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54. 주세페 베르디의 '조반나 다르코'(Giovanna d'Arco)

정준극 2014. 5. 10. 18:10

조반나 다르코(Giovanna d'Arco) - 잔 다크

Jeanne d'Arc - Johanna von Orleans - Joan of Arc

프롤로그와 3막으로 구성된 베르디의 드라마 리리코

프리드리히 쉴러의 '오를레앙의 처녀' 바탕

 

 조반나 다르코의 불가리아 출신 스베틀라 바실레바(Svetla Vassileva)

 

프랑스의 성녀, 또는 구국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잔다크(Jeanne d'Arc: c 1412-1431)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15세기에 있었던 영불간의 백년전쟁의 막바지에 프랑스에서 영국군을 물리치고 샤를르 7세가 왕위에 오르도록 기여한 여인이다. 여인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날 때에 19세였다고 하니 오히려 그냥 처녀라고 부르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잔다크의 별명도 '오를레앙의 푸셀 처녀'(La Pucelle d'Orleans)이다. 잔다크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에서 조반나 다르코(Giovanna d'Arco)이다. 영국에서는 조앤 오브 아크(Joan of Arc)이며 독일에서는 요한나 폰 오를레앙(Johanna von Orleans)이다. 잔다크의 생애와 헌신적인 애국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 문학과 예술의 여러 형태로 재현되었다. 그중에서도 아무래도 가장 감동을 주는 문학작품은 독일의 위대한 시인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가 쓴 '오를레앙의 처녀'(Die Jungfrau von Orleans)라는 희곡이며 음악작품으로는 쉴러의 희곡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삼은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조반나 다르코'이다. 잔다크에 대한 오페라는 베르디의 '조반나 다르코'가 나오기 전에도 두어 편이 나온 것이 있다. 이탈리아의 니콜라 바카이(Nicola Vaccai)가 1827년에 내놓은 것과 조반니 파치니(Giovanni Pacini)가 1830년에 내놓은 것이 있다. 하지만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의 작품에는 견주기가 어려워서 어느 틈에 뒤로 물러났다. 베르디의 '조반나 다르코'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대본이 훌륭했다. 베르디와 콤비인 테미스토클레 솔레라(Temistocle Solera: 1815-1878)의 대본이었다.

 

프랑스 렝대성당에서의 샤를르 7세 대관식에 참석한 잔다르크(조반나 다르코). 성녀로 그려놓았다.

 

'조반나 다르코'는 베르디의 일곱번째 오페라 작품이다. 1845년 2월 15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대성공이었다. 음악도 훌륭했고 대본도 훌륭했다. 솔레라는 베르디의 첫 성공작인 '나부코'의 대본도 썼다. 솔레라는 '롬바르디'와 '아틸라'의 대본도 썼다. 솔레라가 쉴러의 '오를레앙의 처녀'를 바탕으로 했는지에 대한 여부는 나중에도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솔레라는 잔다크(조반나 다르코)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은 참고를 했지만 쉴러의 희곡은 거의 참고를 하지 않았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면서 자기의 대본은 다른 어떤 작품을 참고로 한 것이 아닌 오리지널이라고 주장했다. '조반나 다르코'의 대본이 역사적 기록에 의존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과 차이가 나는 장면들도 더러 있다. 예를 들면 오페라에서는 잔다크가 전쟁터에서 죽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역사적 사실은 그가 마녀로 모함을 받아 화형에 처해 죽었다고 되어 있는 것이다. 쉴러의 희곡과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은 오페라에서는 등장인물들이 희곡에 비하여 상당히 축소되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반나 다르코'가 희곡에서 보여주는 시적인 감흥이나 인간적인 면모 보다는 연극적인 센세이션에 더욱 치중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디의 '조반나 다르코'는 불후의 명작으로 세계의 음악사를 장식하고 있다.

  

대본을 쓴 테미스토클레 솔레라

 

초연에서 타이틀 롤은 당대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에르미니아 프레쫄리니(Erminia Frezzolini: 1818-1884)가 맡았다. 그는 베르디-솔레라의 '롬바르디'에서도 기젤다의 이미지를 창조했었다. '조반나 다르코'에서 샤를르 왕은 에르미니아 프레쫄리니의 남편 안토니오 포지(Antonio Poggy)가 맡았으며 조반나의 아버지인 자코모는 바리톤 필리포 콜리니가 맡았다. 베르디는 '조반나 다르코'를 대단한 자부심으로 내놓았으나 초연에서의 연출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베르디는 라 스칼라 매니저인 메렐리의 '조반나 다르코' 제작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만족해 하지 않았다. 베르디와 별로 상의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제작을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감정이 조금 있었을 것이다. 베르디와 가까웠던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가 하필이면 메렐리의 좋게 말해서 애인이고 좋지 않게 말해서 정부였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아무튼 주세피나 스트레포니는 나중에 베르디의 결혼하였다. 그리고 베르디로서는 메렐리가 '조반나 다르코'의 저작권을 자기가 가지려고 악보출판가인 리코르디와 은밀히 협상한 것도 못마땅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메렐리는 베르디의 명성이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자 새로 발표되는 '조반나 다르코'의 악보저작권을 자기가 차지하려는 꼼수를 부렸던 것이고 베르디로서는 그것이 너무 싫었던 것이다. 이후로 베르디는 메렐리와는 상종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따라서 라 스칼라에도 발을 들여 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라 스칼라는 '조반나 다르코' 이후 베르디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36년을 기다려야 했다. 라 스칼라에서 베르디의 작품을 다시 볼수 있었던 것은 1881년 '시몬 보카네그라'의 수정본이었다.

 

초연에서 조반나 다르코의 이미지를 창조한 소프라노 에르미니아 프레쫄리니

 

'조반나 다르코'는 라 스칼라에서 초연을 가진지 3개월 후에 로마에서 제작되었다. 그러나 문제가 좀 있었다. 교황청 검열 당국의 지시에 따라 종교적으로 직접 영향을 줄수 있는 내용들은 가급적 변경하거나 삭제토록 했다. 그리하여 타이틀을 Orietta di Lesbo로 바꾸었고 세팅도 그리스의 어떤 섬으로 설정했다. 여주인공은 제노아 출신으로 터키에 대항하는 레스비안의 리더로 그려놓았다. 이런 이상한 설정의 오페라는 1848년 팔레르모 공연에서도 그러했다. 그러다가 얼마후에 '조반나 다르코'로 원위치되었다. 그후 '조반나 다르코'는 20여년 동안 이탈리아의 주요 극장에서 성황리에 공연되었다.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장소에서도 '조반나 다르코'가 공연되었다. 그러나 세기말에 이르러서 새로운 스타일의 오페라가 떠밀쳐 나오는 바람에 '조반나 다르코'는 점차 잊혀져 갔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1951년에 나폴리, 밀라노, 파리에서 레나타 테발디(Renata Tebaldi)가 타이틀 롤을 맡은 것이 가장 깊은 감동을 주었다. 미국 초연은 1966년 3월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였다. 캐나다 토론토 출신의 소프라노 테레사 스트라타스(Teresa Stratas)가 타이틀 롤을 맡은 것이었다. 그러나 카네기 홀에서는 콘서트 형식이었다. 무대 공연은 1976년 브루클린 음악원에서였다. 영국 초연은 1966년 런던의 왕립음악원에서였다. 1996년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공연은 준 앤더슨(June Anderson)이 조반나를 맡은 것이었다. 2008년에는 두 개의 공연이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파르마에서 '페스티발 베르디'의 일환으로 공연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의 루앙에서 공연된 것이었다. 2010년에는 사라소타 오페라가 '베르디 사이클'의 일환으로 공연하였다. 가장 최근의 공연은 2013년 시카고에서의 공연이었다.

 

스칼라 공연. 조반나를 처형하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카를로 7세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조반나(Giovanna: S). 조반나 다르코. 프랑스의 구국 처녀

- 카를로 7세(Carlo VII: T) - 프랑스의 왕(샤를르 7세)

- 자코모(Giacomo: Bar) - 조반나의 아버지. 목자

- 탈보트(Talbot: B) - 영국군 사령관

- 델릴(Delil: T) - 프랑스군 장교

- 이밖에 프랑스와 영국군 병사들, 프랑스 궁정의 사람들, 마을 사람들, 귀족들, 천사들, 악마들

 

재판을 받는 잔. 결국은 카를로도 도와주지 못한다.

 

시기는 1429년이며 장소는 프랑스의 돔레미(Domremy), 렝(Rheims), 루앙(Rouen) 부근이다.

 

[프롤로그] 1장. 돔레미 마을이다. 프랑스 국왕으로 대관식을 가져야 하지만 영국과의 전쟁으로 정신이 없는 카를로(샤를르) 7세는 프랑스 군대가 영국과의 전투에서 완전히 패배할 위기에 몰려 있게 되자 크게 걱정한다. 프랑스군은 그동안 영국군으로부터 말할수 없는 고통을 받아왔으나 그때마다 겨우 버티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 패배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카를로와 휘하 장교들은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며 앞으로 닥칠 일이 두렵기만 하다. 카를로는 부하 장교들, 그리고 마침 그를 찾아온 마을 사람들에게 꿈에 어두운 숲속에서 성모의 초상화를 보았다고 말하고 그 초상화가 자기에게 다가와서 자기의 갑옷을 벗고 검을 풀어서 성모의 발 아래에 두라고 명령했다고 설명한다. 마을 사람들 중에서 몇 명이 자기들도 숲속 깊숙히 들어갔다가 나무에 걸려 있는 성모의 초상화를 본 일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두운 숲 속에는 악마들이 있어서 밤이 되면 나타난다는 얘기도 곁들인다. 카를로는 신성한 상수리나무가 있는 숲 속에 악마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부하 몇 명과 함께 성모 마리아의 초상화가 있다고 하는 숲 속의 장소를 찾아가기로 한다. 카를로의 아리아가 Sotto una quercia parvemi(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느꼈도다)이다. 그후 샤를르는 자기가 군주로서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어 부르는 카를로의 아리아가 Pondo e letal, martirio(치명적인 부담, 고뇌)이다.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프랑스를 위해 싸우라는 계시를 받는 잔

 

2장은 숲속이다. 조반나의 아버지인 자코모가 커다란 상수리나무 옆에서 딸 조반나를 안전하게 지켜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조반나가 숲 속에 있는 작은 성모교회에 들어가서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자코모는 딸 조반나가 자기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았다고 생각한다. 자코모의 아리아가 Sempre all'alba ed alla sera(새벽, 그리고 저녁에 언제나)이다. 자코모는 딸 조반나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교회 부근의 동굴에 숨어서 지켜보기로 한다. 잠시후 조반나가 나타난다. 조반나는 전쟁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어서 매우 괴로운 심정이다. 조반나는 성모에게 프랑스를 위해 싸울수 있는 힘과 능력을 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는 제단 옆에 쓰러져 잠이 든다. 조반나는 교회 안에서 기도를 하다가 잠이 든다. 갑자기 카를로가 당도한다. 카를로는 숲속의 작은 교회가 꿈에서 본 곳과 너무나 흡사해서 깜짝 놀란다. 카를로가 성당 안의 이곳 저곳을 살펴보고 있는 중에 잠들어 있던 조반나에게 한 무리의 천사들이 찾아온다. 천사들은 조반나에게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 사람이 되겠느냐고 묻는다. 조반나는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네'라고 대답한다. 천사들은 조반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라고 지시한다. 그렇지 않으면 맡겨진 사명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때의 음악이 Tu sei bella(악마의 왈츠)라는 것이다. 조반나는 천사의 말대로 자기가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믿어서 너무 감격하여 크게 소리내어 운다. 마침 카를로가 조반나의 외침을 듣고 자기의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조반나는 카를로에게 전쟁터로 함께 가겠다고 말한다. 카를로는 조반나의 용기에 전율할 정도로 감동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지켜보았던 조반나의 아버지인 자코모는 딸 조반나가 분명히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고 믿으며 앞으로 프랑스의 왕이 될 카를로에게 마음을 빼앗겨 있다고 생각한다. 카를로와 조반나는 함께 전쟁터로 떠난다.

 

카를로를 도와주고 프랑스를 영국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시키라는 지시를 받은 조반나 

 

[1막] 1장. 렝부근의 양국 병영. 조반나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영국군을 크게 무찌른다. 프랑스군은 사기가 충천해 있다. 프랑스군은 영국군 사령관인 탈보트에게 항복하라고 요구한다. 탈보트는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어 있는 부하 병사들에게 프랑스에게 패배한 것은 악마가 작용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병사들을 진정시키고자 노력한다. 탈보트는 병사들에게 한번의 패배로 항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조반나의 아버지인 자코모가 영국군 진영에 나타나서 자기의 딸이 악마의 영향을 받았다고 믿어서 조반나를 체포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길만이 조반나의 죄를 씻어줄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코모는 탈보트에게 영국군의 편에 서서 싸우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조반나를 잡아서 영국군로부터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고 약속한다. 2막은 렝의 궁전이다. 카를로의 대관식이 준비되고 있다. 조반나는 자기의 사명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여 고향에 돌아가서 예전처럼 평범한 생활을 하고자 한다. 조반나의 아리아가 O fatidica foresta(오 예언의 숲이여)이다. 그러나 카를로는 그런 조반나에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카를로는 조반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떠나지 말고 함께 있어 달라고 부탁한다. 조반나는 처음에 카를로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주저한다. 그때 조반나의 귀에 하늘로부터 천사들의 소리가 들린다. 세상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잊었느냐는 소리이다. 조반나는 즉각적으로 카를로의 제안을 무시하고 카를로의 사랑을 거절한다. 카를로는 조반나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자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카를로는 시간이 되었으므로 대관식을 위해 수행원들과 함께 렝 대성당으로 들어간다. 카를로는 대관식에서 왕관을 머리에 씌어주는 일을 조반나가 해 주기를 바란다. 자기가 왕으로 즉위할수 있는 것이 조반나의 덕분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반나가 어쩔수 없이 카를로의 뒤를 따라서 제단 앞으로 나아간다. 뒤에서 악마의 정령들은 조반나가 결국은 순수함을 잃었다고 조롱하는 노래를 부른다.

 

조반나를 처형하라고 주장하는 군중들

 

[2막] 대성당 광장이다. 렝의 주민들이 조반나가 영국군을 물리치고 승리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다. 마을 사람들은 성모의 도움이 있었다고 믿는다. 프랑스 병사들이 카를로를 대성당 안으로 모시고 들어간다. 조반나의 아버지인 자코모는 딸 조반나가 악마와 맺은 계약이 효력을 발생하고 있다고 믿어서 조반나를 만나기 위해 사람들을 밀치고 대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자코모는 조반나와의 모든 인연을 끊을 생각이다. 자코모의 아리아가 Speme al vecchio era una figlia(이 늙은이의 소원은 딸이었다)이다. 자코모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조반나의 죄를 밝히는 일장연설을 하고 한다. 자코모의 아리아가 Comparire il ciel m'ha stretto(하늘이 나로 하여금 앞으로 나서도록 했도다)이다. 그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빠진다. 그리고 자코모의 말을 믿기로 한다. 자코모는 높은 지위의 귀족들과 왕을 설득코자 한다. 하지만 왕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카를로는 조반나에게 자코모의 말같지도 않은 말을 듣지 말라고 말하며 제발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조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자코모는 조반나가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은 자기의 주장을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하늘로부터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린다. 자코모는 이것을 조반나의 고백이라고 해석한다. 마을 사람들은 조반나를 보고 마녀라고 부르면서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다. 자코모는 정신을 잃은 듯 쓰러지려는 조반나를 붙잡고 구원을 얻을수 있는 오직 한가지 방법은 불속으로 들어가 죽는 것이라고 말한다. 카를로는 마을 사람들이 마치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로고 소리치는 유태백성들 같아서 어찌할 줄을 모른다. 카를로는 폭도들의 손으로부터 조반나를 구해주지 못한다.

 

렝의 대성당에서의 대관식을 갖는 카를로

 

[3막] 화형장이다. 조반나는 화형장의 기둥에 묶여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조반나는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전투를 벌이는 소리를 듣는다. 조반나는 환상중에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린다. 조반나는 또 한번의 환상 중에 프랑스군의 승리를 본다. 조반나는 프랑스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다시한번 함께 하여 달라고 간청한다. 조반나는 천사들의 얘기에 복종하기 위해 샤를르 왕과의 사랑도 거부했음을 말한다. 조반나의 기도 소리를 들은 자코모는 그제서야 모든 것이 자기의 잘못인 것을 알게 된다. 자코모는 조반나를 묶은 밧줄을 느슨하게 만든다. 조반나는 자기를 묶은 밧줄을 풀고 전선으로 달려간다. 조반나는 영국군의 공격으로부터 카를로를 구하고 다시한번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끈다. 그러는 중에 조반나가 전사한다. 한편, 자코모는 샤를르 왕에게 자기를 벌해 달라고 간청하다가 나중에는 용서를 구한다. 카를로가 자코모를 용서한다. 샤를르는 프랑스군의 승리소식과 함께 조반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카를로의 아리아가 Quale al piu fido amico(나의 가장 진실한 친구)이다. 병사들이 조반나의 시신을 메고 들어온다. 그런데 갑자기 생명이 조반나의 몸 속으로 들어가서 조반나가 살아 일어난다. 자코모는 죽었던 딸이 살아나서 너무나 기쁘다. 조반나는 아버지 자코모를 용서하고 두 손으로 포옹한다. 카를로는 조반나에게 다시한번 사랑을 고백한다. 천사들이 나타나서 구원과 승리를 노래한다. 조반나는 마침내 마지막 숨을 쉰 후 죽어서 하늘로 들림을 받아 올라간다.

 

조반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카를로

 

[명음반] - 조반나, 카를로, 자코모 - 지휘, 오케스트라

- 1951: 레나타 테발디, 카를로 베르곤치, 로랄도 파네라이 - 알프레도 시모네토, RAI 밀라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 1972: 몽세라 카바예, 플라치도 도밍고, 셰릴 밀네스 - 제임스 르바인,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암부로시아 오페라 합창당

- 1990: 수잰 던(Susan Dunn), 빈첸초 라 스콜라(Vincenzo La Scola), 레나토 브루손 - 리카르도 샤일리, 테아트로 코뮤날레 디 볼로냐 오케스트라 및 코러스

 

조반나 다르코에 안나 네트렙코. 라 스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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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러의 '오를레앙의 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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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의 '조반나 다르코'에 영향을 준 프리드리히 쉴러의 '오를레앙의 처녀'(Die Jungfrau von Orleans)는 쉴러가 1801년 라이프치히에 있을 때에 쓴 희곡이다. 오페라 '조반나 다르코'가 나오기 44년전의 일이다. 쉴러의 '오를레앙의 처녀'는 쉴러의 작품 중에서 그의 생전에 가장 많이 공연된 연극이다. 극본의 제목은 '오를레앙의 처녀'이지만 당연히 잔다크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플롤로그는 주요 주인공들이 누구인지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어 5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막은 잔다크의 생애에서 특기할만한 이벤트를 극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1막부터 4막까지는 역사적 사실과는 조금 거리가 먼, 말하자면 부차적인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잔다크가 전투를 하면서 적군 병사들을 직접 죽인다는 내용도 포함하였다. 기록상으로 잔다크는 병사들을 이끌고 전투를 독려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르마냑과 부르군디의 화해를 1435년으로부터 1430년으로 옮겨 놓았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5막의 내용은 자유형태이다. 잔다크가 어떤 영국 기사를 창으로 찔러 죽이려 할때 창이 빗나가서 그 기사의 투구를 벗기게 되었는데 그 기사는 전에 잔다크가 사랑에 빠진 적이 있는 사람이어서 목숨을 살려준다는 식의 내용이 들어간 것이다. 잔다크는 렝에서 마녀로 낙인이 찍혔지만 자기 자신의 무죄에 대한 변호를 하지 않아 결국 유죄로 선고를 받고 화형에 처해지게 된다. 이와 함께 프랑스 궁정에서도 추방되며 프랑스 군대에서도 쫓겨난다. 영국군에게 사로 잡힌 잔다크는 감옥에서 창살을 통해 프랑스군이 무참하게 패배하는 모습을 본다. 잔다크는 참지 못해서 옥문을 깨트리고 나가서 프랑스군을 도와 승리하게 만든다. 잔다크는 프랑스군의 승리가 확실시 될 즈음에 죽는다. 그리하여 잔다크는 자기의 명예를 회복한다는 내용이다. 역사기록에는 잔의 아버지의 이름은 자크 다르크(Jacques d'Arc), 어머니는 이사벨 로메(Isabelle Romee)로 되어 있다.


안나 네트렙코와 프란체스코 멜리가 출연한 라 스칼라에서의 '조반나 다르코'

 

쉴러의 극본은 19세기 초에 새로운 국수주의, 새로운 군국주의를 반영하는 것이며 아울러 칸트의 이상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도덕적 원칙도 상당히 중요한 주제로 등장한다. 쉴러의 극본 중에서 3장에 나오는 탈보트의 대사인 Mit der kampfen Gotter selbst vergebens(Against stupidity, the gods themselves contendin vain: 어리석게도 신들은 쓸데 없는 일로 서로 다툰다)를 인용하여서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가 The Gods Themselves 라는 타이틀의 소설을 썼다.

 

조반나는 카를로의 사랑을 프랑스를 영국으로부터 구원해야 하는 사명감 때문에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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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크(Jeanne d'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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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소설과 연극과 영화와 오페라와 그림, 조각의 주인공인 잔다크는 실제로 어떤 인물이었을까? 태어난 것은 1412년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날은 1431년 5월 30일로 되어 있다. 별명은 La Pucelle d'Orleans(오를레앙의 푸셀 아가씨)이다.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은 그가 푸셀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백년전쟁의 막바지에 오를레앙을 포위한 영국군을 물리치는데 앞장 섰기 때문이다. 잔다크는 프랑스의 구국 영웅이며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녀로 추앙되었다. 잔은 대천사 미하엘을 비롯하여 성 마가렛, 성 캐서린으로부터 샤를르 7세를 도와주고 프랑스를 영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는 영국과 이른바 '백년전쟁'의 막바지에 있었다. 샤를르 7세는 영국이 프랑스의 상당부분을 지배하고 있었고 계속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혼란 중에 대관식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샤를르 7세는 어서 대관식을 가져서 프랑스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요새 중의 하나인 오를레앙은 영국군이 공성을 하고 있었다. 샤를르는 잔에게 오를레앙으로 가서 영국군을 무찌르고 성을 보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잔은 오를레앙으로 가서 영국군의 포위를 9일만에 무너트리고 영국군을 몰아냈다. 그 후에도 잔은 여러번에 걸친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기록했다. 그로 인하여 샤를르 7세가 렝에서 대관식을 올릴수 있었다. 잔다크의 이름에서 다크(d'Arc)는 아버지의 이름이어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잔이 태어난 마을의 이름이 Arc 이기 때문에 잔다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아니다. 잔다크는 17세에 프랑스군에 들어가서 2년 동안 활약하다가 브루군디 사람들이 프랑스를 배반하는 바람에 영국군에게 잡혀 형식적인 종교재판을 받아 마녀로 낙인이 찍혀 루앙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오를레앙 탈환을 위해 깃발을 들고 앞에선 조반나

 

잔은 1430년 5월 23일 꽁피에뉴(Compiegne)에서 영국군과 동맹을 맺은 부르군디 분자들에게 포로로 잡혔다. 잔은 그후 영국군에게 인도되었다. 잔은 보베(Beauvais)의 친영국 주교인 피에르 코숑(Pierre Cauchon)에게 재판을 받아 여러 죄목으로 유죄를 받았다. 그리하여 1431년 5월 30일에 보베에서 19세의 나이로 화형을 당해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25년 후 교황 칼릭스투스(Callixtus) 3세는 종교재판소에게 잔에 대한 재판기록을 재검토하도록 지시했다. 결과, 교황은 잔의 무죄를 선언하고 잔은 순교자로 공포했다. 잔다크는 1909년 복자로 시복되었고 1920년에는 마침내 성녀로 시성되었다. 잔다크는 아홉명 프랑스의 수호성인 중의 하나이다. 이들은 생드니(St Denis), 생마르탱 드 투르(St Martin de Tours), 생루이(St Louis), 생미셀(St Michael), 생르미(St Remi), 생페르토닐라(St Petronilla), 생라드겅(St Radegund), 생테레스 드 리슈(St Therese de Lisieux), 그리고 생잔다크(St Jeanne d'Arc)이다.

 

자코모와 카를로가 전투에서 전사한 조반나를 애통해하고있다.