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52. 주세페 베르디의 '제루살렘'(Jérusalem)

정준극 2014. 5. 5. 18:47

제루살렘(Jérusalem) - 예루살렘

베르디의 4막 그랜드 오페라, 프랑스어 대본으로 파리에서 초연

'롬바르디'와 '나부코'의 영향을 받은 작품

 

주세페 베르디

 

예루살렘이 어떤 곳인가? 기독교, 유태교, 이슬람교의 성지이다. 보통 성지가 아니라 성지 중에서도 가장 핵심되는 성지이다. 기독교로서는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받으셨고 죽은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부활하신 곳이다. 유태교로서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께 아들 이삭을 산제물로 드리려고 했던 곳이며 솔로몬이 온갖 정성과 화려함으로 성전을 세운 곳이다. 이슬람교로서는 예언자 마호멧이 천사들의 옹위를 받으며 승천한 곳이다. 이처럼 신성한 장소이기 때문에 그동안 감히 무슨 연극이나 오페라의 주제가 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에 예루살렘을 주제로 삼은 오페라가 나오기 시작했다. 오페라의 황제 주세페 베르디가 작곡한 '제루살렘'(예루살렘)이다. 그런데 오페라의 제목이 '예루살렘'(제루살렘)이라고 해서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라던지, 또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다룬 것이라든지, 또는 마호멧의 승천 이야기를 다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니다. 얘기가 좀 빗나갔지만 십자군 전쟁 당시의 두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가 기둥줄거리이다. 그래도 아무튼 성지 예루살렘을 제목으로 삼은 오페라이니만치 관심이 없을 수가 없다. 이제부터 오페라 '제루살렘'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자. 어떻게 보면 베르디편 '로미오와 줄리엣'이란 생각이 든다. 그보다도 한마디만 더 하자면, 베르디의 전체 오페라 중에서 그의 첫번째 오페라인 '왕궁에서의 하루'와 '활슈타프'만이 사실상 코믹한 내용이다. 그런데 '왕궁에서의 하루'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본격 코믹 오페라라고 하면 '활슈타프' 하나 뿐이다. '제루살렘'은 코믹 오페라는 아니지만 유일한 해피 엔딩의 오페라이다. 베르디의 나머지는 모두 비극, 또 비극이다.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데 커다란 공을 세우지만 사람들로부터 거짓 증거를 받아서 교황청 특사에 의해 추방단한 십자군 병사의 이야기. 에밀 시뇰작.

 

1845년 11월에 파리 오페라의 감독인 레옹 삐예(Léon Pillet)는 베르디에게 새로운 오페라를 한편 작곡해 달라고 요청했다. 베드리는 곤란하다면서 거절했다. 레옹 삐예는 이듬해인 1846년 2월에 다시 베르디에게 작곡을 부탁했다. 그때에도 베르디는 완만하게 거절했다. 아무튼 이것이 베르디가 파리 오페라(당시에는 왕립음악아카데미라고 불렀다)와 연관을 갖게된 처음 계기였다. 19세기의 이탈리아 작곡가 중에서는 파리를 위해 오페라를 작곡코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선 돈도 벌수 있고 명예도 얻을수 있으며 또한 종래의 전형적인 이탈리아 스타일의 오페라에서 벗어나 프랑스적인 자유스러운 오페라를 작곡할수 있다는 흥미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알프스를 넘어서 파리로 온 이탈리아의 작곡가들이 더러 있었다. 로시니가 파리에 와서 활동했고 도니체티가 그랬다. 벨리니도 파리를 위해 프랑스 스타일의 그랜드 오페라를 작곡하려 했으나 오호라 계획을 완성하지 못하고 1835년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그건 그렇고 베르디도 그러다가 파리 오페라의 요청을 너무 거절만 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오페라를 하나 만들기는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교황청 특사의 등장

 

실상 베르디는 전부터 이탈리아의 대본가 겸 작곡가인 테미스토클레 솔레라(Temistocle Solera: 1815-1876)의 대본 중에서 하나를 더 오페라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베르디는 솔레라와 오랜 인연이 있었다. 솔레라의 대본으로는 일찍이 1842년에 '나부코'를 만들어서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어 1843년에는 '첫 십자군의 롬바르디인'(I Lobardi alla primia crociata), 1845년에는 '조반나 다르코'(Giovanna d'Arco), 1846년에는 '아틸라'(Attila)를 만들었다. 베르디로서는 솔레라의 대본이 그랜드 오페라에 아주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대본으로 새로운 오페라를 만든다면 당연히 그랜드 오페라로 만들 생각이었다. 베드리는 런던에서 '산적'(I masnadiero)의 초연을 지휘하고 나서 1주일 후인 1847년 7월 27일에 파리에 도착했다. 런던에서 밀라노로 가려면 역시 파리를 거쳐야 하지만 그보다도 파리 오페라의 부탁이 도무지 마음에 걸려서 파리에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베르디는 파리 오페라와 '첫 십자군의 롬바르디인'을 프랑스어 대본으로 만들고 음악도 다시 만들어서 공연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베르디는 완전히 새로운 오페라를 하나 만드느니 보다는 이미 만들어 놓은 오페라를 프랑스의 그랜드 오페라 스타일로 수정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사실 도니체티나 로시니도 파리 데뷔를 위해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런 시도는 전혀 어색할 것이 없었다.

 

엘렌

 

대본가로 유명한 외진 스크리브(Eugene Scribe)도 베르디에게 '첫 십자군의 롬바르디인'을 프랑스어 버전으로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자문하였다. 프랑스도 첫 십자군을 보냈으므로 프랑스 사람들에게 '첫 십자군...'은 어색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아주 적합하다는 얘기였다. 그리하여 베르디는 파리에서 오페라 대본가로 널리 알려진 알퐁스 로이어(Alphonse Royer)와 귀스타브 바에즈(Gustave Vaëz)에게 '첫 십자군...'의 프랑스어 대본을 만들어 줄것을 당장 부탁했다. 두 사람은 그 전에 도니체티의 '라 화보리타'(La Favorita)의 프랑스어 대본을 만들어서 성공을 거둔 일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재능은 충분히 믿을만 했다. 오페라의 타이틀은 '첫 십자군...'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제루살렘'으로 붙이기로 했다. 그렇지만 두 작품이 완전히 복사판인 것은 아니었다. '첫 십자군...'과 '제루살렘'은 몇가지 내용상의 차이가 있다. 우선 장소가 '첫 십자군...'은 롬바르디인데 '제루살렘'은 1095-1099년 프랑스로 바꾸었다. 주인공들의 이름은 이탈리어 이름에서 프랑스 이름으로 바꾸었다. 다만, 아르비노(Arvino)는 툴루스 백작으로 호칭을 바꾸었다. 그렇지만 툴루스 백작의 역할의 대부분은 테너인 갸스통에게 주었고 툴루스 백작은 바리톤이 맡도록 했다. 오리지널 버전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은 파리의 '제루살렘'에서 제외되었다. 예를 들면 테너인 오론테이다. 무엇보다도 '제루살렘'에서는 십자군 전쟁보다는 갸스통과 엘렌의 로망스에 더욱 치중하였다. 그리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도록 했다. 이와 함께 베르디는 '제루살렘'에 스탠다드 발레를 당연히 추가했다. 아주 매혹적이며 이국적인 발레이다. 하기야 프랑스 관중들 중에는 오페라를 구경와서 발레만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으니 발레가 포함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첫 십자군...'을 수정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전혀 새로운 작품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 준다. 베르디 자신도 '제루살렘'을 '첫 십자군...'의 '변형'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한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은 '제루살렘'의 3막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우리는 언제 프랑스로 돌아갈수 있는가? 하나님, 우리의 길을 인도하여 주소서'라는 내용의 합창을 부르는 것이 있는데 다름 아닌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의 멜로디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엘렌과 갸스통.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제루살렘'은 1847년 11월 26일 파리 오페라의 살르 르 플르티에(Salle le Peletier)에서 초연을 가졌다. 베르디는 1847년 7월부터 1849년 7월까지 2년 동안을 파리에서 머물렀다. 베르디는 이 기간에 파리에서 우리나라 누구들처럼 관광이나 하고 골프나치며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는 '해적'(Il corsaro)의 작곡을 완성했고 1848년에 트리에스테에서 초연되는 사항을 감독했다. 이어 살바도레 카마라노의 대본으로 '레냐뇨 전투'(La battaglia di Legnano)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49년 1월의 로마 초연에 참석하고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작곡을 진행한 또 다른 하나는 '루이지 밀러'였다. '루이자 밀러'는 1949년 12월에 나폴리에서 초연되었다. 베르디는 파리에 머물면서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Giuseppina Strepponi)와 우정 이상의 관계를 개발하며 지냈다. 스트레포니는 1842년 '나부코'의 라 스칼라 초연에서 아비가일을 맡았었다. 그때부터 베르디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냈다. 스트레포니는 '나부코'의 초연 이후에서 이탈리아에서 아비가일을 여러 번 맡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가 전만 같지 않았다. 결국 스트레포니는 오페라 출연을 그만두고 파리로 와서 성악 레슨을 하며 지냈다. 스트레포니는 1846년 10월에 파리에 왔다. 그리고 베르디는 그 이듬해인 1847년 7월에 파리에 왔다. 두 사람은 반갑게 만났으며 그후 베르디가 파리에 머무는 동안 그야말로 자주 만나며 사랑의 감정을 키웠다. 베르디가 2년 동안 파리에 머물렀던 것도 스트레포니의 영향이 컸다. 나중에 두 사람은 결국 결혼했다. 두 사람이 파리에서 지낸 이런 저런 얘기는 시간상 생략코자 한다. 다만, 당시 베르디는 스트레포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집을 얻어서 지냈으며 그래서 두 사람은 더 자주 만날수 있었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어떤 신문은 '베르디 선생이 스트레포니의 방에서 자주 볼수 있었다'라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추방당하는 갸스통

 

'제루살렘'은 파리에서 그런대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위대한 베르디 선생의 작품이라는 네임 밸류도 있었고 발레도 한몫 거들었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의 극장들은 베르디의 '제루살렘'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하여 이탈리아에서 무대에 올리고 싶어했다. 하지만 마땅한 번역전문가가 없어서 걱정이었다. 그러다가 겨우 칼리스토 바씨라는 사람이 번역을 했다. '제루살레메'(Gerusalmme)는 1850년 12월 26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이탈리아 초연을 가졌다. 앞에서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제루살레메'는 '첫 십자군...'의 변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첫 십자군...'이 더 훌륭하다고 하면서 '제루살레메'에는 별로 박수를 보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루살레메'는 1850년에 토리노에서 공연되었고 그후 베니스, 베로나, 로마에서도 공연되었다. 미국 초연은 1850년 1월 24일 뉴올리언스의 '오를레앙극장'(Theatre d'Orleans)에서였다.

 

20세기와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제루살렘'(제루살레메)는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공연되어 역시 베르디에 대한 사람들의 깊은 존경심을 짐작할수 있다. 1963년에는 베니스의 라 페니체에서 지안드레아 가바쩨니의 지휘로 공연되었다. 2년 후인 1965년에는 라 페니체 오페라단이 뮌헨을 방문 중에 공연하였다. 가스통은 자코모 아라갈이 불렀고 백작은 레나토 브루손, 루제로는 루제로 라이몬디, 엘레나는 레일라 겐서가 불렀다. 1975년에는 프랑스어로 RAI 방송에서 공연되었다. 카티아 리카렐리와 호세 카레라스가 노래를 불렀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특별한 공연은 주빈 메타 지휘로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공연된 것이다. 호세 카레라스(갸스통)와 사뮈엘 레이미(로저)가 출연했다. 영국 초연은 1990년에 이루어졌다. 파리에서 초연된지 140년만의 일이었다. 오페라 노우스가 리드(Leeds)의 대극장에서 공연했다. 2003년에는 오퍼 프랑크푸르트가 공연했고 2004년에는 다시 비엔나 슈타츠오퍼가 공연했다. 암스테르담 공연은 2005년으로 엘렌 역할을 넬리 미리치오이우(Nelly Miricioiu)가 맡았다. 2014년에는 사라소타 오페라가 '베르디 사이클'의 일환으로 공연했다.

 

피날레. 갸스통과 엘렌이 드디어 재결합한다. 해피 엔딩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갸스통(Gaston: T) - 베아른 자작. 엘렌과 사랑하는 사이.

- 툴루스 백작(Comte de Toulouse: Bar) - 갸스통의 아버지를 죽인바 있음.

- 로저(Roger: B) -  백작의 동생. 엘렌의 삼촌이지만 엘렌을 좋아함.

- 엘렌(Hélène: S) - 백작의 딸

- 이소르(Isaure: S) - 엘렌의 친구 겸 시녀

- 아데마르 드 몽테일(Adhemar de Monteil: B) - 교황청 사절

- 레이몽드(Raymond: B) - 갸스통의 부하

- 람라의 에미르(Emir de Ramla: B)

 

이밖에 병사들, 전령, 에미르의 장교, 기사들, 귀부인들, 시동들, 순례자들, 참회자들, 사형집행인들, 아랍 병사들, 하렘의 여인들, 람라의 백성들이 등장한다. 시기는 1095년과 1099년이며 장소는 1막이 프랑스의 툴루스이고 2막에서부터 4막까지는 예루살렘 부근의 팔레스타인이다.

 

[1막] 툴루스 백작의 딸인 엘렌은 갸스통과 비밀리에 사랑하는 사이이다. 이날도 늦은 밤에 엘렌은 갸스통을 만나 서로의 사랑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백작은 갸스통의 아버지를 내란이 일어났을 때 죽인 일이 있어서 사실상 두 집안은 원수지간이었다. 갸스통은 만일 백작이 엘렌과의 결혼을 허락한다면 과거의 원한을 잊어버리고 백작을 용서하고 화해할수 있다고 말한다. 백작이 갸스통의 제안을 받아 들여서 사실상 엘렌과 갸스통의 결혼을 허락하자 사람들은 이제야 내전이 마침내 끝났다고 하며 축하한다. 백작과 백작의 동생인 로저는 십자군 전쟁을 위해 떠나고자 한다. 갸스통도 십자군에 합류하여 팔레스타인으로 갈 예정이다.  다음날 아침, 백작은 십자군 전쟁에 떠나기에 앞서 갸스통에게 다시 한번 엘렌과의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로저는 마음이 편치 않다. 질투심 때문이다. 로저는 자기의 조카딸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엘렌을 사랑해 왔다. 그런데 형인 백작이 자기의 심정을 헤어려주지 않고 엘렌을 원수의 집안인 갸스통과 결혼시키겠다고 약속하자 복수를 다짐한다.

 

교황청 특사는 교황이 갸스통 자작을 프랑스 십자군 부대의 선발장군으로 임명했다고 발표한다. 갸스통은 교황과 백작에게 충성을 서약한다. 백작은 갸스통에게 충성 서약의 징표로서 자기의 하얀 코트를 입혀준다. 백작과 갸스통은 교회로 들어가서 십자군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린다. 교회에서 미리 빠져 나온 로저는 갸스통에 대한 증오심을 다시한번 다짐한다. 그리고는 병사 중에서 한 사람을 매수하여 라이발인 갸스통을 암살토록 음모를 꾸민다. 로저는 암살자에게 교회 안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두 사람 중에서 하얀 코트를 입고 있는 사람이 백작이므로 그대로 두고 코트를 입지 않은 사람을 죽이라고 지시한다. 암살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지시를 받은대로 실행한다. 백작이 쓰러진다. 경비병들이 암살자를 체포한다. 암살자는 자기 자신의 무죄는 물론 로저도 보호하기 위해 암살을 지시한 사람이 다름아닌 갸스통이라고 주장한다. 갸스통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면서 무죄를 주장하지만 소용이 없다. 교황청 대사는 그런 갸스통의 죄를 물어서 멀리 추방한다.

 

[2막] 그로부터 4년 후 팔레스타인이다. 로저는 자기의 잘못으로 친형인 백작을 죽인데 대하여 참회하는 마음으로 은둔의 생활을 한다. 어느날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로저가 머물고 있는 곳을 지나면서 로저를 보고 목이 말라 고통이니 물을 달라고 부탁한다. 이들의 합창은 마치 '나부코'에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연상케 한다. 합창의 가사를 영어/한글로 말미에 소개한다. 순례자 중에는 갸스통의 시종이었던 레이몽도 포함되어 있다. 레이몽은 은둔자가 설마 로저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로저가 이들에게 물을 주어 갈증을 풀도록 해주고 잠시 쉬도록 한다. 한편, 엘렌은 사랑하는 갸스통의 무죄를 믿고 있으므로 갸스통을 찾으로 팔레스타인까지 온다. 그러다가 순례자들을 만난다. 엘렌은 순례자 중에 갸스통의 시종인 레이몽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레이몽은 엘렌에게 갸스통이 살아 있으며 현재는 람라라고 하는 곳에서 아랍 사람들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잠시후 나팔 소리가 나더니 십자군들이 진군해 온다. 그런데 십자군을 지휘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툴루스 백작이다. 백작은 교회에서 암살자의 칼에 맞아 쓰러졌지만 천만다행으로 목숨을 건져 이제 십자군을 이끌고 팔레스타인까지 온 것이다. 백작은 운둔자를 보자 그에게 십자군을 축복해 달라고 요청한다. 백작은 은둔자가 자기의 동생인 로저인줄 모른다. 로저는 백작에게 자기도 십자군에 합류하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한편, 갸스통을 찾아서 람라의 진지까지 간 엘렌도 아랍 병사들에게 사로 잡힌다. 그렇게 해서 사랑하는 두 사람은 오랫만에 서로 만난다. 두 사람은 아랍 병영에서 도망가려 하지만 에미르의 경비병들에게 잡힌다.

 

[3막] 첫 장면은 하렘의 정원이다. 엘렌은 에미르의 하렘에 갇혀 있다. 하렘의 여인들이 엘렌을 둘러싸고 엘렌이 곤경에 처한 것을 동정한다. 하렘의 여인들이 관능적인 춤을 춘다. 매혹적이다. 사실 이 장면 하나만 보아도 입장권을 사서 들어온 가치가 있다. 아무튼 여인들의 춤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에 에미르가 나타나서 엘렌에게 지금 기독교 십자군들이 진군해 오고 있는데 만일 그들이 람라의 아랍 진영에 쳐들어온다면 엘렌을 죽여서 머리를 백작에게 던져 주겠다고 위협한다. 엘렌은 자기의 인생이 바야흐로 아무 쓸모 없이 마무리되어야 하는가 싶어서 괴로워한다. 갸스통은 어찌어찌하여 감옥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갸스통은 엘렌을 찾아서 함께 탈출하려고 하는 바로 그때 십자군들이 물밀듯이 에미르의 병영으로 진입한다. 백작은 자기를 암살하려 했던 갸스통이 엘렌과 함께 그곳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래서 이들이 간첩이라고 생각하고 병사들에게 갸스통을 당장 처형하라고 명령한다. 갸스통은 다시 감옥에 갇힌다. 사람들이 갸스통을 간첩이라고 하면서 비난하고 조롱한다. 갸스통은 백작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엘렌도 아버지인 백작에게 항의하지만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갸스통에 대한 처형은 다음날 아침 일찍 치루어질 예정이다. 교황청 특사는 교황 성하가 갸스통을 저주했다고 말하고 교황청도 그를 처형하는데 이의가 없다고 말한다. 갸스통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명예가 손상되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의 갑옷과 투구와 검을 모두 부서트린다.

 

[4막] 여호사밧 부근에 있는 십자군의 진영이다. 이제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려는 마지막 전투가 남아 있다. 십자군들이 승리를 위한 기도를 드린다. 은둔자로서의 로저는 혼자서 병영 근처에 머물고 있다. 여인들 중에 엘렌의 모습이 보인다. 교황의 특사가 로저에게 이제 반역자 한 사람을 처형코자 하니 그의 영혼을 위해 위안의 기도를 해 달라고 말한다. 잠시후 갸스통이 끌려 나온다. 그러나 로저는 갸스통에게 축복하는 것을 거절한다. 대신에 그는 갸스통에게 칼을 쥐어 주면서 주님을 위해 나가서 싸우라고 말한다. 장면은 바뀌어 다시 백작의 막사이다. 엘렌은 예루살렘 전투가 어떻게 되었는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잠시후 승리의 함성이 들리고 이어서 백작과 교황의 특사와 십자군 병사들이 들어온다. 그 뒤를 이어 갸스통이 따라 들어온다. 다만, 갸스통은 헬멧의 앞을 가렸기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수 없다. 사람들이 미지의 기사의 용맹으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수 있었다고 찬양하면서 그의 신분을 밝혀 달라고 요청한다. 그제서야 갸스통은 헬멧의 가리개를 올리고 자기가 갸스통임을 밝힌다. 갸스통은 백작과 교황청 특사에게 어서 자기를 처형해 달라고 말한다. 그때 전투에 참가했다가 중상을 입은 운둔자가 들것에 들려서 들어온다. 운둔자는 자기가 백작의 동생인 로저임을 밝힌다. 로저는 자기가 질투심에 불타서 형인 백작을 암살하려 했다고 고백하면서 갸스통은 누명을 써서 무고하다고 선언한다. 모두들 갸스통의 명예가 회복된 것을 기뻐한다. 로저는 마지막으로 그렇게도 소원했던 제루살렘이 탈환된 것을 본후 숨을 거둔다.

 

엘렌(다니엘라 워커), 갸스통(히스 위베르), 은둔자 로저(김영복)

 

 

[주요 아리아/듀엣/앙상블]

- 1막 1장. 갸스통과 엘렌의 사랑의 듀엣: Adieu, mon bien-aime(안녕히, 사랑하는 그대여)

- 1막 2장. 로저가 갸스통에 대한 증오를 표시하는 아리아: Oh dans l'ombre, dans la mystere(아. 어둠과 신비함이 숨어 있도다. 죄스러운 열정)

- 1막 2장. 로저가 암살자에게 백색 코트를 입지 않은 사람을 살해하라고 지시하는 아리아: Ah! Viens, demon, esprit du mal(아 오라, 마귀여, 악마의 정령이여)

- 2막 1장. 로저가 사막을 방황하며 자기의 죄과를 참회하며 부르는 아리아: O jour fatal, O crime(오 두려운 날이여, 오 나의 죄악이여)

- 2막 1장. 레이몽이 엘렌에게 갸스통이 살아 있다는 얘기를 하자 엘렌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부르는 아리아: Quell'ivresse, bonheur supreme(얼마난 기쁜가, 말할수 없는 행복이여, 하나님께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셨도다)

- 2막 1장. 운둔자(로저)가 백작과 교황청 특사에게 전투에 함께 나가겠다고 요청할 때의 트리오: Le Seigneur nous promet la victoire!(주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해 주셨도다. 오 기쁘도다)

- 2막 2장. 갸스통이 탈출을 계획하면서 부르는 아리아: Je veux enxore entendre(그대의 음성을 다시 한번 듣고 싶다)

- 2막 2장. 갸스통이 자기의 불명예에 엘렌을 연루시키지 않고자 하며 주르는 아리아: Dans la honte et l'epouvante(나의 방랑생활의 두려움과 수치, 그대와 함께 나눌수 없다)

- 3막 1장. 에미르가 만일 십자군이 아랍 진영을 침입하면 엘렌을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엘렌이 자기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사람이라면서 부르는 아리아: Que m'importe la vie(삶이란 것이 나에게 어떤 문제가 되는가). Mes plaintes mes plaintes sont vaines(나의 비탄은 허공에 맴돈다)

- 3막 1장. 십자군들이 갸스통을 죽이려 하자 엘렌이 갸스통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십자군들에게 항의하는 장면의 아리아: Non...non votre rage(안되요. 안되요. 그대들의 분노, 그대들의 아무런 가치가 없는 난폭한 행동)

-  3막 2장. 갸스통이 자기의 명에가 손상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부르는 아리아: O mes amis, mes freres d'armes(오 나의 친구들, 나의 전우들) 

 

[2막에서 합창]

Lost in the desert, torturered by thirst(사막에서 길을 잃고 목마름으로 고문을 당하였네)

Shall we ever be rescured?(우리는 언제나 구조될수 있을까?)

Alas, alas!(아이구, 아이구)

 

O God, your promise was in vain(신이시여 당신의 약속은 헛된 것이었습니다)

Our sufferings are going to end in the desert,(우리의 고통은 이 사막에서 끝날 것입니다)

The water is dried up in all the gulleis; as we seek it.(우리가 찾아 다닌 샘의 물은 모두 말랐고)

Our sufferings have paid for our sins(우리의 죄악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Bring back hope into our hearts,(우리 마음에 희망을 돌려 주세요)

Show us now a sign of your might(당신의 권능을 이제 보여주세요)

Open up to us a way back to France(프랑스로 돌아가는 길을 열어주세요)

Our native land! Our country,(우리의 고향, 우리의 나라)

O fountains, pure crystal from far-off springs!(샘들이여, 수정과 같은 물이 솟아 날지어라)

Sweet sky, cooly sheltering ancient oaks(아름다운 하늘, 오래된 참나무의 그늘이 시원하게 해주리라)

Shall we then die unburied(우리는 묻히지도 못하고 죽는다는 말인가)

And so far from you?(당신으로부터 그리도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가)

We shall die cursing our misery(우리의 비운을 저주하여 죽을 것이다)

and the land where we suffer for you(당신을 위해 고통받은 그 땅에서)

Ah! bring back hope into our hearts,(아 우리의 마음에 희망을 가져다 주어요)

Open up to us a way back to France(프랑스로 가는 길을 열어 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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