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페터 안드로슈의 '슈피겔그룬트' - 91

정준극 2014. 4. 4. 11:13

슈피겔그룬트(Spiegelgrund)

페터 안드로슈의 홀로코스트 오페라

 

페터 안드로슈

 

나치의 잔인한 인종청소를 내용으로 삼은 오페라가 있다. '슈피겔그룬트'(Spiegelgrund)라는 오페라이다. 나치의 인종청소 작전 중에서 정박아 및 장애 어린이들을 대량 학살한 얘기를 다룬 오페라이다. 2차 대전 중에 비엔나의 암 슈피겔그룬트(Am Spiegelgrund) 정신병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돌이켜보면 나치의 인종청소로서 유태인 6백만명이 죽었고 로마와 신티라고 불리는 유럽의 집시들이 1백만명이나 죽었으며 이밖에 신체불구자와 정신질환자, 동성연애자, 프리메이슨, 여호와의 증인, 정치범(독일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노동운동가) 등 1백만명이 죽었다. 나치가 청소한 신체불구자와 정신질환자 중에는 수천 명의 어린이가 포함되어 있어서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나치는 그런 어린이들이 아리안 이상에 적합하지 않다고 해서 가차없이 죽였다. 더구나 기가막힌 것은 그런 어린이들을 의학실험용으로 삼아서 차마 인간으로서는 감행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어린이들을 죽였다는 것이다. 그런중에도 비엔나의 어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거나 요양 중인 정신적 및 신체적 장애 어린이 수백명을 무참하게 죽인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슈피겔그룬트'는 이 끔찍한 사건을 다룬 오페라이다. 오스트리아 벨스(Wels) 출신의 페터 안드로슈(Peter Androsch: 1963-)가 작곡했고 대본은 베른하르트 도플러(Bernhard Doppler), 질케 되르너(Silke Dörner), 플루타르흐(Plutarch)가 공동으로 작성했다. 페터 안드로슈는 오버외스터라이히의 벨스(Wels) 출신으로 1969년 이래 린츠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 작곡가이다. 그는 오페라로서는 Geschnitzte Heiligkeit, Anton Bruckner und die Frauen, Schreber, Zeichner im Schnee 등을 작곡했고 이번 '슈피겔그룬트'는 오페라로서는 네번째이다.

 

'법'을 상징하는 하얀 가운의 의사가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 더 나은 세대의 아이들을 키울수 있다고 설명한다.

 

슈피겔그룬트라는 말은 글자그대로 번역하면 '거울마당'이다. 2차 대전 중에 비엔나에 있었던 암 슈피겔그룬트(Am Spiegelgrund)라는 병원의 이름에서 가져온 오페라 제목이다. 주로 정신적 또는 신체적 질환의 어린이들이 치료를 받던 곳이다. 나치는 이곳에서 어린이 8백여명을 죽였다. 나치의 의사들은 어린이 환자들을 독극물을 주사하거나 또는 가스로 질식시켜 죽이고는 뇌와 장기들을 따로 떼내어 작은 단지에 담아서 지하실에 비밀 보관했다. 의학실험을 한다는 목적에서였다. 전쟁이 끝나자 무참하게 죽은 어린이들의 시신이 발견되고 나치의 실험목적으로 보관되어 온 뇌와 장기들이 발견되면서 어린이들까지 인종청소의 대상으로 삼았던 비참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오스트리아는 나치가 강제수용소를 만들어서 유태인이나 집시들을 조직적으로 가스실에서 대량 학살하기 전에 이미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어린이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것을 크게 협조한 셈이었다. UN은 매년 1월 27일을 '국제 홀로코스트의 날'로 정하고 기념하고 있다. 이날을 나치가 세운 최대규모의 강제수용소인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날이다. 오스트리아도 매년 '홀로코스트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작곡자인 페터 안드로슈도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무관하지 않다. 그의 증조할아버지가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끌려가서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비엔나 의사당의 이오니아식 원주들로 둘러 싸인 가운데 조명만이 붉은 색조로 준비하였고 무대 배경이나 세트는 만들지 않은채 오페라를 공연했다.

 

페터 안드로슈의 오페라 '슈피겔그룬트'는 2013년 1월 25일에 비엔나 링슈트라쎄에 있는 팔라멘트(의사당) 건물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2013년에는 국제 홀로코스트 데이가 일요일이므로 모든 단체들이 1월 25일에 기념행사를 가졌고 이에 따라 그날 '슈피겔그룬트'를 초연한 것이다. 수많은 인사들이 참석했다. 정치인들도 참석했고 외교사절들도 참석했다. 1938년에 나치를 오스트리아에 무혈진군토록 환영했던 오스트리아로서, 그리고 어린이 학살이라는 나치의 잔혹한 처사를 협조한 나라의 정치인으로서 참회하는 심정으로 이 오페라를 관람하였다고 한다. 팔라멘트의 대회의장을 공연장소로 삼은 것은 다시는 이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치인들부터 각성하고 참회하자는 의미에서였다고 한다. 비엔나 주재 외교사절들도 상당수 참석한 것은 오스트리아 정부가 이날의 공연을 세계 각국에 알리려는 의도에서였다. 초연에는 당시 홀로코스트 생존자도 참석하였다. 2013년으로 83세인 프리드리히 차벨(Friedrich Zavel)은 당시에 암 슈피겔그룬트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어린이였지만 다행히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생존하였다. 그는 1940년에 동성애자로 고발당하여 암 슈피겔그룬트에 입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아직도 당시를 회상하며 그가 받은 인간이하의 대우와 지옥과 같은 병원독방에서의 생활, 그리고 고문 등의 시련에 대하여 몸서리를 쳤다. 나치가 저지른 어린이 고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포장 치료'(Wrap Treatment)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린이의 몸을 처음에는 두장의 어름물에 적신 차가운 시트로 감싸서 체온을 떨어트리는 실험을 했다가 이어 마른 시트로 몸을 싸서 며칠동안 물 한 모금 주지 않고 그대로 놓아 두는 치료였다고 한다. 말이 치료이지 그것은 인간이하의 비상식적인 고문이었다. 만일 이 실험을 받기 싫다고 반항하면 그때부터는 진정제 주사를 놓거나 심하게 구타하여서 어린이들이 참지 못하고 구토를 하거나 며칠씩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경우가 비일비재였다고 한다.

 

'어린이들의 노래'를 상징하는 여인이 비참하게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소리를 대신 말한다.

 

출연진은 복잡하지 않다. '법'을 상징하는 인물(B), '기억'과 '어린이들의 노래'를 상징하는 두명의 소프라노가 전부이다. 이 세사람이 다른 역할들도 맡는다. 출연진들은 희생자이면서도 가해자의 역할을 맡도록 했다. 음악은 현악기 몇개, 플류트, 타악기, 그리고 하프시코드가 전부이다. 이 오페라는 일반적인 오페라와는 스타일이 다르다. 연사가 웅변조로 사건의 진행을 설명한다. 뒷 배경은 우울한 자주색과 붉은 색으로 조명된다. 하얀 색으로 코팅을 한 사람은 의사이지만 '법'을 상징한다. 의사/법은 스파르타식 교훈을 설명한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허약한 아기는 아예 죽인다는 얘기이다. '회상'은 어린 아이들이 비명에 희생된 무서운 경험을 노래한다. 오페라라기 보다는 오라토리오를 연상케 하는 공연이다. 내레이터는 병원의 잡역부들이 병원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 아이들의 시신을 작은 수레에 싣고 있다는 설명을 한다. 이어 어떤 어머니가 병원의 의사에게 보낸 편지를 읽는다. 제발 자기 아이를 돌려보내 달라는 하소연의 편지이다. 오스트리아 의회의장인 바르바라 프라머는 이 오페라를 보고나서 '이 나라는 더 이상 과거의 영광만을 내세울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