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모하츠 전투

헝가리 좀 더 알기

정준극 2014. 3. 9. 16:26

헝가리 좀 더 알기

 

헝가리의 화려한 민속의상을 입고 차르다스를 추는 사람들

 

아직도 헝가리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헝가리에 대하여 모르고 있으면서 영어는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은 헝가리라고 하니까 '아니, 오죽 배가 고팠으면 나라 이름을 헝가리라고 지었을까?'라며 자못 동정심을 표현하던 사람도 있었다. Hungary(헝가리)와 Hungry(헝그리)를 구별하지 못해서였다. 유럽에서 아시아 계통의 민족이 이주하여 와서 나라를 만들고 사는 경우는 헝가리와 핀란드이다. 어째서 그런 주장이 나왔는가? 우선 이들의 언어가 우랄 알타이 어족에 속한다는 것이 동질성을 불러 일으켜 주는 사항이다. 우리나라에서 비단 언어학자가 아니더라도 들은 풍월은 있어서 '헝가리와 핀란드는 우리와 관계가 있는 민족이래!'라며 친근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헝가리에 갔더니 길에서 이 나라 사람들이 서로 '엄마, 아빠'라고 부르길래 여기가 한국이 아닌가 싶었다라고 과대포장해서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헝가리의 말 중에 우리나라 말처럼 들리는 단어들이 있어서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헝가리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자. 헝가리는 1991년에 구소련이 와해되자 서유럽 국가들과 관계를 긴밀히하여 1999년에는 나토에 가입하고 2004년에는 EU에 가입했다. 공산치하에서의 헝가리는 아무래도 경제문제 때문에 국민들이 어려운 생활을 하였고 그러다보니 민주화 이후에 반정부 운동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2007년에는 대규모로 발전한 반정부 폭동까지 일어난 일이 있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2009년에도 있었다.

 

1956년의 헝가리 봉기. 소련이 전차를 동원해서 탄압했다. 사진은 라이프지에 게재된 봉기당시의 부다페스트 거리

 

헝가리 민족은 자신들을 마쟈르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헝가리안(Hungarian)이지만 이나라 말로는 마쟈로크(Magyarok)이다. 마쟈르족은 세계적으로 현재 1천4백만명 정도가 있다. 그중에서 약 1천만명은 헝가리에 살고 있고 나머지 4백만명 정도가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 마쟈르 부족은 일찍이 우랄 산맥 쪽에 살았다가 카르파티아 분지를 침략해서 정착하였으며 헝가리 공국을 수립하였다. 베르사이유에서 트라이농 조약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테두리 속에 헝가리왕국이 있었다. 당시에는 약 2백20만명의 마쟈르인들이 헝가리왕국의 백성이었다. 그러다가 헝가리왕국에 속하여 있던 상당부분의 영토가 다른 나라로 분할되는 바람에 마쟈르인들도 삶의 터전을 버릴 수가 없어서 어쩔수 없이 다른 나라에 속하여 살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재는 이웃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오스트리아 등에서 그나라 국민으로 살고 있게 되었다. 되돌아보건대 마쟈르의 후손들은 19세기로부터 헝가리를 떠나 새로운 삶을 찾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많이 갔고 더러는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캐나다로 갔으며 더러는 그렇게 멀리까지는 가지 못하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으로 흩어져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쟈르족이라고 하지만 실은 그 안에 여러 부족으로 갈라져 있다. 대표적인 부족으로는 체켈리(Szekely), 창고(Csango), 팔로크(Paloc), 야츠(Jasz: Jassic)가 있다. 이들 부족은 서로 말도 조금씩 다르고 문화와 관습도 조금씩 다르다. 

 

부다페스트의 캐슬 지역

 

헝가리라는 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불가리아-터키어에 속하는 온 오구르(On-Ogur)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온 오구르는 '열명의 오구르인'이라는 뜻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열개의 부족이 모인 하나의 부족연맹을 말한다. 그런 온 오구르라는 말이 헝가리(독일어로는 운가르)로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헝가리...오노구르....운가르...아무튼 마쟈르 민족의 대부분은 오노구르 부족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세에는 오노구르라는 말이 훈가루스(Hungarus)라는 말로 변천했다고 한다. 중세의 라틴어에서 H 는 접두어였다고 한다. 독일어의 운가르(Ungar)는 라틴어의 영향을 받지 않은 그대로의 단어라고 보면 된다. 어원에 대한 또 다른 주장도 있다. 고대 러시아어인 유그라(Yugra)가 발전해서 헝가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헝가리인들의 조상들은 우랄 산맥의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 지대에서 살다가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여 오늘날의 헝가리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렇고, 헝가리인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은 헝가리안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마쟈르라고 부르는 것을 더 선호한다. 마쟈르라는 단어는 피노-우그릭(Finno-Ugric)어로서 우그릭은 앞에서도 언그했듯이 우랄 산맥의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 지대에서 살았던 족속들을 말한다. 그러면 마쟈르라는 단어는 무슨 뜻인가? 헝가리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부족 중에서 가장 강력한 부족인 메지에르(Megyer)라는 말이 변천해서 마쟈르가 되었다는 것이다. 메지에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부족 이름이라고 알면 될 것이다. 어떤 학자는 마쟈르라는 단어가 훈족의 말인 Muageris(무아제리스)에서 왔다는 주장이며 더러는 무굴(Mugul)제국의 무굴에서 발전한 단어라고 주장했다.

 

헝가리의 시골. 발라톤 호수가의 마을

 

일반적으로 헝가리는 일찍이 9세기 경에 우랄 산맥과 볼가강 지역에 살고 있던 아바르(Avar)족이 날씨도 나쁘고 추워서 좀 더 따듯하고 비옥한 땅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해서 현재의 헝가리로 내려와 살기 시작함으로서 나라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온 오구르는 아바르의 이후에 헝가리의 동부를 지배하던 우티구르 불가르(Utigur Bulgar) 부족의 연맹이라고 한다. 헝가리는 헝가리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오스트리아에 속하여 있었기 때문에 나이가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독일어를 다 할줄 안다.

 

도나우 강변의 페스트 사이드에 있는 헝가리 국회의사당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의 시립공원에는 애국가의 작곡자인 안익태 선생의 기념상이 세워져 있다. 안익태 선생은 일제 시대에 부다페스트에 와서 첼로와 작곡 공부를 하였고 이어 비엔나에 가서 더 공부를 하고 활동하였다. 부다페스트 음악원에서는 헝가리 민족음악의 아버지라고 하는 졸탄 코다이로부터 사사했다. 비엔나에서는 현재의 콘체르트하우스에 있었던 비엔나 음악원에 다니면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게 배웠다고 한다. 애국가의 작곡가인데 정작 우리나라에는 그의 기념상이 없다.

 

부다페스트 시민공원에 있는 안익태 선생(1906-1965) 흉상. 이 사진은 2013. 12-2014. 3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헝가리-합스부르크 전시회의 동영상에서 촬영한 것이다. 기념상은 2012년 5월 11일 제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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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소사(小史)] - A Brief History of Hun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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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왕국의 첫 국왕인 이슈트반 1세. 바티칸 교황청으로부터 성자로 시성되어 성이슈트반(Szent Istvan: 성 슈테판)이라고 부른다.

                    

헝가리민족(헝거리식 발음으로는 머저르족)은 우랄 산맥 근처에서 유목생활을 하다가 뜻한바 있어서 기원전 500년 경에 서쪽으로 이동을 시작하여 점차 오늘날 헝가리의 땅에 정착해서 살았다. 머저르족은 나라를 세우고 초대 국왕으로 이슈트반 1세(재위: 1000-1038)을 옹위했다. 이슈트반 1세는 완전히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지고 있었던 헝가리를 유럽의 주변국들과 동화시키고자 기독교를 받아 들였다. 그로부터 헝가리는 기독교 국가가 되었고 그로 인하여 동쪽으로부터 이교도들이 서유럽을 침략하는 것을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을 맡아 했다. 나중에 이슈트반(스테판) 1세는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성자로 시성되었다. 헝가리는 착실한 발전을 거듭하여 15세기에는 영토가 크게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학문과 예술도 두드러지게 발전하였다. 그러다가 16세기에 오토만 제국의 침입으로 약 100년간 오토만 제국, 트란실바니아 공국,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 헝가리를 각각 나누어서 통치하는 고통의 시기를 경험하였다. 오토만 제국의 세력이 헝가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약 300 년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 헝가리를 통치하였다. 그 기간에 헝가리의 완전 독립을 위한 봉기들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귀족 계층을 중심으로 점차 합스부르크에 동화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하여 오토만 제국의 침략으로 황폐해진 헝가리의 경제는 점차 회복되었고 서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음악, 미술, 건축, 문학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합스부르크의 우산 아래에서 있을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뜻있는 사람들의 독립운동이 계속되다가 1867년에 대타협(아우스글라이히)이라는 명칭 아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는 2중 제국이 탄생하였다. 이 시기에 헝가리는 지금의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루마니아를 아우르는 영토를 확보하는 등 사회-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룩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동맹국에 가담하였고 그 바람에 패전국이 된 헝가리는 1920년 연합국과 트리아농 조역을 맺으며 국토의 70%를 잃었고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나치의 깃발아래 패전국이 되면서 소련의 영향 아래로 들어가 공산국이 되었다. 1956년에는 스탈린 독재에 항거하는 민중혁명으로 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기도 하였으나 1988년 동구 공산세력의 와해로 평화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1989년에는 공산권국가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었다.

 

부다페스트의 도나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