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위대한 대본가

메리 위도우의 빅토르 레옹(Victor Léon)

정준극 2014. 5. 5. 04:59

재치있는 오페레타 대본가 빅토르 레옹

 

빅토르 레옹

 

빅토르 레옹(Victor Léon)은 1858년 프레스부르크(오늘날의 슬로바키아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에서 태어나서 2차 대전의 와중이던 1940년에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난 뛰어난 오페라 대본가였다. 당시에는 브라티슬라바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하여 있었다. 그의 원래 이름은 빅토르 히르슈펠트(Victor Hirschfeld)로서 헝가리어로는 히르슈펠드 빅토르(Hirschfeld Viktor)라고 했다. 빅토르 레옹은 필명이었다. 그는 유태인이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오페라 대본은 레오 슈타인과 공동으로 작성한 프란츠 레하르의 '메리 위도우'(Die lustige Witwe)이다. 그는 처음에 저널리스트였으나 1880년부터 대본가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처음 맡은 작업은 비엔나의 로나허극장을 위해 주로 단막의 대본을 쓰는 것이었다. 로나허는 유명한 버라이어티극장이었다. 그후 함부르크의 칼 슐체 극장, 페스트의 독일극장을 거치면서 대본가로서 확고한 위상을 수립하였다. 그가 초기에 대본을 제공한 작곡가들은 막스 폰 봐인치에를(Max von Weinzierl), 루돌프 라이만(Rudolf Raimann), 알프레드 차마라(Alfred Zamara) 등이었다. 알프레드 차마라의 Der Doppelgänger(대역)은 1886년 뮌헨의 슈타츠테아터 암 개르트너플라츠에서 공연되어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후 1887년에는 요한 슈트라우스를 위해 '심플리시우스'의 대본을 썼지만 오호라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후 그는 요제프 헬메스버거(Joseph Hellmesberger), 알폰스 치불카(Alphons Czibulka), 루돌프 델린거(Rudolf Dellinger), 그리고 심지어 프란츠 폰 주페(Franz von Suppé)를 위해서도 대본을 썼다. 폰 주페의 마지막 오페레타인 Das Modell(모델)의 대본은 빅토르 레옹이 쓴 것이다. 그런가하면 아서 설리반의 '런던탑의 경비병'(The Yeomen of the Guard), 에드워드 야코보브스키의 '에르미니'(Erminie)등을 번역하여 소개하는 일도 했다. 빅토르 레옹의 명성이 크게 높아진 것은 1898년에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공연된 리하르트 호이버거(Richard Heuberger)의 '오페라무도회'(Der Opernball)의 대본으로였다. 그후로 성공은 보장된 것이었다. 1899년에 작성한 '비너 블루트'(Wiener Blut)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오페레타 '비너 블루트'는 아돌프 뮐러(Adolf Müller)가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들을 발췌해서 엮은 작품이다. 당시 요한 슈트라우스는 병으로 요양 중이어서 작곡에 참여하지 못했다. '비너 블루트'는 빅토르 레옹과 레오 슈타인이 합작하여 이룩한 최초의 히트작이라고 할수 있다. 그후 빅토르 레옹은 1908년에 비엔나의 칼테아터에서 무대에 올려진 레오 팔(Leo Fall)의 Die geschiedene Frau(이혼녀)로서 또한번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프란츠 레하르의 '메리 위도우'의 한 장면

                

그의 후반기 대본들 중에서 일부는 그가 그의 동생인 레오와 공동으로 작성한 것이다. 그의 동생은 레오 펠드라는 필명으로 활동했었다. 레옹의 딸인 리찌는 테아터 안 데어 빈의 주역배우인 후베르트 마리슈카라는 사람과 결혼했다. 그래서인지 리찌도 연극이나 오페레타에 대해서 관심이 컸다. 리찌는 아버지 레옹에게 중국배경의 연극인 Die gelbe Jacke(황금색 자켓)를 오페라 대본으로 만들어 보라고 권고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레하르의 음악으로 완성된 Das Land des Lächelns(웃음의 나라)였다. 그러나 리찌는 이 오페레타를 보지도 못하고 아이를 출산하다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레옹은 '노란 저고리'의 책자를 딸을 추모하여 헌정했다. 레옹은 그의 딸보다도, 그의 동생보다도, 그의 동료인 레오 슈타인보다도 더 오래 살면서 많은 일을 했다. 그의 마지막 무대 활동은 레하르의 Das Fürstenkind(군주의 아이)를 Der Fürst der Berge(산의 군주)라는 제목으로 고쳐서 무대에 올린 것이었다.

 

빅토르 레옹이 완성한 오페레타 대본들은 다음과 같다.

○ Der Doppelgänger(대역: 1886) - 알프레드 차마라

○ Simplicius(심플리시우스: 1887)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 Der Strike der Schmiede(1897) - 막스 요제프 베르

○ Der Opernball(오페라 무도회: 1898) - 리하르트 호이버거

○ Wiener Blut(비엔나 기질: 1899)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음악

○ Der Ratelbinder(1902) - 프란츠 레하르

○ Die Schönen von Fogaras(포가라스의 미인: 1903) - 알프레드 그륀헬트

○ Barfüssele(1904) - 리하르트 호이버거

○ Die lustige Witwe(유쾌한 미망인: 1905) - 프란츠 레하르

○ Der fidele Bauer(성실한 농부: 1908) - 레오 팔

○ Die geschiedene Frau(이혼녀: 1908) - 레오 팔

○ Gold gab ich für Eisen(돌대신 떡: 1914) - 엠메리히 칼만

○ Wiener Volkssänger(비엔나 대중가수: 1919) - 로베르트 말러

○ Die gelbe Jacke(황금색 자켓: 1923) - 프란츠 레하르

 

프란츠 레하르가 작곡한 '웃음의 나라'. 빅토르 레옹의 대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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