 다른 부분들도 상당히 수정하였다. 예를 들면 일리아의 오프닝 아리아인 Padre, germani, addios는 레치타티브가 상당히 길지만 조금만 수정하였고 그대로 두었다. 그러나 이다만테의 아리아는 오리지널의 Non ho colpa 대신에 모차르트의 가곡인 Non temer amato bene(K 490)을 부르도록 했다. 스토리의 전개에 있어서도 몇가지를 수정하였다. 예를 들면 엘레트라 공주를 여사제인 이스메네로 대체한 것이다. 평론가들은 슈트라우스의 수정본이 클래시컬 스타일과 슈트라우스 자신의 특성을 잘 혼합한 것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1931년에 비엔나에서 공연되었던 슈트라우스 버전은 그후 침묵을 지키다가 1984년에 뉴욕의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발에서 공연되었다. 이도메네오는 제리 하들리(Jerry Hardley)가 맡았고 이스메네는 알레산드라 마르크, 이다만테는 들로레스 치글러가 맡았다.

 

청년 시절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리지널 스코어에 의한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일리아(Ilia: 트로이의 프리암 왕의 딸: S)

- 이도메네오(크레테의 왕: T) - 아들 이다만테에게 크레테를 맡기고 아가멤논, 메넬라우스와 함께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다.

- 이다만테(이도메네오의 아들: Sop Castrato, 나중에는 T가 맡도록 수정)

- 엘레트라(Elettra: Electra: 아르고스의 공주: S)

- 아르바체(Arbace: Arbaces: 이도메네오의 측근: T)

이밖에 넵튠의 신탁의 음성(B), 크레타의 여인들(S & MS), 트로이의 남자들(T & B)도 등장한다.

 

일리아의 아드리아나 도마토

 

[1막] 서곡은 웅장한 D 장조의 소나타 형식이다. 서곡에 나오는 반복되는 모티프는 나중에도 나오는 '이다만테의 모티프'이다. 전막을 통해서 주로 첼로로 연주되는 모티프이다. 이다만테의 모티프가 전편을 통해서 나오는 것은 그와 그의 아버지인 이도메네오와의 불안한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막이 오르면 크레테 섬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직후이다. 전쟁에서 패배한 트로이의 왕 프리암의 딸 일리아가 크레테 섬으로 포로로 잡혀 온 것을 탄식하는 아리아를 부른다. 일리아의 아리아는 앞으로 전개되는 스토리의 배경이 어떤 것인지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도메네오 왕은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자 포로로 잡은 일리아와 일리아의 수행원들을 미리 크레테로 보낸바 있다. 그런데 트로이 전쟁에 함께 참가했던 아르고스의 아가멤논 왕은 아르고스로 돌아가자마자 부인인 클리템네스트라에게 암살당한다. 클리템네스트라는 시동생과 음모하여서 아르고스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클리템네스트라를 죽이고 아이들을 모두 추방한다. 아가멤논 왕의 큰 딸인 엘레트라(엘렉트라)는 어쩔수 없이 아버지의 친구인 크레테의 이도메네오 왕에게 피난처를 구한다. 그래서 엘레트라가 크레테로 와서 지내게 되지만 그때까지 이도메네오는 트로이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이제 크레테에는 두 공주가 함께 지내게 되었다. 트로이의 프리암 왕의 딸인 일리아는 포로로서 지내고 있으며 아르고스의 아가멤논 왕의 딸인 엘레트라는 피난을 와서 지내고 있다. 두 공주 모두 이다만테 왕자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이다만테는 일리아만을 사랑하며 엘레트라에게는 사랑의 감정을 갖지 않고 있다. 일리가가 바닷가에서 고국인 트로이를 생각하면서 부르는 아리아가 Padre, germani, addio!(아버지, 형제들아, 잘있어라!)이다.

 

이도메네오는 이다만테를 제물로 바쳐야 하는 번민에 싸여 있다. 일리아가 대신 제물이 되겠다고 나선다.

 

일리아도 이다만테를 사랑하지만 적국의 포로라는 신분 때문에 그런 감정을 마음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다. 바닷가에서 홀로있는 일리아를 발견한 이다만테는 일리아에게 자기들의 아버지들이 서로 대적하여 전쟁을 치루고 원수로 지내게 된 것은 자기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면서 일리아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한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일리아는 아버지의 원수의 아들을 사랑한다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 겉으로는 이다만테의 사랑을 거절한다. 이다만테는 크레테의 관용을 보여주기 위해 트로이의 포로들을 모두 석방한바 있다. 트로이 포로들이 석방되어서 기쁨에 넘쳐 부르는 합창이 Godiam la pace(평화를 기뻐하라)이다. 크레테 백성들도 이제는 평화가 돌아온 것을 크게 환영한다. 그러나 그리스 왕 아가멤논의 딸인 엘레트라만은 즐겁지 않다. 엘레트라는 이다만테를 사랑하고 있으며 이다만테가 일리아를 좋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일리아에 대하여 질투심을 갖고 있다. 엘레트라는 이다만테가 자비를 베풀어서 트로이의 포로들을 석방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도메네오 왕의 충복인 아르바체가 뛰어 들어오면서 이도메네오 왕이 트로이에서 크레테로 돌아오는 중에 바다에서 실종되었다고 전한다. 엘레트라는 만일 이도메네오 왕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다만테가 다음 왕이 될것이며 그러면 트로이의 일리가가 왕비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엘레트라는 지하세계의 복수의 여신들(알렉토, 메기라, 티시포네의 세 자매)이 자기에게 어찌하여 복수를 하지 않고 있느냐면서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엘레트라의 분노에 넘친 아리아가 Tutte nel cor vi sento furie del cupo averno(마음으로 당신을 느낄수 있어요, 어두운 지옥의 복수의 여신들을)이다. 엘레트라의 아리아는 초자연적인 괴물과 같은 거대한 풍랑으로 변하여 이도메네오의 함선들을 집어 삼키려 한다. 병사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부르는 합창이 Pieta! Numi pieta!(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이다. 엘레트라의 분노에 넘친 아리아와 바다의 풍랑 사이에는 끊어짐이 없다. 엘레트라의 아리아는 플루트와 피콜로의 연주가 따르지만 이어 풍랑의 장면에서는 여러 관악기가 동원되어 거창한 음향을 만들어 낸다. 병사들의 합창도 폭풍 소리에 파묻혀서 종잡을수 없다가 나중에 바닷가에 난파되어 겨우 도착할 때에 수그러든다.

 

일리아가 조국 트로이와 그곳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서 고생을 하던 이도메네오는 해신 넵튠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크레테의 해안에 도착한다. 이도메네오는 넵튠에게 구출되었을 때 그에게 약속했던 것을 생각한다. 이도메네오는 만일 크레테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면 그가 처음 만나는 사람을 넵튠에게 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약한 것이다. 이도메네오의 아리아가 Vedrommi intorno(나의 주위에서 볼수 있을 것이다)이다. 저멀리서 이다만테가 달려온다. 하지만 이도메네오는 아들 이다만테와 오랜 기간 동안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달려오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다가 이도메네오는 마침내 그가 넵튠과의 약속에 의해서 희생물로 드려야 할 사람이 다름아닌 자기 아들인 것을 알고 경악한다. 이도메네오는 아들 이다만테에게 제발 다시는 자기를 아버지로 여기지 말고 찾지 말 것이며 멀리 사라져 달라고 명령한다. 이다만테는 아버지가 자기를 거부하자 슬픔에 넘쳐서 이도메네오의 명령대로 살아서 돌아온 아버지에게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왕궁으로 먼저 돌아간다. 이다만테의 아리아가  Il padre adorato(사랑하는 아버지)이다. 이도메네오와 함께 온 병사들이 배에서 내려서 가족들과 기쁨의 재회를 한다. 모두들 살아서 돌아온 것이 해신 넵튠의 은덕인 것으로 믿어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넵튠에게 희생물을 드리겠다는 약속을 지키게 되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기뻐서 춤추며 노래부르는 장면의 음악이 Nettuno s'onori, quel nome risuoni이다.

 

이다만테와 일리아

 

[2막] 왕궁에 돌아온 이도메네오는 충복인 아르바체에게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면서 자문을 구한다. 아르바체는 이다만테를 멀리 추방하겠다면 그를 대신할 다른 사람을 찾아서 제물로 드려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르바체의 아리아가 Se il tuo duol(고통스럽다면)이다. 이도메네오는 아들 이다만테에게 엘레트라를 그의 나라인 아르고스로 데려다 주라고 명령한다. 그러면 결국 크레테에서 추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도메네오 왕은 전쟁에 패배한 트로이의 일리아 공주가 크레테에 잡혀 와서 지내는 것을 알고 일리아를 따듯하게 위로하며 크레테를 고향으로 생각하고 편안하게 지내라고 말한다. 일리아는 그 말에 감동하여 모든 것을 잃은 지금, 이도메네오를 아버지로 생각하고 크레테를 자기 나라로 생각하겠다고 선언한다. 일리아의 아리아가 Se il padre perdei(아버지를 잃는다면)이다. 그말은 들은 이도메네오는 일리아와 이다만테가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고 이다만테를 멀리 추방한 것은 결국 일리아의 행복을 빼앗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못내 후회한다. 하지만 그 방법 밖에는 사랑하는 아들 이다만테를 살릴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 엘레트라는 자기가 좋아하는 이다만테와 함께 아르고스 집으로 돌아가게 되어 기쁘다. 크레타의 항구도시인 시돈(실제의 항구도시가 아니라 극 중의 항구도시임)에서 이도메네오 왕이 아들 이다만테가 배를 타고 아르고스로 떠나는 것을 환송하고 있다. 엘레트라는 이다만테와 오랜 기간동안 함께 항해하면서 그의 사랑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여 기쁜 마음이다. 엘레트라의 아리아가 Idol mio, se ritroso(나의 사랑하는 사람이여, 나를 싫어하더라도)이다.

 

아버지 이도메네오로부터 무시를 당한 이다만테가 절망하고 있다. 

                                         

이도메네오는 이다만테에게 멀리 갔다고 오는 중에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많이 배우고 오라고 당부한다. 이때에 이도메네오는 그의 유명한 아리아인 Fuor del mar(바다의 분노)를 부른다. 이 아리아는 두개의 버전이 있다. 오리지널인 뮌헨 버전은 모차르트가 당대의 비르투오소 테너인 안톤 라프(Anton Raaff)를 위해 쓴 것이다. 테너 레퍼토리에서 가장 여러운 곡 중의 하나이다. 두번째는 비엔나 버전으로서 테너가 그다지 기교를 부리거나 힘들게 부르지 않아도 되는 곡이다. 하지만 대단히 웅장하다. 이 아리아에서는 바다의 폭풍으로부터 자기의 생명을 구해준 것이 지금은 말할수 없는 분노로서 변하여 있는 이도메네오의 마음을 알수 있다. 출항을 준비하는 선원들의 합창이 Placido e il mar(잔잔한 바다)이다. 그런데 이다만테와 엘레트가가 탄 배가 막 출항하려는데 커다란 폭풍이 몰려온다. 그러더니 바다 가운데서 커다란 뱀이 튀어나온다. 이도메네오는 그 뱀이 넵튠이 보낸 메신저라는 것을 알아 차린다. 그러면서 넵튠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한다. 이다만테와 일리아를 태운 배는 바다뱀 때문에 출항하지 못한다. 백성들이 어찌하여 바다의 신인 넵튠이 분노하는지 궁금해 한다. 이도메네오는 그제서야 자기가 사람을 제물로 드리겠다는 넵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그렇다고 해명한다. 백성들은 모두 두려워서 흩어진다. (1786년 수정본에만 2막이 열리면 일리가가 이다만테를 엘레트라에게 양보한다는 내용의 아름다운 아리아가 나온다. Ch'io mi scordi di te/non temer amato bene 이다.)

 

피날레. 이도메네오가 해신 넵튠의 신전에서 이다만테와 일리아의 결혼을 축복한다.

 

[3막] 크레테의 왕궁에서 일리아는 바람에게 자기의 사랑을 멀리 떠난 이다만테에게 전해 달라고 간구한다. 일리아의 아리아가 Zeffiretti lusinghieri(명랑한 체피루스)이다. 그때 멀리 떠난 줄로 알았던 이다만테가 나타난다. 바다뱀과 싸우기 위해서 잠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다만테는 일리아에게 일리아의 사랑을 받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그 말에 일리아도 그동안 숨겼던 자기의 마음을 열고 이다만테를 일찍부터 사랑해 왔다고 고백한다. 두 사람의 듀엣이 S'io non moro(죽음이 우리를 떼어 놓을 때까지)이다. 두 사람이 그렇게 사랑을 고백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있을 때에 이도메네오 왕과 엘레트라가 나타난다. 이다만테와 일리아는 깜짝 놀란다. 이다만테가 아버지 이도메네오에게 어찌하여 자기를 멀리 떠나보내려고 하느냐고 묻는다. 이도메네오는 젊은 시절에는 멀리 다니면서 견문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일리아는 사랑하는 이다만테를 멀리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을 엘레트라로부터 위로를 받고자 한다. 그러나 일리아는 엘레트라가 질투심에 넘쳐서 복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러는 와중에서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인 '주음의 4중창'이 진행된다. Andro ramingo e solo이다. 4중창에서 일리아는 자기의 사랑과 트로이에 대한 애국심 사이에서 갈등하며 엘레트라는 이다만테와 일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분노에 떤다. 이다만테는 아버지가 자기를 멀리 보내려고 하는 것에 대하여 실망하며 바다 괴물과 싸울 결심을 한다. 이도메네오는 넵튠이 이다만테 대신에 자기를 제물로 받아주기를 바란다. (이 4중창과 관련하여 한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잘츠부르크의 어떤 개인 저택에서 '이도메네오'의 비공식적인 연주회가 있었다. 모차르트 자신이 이다만테의 역할을 맡아서 노래를 불렀다. 모차르트는 비록 자기가 작곡한 것이지만 이 사중창에 너무 감동하여서 그만 눈물을 흘리고 노래를 마무리하지 못했다고 한다.)

 

보스턴 리릭 오페라. 이도메네오가 탄 배가 무사히 크레테의 해안에 도착한다.

 

그때 아르바체가 뛰어 들어오면서 지금 넵튠 신전의 사제들이 몰려오면서 이도메네오가 넵튠에게 서약한 것을 지키지 않아서 넵튠이 화를 내고 있다고 소리친다는 것이다. 대제사장은 이도메네오에게 지금 넵튠이 보낸 바다뱀이 모든 것을 닥치는대로 파괴하고 있다면서 어서 누구를 희생물로 제사를 드릴지 어서 이름을 밝혀 달라고 요청한다. 이도메네오는 마침내 어쩔수 없어서 그 희생물은 바로 자기의 아들 이다만테라고 고백한다. 모두들 크게 놀란다. 모두의 합창이 O voto tremendo(두려운 약속)이다. 제사장들은 이도메네오에게 무고한 사람 하나를 선택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이 크레테의 모든 백성들이 넵튠의 노여움을 사서 희생당하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하며 어서 제물을 정하라고 독촉한다.

 

크레타의 병사들이 트로이 포로들을 감시하고 있다. 토리노 공연.

 

신전의 밖에서 이도메네오 왕과 대제사장, 그리고 넵튠의 사제들이 넵튠에게 평안을 달라고 기도한다. 아르바체가 들어와서 이다만테가 괴물 바다뱀과 싸워서 죽였다고 전한다. 이다만테의 아리아가 Stupenda vittoria!(놀라운 승리!)이다. 이도메네오는 넵튠이 복수의 마음으로 또 다른 재앙을 줄 것 같아 두려워한다. 그때 제물이 될 사람의 옷을 입은 이다만테가 나타나서 아버지 이도메네오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므로 이제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한다. 이도메네오는 넵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다만테를 제물로 드리지 않을수 없다. 이도메네오와 이다만테는 아버지와 아들로서 슬프고도 괴로운 작별을 한다. 그때 일리아가 들어와서 이다만테는 크레테 왕국을 위해 죽어서는 안되므로 대신 자기가 제물이 되겠다고 나선다. 그러자 갑자기 하늘에서 넵튠의 음성이 들리며 소리쳐 말하기를 이도메네오는 넵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크레테의 왕좌를 스스로 제물이 되겠다고 나선 이다만테와 일리아에게 넘기면 약속을 지킨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한다. 어떤 공연에서는 제우스의 음성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그 소리를 들은 모두는 넵튠이 자비를 베풀어서 모두에게 평안을 주었다면서 크게 기뻐한다. 엘레트라만이 사랑하는 이다만테와 결혼하지 못하게 되지 절망하으로 거의 실성하여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자 한다. 이때에 엘레트라가 부르는 아리아가 유명한 '광란의 장면'(오레스테스여, 아작스여)이다. 마치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듯한 인상이다. 하지만 엘레트라는 주위의 만류로 죽음을 택하지 않고 고국인 아르고스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한다. 이도메네오는 이다만테와 일리아의 결혼을 승락하고 아들 이다만테가 크레테의 새로운 왕이라고 선포한다. 백성들은 사랑과 결혼의 신에게 감사를 드리며 크레테에 평화가 온것을 기뻐한다.

 

헤피엔딩의 피날레

 

오리지널 버전에는 이도메네오가 아들 이다만테에게 양위를 한다고 선언하자 크레타의 온 백성들이 기뻐 환호하는 것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백성들의 합창이 Scenda Amor, scenda Idomeneo이다. 그후 바로 발레가 등장하여 화려한 춤으로 축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어떤 경우에는 합창이 시작되기 전에 이도메네오가 Torna la pace라는 아리아를 부르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초연에서 이 아리아를 삭제하였다. 드라마틱한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모차르트로서는 이도메네오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많은 고통을 겪었으므로 위로하는 의미에서 마지막에 아리아를 주어서 기운차게 노래를 부르도록 할 생각이었다.

 

[주요 아리아]

(1막)

- Padre, germani, addio(아버지, 형제들이여, 잘있거라) - 일리아

- Non ho colpa(나는 죄가 없소이다) - 이다만테

- Tutte nel cor vi sento furie del cupo averno(마음으로 당신을 느낄수 있어요, 어두운 지옥의 복수의 여신들을) - 엘레트라

- Vedrommi intorno(나의 주위에서 볼수 있을 것이다) - 이도메네오

- Il padre adorato(사랑하는 아버지) - 이다만테

(2막)

- Se il tuo duol(고통스럽다면) - 아르바체

- Se il padre perdei(아버지를 잃는다면) - 일리아

- Fuor del mar(바다 저 건너서) - 이도메네오

- Idol mio(나의 사랑하는 사람이여) - 엘레트라

(3막)

- Zeffiretti lusinghieri(즐거운 체피루스) - 일리아

- Se cola ne' fati e scritto(운명이니 어찌할수 없소이다) - 아르바체

- No, la morte io non pavento(아니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소) - 이다만테

- D'Oreste, d'Ajace ho in seno(내 마음 속에서 오레스테스와 아작스의 고통을 느끼도다) - 엘레트라

- Torna la pace(평화가 돌아왔다) - 이도메네오

 

'이도메네오'의 무대

 

 

 

é   è   ä  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